둥글이님만 보시고 다른 분들은 절대 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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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아 (210.♡.89.228) 댓글 7건 조회 4,254회 작성일 08-03-25 23:52본문
저쪽에서 헐벗고 굶주리고 핍박받는 사람까지 행복해 지는 것일까요?
몰라서 묻습니다. 정말 궁금합니다.
'내 마음속의 만족과 행복의 문제'와 '저쪽에서 헐벗고 굶주리고 핍박받는 사람의 문제'는
별개의 사건일까요? 그래서 이 양자는 '따로' 고민해야할 문제일까요?
핍박받는 사람까지 행복해 질 수 있을까요?가 좀더 나은 질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저사람을 보는 관점이 변하기에 저 사람의 문제가 이 사람으로 인해서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만족과 행복이 어떤 성질과 력량을 띤 것이냐에 따라 그 전개양상도 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양자는 별개의 사건이나 그 다음은 별개의 사건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 반대로도 생각할 수 있지요.
핍박받는 사람의 문제를 고민하다가 내 자신의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로 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자는 함께 고민해야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개인적인 편차가 있고 또 내면과 외면이 조화를 이루는 것도 다 다른 것이지요.
한 마디로 넘어서거나 미치지 못하여서 불행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때에 맞게 하는 시중이라고 하는 것으로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것이 중용입니다.
이같은 중용의 마음을 가지면 내가 가졌을 때 남에게 덜어 주고, 내가 못가졌을 때 가지려 부지런히 노력하게 됩니다.
모두가 이렇게 된다면 다 함께 조화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나,
못 가진자가 안가지려 하기에 가진 자가 덜어주는 것을 막고, 가진자가 더 가지려 하기에 못가진자가 가지려 노력하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의 것은 문제가 안되지만 뒤의 것은 문제가 됩니다.
가져서 괴로운 것은 물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면 일단 못가져 괴로운 것은 물질적인 문제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물질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스스로 노력하여 물질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그렇게 되지 않는 자들은 누군가가 도와줘야 하는 것입니다.
이 둘이 안될 때 물질적인 부족으로 인한 괴로움이 옵니다.
더욱 문제인 것은 가진자들의 더 가질려는 욕심때문에 노력해도 안되는 괴로움을 겪는 이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골치아픈 문제입니다.
어떻게 해야하나? 바로 이것이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풀까요?
이것이 바로 삶에 있어서 우리가 배워야만 하는 숙제이고 넘어야할 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을 뛰어 넘어야 비로소 보다 큰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게 또 하나의 공부기회입니다.
그러면 공동으로 해결책을 모색할 수도 있겠지요.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개인이나 사회, 국가 세계의 문제가 이런 맥락을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중용이야말로 이 물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중용의 마음으로 중용의 행을 할 때 치우친 것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발전일변도의 자본주의는 가진 자가 더 가질려는 것의 연장이고, 분배일변도의 공산주의는 못가진자가 갖지 않으려는 것의 연장이라는 것입니다.
이 둘은 모두 중용을 어긴 것으로 조화로운 관계와 조화로운 삶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연은 균형이 깨졋을 때 늘 조화를 이루려고 변동을 갖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용이 그 속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중용의 마음으로 살면 가진자는 덜고 못가진자는 가지려하여 발전이변도와 분배일변도의 어리석음에 떨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모두 중용을 잃고 치우친 결과입니다.
만일 중용의 마음으로 중용의 길을 가는 이가 있다면 그는 그 자체로 정치를 하는 것이고 그 자체로 세상을 돕는데 일조하는 것입니다.
그가 역량을 갖춘만큼 자신을 돕고 세상도 도울 수 있을 것입이다.
그것은 그가 처음도 중간도 중용을 행하기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마음이 진정 중용이라면 그가 그 중용의 마음을 얻었다면, 그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남들보다 역량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치우친 것을 바로 잡고 못가진자가 노력하여 중용을 이루고 가진자가 덜어서 중용을 이루는 세상을 만드는 데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럴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하여 그렇게 안된다면 또한 그 만큼 발휘한 것이니 어쩔 수 없겟지요.
다만 그렇게 꾸준히 중용의 길을 갈 뿐인 것이지요.
그래서 근본은 마음이 과연 중용의 길을 얻었는가라고 할 것이고 그 다음이 역량을 갖추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정신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역시 개인의 정신적인 문제도 될 수 있고 공동의 정신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으나, 공동의 정신적인 문제도 개개인의 정신적인 문제가 모여 된 것이기에 그 근본은 개인에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개인의 정신적 문제는 사실 앞의 물질적인 문제와 닿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정신이 맑고 밝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도 그와 같아서 물질적인 문제에 그렇게 흔들리지 않고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만사가 마음편한데서부터 잘 풀리는 것입니다.
마음이 불안하면 스트래스로 불쾌나 불만족 분노가 일면 일이 잘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든 일을 하든 무엇을 하든 마음이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디에 눌리거나 가려지거나 찌그러지지 않은 마음은 자체가 편안하고 자유로운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여유롭고 자족하니 모든 일이 잘 됩니다.
잘 안되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편안하니 집안이 편안하고 사람을 만나도 편안합니다.
백절불굴의 힘이 은연중에 있어 가난이란 것을 즐길 여유도 있고 작은 일에도 만족을 얻고 기뻐할 수 있으니 활기찹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 마음이 욕심에 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불만족하기에 늘상 밖으로 움직여서 쉴 줄을 모르게 되니 안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기에 만족을 얻으려고 밖으로 구해 끝없이 달리게 마련인 것입니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한 마음에 끌려 다닐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일단 그 마음 다스리는 것이 앞에든 중용이다 명상이다 좌선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 뒤에야 내 마음을 다스려 마음이 평화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그런 것을 배우는 것이지요.
그래서 마음이 다스려져서 편안하게 되고 마음의 난을 평정하여 주인이 마음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다 객에 끌려다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일차적으로 이 마음의 편안함과 행복을 위해 명상도 하고 요가도 하고 좌선도 하고 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앞의 중용과 연결지으면 서로 돕는 줄을 알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과 일을 병행함이 당연한 것입니다.
횡설수설했지만 대체적인 윤곽은 말했습니다.
이것을 나누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고, 늘상 일상에서 세상의 문제를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러한 삶 자체가 '나의 삶'일 까요.
궁금해서 묻습니다.
마음이 있고 세상이 있으니 온갖 문제가 벌어진 것입니다.
이제 마음이 없으니 세상도 없어 온갖 문제가 없는데 세상은 어디있고 마음은 어디 있고 문제는 어디있는 것일까요?
그런데도 세상의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고 할 것입니까?
그러니 고민이니 실천이니 삶이니 나니 너니 궁금하니 묻느니 란 것이 얼마나 거시기한 소리인줄 알 것입니다.
그래서 꿈꾸지 말아라 합니다.
꿈만 깨면 바로 아무 일이 없는 것인데 꿈꾸다 보니까 이문제 저문제 갖가지 일들이 마구 일어나 정신이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꿈만 깨면 그런 일들이 다 어디 갔냐 이 말입니다.
지가 공연히 꿈꾸었다 이 말입니다.
꿈만 깨면 아무 문제없으니 그냥 살면되는데, 그게 잘 안된다 그 말입니다.
아무 문제 없으니 그냥 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여기 김기태님의 늘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여기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궁금하고 묻고 하는 것이 도리어 꿈꾸는 소리로 들리는 것입니다.
공연히 일을 만들어 걱정하고 바쁜 것이 둥글이님의 모습입니다.
굶어죽어도 그 소리할 수 있을까? 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입장에서는 그것이야말로 꿈꾸는 극치입니다.
이해가 가나요?
이해라도 가야 자꾸 여기서 정신적인 문제해결이 물질적인 문제마져 다 해결한 것처럼 보이는 것을 끄덕이게 되는 것입니다.
말로하자면 극한 상황이라는 것도 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문제제기 자체가 웃기는 일인 것입니다.
이해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왜 정신적인 문제가 물질적인 문제까지 아울러서 말하게 되었는지 이해를 하면 그래도 긍정할 부분이 생길 것입니다.
댓글목록
자몽님의 댓글
자몽 아이피 (203.♡.101.115) 작성일
저 봐 버렸는데요 ^^
많은 메새지가 담긴 글이라 정독하지는 못했구요.
인간 존재에 얽힌 허다한 문제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그기에 염려, 연민, 사랑과 지혜 등이 나온답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의(그녀)의 다양한 삶의 방식과 주체, 인식이 모두 다릅니다. 모두 고유하다는 것이지요.
그 내적 역동성과 방향은 오로지 그만이 실체와 가식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둥글님 보고 '외부에서 찾는다'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 '허덕인다' '시간 낭비이다' 이런 충고나
의견은 단지 타자가 바라보는 타자의 견해 일 뿐입니다. 그것은 지나친 기우이고 의견입니다.
둥글님이 그런 점을 이해못하거나 간과할 정도로 미성숙한 사람 같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저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더 건강해 보이고 온전해 보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자신이 갖고 있는 상식이나 믿음의 편견으로 자꾸 그를 저울질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둥글님을 믿고 그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잘 걸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방향 착오나 오류가 생기더라도 또 자신의 궤도 수정을 하여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따뜻한 공감과 지지를 그에게 보내고, 일절 나는 그의 길에 간섭이나 충고를 하지 않기로 했답니다.
그는 주체적으로 움직이고 살아 있을 것 입니다. 나는 도판의 교과서나 심리학 나부랭이로 그를
판단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냥 조용히 지켜 봐 주세요. 그의 길이고 그가 판단하고 그가 세상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그가 오히려 우리가 못보는 걸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존, 마음, 경험적 측면에서 우리보다
나은 것 같아요.
좀 더 낙천적 관점이나 시간 속에서 한 존재의 여정을 가만히 지켜 보고 있는 것. 똘레랑스의
여유를 가집시다.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211.♡.228.4) 작성일
ㅋㅋ 자몽님은 별로 나이도 안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여유롭고 폭넓은 아량이 저라는 사람을 마냥 좋게 만 보시는 듯 합니다. ^^
무아님에게 궁금한데요.
그런데 스스로 답변을 하시면서도 '모순'을 느끼지 못하셨는지요.
이렇습니다.
첫째 질문은 [세계는 없고 내 자신(마음)만 있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마음만 존재한다고 하는 이들은 세상의 문제(헐벗고 굶주리는 이들)에 아랑곳 않고,
자기 마음만 다스리면 될 것이겠죠.
이에 대해서 무아님은 (내 마음만 다스린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는 이 양자(나의 정신(나)와 헐벗고 굶주리는 이의 고통(세계))가 다른 것이다고 인정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제가 오해했으면 지적해주십시요]
두번째 질문인 [나의 정신(나)]과 [헐벗고 굶주리는 이들(세계)]는 별개의 것이냐에 대한 질문의 답변도
무아님은 이 양자 [내 자신의 정신(나)]와 [헐]고 굶주리는 이들(세계)]를 구분하시고,
더불어 '물질적 관계'에서도 적당한 '중용'을 이뤄야 한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런데 세번째 질문에서 극적인 반전이 이뤄지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앞서 첫째 둘째 질문에서는 '나'와 '세계'를 분명히 구분하면서
'나의 정신적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외부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는 식의 입장을 피력하셨습니다.
'중용적인 노력'(물질과 인간과의 삶에 너무 너무 덜하지도 말고 넘치지도 말라는 표현으로)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세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꿈만 깨면 바로 아무 일이 없는 것인데 꿈꾸다 보니까 이문제 저문제 갖가지 일들이 마구 일어나 정신이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꿈만 깨면 그런 일들이 다 어디 갔냐 이 말입니다....] 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면서
[그냥 살면되는데...]라고 말씀 하십니다.
자기 마음이 닿는 대로만 움직이면 된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군요.
마치 모든 문제를 스스로의 마음의 문제로 환원하시는 듯 하군요.
이는 앞선 첫째, 둘째 문제에 대한 답변의 '모순'이 아닌지요.
무아님이 쓰신 글을 통해서 '그리'보여서 말씀 드립니다.
아니면 지적 바랍니다.
더불어 무아님이 스스로의 관념과 이해에 대해서 그리 관대한 것 처럼...
저의 '인간'과 '세계'에 대한 관심이 단지 제 자신의 정신적 문제에 대해 확대한 개념이고,
'인간'과 '세계'에 대한 신경씀이 여지껏 제 자신의 정신적 안락추구에만 치우쳤던 관념적이고도 이기적인
발상에 대한 '중용'을 얻기위한 노력으로 보시기는 힘드신지요.
뭐 싫음 마시구요. ^^'
하여간 무조건 닥달하는 것이 아니고, 이해를 나누기 위해서 노력해 주시는 모습에 감사드립니다.
무아님의 댓글
무아 아이피 (210.♡.89.228) 작성일
자몽님 눈에는 제 글이 그렇게 보였습니까?^^
가독력이 상당히 있으신 분인줄 알았는데...
그리고 보지 말라는 얘기는 다 이유가 있으니 댓글 달지 말라는 것인데, 성큼 댓글을 다시는 님의 성급함은 때에 맞는 소리가 아닙니다.
이게 뭡니까?
부조화가 생겨났지 않습니까?
여유를 가지셔야 할 분은 자몽님인 듯 합니다.
자몽님의 댓글
자몽 아이피 (210.♡.107.100) 작성일
무아님 글이 제법 길어서 정독은 못했습니다.
성급하게 끼어들었다면 죄송하구요.
저는 논지와 논리의 옳고 그름 보다
항상 사람과 그 마음을 사려는 사람입니다.
무아님의 댓글
무아 아이피 (210.♡.89.228) 작성일
당연히 마음과 세계는 다른 것입니다.
마음만 있다고 하는 것도 그런 자리에서 이해한다면 미친소리가 되지요.
둥글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렇게 보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우리가 보는 관점에 따라 대상이 얼마나 달라보이냐면요,
옛 사람의 체험의 말씀을 예로 들어 보이면 이렇습니다.
내가 예전에 산을 보니 산이고 물을 보니 물이더라.
그런데 공부하고 시간이 지나서 보니 산이 산이 아니고 물이 물이 아니더라.
그리고 한참의 세월이 흐른후 다시 산과 물을 보니 산은 산이고 물은 그대로 물이더라.
저는 이것을 모름니다.
모름에도 이것을 예로 든 것은 님의 이해를 돕고자 해서 입니다.
여기서 산은 산으로 보고 물은 물로 보는 자리에서는 산과 물은 분명 둘이지 하나가 아닙니다.
그러나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자리에서는 어떨까요?
둘은 분명하게 다르지 않지요.
그러면 앞의 견해로 볼 때 뒤의 견해는 미친소리이자 모순이 됩니다.
그런데 다시 세번째 자리에서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입니다.
이것은 앞의 견해도 아니고 두번째의 견해도 아닙니다.
어떻게 보는 것일까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왜 앞에서 말한 것과 뒤에서 말한 것이 다른 지 이해하시겠는지요?
문제는 세번째의 경우는 첫번째와 두번째의 주장을 모두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르면 배우는 게 상책이다 라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저의 관념과 생각에 관대하지 않습니다.
어긋난 것은 저뿐아니라 남까지 망칩니다.
그것을 수십차례이상 아니 무수히 많이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이제는 분명해도 몸소 해보면 자명해짐을 압니다.
그러면 아닌 것은 자동으로 도태?되지요.
그러면서 진실이나 진리에 가까와 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기까지 시간이 너무 허비돼요.
이게 문제랍니다.
아까워요. 많이많이...
저는 저나 남에게 이 진리의 문제, 사상이나 생각의 문제에 있어 관대하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둥글이님이 저를 비판하고 하여도 그것이 저에게는 도움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대화는 할 수록 좋다고 봅니다.
착오를 줄여 서로 진리에 진실에 가까와 질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힘들긴 하지요. 번거롭기도 하고...
둥글이님이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저또한 고맙습니다.
저는 그 노력을 높이 삽니다.
그래서 이런 글도 올리는 것이지요.
우리에게 남은 건 노력밖에 없어요.
믿을 것도 그것뿐인 듯하고...
다만 시간을 너무 허비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쓴 글일 뿐입니다.
제 눈에는 그렇게 보여서 말입니다.
자몽님의 댓글
자몽 아이피 (210.♡.107.100) 작성일
무아님 말씀도 맞습니다.
속뜻이 그리 깊은 줄 몰랐네요.
또 자세히 말씀을 들어보니
수긍이 갑니다. (헛수고나 헛노력이 아닙니다)
결국 소통이 잘되면 누구나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지요.
문제가 풀리기 보다는 서로 인식하기에 문제가 더 명료화 하여
바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랑임을 확인합니다 ^^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211.♡.228.4) 작성일
사려깊은 설명 말씀 감사합니다.
새겨 듣겠습니다. ^^
저는 사실 (비유 들자면)'산이 산인지, 물은 물인지'에 대한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논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생각하기 나름이고, 제가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도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는 길조차 없기 때문에 자칫 감정싸움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 그보다 다루기 수월한 문제만을 꺼내려 하는 것이죠.
대화가능수준에서 대화를 통한 주고 받음을 통해서 하나씩 풀어나가자는 주의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너무 '벅찬' '고차원적' '뜬금없는' 그리고 '일방적인 훈수하기' 식의 답변을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이에 '변명'을 하다 보니 그에 대한 글이 더욱 많아져 버리는 것이 문제이지요. ㅠㅜ
물론 그것도 '보기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요. ^^
하여간 말씀 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