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를 위한 변명
송두율은 독일의 대학교수이다. 2003년쯤에 북한 노동당의 고위인사였다느니 어쩌느니로 세간이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그의 학술적 방법론인 '내재적 접근론'은 이적단체 찬양고무등의 실정법위반의 혐의를 뒤집어쓰고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 부분을 포함해 많은 혐의가 무죄가 되었다.
'내재적 접근론'은 간단히 말하자면, '그들 내부의 눈으로 그들을 보자'이다. 실상 새로운 말은 아니다. 역지사지가 바로 내재적 접근론의 다른 말이다. Put yourself in other's shoes. 입장을 바꿔 생각한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말이다.
역사를 해석하는 많은 입장이 있지만, 이 내재적 접근법은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는데에도 적용이 될 수 있다. 과거 조선시대를 보는데 있어서, 어떤 눈으로 조선시대를 해석할 것인가?
지금의 눈으로 보는 조선시대는, 민주주의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운 봉건세습왕조시대이다. 소소한 민본주의 전통을 찾아내 부각시켜보려 하지만, 그 사회는 기본적으로 세습사회였다. 왕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의 신분자체가 세습이 되었다. 민주주의와는 아주 거리가 먼 사회이다. 우리가 지금 북한을 봉건세습왕조라 비난하는 것도 현 시점에서 보기 힘든 매우 퇴행적인 모습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 시대 아주 뛰어난 개혁가 내지는 혁명가라 할 지라도, 백성들이 1인1표를 행사하여 왕을 뽑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기껏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가?'정도의 역성혁명인데, 설사 이렇게 왕이 되었다 해도 다음의 왕은 자기의 아들에게 물려주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듯 그 시대, 문화의 지배를 받는다. 민주주의를 찾고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갔지만, 사실 민주주의도 완벽한 제도는 아니다. 이 세상 어디에 완전한 제도가 있을 수 있겠는가? 조선시대의 사람들이 세습왕조이외의 다른 통치체제는 상상할 수도 없었듯이, 우리도 지금 민주주의를 대체할 만한 정치이념은 생각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봉건세습왕조를 역사속의 유물로 보듯이, 몇백년 후의 후세인들은 지금의 민주주의를 뒤떨어진 신념체계로 볼 지도 모를 일이다.
조선시대의 통치이념인, 유교, 정확히는 성리학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유교의 폐해로 많은 것들을 얘기할 수 있다. 남존여비사상이나, 허례허식이 심했다거나, 실질적이지 못한 공리공론이 주를 이뤘다거나, 따라서 발전적이지 못했다는 지적들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본다. 이런 비판의 기준은 무엇인가? 어느 기준으로 이것을 비난하는가?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그다지 필요없는 농경공동체사회에 지금의 잣대를 들이대어 과학과 기술을 천시했다고 하는 비난은 그 시대를 돌아보는데에 온당치 않아 보인다. 형식에 치우치는 행태는 그 시대 매우 발달한 중앙집권적인 행정조직과 관료사회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 얘기는 한편으로 매우 고도화되고 체계화된 통치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도 된다.
자급자족의 경제가 이루어지고, 종묘사직과 백성의 안녕이 최우선인 사회에서, 국정지표는 당연히 사회안정과 현상황유지가 됨은 자명하다. 이를 두고 과거지향적이고 억압이 심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일면의 사실일 뿐이다.
물론, 조선시대의 통치계급이 시대적 상횡에 발맞추지 못하고, 바깥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수구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성리학에도 분명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모습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리학과 유교를 현재의 악의 근본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느 이데올로기던지 그것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교조적이고 배타적일 수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유교에 대한 폄하는 특히 한국전쟁이후 미국의 영향을 받으면서 심화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새로운 왕조의 왕으로 등극한 이승만은 조선왕조를 짓밟음으로써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왕으로 자신을 부각시키고 아울러 서구기독교시각에서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으로 전통과의 단절을 꾀한게 아닌가 싶다. 그 뒤를 이은 박정희 역시도 과거와의 단절과 부정을 통해 근대화를 이루려고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조선시대의 유교는, 모든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의 뿌리로 낙인찍힌 게 아닌가 싶다.
정말로 모순적인 것은, 이렇게 조선시대의 유교를 비난하는 분들이 사실은 민족주의자라는 사실이다. 민족주의자라고 한다면 민족의 형성과 그 전통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민족의 전통과 뿌리를 부정하는 민족주의자를 나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조선시대의 성리학, 유교에는 눈을 씻고 봐도 민족주의가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