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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을 찾는 그대에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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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불 (125.♡.248.86) 댓글 7건 조회 5,288회 작성일 11-04-2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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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깨달음을 말하는 수많은 글들이 올라옵니다. 하지만 같은 풀잎위의 이슬을 마셔도 어떤 동물에겐 감로수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되듯이 깨달음의 관문에 들어서지 못한 이가 들으면 전혀 도움이 안되는 독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글을 읽고서 마음이 순화되는 것이 언뜻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그냥 하나의 선업을 짓는 일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선과도 악과도 전혀 관계가 없기에 혹시 깨닫기 전이라면 오로지 마음을 돌이켜 근본자리를 찾는 것에 매진을 하시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깨달음의 관문에 들어서는 것은 두손으로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것과 같아서 의식적으로 한다면 어떻게 하더라도 성공할 방법이 없습니다. 때문에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깨달음의 자리에 들어오게 하는 가장 빠른 방법에는 듣는 사람의 의식을 꼼짝 못하게 무력화시키는 일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예수가 원수를 사랑하라라고 말했다거나 너 자신을 사랑하라처럼 당연히 의식으로 이해되는 말이나 에고가 강화되는 말보다는 부처가 마른 똥막대기이다와 같이 의식적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말이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나중에 보면 이말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깨달음은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관계가 없습니다. 어떤 이는 하이델베르그의 불확정성의 원리도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자연보호나 자원재활용같은 것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정확히 말해서 깨달음은 세상의 현상을 분석하고 이치를 적용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모든 사물은 공하다 허깨비다 설명을 하더라도 그 허깨비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쉬지를 못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허깨비인 만화캐릭터나 인형에도 애정을 주고 결혼까지 하는 사람이 나오는 세상입니다.
경전에 삼계유심 만법유식이라고 했듯이 근본자리를 찾아서 마음을 쉬게 되는 것이 이 공부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그러니 한결같이 일을 마친 선사들은 말합니다. 배고프면 밥먹고 잠오면 잠을 잔다라고 일을 마치면 따로 해야할 일이 없습니다. 인연에 따라 응하고 인연에 다하면 보내니 때가 되어 몸을 벗을 때가 되면 스스럼없이 몸을 벗고 세상을 쉬이 버리기도 합니다. 설익은 이가 깨달음을 말한다고 세상에 대한 이치를 설명한다거나 무엇을 해라 또는 무엇을 하지마라라고 하는데 그것은 전부 꿈속에서 또 다시 꿈을 꾸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남들로 하여금 더욱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경우가 될 것입니다.
가끔 염불로써 신비한 체험을 한 이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부처가 된 양 가끔 부처님와 예수님을 대단한 존재로 여기지 않기도 하고 말투도 하라! 말라!체로 바뀌기도 합니다. 깨달음의 끝을 보기전까지는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조심해야합니다. 옛 사람들의 사례를 읽어보면 첫 체험인 초견성을 한 후 공부를 마치기까지 빨리는 수년에서 보통은 일이십년은 족히 걸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에고가 강화되는 잘못된 길로 빠지면 차라리 이 체험을 하지 않는 것만 못하며 이렇게 되면 이 일을 마치는 것은 영영 기약할 수가 없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無我)는 무(無)도 유(有)도 아닙니다만 공부중에 한 체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번뇌장에 이어 소지장마저 없어져야 공부를 마쳤다고 얘기할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하다면 겨우 초입에서 맛본 한 체험으로 깨달음을 내세우는 일 자체가 오히려 아주 강력한 에고를 만들게 될 수가 있습니다. 이 경우 깨달음의 부산물로 약간의 영적인 능력이라도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에고가 작용하여 자신을 아예 부처나 신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사이비교주는 대부분 이런 형태의 체험을 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사람들은 진정한 깨달음에는 깨달음의 흔적조차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형태의 의식적인 노력일지라도 그냥 모든 것을 놓고 쉬는 것만 못하며 마음을 쉬기위한 방법으로는 권할 만한 것이 화두 참구나 설법이 좋습니다. 일을 마친 이의 설법을 듣다가 한 순간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이 문안에 순식간에 들어오기도 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마음을 방하착하고서 어떤 체험을 하게 되면 그때서야 경전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되며 그제서야 공부한다는 말이 가능합니다. 그 전에는 아무리 많은 경전을 읽고 외우고 해도 공부가 아니라 업을 짓는 일이며 알음알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설법외에 화두참구가 널리 알려진 방법인데 이는 공부하는 이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마취제와 같은 역활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불교의 수많은 화두중에 조주스님의 무자화두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라고 한 스님이 물었더니 조주스님왈 무(無)!라고 대답을 한 것이지요. 이 화두가 수많은 중생들을 구제하여 부처로 만든 화두중에 백미라고 일컬어도 될 화두입니다. 선가귀감을 쓰신 조선시대 서산대사는 이 화두에 붉게 단 화로에 떨어지는 한송이 눈이라고 대답을 했다지요. 한 소식했다고 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화두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 빈 틈이 없을까요?

댓글목록

일호님의 댓글

일호 아이피 (14.♡.40.191) 작성일

이 화두라고 하시면,
조주선사의 '무'자 화두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서산대사의 답변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는 한 소식한 사람은 아니지만, 묻고 답하는 걸 너무나 좋아하는 호기심천국, 퀴즈소년이라서요.

문 : (일체만물에 불성이 깃들어 있다고 하는데) 왜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고 하는걸까?
저의 답 : 고양이에게 물어보아라.

근데, 마음을 쉰다고 하면, 그냥 마음을 쉬는 건데, 마음을 쉬기위해 화두 참구를 하면, 그건 마음을 쉬는 게 아니지 않나요?
쉬는건 노력을 안 해야 쉬는 건데, 쉬기 위해 노력을 한다는 건 앞 뒤 말이 안 맞다고 봅니다. ^^

일호님의 댓글

일호 아이피 (14.♡.40.191) 작성일

다시 읽어봐도 공감가는 말씀이 참 많습니다.

여기 게시판에 출몰하는 아무개라는 분이 계신데, 그 분도 자기보다 3년아래면 막 해라체를 쓰고, 사실 온라인이라는 공간에서는 서로 '해요'체를 쓰는게 예의인데요, 아직 얼굴도 모르고 서로 통성명한 사이도 아니니까요.

근데, 이 아무개라는 분은 아무한테나 반말을 하시거든요. 여기 이 홈페이지의 주인공격인 비원님한테도 형님, 사랑해요 이러면서 막 반말식으로 하시고, 저한테도 막 반말하시고. ㅋㅋㅋㅋㅋㅋ 이 분은 나는 이렇게 깨달았다는 책까지 내신 도인이거든요. ㅋㅋㅋㅋㅋ

물론, 좀 다른 면도 있긴 해요. 아무개 이 분은 누가 반말해도 별로 기분나빠하지 않는다는....오히려 자기한테 반말하라고 하니까 말입니다. 아무개한테 '님'자 붙이면 바로 정의의 불벼락이 돌아옵니다. ㅋㅋㅋㅋ

그쵸, 아무개형님? ㅋㅋㅋㅋㅋ

무불님의 댓글

무불 아이피 (125.♡.157.21) 작성일

무자화두는 이해나 설명으로 도달할 수 없는 체험입니다. 하지만 그 체험을 하신분들은 공통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 있으니 이는 후인들을 위하여  비유적으로 설명할 뿐 그냥 답이 아니면 말씀을 드리지 못하니 양해바랍니다.

무불님의 댓글

무불 아이피 (125.♡.157.21) 작성일

도덕경에 이런 말이 있지요? 천지는 불인(不仁)하여 사람들을 풀강아지로 여긴다.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니며 정(情)이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닙니다. 듣는 일이 없이 듣고, 말하는 바가 없이 말하고, 하는 바가 없이 저절로 하게 됩니다. 이 말은 어려운 말은 아니지만 스스로 이 자리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전혀 모릅니다. 냉장고가 없는 열대지방의 사람들에게 아무리 눈(雪)을 설명해봐야 설탕으로 알아듣는 이치라고 할까요?

천지를 닮으면 스스로가 없어지고 저절로 불상현(不尙賢)이 되니 바른 깨달음에 도달한 사람이라면 무엇하나 내세우지 않고서 그냥 그럴 뿐이니 저절로 천지를 닮게 된다고나 할까요? 이런 말로 답글에 갈음하겠습니다.

일호님의 댓글

일호 아이피 (14.♡.40.191) 작성일

아~ 그렇군요. 무불님의 자상하신 말씀 감사드립니다.

말씀을 보면 저는 깨달음에 도달하지 않은 사람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깨달음에 관심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저의 가장 큰 관심사이자 제일 큰 문제였는데, 이게 더 이상 제게 아무 문제도 아닌게 되어버렸습니다.

근데, 무불님이 이름 참 좋아보입니다.

깨달은 분들은 다들 이름도 멋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얼마전에 '비원'이라는 이름을 써도 되냐고, 비원님께 여쭤봤었는데, 무불이라는 이름도 제가 막 쓰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제가 거처하는 곳을, '무불당' 내지는'무불제'라고 하고 싶네요. 무불. 다시 생각해봐도 멋있는 이름입니다.

무불당하면, 불당이 연상되니, 무불제가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여튼, 무불님 감사드립니다.

일호님의 댓글

일호 아이피 (14.♡.40.191) 작성일

저는 바보가 맞군요.

무불님의 글 제목이 '깨달음을 찾는 그대에게'인데,

저는 깨달음을 찾지 않는 사람이니,

사실 이 글에 덧글을 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말씀드리면, 저는 깨달음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개나 고양이와 하나 다를게 없는, 그냥 살아가는 별거 아닌 놈이거든요. ^^

무불님의 댓글

무불 아이피 (125.♡.157.21) 작성일

감사드립니다. 혹시 어떤 체험이 있어서 마음이 편한 자리에 있더라도 끝내 쉬지를 않아서 이 공부가 완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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