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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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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라이언 (14.♡.46.149) 댓글 0건 조회 8,329회 작성일 20-05-15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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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좋은생각에서 발췌했습니다.

2020년 5월



봄의 동물원에서


이십 대의 봄날, 학교 수업을 빼먹고 동물원에 갔다. 나보다 더 가슴 아픈 동물은 없을 거라며 꺼이꺼이 울었다. 실연보다 어머니에게 거짓말한 사실이 더 마음 아팠다.

어머니는 시장에 손수레를 놓고 칼국수 장사를 했다. 수레 왼쪽에는 육수 끓이는 솥이, 오른쪽에는 면 만드는 도마가 있었다. 어머니는 주문을 받으면 오른쪽으로 세 걸음 가서 반죽을 썰고, 중간 불에서 익힌 다음 왼쪽으로 세 걸음 가서 육수를 부었다. 그렇게 내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했다.

나는 어머니가 번 돈을 받아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썼다. 그녀의 생일에는 목걸이도 선물했다. 처음 느낀 사랑의 감정은 주체 못할 기쁨이자 슬픔이었다.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어 부잣집 아들인 척했다. 돈으로 마음을 사려 했다. 끝내 그녀는 결별을 선언했다.

평일 동물원은 적막했다. 누군가 고요함을 깼다. “저기, 혹시 삼식이 아닌가요?" 초등학교 동창 정숙이었다. 뇌경색으로 왼쪽 손발이 불편한 정숙이는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가지 못했다. 정숙이 옆에는 남편과 어린 아들이 있었다. 나는 무심코 주머니에 있는 이천 원을 꺼내서 아이 손에 쥐여 주었다. “아이고, 이러지 마이소. 고맙습니더.” 그녀의 남편은 거듭 인사했다. 그들이 동물원을 나가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짐을 짊어진 남편은 다리를 절뚝거렸다. 아들은 엄마 허리를 잡았다가 아빠 등에 있는 짐을 한 번씩 쳐 주었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자주 웃었다. 그들은 서로를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아는 듯했다.

그때 깨달았다. '그간 내 열등감을 감추려 허세를 부렸구나.' 이후 나를 포장하지 않으려 애썼다. 친구들을 데려가 어머니의 칼국수를 대접하기도 했다.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자 누구를 만나도 진심으로 대할 수 있었다.



최삼식 님 | 경남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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