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안녕하세요? 선생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세살엄마 (59.♡.152.32) 댓글 2건 조회 5,667회 작성일 08-10-14 13:53

본문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꼭 영화의 주인공이 된 심정입니다..
어제 아는 후배랑 술을 한 잔 하고 지하철을 탔습니다.
세살배기 아기가 있는 터라 늦게까지 술을 먹는 일도 드물고,
술먹고 혼자 지하철을 타고 집에가는 일도 잘 없는데
유독 어제 그랬더랍니다.
그 지하철 역에서 우연히, 아주 우연히 계명대 한학촌에서 한다는
전통문화강좌들 소개 틈에서 '김기태'라는 이름을 보았답니다.
내가 아는 김기태.. 그 김기태가 맞을까?
근데 왠지 맞을 것 같은 것이 저서의 제목때문이었죠.
내가 아는 김기태 선생님은 왠지 저런 책을 쓰셨을지도 몰라.. 그런 느낌이요.
네. 선생님. 저는 89년도에 정화여자고를 다녔더랬지요.
그때 선생님은 우리학교 아님 우리반 선생님이었구요.(기억이 가물...)
저는 무척이나 모범생이어서, 학교돌아가는 사정이나 선생님들의 이야기보다는
'진도'나가기를 좋아하고, 시험 걱정을 하던 그런 여고생이었습니다.
선생님이 학교를 그만두시기 전 어느날..
제 기억이 맞다면 선생님이 청소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셨고
저와 우리반 아이들은 그런 말들이 무척이나 귀찮았더랍니다.
선생님은 약간 울먹이기까지 하셨던 것 같은데
그래서..너희들이 청소를 하겠니 선생님이 청소를 할까..이대목에서
우리는 여지없이 선생님이 청소를 하세요..대답을 했고
마지막날 토요일 종례때에도 (기억이 역시 정확치는 않지만)
이야기를 좀 하고 마칠까, 일찍 마칠까 물어보셨더랬는데
그냥 마쳐요..를 외쳤던 학생들 중에 제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나중에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그때 우리들의 모습에 상처를 받고 선생님을 그리워했던 친구의
지난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선생님이 뭔가 있었구나.. 우리가 너무 못되게 글었구나..했던 저였지요.
(그친구는 선생님이 그만두신 날 하루종일 엎드려 울었더랍니다.)
근데 당시 저로서는 선생님은 대체 왜 그만두신건지,
선생님을 그만두고 왜 대관령에 가신건지(친구들이 그러더라구요)
내 친구는 왜 저렇게 울고 슬퍼하는 건지,
또 국어 선생님은 왜 그렇게 선생님을 미워했다는 건지
(이것도 친구들 사이에 소문으로 돌았어요. 쫒겨났다는 소문도 있었거든요)
당췌 어리둥절하기만 했습니다.
지금 그때를 기억해보면... 순수하다는 건... 그냥 그대로의 우리들의 상태였던 것일뿐
순수한 시절, 순수한 여고생,...등 어떤 판단이나 기준으로 설명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선생님때문에 마음을 아파했던 그 친구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선생님을 아프게 했던 저나 제 친구들도
아무것도 몰라.. 순수하긴 마찬가지였지요.
나중에 대학에 가고 나서 친구가 너희들 그때 진짜 못됬었어..
울면서 이야기할때 그때서야 우리가 뭘 한건지,
선생님이 왜 정답도 없는, 자기 생각을 쓰기만 하면 모두에게 점수를 주는
달님의 생각 문제를 주관식에 냈던 건지,
뭐가 뭔지 조금 와닿았더랍니다.
하지만 스무살 이후 제 기억 속에 무척이나 오랫동안 선생님에 대한 죄스러움..이
남아있었어요.혹여 아픈 기억을 안고 떠나가셨을지도 모르는 선생님을 만나면
오히려 몰라서 그랬다, 억울하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답니다.
정확히 말해 선생님에 대한 죄스러움보다는
저 자신에게 부끄러운 기억이기도 하고,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었느니
이 일은 선생님의 일이기보다는 제게는 '제 일'이었던 것이지요.
지금은 서른넷 세살 아기의 엄마가 되었어요.
우연히, 아주 우연히 선생님의 이름을 보고
오늘 낮에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고 메뉴판을 보다가 어젯밤일이 기억나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홈페이지에 선생님 얼굴이 떠억하니 뜨네요.
..십오륙년만에 .. 보는 얼굴인데 바로 딱 기억이 납니다.
홈페이지 여기저기에서
긴 세월동안 큰 공부를 이루고 계신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서
또 반갑습니다.
죄스러운 기억일랑 슬쩍 묻고 가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 글을 남깁니다.
- 제자 이영은 드림

댓글목록

김기태님의 댓글

김기태 아이피 (211.♡.96.16) 작성일

반갑구나, 영은아.
  네 글을 읽으니 나도 꼭 영화의 한 장면 속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내가 그때 그랬었구나..그렇게 교직생활을 했었구나...

  근데 그때 내가 그렇게 너희들 곁을 떠났던 것은 전적으로 내 안의 아픔 때문이었단다.
  그땐 왜 그리도 모든 것이 아팠던지..아침에 눈을 뜨면 밤에 쓰러지듯 잠들 때까지 도무지 아프지 않은 순간이 없었으니..꿈 속에서조차...
  그렇게 떠나 또 몇 년 간을 더 아파하다가 어느 순간 문득 아프지 않은 사람이 되었단다. 그리곤 생(生)의 모든 방황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지..그러면서 동시에 너희들을 그렇게 황망히 떠날 수밖에 없었던 미안함과 죄스러운 마음들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고...

  그래, 그때 우리 모두는 참 순수했었다, 그지?
  그리고 그 순수함은 지금도 가슴 속에 풋풋하게 살아 있고...

  17년이 지나 세살 바기 아이의 엄마가 된 네 글을 접하니 참 감회가 새롭구나.
  글에서 묻어나는,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네 모습을 보는 것도 참 반갑고.
  또, 그냥 그렇구나 하고 지나칠 법도 한데, 이렇게 잔잔하고 투명한 글을 홈페이지에 남겨준 것도 더없이 고맙고.

  그래, 영은아.
  참 참 반갑구나....

세살엄마님의 댓글

세살엄마 아이피 (59.♡.152.32) 작성일

선생님 고맙습니다.
절 전혀 모르실텐데
아무렇지도 않게 이름을 불러주시는 글을 보다가 괜히
눈물이 찍-- 났습니다.^^
17년의 긴 시간이 중간에 달라붙어버린 스카치테이프마냥
쉽게 건너지는 느낌이 너무 신기해요. 그죠?

Total 6,238건 159 페이지
자유게시판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2288 우울증 8946 08-10-14
열람중 세살엄마 5668 08-10-14
2286 대원 5595 08-10-14
2285 공자 5112 08-10-14
2284 소요 5101 08-10-14
2283 ahffk 7096 08-10-14
2282 소요 9571 08-10-13
2281 민진숙 13482 08-10-13
2280 대원 5077 08-10-13
2279 소요 5091 08-10-12
2278 공자 7134 08-10-12
2277 ahffk 4842 08-10-11
2276 ahffk 4458 08-10-10
2275 대원 4820 08-10-10
2274 ahffk 5284 08-10-09
2273 ahffk 5556 08-10-09
2272 화엄제 4986 08-10-09
2271 있구나 5008 08-10-09
2270 ahffk 4191 08-10-09
2269 대원 6190 08-10-08
2268 김재환 5904 08-10-08
2267 소요 6267 08-10-07
2266 ahffk 5189 08-10-06
2265 나무 4930 08-10-06
2264 흰구름 14320 08-10-06
게시물 검색
 
 

회원로그인

접속자집계

오늘
13,679
어제
13,850
최대
18,354
전체
5,905,440

Copyright © 2006~2018 BE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