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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죽음 그리고 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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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글이 (211.♡.187.52) 댓글 1건 조회 12,424회 작성일 11-05-22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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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녘으로 해가 떨어지고, 포항시내 형산강 둔치에 텐트를 쳐 올린다.

밤이 되어서 강변으로 보이는 야경이 휘양 찬란하다.

낮 동안에 더위도 먹었겠다. 두통도 있겠다. 이날 저녁에는 좀 빨리 잠이 들어야 했지만, 안
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텐트 친 곳 바로 옆에 주차장이 있어 들고 나가는 차량들이 쉴 새
없이 텐트에 헤드라이트를 비춰댔던 것이 빨리 잠들 수 없었음의 이유가 그 하였고, 그 두
번째는 사람들의 방해였다.

둥글이 잠을 방해하며 자정이 되어갈 때 까지 귀를 간질이는 무리가 있었다. 안그래도 텐트
안에서 홀로 외로운 밤 홀로 보내야 함의 슬픔이 가득한데, 그 20여 m 떨어진 곳 강가에서
남녀가 소곤대면서 인생의 찬란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둥글이 같은 유랑생활자는 남의 집 옆에서 떠들어 대는 이들에 대해 정숙을 요구할 자격도
없거니와 여인의 속삭임이 마치 둥글이 귀에 대고 하는 듯해서 어수선하고 싱숭생숭한 마음
을 달래는 방법 말고는 방도가 없었다.

하여 마음을 달래고 달래서 어렵사리 수면에 들어가기 직전.
차 한 대가 주차장에 멈춰 섰는데, 헤드라이트를 끄지 않고 텐트를 계속 비추는 것이다. 한
술 더 떠서 이내 풀 밟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 차의 주인으로 여겨지는 이가 ‘텐트 안에 누가
있냐?’고 묻는 것이다. ‘아니 도대체 텐트 안에서 누가 있건 말건 무슨 상관인가?’

안그래도 낮 동안 두통에 시달려서 예민해져 있었던 터에 잠까지 방해를 받으니 기분이 좋
을 리 없다. 부루퉁한 표정으로 텐트를 열고 쳐다보니 허우대 멀쩡한 50대 초반의 신사가
“환경 감시단이신가 봐요.”하고 묻는다. 텐트 표면에 쓰인 글귀를 보고 짐작한 듯 했다. 복
잡이 설명해주고 싶지 않아서 그냥 ‘네.’하고 짧게 대답하고 만다.

신사는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듯싶더니, 다시 돌아와서 텐트를 두들긴다. 무슨 이유인가 싶
었나 했더니, 사실은 돌아가신 분이 있어서 장례를 끝내고 그 옷을 태우기 위해서 왔단다.
그런데 환경감시단 텐트가 있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옷 좀 몇 개 태울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하신다.

그에 대한 아무런 허락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자비로운 둥글이는 부하직원의 결재
서류를 찍어주듯이 승낙한다. ^^‘


텐트에 누워 있자니 둥글이가 현재 놓인 상황이 참으로 부조리 했다. 한쪽에서는 죽은 이의
유품을 태우며 한 여인이 한숨을 뿜어내고 있고, 그 20여 m 떨어진 옆에서는 남녀가 사랑
을 속삭이고 있는데, 이 양자를 살필 위치의 삼각형의 모서리의 끝에 텐트를 치고 누워 있
는 둥글이는 불면의 밤을 보내야 하다니...


존재의 생멸과 모순과 우연-필연의 어우러짐이 만들어내는 그 독특성은, 다시 삶을 생소히
만들어 내며 둥글이를 삶의 주변부로 급격히 밀어 내며 깊은 고뇌를 불러일으킨다.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사랑과 죽음과 불면의 언저리에서 방황하는 ‘나’. 나는 과연 어디에
서야 하는가...





댓글목록

꽃씨님의 댓글

꽃씨 아이피 (110.♡.211.109) 작성일

아~~둥글님의 슬픈 이야기가 왜 이리 재밌을까요?

남녀가 소곤대면서 인생의 찬란한 한때를 보내고 있을 때..
여인의 속삭임이 마치 둥글이 귀에 대고 하는 듯 어수선하기도 하겠지만..

사랑과 죽음과 불면의 언저리에서 방황하는 님은
바로 위치한 그곳에서 우뚝 서 있을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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