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반대자가 군대를 반대하는 절대적인 배경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공유 (211.♡.76.154) 댓글 8건 조회 6,606회 작성일 09-01-07 03:11본문
잔혹한 심보를 지닌 이들이 간디와 같은 군대를 반대하는 평화자들의 속내를 어찌 헤아릴 수 있으리?
군대가 없어지면 공산화가 될진 몰라도 전쟁은 절대 없다. 왜냐? 싸울 상대가 없다.
간사한 부류는 경찰과 군대를 비교하는데, 도둑을 막기 위해 보안을 하고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것은 사람을 살생하기 위함이 아니라 회개를 시키기 위함이다. 그러나 군대는 사람을 살생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경찰이 없다고 도둑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군대가 없으면 전쟁은 없다. 약한 군대를 강한 군대가 살육하는 일은 있었어도 군대 없는 곳에 살육은 없었다. 적어도 현대사회에선 없다.
댓글목록
파르파스님의 댓글
파르파스 아이피 (118.♡.189.202) 작성일
평화란 전쟁의 소강상태일뿐 인간이란 존재에겐 평화는 그저 하늘나라 뜬구름같은 개념부재의 말입니다.
2人이상 있는 곳엔 언제나 전쟁이 발발하는게 인간의 본성이죠.
나와 다른 이는 탐욕스럽다, 게으르다, 미련하다, 혹은 폭력적이다라고 단죄하려는 심보가 폭력의 단초가 되는것이죠.
그 아래에는 내가 너보다 우월하다, 혹은 우월하고 싶다는 염색체가 이 모든걸 드라이브하고 있겠지만요.
군대는 그저 눈에 보이는 형식적인 현상일뿐, 군대를 없애면 평화가 올것이라는 것은 일의 밑단을 보지 못하고 하나의 끄트머리만 잡고 늘어지는 것이죠.
차라리 총을 못쏘게 손가락을 잘라버리는게 어떻습니까? 그래도 못싸울리 없겠죠? 그럼 팔을 자른다고 인간이 평화로워질까요???? ... 발도 잘라버릴까요? 그래도 둥글둥글 굴러다니면서 싸우게 될것입니다.
군대를 없애면 평화가 찾아올까요?
어딜가든 전쟁터입니다. 입시전쟁부터 취업난, 취업해서는 교통지옥에서 부태끼며 승진경쟁등 끝없는 내가 더 잘먹고 잘살아야겠다라는 위대한 일념하에 이런 전투를 매일매일 일생을 치뤄나가야합니다.
이 끊임없는 전쟁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누구에게도 지고는 못사는 전쟁광이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한 잔혹한 전쟁사는 인류사에서 사라지지 않을겁니다.
진정한 평화는 이 놈을 잠재워야 찾아오겠죠.
ps. 이 놈을 잠재우는 가장 통렬하고 쉬운 방법은 무엇일까요?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125.♡.153.68) 작성일
말씀 잘들었습니다.
- 원론적으로는 파르파스님이 하신 말씀에 답이 있듯이 '나 자신의 욕망과 우월감 공격성을 줄인다'(마음을 비운다)이겠지만 이는 단지 '원론'일 뿐이고,
실천론적으로 이를 자각한 이들이 끝없이 주변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과정을 통해서 '약간씩'의 변화만 가능하리라 생각되는데요.
쉬운 방법이 있었습니까???
공유님의 댓글
공유 아이피 (211.♡.76.103) 작성일
둥글이님 말씀이 맞습니다. '군대는 폭력스럽다' 는 것은 평화를 위한 당연한 사리판단입니다.
염세적이고 대책없는 회의론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비겁한 변명입니다.
파르파스님의 댓글
파르파스 아이피 (118.♡.189.202) 작성일
둥글이님이 말씀하신 원론, 그리고 실천론, 이 두가지가 병행해야만 합니다.
원론은 공허하고 실천론은 지지부진할 따름이지만
두가지를 병행한다면 시너지가 상당하겠죠.
그런의미로 제가 쓴글은 본문글의 딴지가 아니라, 보충글이라 봐주셨으면해요.
일에도 우선이 있듯이, 둘중 하나만 선택하라면 원론만 내세우기보다는 둥글님의 말씀대로 실천적 계몽운동이 우선되어야한다고 봅니다.
마음을 비우는 일은 누구나 할수 있지만, 계몽운동가는 아무나 할수 없는것이죠.
결국 마음비우기의 종착점은 민중의 계몽일것입니다. 예수님와 부처님이 그러했듯이
혼자만의 깨달음은 자신의 안락한 생활이나 죽음을 보장할수는 있겠으나, 사회적 가치는 제로죠.
사회적으로 가치가 없는것은 본질적 가치도 없는것이라 저는 단언할수 있습니다.
무인도의 로빈슨이 홀로 비폭력을 맹세하는것과 같이 허망스러운 일이죠.
외로운 道(도)는 빈칼집처럼 허망하지만, 사람끼리 만나게 되면 번뜩이는 刀(칼)이 될것이고,
가슴에 道를 품지않은 계몽가는 한순간 정치딴따라로 전락해버리고 말것입니다.
둥글이님은 이 둘을 꼭 잡으시길 바랍니다.
파르파스님의 댓글
파르파스 아이피 (118.♡.189.202) 작성일
다양함을 존중하지 못한다는것이 폭력의 단초를 제공합니다.
제가 님의 글에 답글을 단것은 비폭력을 외치시는 분의 글에서 묻어나오는 폭력적인 성향을 봤기 때문인데 제가 맞게 본것 같군요. 추가) 세상이 그렇습니다. 비폭력을 주장하려고 해도 폭력을 수단으로 써야할 아이러니가 바로 우리의 삶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비록 염세적이거나 대책없이 보이는 회의론으로 보이지라도 한번쯤은 자기 안으로 들어가서 자신속의 폭군을 먼저 다스려야 할것입니다.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125.♡.153.68) 작성일
면밀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제 능력으로는 아무리 해도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 문제의 해답을 얻으로 이곳을 기웃거립니다. ㅎㅎ
논의를 좀 구체화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나와 세상의 평화'를 한덩이로 봅니다.
내 자신의 평화를 얻고자 한다면 결과적으로 세상의 평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저의 관점으로는 내 자신의 평화만 얻으려고만 할뿐 세상의 그것에 무관심한(혹은 실천전 변혁의지가 없는) 이들의 삶도 '원론적 삶'이라고 규정짓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생활을 하는 한' 세상과 작용을 하는 것은 필연인데,
외부에서 빚어지는 '폭력과 혼돈'의 문제에 대해서는 테두리를 쳐넣고 무관심 무실천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모순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기만 알고 사회적인 전파에 게으른 것은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실천으로 실행하지 못하는 것과 원리상으로는 비슷한 듯 합니다.
이런 이들이 '내 마음만 평안하면 세계가 평안한 것이다'는 식의 얘기를 하는 것까지를 원론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것은 '대아적 관점'에서의 규정입니다.)
이런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기독교를 믿는 이들 중에서 하나님만 믿으면 영생받는다고 여기는 이들... 도하는 이들 중에서 네 마음만 버리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이해에만 매달리는 이들 등등으로 '나'와 '사회'의 연결고리를 끊고, '내 영혼과 마음'의 문제의 해결이면 만고 땡이라고 여기는 이들이죠.
물론 이들을 '나쁘다'고 비판하기 위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내 마음을 찾으려는 노력'은 참으로 바람직한데, 그 소중한 통찰을 자기 혼자 삭혀 버리니
이것이 '사회적' 힘으로 분출되지 못하고, 극 소수 몇몇 모임의 전유물이 될 뿐여서 아깝다는 것이지요.
작금의 사회적 '폭력' '욕망' '분열' '대립'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사상의 기반을 가진 '도'철학을
가진 이들이 이의 사회적인 적용에는 신경쓰지 않고 오직 '자위'하는데에만 신경쓰니 안타깝다는 말이지요.
파르파스님의 현명한 생각으로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러한 이해를 전파할 수 있는 '동기' '힘'을 갖출 수 있을까요?
왜 이러한 이해가 '사회적'으로 적극적으로 전파되지 않는것일까요?
극히 사소하더라도 실천론적 방법론적인 이야기 생각나시는 것 있으면 듣고 싶습니다. ^^
파르파스님의 댓글
파르파스 아이피 (118.♡.189.202) 작성일
장문을 썼으나 다 지워버렸네요.
결국 탐욕과 무지의 문제인데 이건 결국 인간의 별명 아니든가요..
이스라엘을 보세요.
강자에게 약탈당한 약자는 힘을 키워 또 다른 약자를 유린합니다.
이런 인간의 기막힌 유전자가 소수의 계몽으로 해결될까요?
24시간 잠을 안자니 머리속에 생각은 로또볼처럼 돌고 도는데 쉽게 튀어나오지는 않네요.
암튼 둥글이님은 도를 돈으로 보시면 됩니다.
도든 돈이든 그것이 진정 힘을 발휘하는것은 그것을 가진 사람의 뜻이겠죠.
마지막에 말씀하신 '그러한 이해를 전파할수 있는 동기'가 딱하나 있긴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누구 또는 어떤 집단의 주도로는 이런 동기가 마련되지 않을겁니다.
바로 인간 스스로 만들어낼 위기가 그 동기가 될것입니다.
마치 엄마말(각종 선각자와 계몽가와 둥글님) 말 안듣고 놀다가 시험전날 벼락치기 하는 아이처럼요.
탐욕으로 무너지고 탐욕으로 세웁니다. 그게 인간의 절망이자 희망이고 또 에너지인듯합니다.
지구의 물리적인 환경에 인간이 적응할수 없을때까지는 이런 외줄타기는 계속 이어지겠죠.
공유님의 댓글
공유 아이피 (211.♡.76.103) 작성일
군대문제는 세속의 문제이고, 道공부는 특정한 문제가 아닙니다.
제대로 道공부하는 사람은 세속적인 문제랑 道를 서로 연관시키지는 않습니다.
道는 물건도 아니고 개념도 아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