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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공 선생님 강의]-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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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공자 (211.♡.79.91) 댓글 3건 조회 15,295회 작성일 09-03-30 11:47

본문

*해공님은
다른분과 달리 주장하는바가 비교적 알아듣기쉽고 명쾌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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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
반복적으로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느냐면, 여러분이 애쓰고 명상하고 깨달은 사람을 스승이라고 찾아오고 하는 모든 것들이 과연 여러분의 의식이 어디에 바탕을 두고 있어 반복하고 있는지 바로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래 참나로서의 여러분 자신을 잃어버리고 개체로서의 의식상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어리석은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마하라지 선생님께 찾아와 가지고 제가 깨달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수행이 화두가 좋을까요,위빠사나가 좋을까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게 아니다. 이 마지막 부분에 마하라지 선생이 하는 얘기는 이 앞에 있는 여러 이야기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뒤의 부분은 곁가지 쳐버리고 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기 때문에 수행의 계획표, 어떤 계율과 명상법을 차근차근 가르쳐 주길 바라는 사람에게는 힘든 이야기 입니다.

그냥 우리 본질로 들어가 버려.
본래의 참나는 이런 것들이 전혀 필요없는 절대 자체야.
네가 절대인데 뭘 찾으려고 하느냐 이 멍청한 놈아
하고 바로 때려주는 거에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은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벼락같은 얘기를 듣고,
' 아~ 내가 절대인데 뭐하는 짓이야 ' 하는거지,

아직 걸음마단계에 있는 사람이 이런 얘기를 듣는다고 해서 내가 절대란 생각이 드느냐 이겁니다.
그러니 내 책을 보고 순수진리를 공부해야겠다하고 나를 찾아온다 해도 준비가 되어있지 못한 사람은 버티지 못합니다.

왜냐면 나역시 마하라지선생처럼 절대진리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나머지 잡다한 곁가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어떤 종교적인 관념이라든지, 개체적 육체적으로 완성시키고자 하는, 성불하고자 하는, 또는 깨달아서 어떤 높은 경지에 가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를 찾아와 봐야 도움이 안됩니다.
왜냐면 나는 그런 걸 안 가르치거든요.
그런 걸 본래 있을 수가 없어요.

깨달음이란 것이 개체로서의 나라는 것이 없다인데,
그걸 깨달은 스승이' 당신 열심히 하면 부처될 수 있습니다' 라 하고 '성불하십시오'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느냐고, 그건 모를 때 하는 이야기지요.
그런 건 없다는 것이 깨달음인데 , 석가모니가 깨달은 무아연기.석가모니도 처음엔 깨달으려고 대들었겠죠.
태어나면서부터 개체의식이 뒤집어 씌여가지고 이게 나라는 착각부터 시작하는 거니까, 그건 누구도 피할 길이 없는 거죠, 석가모니든 마하리쉬든 마하라지든 해공이든 여러분이든

누구나 다 그런 착각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누구나 다 태어나면서 부터 뒤집어 씌워 나오는 거니까.
그런데 다른 점이 뭐냐면,
깨닫고 보니까 아~ 이게 착각이었다는거에요.
아~ 이것이 나라는 생각 이게 착각이었다는 거에요.
몸과 마음을 닦고 깨달아 저 높은 경지에 오르고 그런 것은 나중 문제고, 이게 나라는 생각 자체가 착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건 어떻게 아느냐, 이 현상세계, 내 내면에서 일어나는 온갖 생각과 말과 행위, 세상 살면서 인연,사건, 이 우주 현상계 가득찬 모든 물질현상들 이것들을 그냥 가만히~ 있는 그대로를 순수하게 바라봤더니
그 어떤 것도
자기 혼자 존재할 수도 없고,
자기 혼자 살아갈 수도 없고,
이 세상 모든 것들은 타에 의해서 태어나 가지고
타와 더불어서 주거니 받거니 하고 살다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죽어서 사라져 버리더라.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그런 거에요. 이게 연기법칙이라는 거죠. 이 세상에는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자기 홀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요. 그게 우주의 법칙이라는 거에요.
석가모니가 6년 고행끝에 개체적 욕망과 집착을 다 끊고 나서 의식이 순수해 졌을 때 그때 본격적으로 했던 수행이 명상이 위빠사나입니다. 그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거에요.
자,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게 뭐냐면,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서 높은 경지 성불에 들겠다는 상태는 아직 제대로 된 명상,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수준이 안되는 거여.
그건 명상이라고 할 수도 없는 거고, 그냥 개체가 발광을 하는거고,생쑈를 하는 거지, 뭐가 되겠다고 그런 의식 수준에 있는 사람은 마하라지를 찾아와도 소용없고, 해공을 찾아와도 소용없습니다. 나는 그런 걸 안 가르치니까. 아마 내가 그런 걸 가르쳤더라면 지금 여기가 터져 나갔을 텐데요.
너 능력자 만들어줄께 나 깨달았어, 깨달은 사람 못믿어 하면서(웃음) 개체를 뭔가 그럴 듯한 사람 만들어 주겠다고 속였으면 이러지 않죠. 그랬으면 홀라당 속아가지고 선생님 하면서 자기 심장이라도 빼내 줄 것 처럼 할 사람 많을 거에요.
그런데 그동안 나한테 수없이 많은 사람 왔는데
'이건 네가 아니다,깨닫긴 뭘 깨달어?' 그러니,
난 깨닫고 싶은데 깨달을 사람도 없다고 하니, 실망하고 저사람은 좀 또라이 같아 깨달은 사람이 아니야.
왜? 자기가 생각하는 깨달음의 환상과 안맞으니까 자기가 추구하는 깨달음의 모양새, 초월하거나 병자를 고치거나 때갈나는 그걸 것이 없다고 하니까 듣고 실망해서 가버립니다.
그런데 그런 소리를 듣고 어허 이거봐라 이게 진짜 진리같은데... 이게 진짜 순수진리같은데 해서 남아있는 사람들이 여기 있는 사람들입니다.
절대진리는 개체로서의 욕망과 집착, 자아가 완성하고자하는 어떤 것이 티끌만큼이라도 붙어있으면 안되는거에요.
순수라는 말이 요만큼도 용납을 안해요.
나는 깨닫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봤어요.
오늘날 불교가 처음 부처님 깨달음으로 시작했는데 왜 지금 그럴까? 부처님의 순수진리로 하면 다 굶어죽어요. 지금 종교를 쫒아다니는 사람들의 심리를 보자구요. 에고를 끊임없이 긁어주는 것이 없다면 일부러 돈내고 하겠습니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어쩔 수 없이 변질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본래는 무아연기 순수깨달음이었는데 가면 갈수록 배고프고 점점 사람들은 안믿어요. 오히려 공갈협박해요, 마하라지도 그러잖아요.
당신 오는것은 좋은데 당신 재산 다 잃어버리고 목숨까지도 다 잃어.

물론 현실적인 재산과 목숨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죠.
깨달은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것도 다 팽개치게 만드는데
그러면서도 좋다고 쫒아오는 사람들은 맛이 간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나는 그런 사람들을 원한다고.

설사 이 진리의 길을 가다가 내 목숨이 끊어져도 좋다. 이런 사람을 나는 원한다니까. 그런 정도가 아니면 오지 말라, 입 아프니까. 뭐, 이거 해서 도 닦아 가지고 추앙받는 존재가 되고 싶다 그러면 시작도 하지 마세요. 그런 건 없어요.
그건 깨닫지 못한 사람이 꾸며낸 이야기에요. 그런 거 없어요.
우리가 생각하기에 석가모니가 깨달은 후에 45년동안 엄청나게 대우받고 공경받고 살았을 거 같죠?
왜? 불경에는 그렇게 써 놨잖아요. 부처님 거룩하신 분하고.
그런데 내가 깨닫고 나서 부처님 일대기를 쫙 읽어보면서 내가 종교로부터 속았구나 하는 것을 바로 알게 된게 뭐냐면,
석가모니는 그 당시에 차도 없었잖아요, 그런데 인도가 좀 넓어요? 거기를 걸어서 다녔어요. 또 얼마나 더워요,
내가 인도갔다가 하루에 한 시간을 못 걷겠더라고 짜증이 나가지고, 낮에는 다니질 못해요, 40도 50도 되어서.
그런 인도를 차를 타고 다닌 것도 아니고 걸어서 다녔다니까요. 그런데 무슨 부처님이 때깔나게 폼잡고 그런 게 아닙니다. 그리고 부처님이 죽을 때까지 공양 받고 살았어요. 그렇게 일생을 살다 가신 분이에요.,
그런데 깨달음을 현실적으로 현상적으로 위대하게 된다고 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이 길은 개체적 자아가 사라지는 길이에요, 수행을 잘해서 겸손하고 그런 게 아니고 아예 자아가 사라져 버리는 거에요.
나라는 게 없는 거에요.
근데 열심히 갈고 닦아서 나를 없애는 게 아니고 본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거에요. 그러니까 마하라지가 후반부에 죽음을 얼마 안 남겨 놓고 계속 던져 주는 얘기는 그겁니다.

이렇게 닦아라 저렇게 닦아라 그런 게 아니고,
여러분들이 나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 개체는 내가 아니다
참나는 이렇게 모양을 가지고 태어나서 잠깐 살다가 죽어버리는 이런 허상체가 아니다.
본래 참나는 무한하고 영원한 절대 그 자체다.
아니 이게 뭐가 어렵다고 못 알아듣고
돌아서면 이 놈을 나라고 하고 또 나라고 하고 이러느냐 말이여.
그러니까 난 아직까지 마하라지처럼 45년을 하지 않았으니까,
죽음을 눈앞에 두진 않았으니까 이 심정을 모르겠어요.
그러나 요만큼은 이해할 것 같애. 후두암걸려서 말 한마디 꺼내기가 고문당하는 것같은 상황인데 말을 해줘도 못 알아듣고, 또 그 앞에서는 알아듣는 척하다가 돌아서면 또 잊어버리고 그걸 45년 동안 반복했어요.
내가 봤을 때는 깨달은 사람들은 진상들이에요,진상들.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40년이상 이렇게 하고 있다니까요. 그런데 그래도 하고 있거든(웃음).
내가 잘 알고 있어요. 이게 소귀에 경읽기 같다는 거 알아요. 아는 데도 나도 하는 거에요,그냥. 왜? 캐릭터니까.
그리고 못 알아들고 잊어버려도 이게 하는 게 나도 재밌어. 이게 왜냐면 그나마 이 세상에서 이 내용밖에 재미 붙이고
이야기할 것이 이것 외엔 없으니까 그래요. 무슨 이야기를 하겠어요? 무슨 얘기.
어떻게 하면 돈 잘 벌까 하는 얘기할까?
그나마 진리얘기 밖에 없잖아요.
그 외의 것은 다른 곳 많잖아요. 저기 저 계룡산 가면 마음수련원도 있고 많잖아요. 그런데 가서 준비 다하고 순수 진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면 오라 그때 참된 만남이 이뤄져요.

그 전에 오면 못 버텨. 못 알아들어요.
현상적으로 그만한 순수진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와야합니다. 그리고 깨달은 사람들이 진리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던져준다고 해서 현상적으로 명상이 필요없다 이러면 안됩니다.
깨달음은 철저하게 체득이에요,체득!
현상세계에서는 반드시 겪고 넘어가야 할 게 있는데
우리가 쉬운 말로 부모들이 자식 가르칠 때 보면, 자기는 학창시절에 말썽도 더 부리고 공부도 더 못하면서도 자식들은 모범생되길 바라잖아요.

이놈아 내가 경험 다 해 봤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인생 종치는 거기 때문에 너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거 알려주기 위해서 가르치는 거야
그러죠,부모들이.
그런데 왠걸 지 부모가 저지른 짓은 그대로 다 저질러요.
그 아이는 자기가 경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가 겪을 것은 다 겪고 간다는 거에요.
그래서 깨달은 사람들이 자기가 깨달을 때까지의 피눈물나는 구도자로서의 그런 게 있잖아요.
난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한맺혀. 제자들에게 그래서 좀 더 쉽고 빠르게 해 줄 방법 있을까?
그런데 안되요, 체득이기 때문에.
석가모니가 겪은 거 마하라지가 겪은 거,해공이 겪은 거 여러분이 다 겪어야 해요. 아무리 깨달은 스승이라 하여도 그거를 이렇게 막 끌고 갔다 해주고 그럴 수는 없어요,
가이드는 해줄 수 있지만 저 밑에서 산꼭대기 정상에 도달하는 것은 누가 하는거에요? 자기 자신이 하는거에요.
스승이 해줄 수 있는 일은 그 일을 그래도 엉뚱한 데로 빠져나가지 않게끔 해줍니다. 그러나 자기 발로 자기가 한 발 한 발 디뎌서 올라가야 하는거 그거는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업어다 갔다 놓을 수 없어요.
자기가 현상적으로는 구도자인 여러분 자신이 피눈물나는 수행의 과정을 통해서 깨달음의 열매를 따는 거에요.
절대 입장에서는 그런 것 자체가 하나의 쇼입니다. 왜냐면 못깨달아도 그대로 절대 그 자체 아닙니까? 그죠.
그러나 현상적으로 구도자의 배역을 가지고 온 사람은 누가 돈 주는 것도 아니고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닌데
죽으나 사나 이 길을 가는 거에요.
자기 배역이니까 그렇고 그게 그렇게 좋아. 그냥 그게 좋아.
그런데 이 진리의 길을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자아완성의 목적을 가지고 깨달으려고 가는 사람도
죽으면 그대로 본래성품 자체가 되는 거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뭐야 할 필요가 없잖아? 깨달은 사람이나 못 깨달은 사람이나 다 똑같은데 뭐하러 힘들게 해.
이렇게 생각이 돌아가는 사람은 이런 사람은 못 깨달아요. 이게 묘한 거에요.
왜냐면 이 사람은 이 구도자의 길을 이 자체가 좋아서 하는 게 아닌 거에요.
이 자체가 좋아서 한다면 아니 똑같은데 뭐하러 합니까. 이런 생각이 일어나요 안 일어나요?
이게 바로 순수성에서 걸려버리는 것입니다. 깨달으나 못 깨달으나 죽으면 절대 그 자체다 라는 얘기를 들어도
잘됐네, 깨달으나 못 깨달으나 다 절대라는데 얼마나 좋아.
그렇다거나 말거나 나는 이 길을 가는 거야 왜? 좋으니까. 좋아서 하는 일은 말려서 되는 게 아닙니다.
좋아서 하는 게 아닐 때 그것을 통해서 깨달아야만 절대가 되고 그렇지 못할 때 거지 깽깽이가 되니까 내가 죽기 살기로 해야겠다 이건 순수하지 않은 거에요.
욕심쟁이 우후훗! (웃음)
구도자는 그냥 이 자체가 좋아서 하는 거에요.
그게 순수한 구도자에요.
깨달아서 뽐내고 남들 앞에서 자랑하고 그런 건 순수하지 않은 거에요. 그런 티끌만큼의 아상과 집착과 욕망이 있으면 깨달을 수가 없어요. 나는 내가 깨닫고서 가장 환희가 올라왔던 게 뭐냐면 깨닫고 나니까 깨달을 놈이 하나도 없어요.
다 절대니까. 나는 내가 현상적으로 깨달았다는 것보다 구원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좋았어요.
여기서 박수가 나와야 해요. (박수)
박수 안 치는 사람은 뭐여, 지금 동의할 수 없다는 거여? (웃음) 난 그게 너무 좋았어요.구원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거. 다 절대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머리로는 지금 이 선생님의 말을 공감할 거에요.
그런데 들어서 공감하는 것하고 실지로 무아를 체득해서 가슴으로 공감하는 것하고는 하늘 땅 만큼의 차이가 있어요.
이 길을 가는 사람들 100% 순수해야 합니다. 나는 다른 것 다 필요없어요. 정말 순수해야 합니다.
구도자의 길을 가는데 구도자의 삶을 사는데 이것 따지고 저것 따지고 뭐 형편이 어려워서 어쩌구 .
아니 그러면 지금까지 깨달은 사람들이 형편이 넉넉해서 깨달았습니까?
석가모니나 마하리쉬나 마하라지나 해공이 먹을 것 잔뜩 쌓아놓고 구도자 생활하며 깨달은 건가요?
깨달은 사람들은요, 공통점이 있어요. 그게 뭐냐면
베짱이 있어요.
내가 이 길을 가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나는 이 길을 간다.
내 처자식 다 굶겨 죽여도 이 길을 간다. 처 자식 눈에 밟혀서 어떻게 갑니까, 그래도 간다.
그 베짱 없이는 못가는 거에요.
처자식이 문제가 아니고 내가 지금 가다가 꼴까닥하더라도 간다.
그게 일심이에요,일심. 초지일관!
먹고 살기 바빠가지고 뭐 어쩌구 저쩌구.
그런데 뭐하러 이걸하냐, 먹고 사는 데나 올인해. 잘 먹고 살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참 구도자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얼치기 되기 쉽상이에요. 깨달은 사람들은 적당히가 없어요.
그런데 나는 강요하지 않아요.왜냐면 그것 역시 각자 각자의 배역인 것이니까,
그게 안되는 사람에게 윽박지른다고 됩니까, 괜히 가슴만 아픈거지. 그러나 스승으로써 구도의 길을 가는 여러분에게 알려는 줘야겠다. 깨달음의 길에서 그 과정은 어땠는지 그 의식은 어땠는지. 그리고 우리가 이 의식의 문제를 논할때
현상적으로는 마음의 작용으로 할 수 있다고 했어요.
일반인들한테 이 우주 자체를 소유한 차원으로서의 의식을 얘기하면 못알아듣잖아요.
아~ 이 사람 의식이 있다 라고 이야기할때는 마음의 속성으로서 의식을 이야기한 것이고,
그러니까 만약에 이 사람이 나의 의식이라고 표현했다면 마하라지가 그렇게 화를 내지는 않았을 거에요, 나의 의식,
그런데 명명백백하게 내가 소유한 의식이라고 얘기했거든.
현상적으로는 나의 의식 너의 의식이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은 아주 명쾌하게 내가 소유한 의식이라고 해서 빼도박도 못하는 거에요.
깨달은 사람들은 말 한마디도 흘려듣지 않아요.
왜냐하면 말을 하는 그 사람의 의식수준을 보기 때문에 그래요.
그냥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을 지 몰라도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티끌일지라도 그걸 잡아냅니다.
그게 깨달은 사람의 순수의식이에요.

다른 건 몰라. 세상 사람이 사기를 치는데는 잘 넘어가는데
그런데 진리에 관해서는 눈에 뵈이지 않는 티끌도 잡아냅니다.
우린 세상살이에는 어벙벙해서 사기도 잘 당하고 누가 거짓말하면 잘 속아요, 믿으니까 사람을 믿어버리니까.
근데 진리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의식이 너무너무 맑고 깨끗해서 티끌도 다 보입니다.
보면 마하라지를 찾아와 하는 질문은 전부 개체적 차원에서 질문하고 있어요.
'인생의 모든 속박으로부터 초월자와 지혜를 가진 자 간에 차이점은 뭐냐.' 이걸 묻는 이유는 깨달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고 싶어서다 .뭐 이런 질문들.
진리를 어떤 개체의 완성 특별한 상태가 되는 것으로 보고 부처님은 거룩한 분 왜 이런 오해가 자꾸 생길까요?
깨달은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도 개체로 보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깨달은 사람이란 없습니다.
깨달은 사람 해공이라는 뭐만 있어요? 캐릭터만 있는 거에요.
깨달은 사람은 이걸 너무 잘 아는데 그래서 자기 자신 해공을 나라고 착각하지 않는데,
이 현상세계에서 깨달은 사람이라는 해공이라는 캐릭터를 부여받은 연기자인데, 그리고 참나는 절대일 뿐인데.
그런데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배역인 해공을 보고 누구라고? 진짜인 깨달은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는 거에요.
난 너무 고마워.
나는 깨달은 사람이 아닌데 사람들이 깨달은 사람이라고 인정해주고 와서 굽신굽신 절하고 그래,
물론 나는 절은 못하게 하지만. 그런 아무 것도 아닌 행위에서 분별심 들어가고 차별심 들어가고 그러죠?
깨달은 사람이란 배역만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이름은 본래 진리 그 자체인 절대가 수십억만 개의 개체, 즉 캐릭터를 드러내 놓고 ,모든 수십억만의 캐릭터가 다 절대니까 그 안에 빠짐없이 절대의 의식이 들어왔는데 이게 들어오는 순간에 하나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왜냐면 인식이 안되서,
이것이 들어오는 순간에 어떻게 작용하느냐 하면 이건 나고 나머지는 너라고 하는
상대적 의식, 이분화된 의식이 딱 들어옵니다. 그래서 그 순간에 나와 너는 어떻다? 다르다.
너와 나는 다르다, 본래 하나인데. 그게 뒤집어 씌워져 가지고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너와 나는 다르다라고 생각하면서 맨날 지지고 볶고 싸우다 끝까지 죽을 때까지 너와 나는 다르다라고 죽어.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그렇게 착각을 하다가 죽었는데 죽는 순간에 몸도 마음도 의식도 사라져 버리죠?
현상에서 끝나니까. 사라져 버리는 순간에 그 사람이 평생 가지고 있었던 착각도 사라져 버려.
(웃음) 뭐 문제 있어요?
자, 그럼 뭡니까?
인간의 시비분별,고통, 그 수없는 갈등 이 모든 것들은 언제까지만 작용할까요? 네, 살아있는 동안만.
그때만 제한되어 있는 거에요.
그래서 석가모니는 조건지어있다. 그 어떤 것이든지 간에.
쉽게 얘기해서 석가모니가 현상적으로 깨달았어요. 깨달은 사람이라고 불리워 지는 것도 언제까지?
죽기 직전까지, 살아있는 동안만. 죽고 나면 다 사라져 버려.
석가모니,부처님 이라고 불리워졌던 몸도 영혼도 의식도 다 사라져 버려.
그리고 본래 절대 그 자체인 거에요.
그 본래 자체는 순수해서 부처니 나발이니 한 티끌도 붙을 수가 없어요.
이게 진리입니다.

부처라는 티끌이 어떻게 붙어요?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부처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부처라는 것도 하나의 개념,이름일 뿐이다.
중생이라는 것도 하나의 개념, 이름일 뿐이다.
그것들은 이 현상 세계에서 절대가 자기 모습을 드러내 놓고 이 현상 세계를 꾸려 나가는데
아무 저기가 없으면 심심하잖아요?
그래서 두 패로 정반대로 만들어 놓고, 정반대니까 사사건건 싸우게 만들어 놓고 왜? 아이들말로 재밌잖아요.
보세요. 우리가 학교에서 운동회할때 한 학교 학생 아닙니까?
그런데 자체 운동회를 할 때는 반드시 두 군데로 나눠서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막 싸워. 본래 하난데. 왜?
재밌어야 하잖아요? 시합하는 데 아 너 같은 반이지? 그러면 시합이 안되잖아요.
우린 하나야 이러면 시합이 안되잖아요. 너하고 나하고 적이야 이래야 이길려고 하고 재밌잖아요.
그래서 절대가 장난꾸러기라는 얘기입니다. 본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이 우주 현상계를 재미나게 만들기 위해서
왼수로 만들어 놔 버렸어,누구를?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을 왼수로 갈라 놓아 버렸기 때문에 어느 놈도 미워할 수가 없어.
이게 웃기는 거에요.
자신을 둘로 갈라놨기 때문에 너 왜 갈라놨어 따질 수가 없어요.
그리고선 둘이 서로 쌈박질 하게 만들어. 그런데 그게 그때 뿐이야.
운동회가 끝나면 어떻게 되요? 다시 하나죠.
진리가 어려운 게 아닙니다. 명명백백한 거에요.
그러니까 마하라지가 수없이 반복하는 것,
너의 근원이 무엇인지만 잊지 말라.

그러면 그 나머지는 이 현상세게에서 수없이 많은 모습으로 펼쳐지고 ,
수없이 많은 사건으로 펼쳐지는 모든 것들은 그 근원으로서의 절대가 펼쳐내는 그냥 쇼일 뿐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펼쳐지든 선한 모습으로 펼쳐지든,
추한 모습으로 펼쳐지든 악한 모습으로 펼쳐지든 그 어떤 모습이든
그것은 절대가 이 세상 현상세계를 재미나게 하기 위해서 잠시잠깐 갈라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 삶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본래 하나다.
이것이 모든 깨달은 사람들이 수십년 동안 이야기하는 진리의 전체 모습인 거에요.
이거 이상도 이거 이하도 없는 거에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단 한가지는 우리가 절대고
지금 나라고 생각하는 이것은 그 절대가 드러낸 수십억만의 절대의 모습들
중의 하나의 캐릭터다.
그러니까 이 캐릭터를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누구?
절대로서의 의식이다.
요 하나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위한다고 해서 하나에 구속된 개체의식이
하는 게 아니고 절대가 하는 것인데, 이것을 속여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나의 개체의식이 자기가 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요.
그래야 열심히 하고 다 속으니까.
깨달은 사람만 그 속임수에서 벗어납니다.
그런데 깨닫고 나서도 누구한테 항의할 수가 없어요.
왜냐면, 속은 놈은 누구고, 속인 놈은 또 누구고,
속은 착각에서 벗어난 놈은 누구야? 자기이니 어디다 항의할 데도 없고,
그래서 나는 없다 저 책에서 그랬어요. 이 모든 것은 의식의 원맨쇼다. 거기에 속지만 않으면 되요.
여러분들은 이 현상속에서는 여러분이 맡은 하나의 개체로서의 캐릭터를 할 수 밖에 없어요.
그거 외에는 할 수가 없어요, 아무리 깨달은 사람도 해공도 해공의 역할 외에 다른 사람의 역할을 할
수가 없어요. 이게 우주의 법칙이에요, 공평하잖아요.
깨달은 사람이라고 해서 남의 인생도 다 간섭하고 이 역할도 했다 저 역할도 했다 이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캐릭터는 자기 캐릭터밖에 할 수 없어요. 나머지 것은 손도 못 댑니다. 우리는 각각 자기가 맡은 배역을 할 뿐입니다.
그러나 나는 절대라는 것을 잊지 말고 배우로서의 배역을 충실하게 열성적으로 하라는 거에요.
그걸 하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하는데 내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한다는 착각없이 하라는 거에요.
그런데 그게 조금 어렵죠.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지가 한다고 생각 정도가 아니고 쫙 달라붙어서
한참 생쇼를 하다가 위빠사나 한다고 가만히 들여다 보면 아~ 내가 이러고 있었네
하고 나중에 알아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나중에 알아도 생판 모르고 가는 사람보다는 나은 거에요.
그것이 점점 거리가 좁혀 집니다.

그래서 위빠사나와 진리정립이 된 상태에서 어느 간극이 없어져
어느 한 순간 동시성으로 뚫리면 그 땐 무아, 나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
머리가 아닌 가슴을 뚫어서 한 순간도 그런 착각이 없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깨달은 사람도 자기들과 전혀 다를 것 없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위합니다. 어느 때는 저 사람 깨달은 사람 맞아?
자기도 그 정도는 웃고 넘길 수 있는 일인데
깨달았다는 해공이 핏대 세우며 싸우고 있거든.
그러면 저 사람 깨달은 사람 맞아 하고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의심을 안해.
왜 의심을 안할까요?
나는 절대지 누구하고 사소한 것을 가지고 싸우고 있는 해공이 내가 아니란 것을 알고 있으니까 헷갈리지 않아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헷갈려 합니다. 왜 헷갈릴까요? 이 해공이 개체로서 깨달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헷갈린거에요. 정작 해공은 헷갈리지 않아요.내가 절대라는 것, 그 근원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 생각과 말과 행위를 통해 일어나든 어떠한 일이 바깥에서 경계로 와서 부딪치든
한 찰라도 내가 절대라는 근원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착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드러나는 모습을 가지고 나를 판단하려 한다면 오~노~

그건 있을 수 없습니다.
깨달은 사람은 개체가 아닙니다. 그거와 마찬가지로 깨닫지 못한 여러분도 개체가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깨달은 사람은 무아야, 그런데 깨닫지 못한 나는 아직 에고야.나를 들여다 봤을 때 솔직히 욕심도 많고 에고도 많어
난 아직 못 깨달았어. 솔직히 난 절대는 절대인데 덜 떨어진 절대같아~ 스스로 생각합니다. 양심적인 사람이죠.
그런데 자기가 개체로서의 자기 자신을 들여다 봤을 때 헛점 투성이고 문제가 많아도
본래 자기가 절대임을 잊어 버리면 안됩니다.
욕심쟁이, 그리고 문제 투성이 그리고 집착 덩어리 그놈은 누구에요?
그놈은 참나가 아니고 캐릭터로서 참나인 내가 연기하고 있는 배역이란 거에요.
지금 현재 하나의 배역을 자기 참모습으로 살고 있잖아요?
드라마에서 악역한다고 주걱으로 뺨때리는 식당 아주머니랑 여러분들이 뭐가 다릅니까,솔직히.
세상 살아가는 꼴은 다 똑같은데.
착각하면 안됩니다. 지금 현재 이 모습은 본래 참나인 절대가 아주 잠깐동안맡은 배역이야. 이건 진짜 내 모습이 아닌거여.
이게 진짜 내 모습이면 이 모습은 영원히 변하면 안되죠. 그런데 이 모습은 백 년도 유지를 못하죠.

주체로서의 나 참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아야 하는거에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절대뿐이에요.
절대는 절대 안 변해 , 그래서 절대입니다. (웃음)
그 나머지 것은 다 변합니다.
우리가 나라고 주장하는 나라는 이놈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번도 안변했습니까?
나이 먹은 할머니들이 나도 한때는 왕년에는 남자들이 줄을 섰는데 왜 그런 소리가 나옵니까? 변했다는 거죠.
그 어릴 때 뽀송뽀송했던 아이가 이렇게 변할 줄 상상이나 했겠어요? 이건 내가 아닙니다.
누가 뭐래도 절대로 이건 내가 아닙니다. 이것은 나에게 잠깐 주어진 하나의 배역입니다.
이것이 마하라지 선생이 45년동안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45년동안 반복적으로 가르쳐준 단 하나의 사실,
단 하나의 진리입니다.

압축해 놓으면 딱 이 이야기 하나입니다.

댓글목록

권보님의 댓글

권보 아이피 (125.♡.91.239) 작성일

배역만 있다. 상당히 흥미로운 관점이네요. 좋은 글 전해주어서 고맙습니다. 공자님...

ahffk님의 댓글

ahffk 아이피 (61.♡.245.209) 작성일

정말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모든 공덕의  어머니이다 라는  말씀이 참으로 중요하군요~
이 있는그대로 가 메 순간 순간 모두가 절대 이라는것! ^^

공유님의 댓글

공유 아이피 (211.♡.76.43) 작성일

해공카페 가보면 한마디로 위빠사나 하라는 건데.. 말을 빙빙 돌리고 곁가지에 해당하는 잡소리만 늘어놓는 기술.. 지겹도록 많이 본 명상가들의 보편적인 교과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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