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잠시 인연을 끊게 된 계기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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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루시오 (175.♡.15.113) 댓글 0건 조회 8,414회 작성일 20-12-03 04:25본문
참....이 소주를 많이 마시면 의느님들이 간에 해롭니 어쩌니 하시는데...저야 전문 의학 지식이 없으니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술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 이분법이 내려가서 거기에 알딸딸한 알콜과 함께 즐기며
술을 통해 아주 재밌는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20살 때 주사는 심각한 애정결핍이었던 저는 모두에게 뽀뽀하고 다녔었는데...요새 주사는
그냥 변기 붙잡고 숙면에 취하는거로 많이 바껴버렸네요. 햐...그러면서 어두컴컴한 화장실에서 변기에 오바이트를 뭍힌걸 끌어안고 자는
제 모습을 바라보면, 원효 땡초의 해골바가지 사건에서의 그 땡초 당사자의 심정도 자주 느낍니다. '아~금마가 깨달을 수밖에 없었구나'라구요 ㅋㅋ
어쨌든 요 몇달 맛있는 소주와 족발을 이틀에 한 번꼴로 먹으며 살아서...족발 값만 얼마를 쓴건지 원..ㅋㅋ
그 덕에 요새 10kg가 뿔어서.....진짜 제 손과 발이 족발이 되어버렸네요. ㅠ 내일 부터 다시 열심히 조깅하러 나가야겠습니다.
시리즈 게시글로 자세히는 못 적었지만.. 저는 올 해, 모친과 행정제재(소송으로 불리기도 하더군요)를 통해 행정적인 인연을 끊어버렸습니다.
모친께선 부친과 이혼 후 10대 때의 저에게 8년간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해오신 분입니다. 나쁜 분도 아니고, 본성은 정말 착하신 분이지만,
그 방법과 표현을 모르셨겠지요. 그러나 저는 결혼식은 안 올렸어도, 이제 법적으로 부부인 안 사람과는 동거부터 시작했었는데...안 사람의
모친(장모)께서 개인적인 사정이 깊으셔서 저희 모친과의 만남을 오랫동안 거절하시며 피해오셨습니다. 거기다 제 안 사람도 모친에겐 애교있게
다가가지 않는 성격인데다 저희 모친이 부담스럽다며, 늘 저희 모친을 피해다녔습니다.
모친은 저희 부부가 사는 집에 수시로 찾아오고, 모친 입장에선 이 두 모녀가 왜 자신을 피하는지...그리고 안 사람의 어머니는 왜 자신을
무시하냐며 다양한 것을 요구해 오시다 결국 올 해 초에 폭발해버리셔서 제 안 사람에게 심각한 욕설+폭력적 위협을 가하셨어요.
(분명 저희 장모와 안 사람의 대처도 잘못하였겠지만, 제가 중간에서 조율을 못했다는 잘못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작정 모친을 욕하는 건 아닙니다.)
어쨌든, 제 안사람은 그 날 잠을 못 들고, 소리 내지 못하고 옆으로 돌아누워 자는척을 하며 저 몰래 우는 모습을 제가 확인 했을 때의 충격은...
그 날 밤을 지새웠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대구 도덕경 모임에서 2012년도 송년회 자리에서 (제 기억으론 호주로 넘어가신 미정 누님과 텅빈 쌤 등
원로 분들(?)과 그리고 모 형님을 그 자리에서 만났습니다) 인연이 되었던 모 형님이 몇 년 전, 저와 같은 경험이 있으셨었고...기태 쌤에게
그 형님의 사연을 몇 년전에 한 번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었습니다.
'그 형을 한 번 봐야겠다. 그나저나 모친과 내 안사람...어떻게 될까?' 생각할 수록 그 결과는 둘 다 죽는 형상밖에 안 되었습니다.
(우리 자신에겐 이분은 해선 안 되지만, 굳이 나눈다면...삶의 밖의 영역에선 생각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네 삶에 안과 밖은 없지만, 굳이
나눈다면, 밖의 영역에선 능동적인 생각의 엔진이 움직여야 능률면에서의 발전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다른 말 하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외부는 생각을 안 하려 하고 남들이 이끌어주는 대로 편히 살려 하고, 자신의 내면은 끊임없이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만들려 스스로를 부정하고
끊임없이 감정을 컨트롤 하려 들며, 노력하려 들죠...에너지 방향성이 거꾸로 되었죠. 모든 힘겨움은 거기에서 시작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뭐...쌤들은 다 아시죠?ㅎㅎ)
여튼, 그래, 끊자! 그렇게 마음 먹고 대구의 모친 동네에서 떠나려 맘 먹었을 때 (저희의 동거 집은 경북 구미였었고, 모친의 대구 집에 명절 등
서로 오가며 살았었는데...이 갈등의 시기는 대구 모친의 집에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 경험을 한 형을 동네 길거리 저녁 퇴근시간에 정말 우연히
만났어요. 어떻게 그렇게 기가 막힌 그 타이밍에 만났는지... 다 하늘의 덕이겠죠. 대구 시민 250만의 인구중에 그 형 한 명. 대구 북구의 어떠한 좁은
골목길에서 1년 365일의 날짜 중 하루. 하루 24시간 중 그 저녁 시간대에 만날 수 있는 확률을 계산하면 얼마가 나올까요..?ㅎㅎ
정말 우리네 삶에 우연은 없음을 느꼈었습니다.
'어? 어? 혹시 저기...xx형님 아니세요? ' 하니.. '어? 루시오야. 아니 주환아ㅋㅋ' 하며...이런저런 간단한 얘기와 제 사정을 간략히 말씀드리며,
'그럼 저희 당장 며칠 뒤로 최대한 빠르게 약속잡읍시다~' 하고 바로 며칠 뒤에 저녁 식사 한 끼 하며, 이런 저런 얘기...그리고 그 형의 경험담을 직접
들었어요. 제가 아는 그 형님은 과거 대구 도덕경 모임에서 외계인을 그리워 하던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의 평안을 누리시게 된 형이신데...
(그 형님 개인사다 보니, 직접적인 실명을 거론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다만 아시는 분들은 아실 것 같습니다만..) 그러다 보니, 역시 이 형 앞에선 제가
감정 등을 숨기질 못하겠더군요. 아니, 제 말투를 통해 저를 훤히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모친과 끊어야 함을 알지만, 그러던 갈등을 멈추질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 형이 한 마디 하시더군요. '주환이 너, 두려운가보구나' ... '예. 형은 어떠셨어요?'... '나도 참....그래..참 그랬었지..
그 형의 직접적인 경험담과 그 후일의 일들....정말 독하게 마음 먹고 끊어버리셨던 그 경험담 속에 '형님. 피할 수 없다면, 저도 끊어야겠지요' 라며,
말씀드리니 그 형은 한 마디 더 하셨습니다. '너희 어머니가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을 돌아보시는 계기가 되셨음 좋겠다. 근데 아마 안 그러시겠지...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는 게 쉬운 것도 아니고...''네 형, 그럼 우리 다음에 기회 되면 뵐게요' 하고 식사를 마치고 헤어지는데...그 형이 저를 보낼 때의
절 측은하게 바라봐 주시는 그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아 불쌍한 새끼....'라고 하시는 듯한 제 착각 아닌 착각ㅋㅋㅋ
모친께 말했습니다. '엄마. 엄마가 남편 없이 고생하며 우리 남매 키워준 건 고마워. 그러나, 엄마는 날 남편 겸 자식으로 바라보고 있고, 엄마의
결핍된 상처들을 아들과 며느리에게 보상 받으려 해. 그 심리적 의지가 너무 깊어. 그래선 우리가 다 죽게 돼. 끊자. 혈연관계란 게 쉽게
끊어지는 것도 아니니까...우리 서로의 상생을 위해 딱 1년만이라도 끊자. 서로를 위해 ' 그러자 모친은 넌 여자에 정신 나간 놈, 여자 때문에 부모를
버리는 놈이라며 온갖 폭력을 해오셨고, 그냥 전 다 뚜들겨 맞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 사람은 잠시 친정에 보내놓고, 저는 그대로 모친에게서
쫓겨났고(월세 보증금은 모친이 도와주신거라 다 반납하고 쫓겨났죠ㅎ)
저는 올 해 초, 한 겨울에 길거리에서 한 달 내외로 노숙도 했었습니다. 물론, 남자는 가오! 가 아니고 ㅋㅋ 직장을 다닐 때라 더럽게 다닐 순 없기에
늘 코트 입고 밖에서 잠을 잤었고, 화장실에서 세수 등은 반듯하게 하고 직장에 일찍 출근해서 자고, 야근하는 척하며 직장에서 숙식도 하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한 겨울에 벤치에서 쪽 잠 자며....직장에선 점심시간에 밥도 굶어가며 두 달간은 매일 1시간씩 뛰어다니며 은행문턱을 바쁘게
쫓아다니며 신용대출 알아보고, 그러면서 틈틈이 부동산 쪽으로 공부해 온 곳에서 실행을 하며 금전적 믿음의 창조를 해가니, 투자해 온
부분이 올 여름 약간 돈을 벌어 여기에 대출 껴서 작은 아파트 하나 매입하여 여기서 저희 부부가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모친께 편지 한 통 보냈고, 그 뒤 정신과 상담+가정폭력상담소에서 전문가들의 허가를 받는 서류를 준비하여 모친과는 행정적으로
인연을 끊어버렸기에 각 자의 삶을 위해 충실하자고 선언하였고 벌써 1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렇게 살아오다 외조부께서 갑자기 쓰러지셨단 소식을
여동생을 통해 연락을 받았는데, 외조부께선 뇌경색 수술 하시고 후유증으로 실명과 하반신 마비가 오셨대서 결국 외조부를 뵙기 위해 병문안을
갔다가 모친과 몇 달만에 재회를 하였어요. 모친은 본인의 잘못을 저에게 구구절절 말씀 하셨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저와 제 안 사람에게
저주와 욕설, 폭력을 해오시는 그 습관이 그대로 나오셨는지라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그래서 모친에겐 다음 모친 생신 때인, 몇 달 뒤에 한 번
찾아뵙겠다고 약속하고 나왔었습니다. 그 전까진 지금처럼 끊는다고...그리고 컴퓨터를 뒤지다 모친에게 워드로 작성했던 편지를 발견하고, 울컥하는
마음으로 소주한 잔 하고, 읽었습니다. 모친을 위해 한 자 한 자 진심을 다 해 적었던 그 편지...
오늘 새벽, 모친의 행복을 하늘에 진심으로 빌면서....이 곳 도덕경에 그 편지를 그대로 올려봅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
아니, 엄마...사랑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술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 이분법이 내려가서 거기에 알딸딸한 알콜과 함께 즐기며
술을 통해 아주 재밌는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20살 때 주사는 심각한 애정결핍이었던 저는 모두에게 뽀뽀하고 다녔었는데...요새 주사는
그냥 변기 붙잡고 숙면에 취하는거로 많이 바껴버렸네요. 햐...그러면서 어두컴컴한 화장실에서 변기에 오바이트를 뭍힌걸 끌어안고 자는
제 모습을 바라보면, 원효 땡초의 해골바가지 사건에서의 그 땡초 당사자의 심정도 자주 느낍니다. '아~금마가 깨달을 수밖에 없었구나'라구요 ㅋㅋ
어쨌든 요 몇달 맛있는 소주와 족발을 이틀에 한 번꼴로 먹으며 살아서...족발 값만 얼마를 쓴건지 원..ㅋㅋ
그 덕에 요새 10kg가 뿔어서.....진짜 제 손과 발이 족발이 되어버렸네요. ㅠ 내일 부터 다시 열심히 조깅하러 나가야겠습니다.
시리즈 게시글로 자세히는 못 적었지만.. 저는 올 해, 모친과 행정제재(소송으로 불리기도 하더군요)를 통해 행정적인 인연을 끊어버렸습니다.
모친께선 부친과 이혼 후 10대 때의 저에게 8년간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해오신 분입니다. 나쁜 분도 아니고, 본성은 정말 착하신 분이지만,
그 방법과 표현을 모르셨겠지요. 그러나 저는 결혼식은 안 올렸어도, 이제 법적으로 부부인 안 사람과는 동거부터 시작했었는데...안 사람의
모친(장모)께서 개인적인 사정이 깊으셔서 저희 모친과의 만남을 오랫동안 거절하시며 피해오셨습니다. 거기다 제 안 사람도 모친에겐 애교있게
다가가지 않는 성격인데다 저희 모친이 부담스럽다며, 늘 저희 모친을 피해다녔습니다.
모친은 저희 부부가 사는 집에 수시로 찾아오고, 모친 입장에선 이 두 모녀가 왜 자신을 피하는지...그리고 안 사람의 어머니는 왜 자신을
무시하냐며 다양한 것을 요구해 오시다 결국 올 해 초에 폭발해버리셔서 제 안 사람에게 심각한 욕설+폭력적 위협을 가하셨어요.
(분명 저희 장모와 안 사람의 대처도 잘못하였겠지만, 제가 중간에서 조율을 못했다는 잘못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작정 모친을 욕하는 건 아닙니다.)
어쨌든, 제 안사람은 그 날 잠을 못 들고, 소리 내지 못하고 옆으로 돌아누워 자는척을 하며 저 몰래 우는 모습을 제가 확인 했을 때의 충격은...
그 날 밤을 지새웠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대구 도덕경 모임에서 2012년도 송년회 자리에서 (제 기억으론 호주로 넘어가신 미정 누님과 텅빈 쌤 등
원로 분들(?)과 그리고 모 형님을 그 자리에서 만났습니다) 인연이 되었던 모 형님이 몇 년 전, 저와 같은 경험이 있으셨었고...기태 쌤에게
그 형님의 사연을 몇 년전에 한 번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었습니다.
'그 형을 한 번 봐야겠다. 그나저나 모친과 내 안사람...어떻게 될까?' 생각할 수록 그 결과는 둘 다 죽는 형상밖에 안 되었습니다.
(우리 자신에겐 이분은 해선 안 되지만, 굳이 나눈다면...삶의 밖의 영역에선 생각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네 삶에 안과 밖은 없지만, 굳이
나눈다면, 밖의 영역에선 능동적인 생각의 엔진이 움직여야 능률면에서의 발전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다른 말 하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외부는 생각을 안 하려 하고 남들이 이끌어주는 대로 편히 살려 하고, 자신의 내면은 끊임없이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만들려 스스로를 부정하고
끊임없이 감정을 컨트롤 하려 들며, 노력하려 들죠...에너지 방향성이 거꾸로 되었죠. 모든 힘겨움은 거기에서 시작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뭐...쌤들은 다 아시죠?ㅎㅎ)
여튼, 그래, 끊자! 그렇게 마음 먹고 대구의 모친 동네에서 떠나려 맘 먹었을 때 (저희의 동거 집은 경북 구미였었고, 모친의 대구 집에 명절 등
서로 오가며 살았었는데...이 갈등의 시기는 대구 모친의 집에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 경험을 한 형을 동네 길거리 저녁 퇴근시간에 정말 우연히
만났어요. 어떻게 그렇게 기가 막힌 그 타이밍에 만났는지... 다 하늘의 덕이겠죠. 대구 시민 250만의 인구중에 그 형 한 명. 대구 북구의 어떠한 좁은
골목길에서 1년 365일의 날짜 중 하루. 하루 24시간 중 그 저녁 시간대에 만날 수 있는 확률을 계산하면 얼마가 나올까요..?ㅎㅎ
정말 우리네 삶에 우연은 없음을 느꼈었습니다.
'어? 어? 혹시 저기...xx형님 아니세요? ' 하니.. '어? 루시오야. 아니 주환아ㅋㅋ' 하며...이런저런 간단한 얘기와 제 사정을 간략히 말씀드리며,
'그럼 저희 당장 며칠 뒤로 최대한 빠르게 약속잡읍시다~' 하고 바로 며칠 뒤에 저녁 식사 한 끼 하며, 이런 저런 얘기...그리고 그 형의 경험담을 직접
들었어요. 제가 아는 그 형님은 과거 대구 도덕경 모임에서 외계인을 그리워 하던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의 평안을 누리시게 된 형이신데...
(그 형님 개인사다 보니, 직접적인 실명을 거론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다만 아시는 분들은 아실 것 같습니다만..) 그러다 보니, 역시 이 형 앞에선 제가
감정 등을 숨기질 못하겠더군요. 아니, 제 말투를 통해 저를 훤히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모친과 끊어야 함을 알지만, 그러던 갈등을 멈추질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 형이 한 마디 하시더군요. '주환이 너, 두려운가보구나' ... '예. 형은 어떠셨어요?'... '나도 참....그래..참 그랬었지..
그 형의 직접적인 경험담과 그 후일의 일들....정말 독하게 마음 먹고 끊어버리셨던 그 경험담 속에 '형님. 피할 수 없다면, 저도 끊어야겠지요' 라며,
말씀드리니 그 형은 한 마디 더 하셨습니다. '너희 어머니가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을 돌아보시는 계기가 되셨음 좋겠다. 근데 아마 안 그러시겠지...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는 게 쉬운 것도 아니고...''네 형, 그럼 우리 다음에 기회 되면 뵐게요' 하고 식사를 마치고 헤어지는데...그 형이 저를 보낼 때의
절 측은하게 바라봐 주시는 그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아 불쌍한 새끼....'라고 하시는 듯한 제 착각 아닌 착각ㅋㅋㅋ
모친께 말했습니다. '엄마. 엄마가 남편 없이 고생하며 우리 남매 키워준 건 고마워. 그러나, 엄마는 날 남편 겸 자식으로 바라보고 있고, 엄마의
결핍된 상처들을 아들과 며느리에게 보상 받으려 해. 그 심리적 의지가 너무 깊어. 그래선 우리가 다 죽게 돼. 끊자. 혈연관계란 게 쉽게
끊어지는 것도 아니니까...우리 서로의 상생을 위해 딱 1년만이라도 끊자. 서로를 위해 ' 그러자 모친은 넌 여자에 정신 나간 놈, 여자 때문에 부모를
버리는 놈이라며 온갖 폭력을 해오셨고, 그냥 전 다 뚜들겨 맞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 사람은 잠시 친정에 보내놓고, 저는 그대로 모친에게서
쫓겨났고(월세 보증금은 모친이 도와주신거라 다 반납하고 쫓겨났죠ㅎ)
저는 올 해 초, 한 겨울에 길거리에서 한 달 내외로 노숙도 했었습니다. 물론, 남자는 가오! 가 아니고 ㅋㅋ 직장을 다닐 때라 더럽게 다닐 순 없기에
늘 코트 입고 밖에서 잠을 잤었고, 화장실에서 세수 등은 반듯하게 하고 직장에 일찍 출근해서 자고, 야근하는 척하며 직장에서 숙식도 하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한 겨울에 벤치에서 쪽 잠 자며....직장에선 점심시간에 밥도 굶어가며 두 달간은 매일 1시간씩 뛰어다니며 은행문턱을 바쁘게
쫓아다니며 신용대출 알아보고, 그러면서 틈틈이 부동산 쪽으로 공부해 온 곳에서 실행을 하며 금전적 믿음의 창조를 해가니, 투자해 온
부분이 올 여름 약간 돈을 벌어 여기에 대출 껴서 작은 아파트 하나 매입하여 여기서 저희 부부가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모친께 편지 한 통 보냈고, 그 뒤 정신과 상담+가정폭력상담소에서 전문가들의 허가를 받는 서류를 준비하여 모친과는 행정적으로
인연을 끊어버렸기에 각 자의 삶을 위해 충실하자고 선언하였고 벌써 1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렇게 살아오다 외조부께서 갑자기 쓰러지셨단 소식을
여동생을 통해 연락을 받았는데, 외조부께선 뇌경색 수술 하시고 후유증으로 실명과 하반신 마비가 오셨대서 결국 외조부를 뵙기 위해 병문안을
갔다가 모친과 몇 달만에 재회를 하였어요. 모친은 본인의 잘못을 저에게 구구절절 말씀 하셨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저와 제 안 사람에게
저주와 욕설, 폭력을 해오시는 그 습관이 그대로 나오셨는지라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그래서 모친에겐 다음 모친 생신 때인, 몇 달 뒤에 한 번
찾아뵙겠다고 약속하고 나왔었습니다. 그 전까진 지금처럼 끊는다고...그리고 컴퓨터를 뒤지다 모친에게 워드로 작성했던 편지를 발견하고, 울컥하는
마음으로 소주한 잔 하고, 읽었습니다. 모친을 위해 한 자 한 자 진심을 다 해 적었던 그 편지...
오늘 새벽, 모친의 행복을 하늘에 진심으로 빌면서....이 곳 도덕경에 그 편지를 그대로 올려봅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
아니, 엄마...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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