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그리고 아픔과 깨어남, 또 아픔과 깨어남 1
페이지 정보
작성자 루시오 (175.♡.15.113) 댓글 0건 조회 8,455회 작성일 20-11-21 14:28본문
얼마 전, 제가 피고로서 민사소송에 하나 들어가기 직전 4개월간 치열하게 상대방과 내용증명이란 서류들과 카톡 등으로
설전을 벌이며, 장기간 법원에 들락날락해야겠구나~라며 참담했던 사건이 있었고, 아주 재미난 타이밍에 허무하게 종결이 되었습니다.
모친과 올 초, 행정적 인연을 잠시 끊고, 모친의 재산을 정리하는 와중에 모 부부들에 의해 저는 일방적인 금전적 요구 속에 스트레스를 받아 왔었고,
인연이 참으로 재밌는게 근무하던 직장에서 만난 자칭 술친구 변호사 형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 형들 앞에서 너무 억울하고
분노하며, 제가 많이 울면서 '스스로 왜 그러했던 법률적 약점을 드러냈을까요?' 라는 말 한 마디에 형들은 '주환아, 그 당시의 네 결정을
네가 스스로 존중해줘야 한다며? 괜찮아. 괜찮아. 형들은 널 믿어' 라는 말에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말 한 마디에 또 자신을 돌아보는...
역시...아무 때나 내리는 비 같아도, 다 하늘의 원대한 스케줄대로 일어나야 할 일들은 정해진대로 일어날 뿐이었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단 하나의 인정만이 위대한 변화가 시작되는 진리를 다시금 느꼈던 귀한 4개월이었네요. 그럼 다음 이야기 작성하겠습니다. ^^
나는 2013년도 10월23일에 눈이 떠졌다. 7살 때, 화목했던 가정의 부친께서 회사가 부도 나며 박살이 났었고 오랜 도망자 생활, 전국
각지의 열 곳이 넘는 친척집의 눈칫밥 생활 이 후 조부가정, 편모가정, 버림받음, 필리핀 나홀로 유학, 은둔형 외톨이 8년의 생활, 학대 피해자,
귀신 빙의, 중환자실, 외계인과의 채널링, 기수련, 종교경전공부, 청와대 장학생, 폭력써클, 특전사&해병대&의경 등 3번의 군생활,
에버랜드 알바&직원생활을 24년이란 짧은 시간을 거치며 살아왔었고 우연히 한강 이남에 깨달은 이가 있다는 대구의 도올 김기태씨가
있단 기사와 네이버 지식인을 우연히 접하고 무작정 2011년도 연암찻집에서 매주 강의가 진행되던 기태 선생님과 22살 때, 인연이 되었다.
1년간 매주 강의를 들었지만, 그 무렵 서정만,마피,다정 누나의 한 달 실험을 통해 눈떠짐이란 칭찬을 들으며 '와! 저게 마지막 수련이다!' 라며
자진 한 달 실험을 요청하였고, 나의 지난 날을 되돌아 보는데는 성공하였으나 내 시선은 오직 깨달음에 가 있었기에 실험 종료 뒤 기태 쌤 앞에서
깨달음에 관한 얘기만 우장창 하다가 '닌 내가 했던 말이나 읊고 있노? 뭐했노?' 라는 망신 속에 '이제 이 따위 짓 다신 안 한다' 라며 포기하고,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리란 맘 가짐으로 3번 째 군 입대 전까지인 에버랜드에서 알바를 시작하였고, 한 평생 사랑받지 못해 본 나는
여자에게서 사랑받을 것이란 착각 속에 여자 뒤꽁무늬만 쫓던 나의 과거가 있었다.
어느 날, 휴식시간에 담뱃불을 붙이던 모 여자애가 날 보자마자 급히 담뱃불을 끄고 도망가던 그녀의 모습. 난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그 날
저녁에 기숙사에 내 삶의 귀인인 동생이 나에게 충고해주러 찾아왔었다. 내 삶의 평생 귀인인 동생이 '내가 아까 그 여자애 따라가서 왜 주환이 형을
보자마자 담뱃붙을 껐는지 따졌어. 근데 그 여자애는 형이 여자들에게 찝적대는 모습이 꼴뵈기 싫어 그러한 것이라고 말하더라.
형, 다신 그런 짓 하지 말라'는 충고 속에 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고, 이내 '난 누구지? 여자들을 꼬시려던 가식 덩어리 모습들을 내려놓으면, 도대체
난 뭐가 남을까?' 라는 질문이 새벽 3시까지 오더라. 끝내 잠을 못자다 다음 날 출근이 걱정되어 너무 졸린지라 '이 모습 그대로가 내 모습이다. 자자'
라며 그냥 인정하고 잠을 청했다. 근데 다음 날, 출근길이 이상했다. 출근 일에 늘 보던 출근 길들에 핀 나무, 꽃, 풀, 보안 출근문 등이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고, 그 충고를 해준 귀인 동생 녀석의 뒷 통수가 이상하게 너무 너무 고마웠다. 뭔가 변화가 일어나는 것임을
나는 이미 그 때부터 느낀지도 모른다.
난 어쨌든 여자들을 쫓던 모습들을 내려놓고, 매 순간을 인정하며 살기 시작했고, 그렇게 석 달이 흘렀나? 군 입대 일주일 전
2013년 10월23일 에버랜드 퇴사 날이 나의 영혼의 생일이었고. 마지막 공연 공간인 호러메이즈 고문실이란 2평 남짓한 어둡고
나 홀로 기다리는 그 좁디 좁은 방에서 '내가 고문실이고, 고문실이 곧 나다'를 맘 먹고 그 방에 혼자 들어가니
그 방의 냄새,소리,환경이 내 몸을 통과하는 경험을 하였고 이내 내 가슴 속에선 우주가 느껴지며 온 몸에 전율과 사랑을 처음 느끼며
비로서 지금 이 순간에 현존하게 되었다.
이 때의 환희는 절대 잊지 못하였고, 공연을 마치고 나올 때 나도 모르게 절로 입에서
'다 이루었다'라는 예수가 했던 말을 똑같이 내 뱉었다. 그리고 입대를 위해 퇴사했던 게 나의 7년 전, 깨어남의 압축된 내용이다.
이 후 군대(의경)에 갔었고, 논산 훈련소에 태양빛을 있는 그대로 내리쬘 때, '우와 이 태양 에너지가 이렇게 완벽했었나? 행군할 때,
이 철책선 하나로 저 새들은 그냥 오가네? 이 세상에 이분 따윈 없구나. 다 하나였구나. 나의 이 발 걸음이 신의 발걸음이었네?' 등
원래 알았던 나의 앎들을 하나 하나 재기억하기 시작했었고, 논산 훈련소에서 난 하늘로부터 완벽히 보호 받고 있음을, 이 세상에서
그 어떠한 위험도 없음을 느끼며 그렇게 경찰학교에 주특기 훈련을 받으러 갔었고 거기에선 지구의 대지 숨결 마저 느끼며 아주 오르가즘
절정에 도달하였고, 나는 이미 내가 아니었고 매 순간 순간이 나에겐 영화와도 같던 7년 전의 기억이다.
설전을 벌이며, 장기간 법원에 들락날락해야겠구나~라며 참담했던 사건이 있었고, 아주 재미난 타이밍에 허무하게 종결이 되었습니다.
모친과 올 초, 행정적 인연을 잠시 끊고, 모친의 재산을 정리하는 와중에 모 부부들에 의해 저는 일방적인 금전적 요구 속에 스트레스를 받아 왔었고,
인연이 참으로 재밌는게 근무하던 직장에서 만난 자칭 술친구 변호사 형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 형들 앞에서 너무 억울하고
분노하며, 제가 많이 울면서 '스스로 왜 그러했던 법률적 약점을 드러냈을까요?' 라는 말 한 마디에 형들은 '주환아, 그 당시의 네 결정을
네가 스스로 존중해줘야 한다며? 괜찮아. 괜찮아. 형들은 널 믿어' 라는 말에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말 한 마디에 또 자신을 돌아보는...
역시...아무 때나 내리는 비 같아도, 다 하늘의 원대한 스케줄대로 일어나야 할 일들은 정해진대로 일어날 뿐이었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단 하나의 인정만이 위대한 변화가 시작되는 진리를 다시금 느꼈던 귀한 4개월이었네요. 그럼 다음 이야기 작성하겠습니다. ^^
나는 2013년도 10월23일에 눈이 떠졌다. 7살 때, 화목했던 가정의 부친께서 회사가 부도 나며 박살이 났었고 오랜 도망자 생활, 전국
각지의 열 곳이 넘는 친척집의 눈칫밥 생활 이 후 조부가정, 편모가정, 버림받음, 필리핀 나홀로 유학, 은둔형 외톨이 8년의 생활, 학대 피해자,
귀신 빙의, 중환자실, 외계인과의 채널링, 기수련, 종교경전공부, 청와대 장학생, 폭력써클, 특전사&해병대&의경 등 3번의 군생활,
에버랜드 알바&직원생활을 24년이란 짧은 시간을 거치며 살아왔었고 우연히 한강 이남에 깨달은 이가 있다는 대구의 도올 김기태씨가
있단 기사와 네이버 지식인을 우연히 접하고 무작정 2011년도 연암찻집에서 매주 강의가 진행되던 기태 선생님과 22살 때, 인연이 되었다.
1년간 매주 강의를 들었지만, 그 무렵 서정만,마피,다정 누나의 한 달 실험을 통해 눈떠짐이란 칭찬을 들으며 '와! 저게 마지막 수련이다!' 라며
자진 한 달 실험을 요청하였고, 나의 지난 날을 되돌아 보는데는 성공하였으나 내 시선은 오직 깨달음에 가 있었기에 실험 종료 뒤 기태 쌤 앞에서
깨달음에 관한 얘기만 우장창 하다가 '닌 내가 했던 말이나 읊고 있노? 뭐했노?' 라는 망신 속에 '이제 이 따위 짓 다신 안 한다' 라며 포기하고,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리란 맘 가짐으로 3번 째 군 입대 전까지인 에버랜드에서 알바를 시작하였고, 한 평생 사랑받지 못해 본 나는
여자에게서 사랑받을 것이란 착각 속에 여자 뒤꽁무늬만 쫓던 나의 과거가 있었다.
어느 날, 휴식시간에 담뱃불을 붙이던 모 여자애가 날 보자마자 급히 담뱃불을 끄고 도망가던 그녀의 모습. 난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그 날
저녁에 기숙사에 내 삶의 귀인인 동생이 나에게 충고해주러 찾아왔었다. 내 삶의 평생 귀인인 동생이 '내가 아까 그 여자애 따라가서 왜 주환이 형을
보자마자 담뱃붙을 껐는지 따졌어. 근데 그 여자애는 형이 여자들에게 찝적대는 모습이 꼴뵈기 싫어 그러한 것이라고 말하더라.
형, 다신 그런 짓 하지 말라'는 충고 속에 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고, 이내 '난 누구지? 여자들을 꼬시려던 가식 덩어리 모습들을 내려놓으면, 도대체
난 뭐가 남을까?' 라는 질문이 새벽 3시까지 오더라. 끝내 잠을 못자다 다음 날 출근이 걱정되어 너무 졸린지라 '이 모습 그대로가 내 모습이다. 자자'
라며 그냥 인정하고 잠을 청했다. 근데 다음 날, 출근길이 이상했다. 출근 일에 늘 보던 출근 길들에 핀 나무, 꽃, 풀, 보안 출근문 등이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고, 그 충고를 해준 귀인 동생 녀석의 뒷 통수가 이상하게 너무 너무 고마웠다. 뭔가 변화가 일어나는 것임을
나는 이미 그 때부터 느낀지도 모른다.
난 어쨌든 여자들을 쫓던 모습들을 내려놓고, 매 순간을 인정하며 살기 시작했고, 그렇게 석 달이 흘렀나? 군 입대 일주일 전
2013년 10월23일 에버랜드 퇴사 날이 나의 영혼의 생일이었고. 마지막 공연 공간인 호러메이즈 고문실이란 2평 남짓한 어둡고
나 홀로 기다리는 그 좁디 좁은 방에서 '내가 고문실이고, 고문실이 곧 나다'를 맘 먹고 그 방에 혼자 들어가니
그 방의 냄새,소리,환경이 내 몸을 통과하는 경험을 하였고 이내 내 가슴 속에선 우주가 느껴지며 온 몸에 전율과 사랑을 처음 느끼며
비로서 지금 이 순간에 현존하게 되었다.
이 때의 환희는 절대 잊지 못하였고, 공연을 마치고 나올 때 나도 모르게 절로 입에서
'다 이루었다'라는 예수가 했던 말을 똑같이 내 뱉었다. 그리고 입대를 위해 퇴사했던 게 나의 7년 전, 깨어남의 압축된 내용이다.
이 후 군대(의경)에 갔었고, 논산 훈련소에 태양빛을 있는 그대로 내리쬘 때, '우와 이 태양 에너지가 이렇게 완벽했었나? 행군할 때,
이 철책선 하나로 저 새들은 그냥 오가네? 이 세상에 이분 따윈 없구나. 다 하나였구나. 나의 이 발 걸음이 신의 발걸음이었네?' 등
원래 알았던 나의 앎들을 하나 하나 재기억하기 시작했었고, 논산 훈련소에서 난 하늘로부터 완벽히 보호 받고 있음을, 이 세상에서
그 어떠한 위험도 없음을 느끼며 그렇게 경찰학교에 주특기 훈련을 받으러 갔었고 거기에선 지구의 대지 숨결 마저 느끼며 아주 오르가즘
절정에 도달하였고, 나는 이미 내가 아니었고 매 순간 순간이 나에겐 영화와도 같던 7년 전의 기억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