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목사님께 / 양승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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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보 (125.♡.91.239) 댓글 0건 조회 7,118회 작성일 09-05-26 10:51본문
오랜만에 길벗님들께 인사를 드립니다. 제가 길벗을 떠난 것이 아니라 물소리님의 글을 특히 도마복음 해설서를 거의
빼놓지 않고 읽고있고 영방자님이 올려주신 물소리님의 글을 감동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저는 5년전에 대학에서 퇴임
한 후 저의 전공인 고생물학 연구를 위해 힘 닿는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올리는 글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매우 마음이 착잡하던 중 한동안 존경하던 김진홍목사가 엉뚱한 소리를 하여 너무도 실스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마음을 정리한 것입니다.
김진홍목사님께 안녕하십니까? 오랫동안 뵙지 못했습니다.
요즘에는 남양만의 두레마을을 떠나 구리의 어느 큰 교회를 맡아 목회를 하신다구요. 그리고 뉴라이트의 상임이사장 으로 MB의 정신적 사부로서의 역할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언론을 통해 듣고 있습니다. 많이 바쁘시겠습니다.
저는 대구에 사는 사람으로 8, 90년대에 김목사님의 설교에 반해 김목사님이 대구에 오실 때마다 찾아가 설교를 듣고
남양만 두레마을에서 생산한 달걀을 사들고 오고, 심지어는 김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사서 장거리 운전시에는 김목사
님의 설교를 자주 접하면서 존경해 마지않던 사람입니다. 솔직히 저는 김목사님을 살아계신 예수님이라고까지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대구의 K모 대학의 이사장이 되시면서 약간 맛이 간 것 아닌가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 대학은 누구보다도 잘
아시겠지만 신씨의 개인왕국이 되어 사학재단 비리의 전형처럼 이들의 비리에 관한 기사가 심심치 않게 뉴스에 떠오
르는 것을 알고 그 대학에 얼굴 마담 역할을 하시더군요. 그리고 MB가 대선후보로 물망에 오르면서 뉴라이트라는 단
체가 생겨 DJ정권과 노정권에 대립각의 위치에서 이들 정권을 좌파로 몰아세우면서 서울대학의 안모, 이모라는 경
제사 전공 교수의 신자유주의 이념을 따르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못하지만 뉴라이트의 중심에 있는 안모, 이모
의 사관은 주류 사학계로부터 반동적 사관이라고 하여 심한 비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식민지 근대화론, 그리고 이승만을 국부로 모시고 이승만 정권 수립일인 1948년 8월15일을 건국일로 정하자는 안을
내놓았다고 들었습니다. 또한 국사교과서를 이들의 사관에 따라 저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행정력으로 수정하라는 지
시를 내려 MB 정권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어제는 노무현의 서거를 두고 “무책임한 일이고 젊은이들이 본받을까 염려된다”고 하셨다구요. 내가 오랫동안
존경하던 김목사님이 이토록 변하신 데 대하여 너무나 실망스러워 할 말을 잊겠습니다. 기독교에서 자살은 죄악시 한다
는 것 잘 압니다. 이는 종교의 교리를 떠나 적어도 종교계의 어른이라면 죽은 이의 입장에서 왜 그토록 최후를 마쳤어
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해야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저는 이번 사건이 어느 개인의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 정치적인 타살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찰을 비롯한 온갖 국가
기관과 언론을 동원하여 전임 대통령을 조롱하고 자존심을 깎아내렸습니다. 2, 30년 전 3, 4천억 원을 재벌 회장들을
협박하여 강탈한 액수와 비교하면 수백분의 일도 되지 않는 소소한 액수의 도움을 그것도 30여년 도움을 받아온 형의
친구인 중소기업 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을 가지고 연일 언론을 통해 정경유착의 대표격이나 되는 것처럼 오랫동안
자존심을 깎아내렸습니다. 목사님은 그러한 위치에 계셨다면 견딜 수 있었겠습니까? 더구나 도덕 정치를 내세운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는 모욕감 때문에 인내에 한계를 느꼈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시절 무얼 그렇게 잘못한 것이 많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지연, 학연 그리고 내세울 조직도
없었습니다. 다만 그의 인간으로서의 매력에 자발적으로 모인 노사모라는 비조직적인 단체가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어느 대통령보다도 빚을 갚아야 할 패거리가 없어 자유로울 수 있었고 그것이 그의 정치인으로서
아마추어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역대 어느 누구보다도 대한민국의 국가로서의 자존을 높이고 미래 지향적인 정치를 모색한 그리고 도시와
농촌,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역대 정권의 국가권력에 의해 수
많은 국민들이 억울하게 죽어갔고 인권을 유린당한 일, 독립 운동한 것이 부끄럽고 친일이 오히려 자랑스러운 그러한
환경에서, 통일은 노래로만 소원이라 하고 평화적인 통일에는 전혀 관심도 기울이지 않은 것이 사실 아닙니까. 이러한
비뚤어진 국민들의 의식을 바로잡기 위해 여러 위원회를 만들어 바로잡도록 노력한 대통령입니다.
나는 그를 한 번도 가까이서 만난 일이 없습니다. 다만 그의 과거 용기 있는 행동에 매력을 느껴온 사람입니다. 스스로
바보라는 별호가 붙었듯이 그는 바보처럼 행동했습니다. 정치적 사부라고 할 수 있는 YS가 삼당 합당할 때에 자신의
정치 소신에 따라 배신이라는 욕을 감수하면서 차기 대통령으로 유망한 YS를 거부하고 약자인 DJ를 선택했습니다.
여러 차례 지역감정의 올가미에 여러 차례 총선에 낙선하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정치 철학을 주장해
왔습니다. 그가 초선의원으로 오공 청문회에서 보여준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될 일이고 대선후보 시절 장인의 사상문제로
후보 자격을 따지자 “나의 장인의 사상 때문에 내 처를 버려야 후보 자격이 있다는 말인가, 나는 후보를 포기하면 했지
나의 사랑하는 아내를 버릴 수는 없다”고 한마디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킨 모습은 감동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역대 대통령들이 누렸던 온갖 국가 권력을 스스로 내놓음으로써 제왕적 대통령의 지위를 거부한 최초의 민주주의 대통
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큰 업적을 쌓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MB를 욕할 마음은 없습니다. 아직 그에게는 기회가 남아있어 지켜볼 뿐입니다.
제가 목사님께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MB의 정신적인 사부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시라는 것입니다. 아니면 목사직을 내놓고 청와대로 들어가 주구 노릇을 본격적으로 하시는 것이 차라리 보기에 나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기독교인들을
욕되게 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동안이나마 당신을 존경하고 따랐던 나의 과거가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2009년 5월 26일
대구에서 양 승 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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