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와 해골바가지' 그리고 '환경문제'에 대하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초심 (211.♡.219.66) 댓글 1건 조회 6,660회 작성일 09-06-13 20:24본문
[원효스님은 해골바가지 사건과 비슷한 일로 깨달았다고 사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중앙승가대 총장이라는 분도 그런 말씀을 하셨겠죠. 무엇이냐면 해골바가지로 깨달았다는 것은 단지 임간록이라는 책에 나오는 말일 뿐이며 다른 문헌들에서는 무덤인줄 모르고 잠을 잤을 때는 편안했는데 무덤인줄 알고 잤을 때는 꿈속에서 귀신을 보았다면서 그것을 계기로 깨달았다고 전합니다. 해골바가지 사건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야기입니다.]라는 자칭 붓다님의 말씀에 대하여, 제가 애초에 이곳에 글을 쓴 목적은 둥글이님에게 글을 쓴 것이기에 답글을 적지 않으려고 했는데 질의응답방에서 이곳 자유게시판으로 저의 글을 옮긴 후에도 아래에 댓글로 집요하게(? ^^)달아 놓으셨기에 저의 견해를 밝힙니다.
**********************************************************************************
원효대사가 불법(佛法)을 구하러 당나라로 가다가 밤에 토굴같은 곳에서 잠을 자다가 갈증으로 인하여 옆에 있는 물을 먹고 계속 잠을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자신이 잠을 자던 곳은 공동묘지 같은 곳이었으며 자신이 밤중에 먹었던 물이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임을 보고 구역질이 나면서 마음을 깨달았고 이것이 일체유심조를 깨달았다고 하는 내용인데요...
마치 그럴싸한 내용인 것 같지만, 이것은 여전히 의식의 작용일 뿐이며 여전히 꿈속의 일이라는 것 이지요. 무슨 말이냐 하면 해골바가지에 든 물인지 모르고 먹었을 때에는 마치 감로수 같이 느꼈는데 날이 밝아서 해골바가지에 든 물임을 확인하고는 순간적으로 더럽다는 생각에 구역질이 나서 문득 깨닫기를 이것이 마음의 작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은 마음의 작용이다. 라고 한다는 것은 여전히 일체유심조에서 말하는 마음(근원-진여자성, 진아 등)이 아니라 단지 의식의 장난이라는 말입니다.
비유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초등학생 시절) 여름에 친구들이랑 뛰어 놀다가 목이 너무 말라서 물을 먹기 위하여 집으로 달려가서 곧바로 부엌으로 향했는데 마침 식탁위에 어머니께서 먹기도 좋고 보기도 좋은 콜라를 컵에 따라 놓으신 것을 보고 환희심에 가득한 마음으로 그 콜라를 단 숨에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 콜라를 먹고 갈증이 시원하게 가셔야 되는데 그 콜라를 마심과 동시에 이 소년은 오히려 형용할 수 없는 갈증과 괴로움에 구토를 하며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 쳤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먹기도 좋고 보기도 좋은 콜라가 아니라 그와 비슷한 색깔을 뛴 “간장”이었기 때문이지요. ㅋㅋ ^^*
그때 분명히 간장인 줄을 모르고, 100% 콜라임을 확신을 하고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간장은 여전히 간장일 뿐이지 콜라가 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
이와 같이, 만약에 해골바가지에 든 물이 오래되어 썩어있었다면 비록 해골바가지에 든 물인지 모르고 먹었더라도 그것이 감로수처럼 느꼈을 것이 아니라 그 즉시 구토와 함께 배가아파서 데굴데굴 굴렀을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한 얘기인 것입니다.
뜨겁고 차가운 것을 구분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가 만약에 펄펄 끓는 뜨거운 물에 그것이 뜨거운 물인지 모르고 손을 넣었다면, 이 아이의 손은 ‘뜨겁다’ 혹은‘차갑다’라는 마음이 없기에 아무런 일도 없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해골바가지의 물을 먹고, “모든 것은 ‘더럽다’ 혹은 ‘깨끗하다’고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체유심조’이다. 라고 하는 것은 여전히 의식(생각)의 분별이지 이것이 화엄경에서 말씀하신 “일체유심조”와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라는 것이지요.
제가 알기로는 적어도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깨끗하다, 더럽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이 분별하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다시 비유를 들겠습니다.
아주 오래전의 일입니다만, 우연히 썩은 나무토막이 있는 곳에 조그마한 물구덩이가 있었고 그곳에 더러운 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아무것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 물에서 생명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기생충이라고 부르는 그런 생명같이 보임) 그 순간, 저의 마음속으로 ‘아~!’하는 탄성과 함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더러운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며, 깨끗한 것이 깨끗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슨말이냐 하면 이 물이 더럽다고 하는 것은 인간을 기준으로 인간의 의식(생각)이 만들어낸 것이지 이곳에 사는 생명에게는 이 물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깨끗하다는 말입니다. 이 생명에게는 인간이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물이 더러운 것이 되는 것이지요.
부처님께서는 ‘사생의 자부’라고 하듯이 인간들만을 위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 ‘모든 생명들’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더럽고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인 ‘똥’을 예로 들어봅시다. 똥 역시 인간들의 생각(의식)에 가치가 없고 더러운 것이지, 소똥구리에겐 더 없이 좋은 보물인 것입니다.
일체유심조의 마음 역시 인간들만을 생각하는 그런 낮은 저 차원의 가르침이 아닌 것입니다. 제가 둥글이님께 드리는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여기에서의 마음은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 설명한 것과 같습니다.
또한 제가 둥글이님이 “ ‘물질이 없으면 마음 자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욱 자명하다. 고 말씀하신 것은 탁월한 안목이십니다.” 라고 말씀드린 것은 도를 배우고 있고 또한 깨달았다고 자처하는 분들이 관념에 젖어서 뒷전에 물러나 있다가 누군가 글을 쓰면 마치 자신은 깨달은 사람인 듯이 충고하듯이 ‘한마디 툭~’ 던지는 그런 관념적인 사람들 보다는 오히려 물질의 존재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현실에서의 적극적인 개선을 위하여 노력하는 둥글이님 같은 분이 훨씬 더 존경스럽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자신들만의 안위를 위하여 복지와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자행하는 자연파괴에 대하여 환경보호를 위해서 헌신하는 둥글이 같은 분이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야 말로 온 생명들을 위한 “무주상 보시‘의 생활속에서의 실천인 것입니다.
불법(도)과 생활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생활이 곧 불법이요, 블법이 곧 생활인 것입니다. 나의 도의 성취를 위하여 다른 생명들의 죽음에 무관심한 것이 무자비요, 뭇 생명들을 위하여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 바로 “대자비”이며 이것이 “보살행”인 것입니다.
실천없는 깨달음은 관념일 뿐이지 깨달음도 아니요, 불법(도)도 아닙니다. 제가 저의 카페 상단에 “생활 속의 법화경(불법) 수행”이라고 적어 놓았듯이 “생활과 수행(도)”은 별개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즉 우주’이며 ‘우주즉 아’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내가 바로 우주’고 ‘우주가 바로 나’라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이 우주의 모든 것이 나라고 한다면 내 몸이 아프면 괴롭듯이 또한 그래서 이 내 몸이라고 하는 육신이 소중하듯이 이 우주의 모든 것이 다 소중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말뿐인 ‘마음이 모든 것이다.’보다는 차라리 마음을 몰라도 ‘나와 이 우주의 모든 것이 한 몸이다.’라는 생각으로 환경에 대한 소중함을 이해하고 가능한한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도를 구하는 사람으로서의 바른 수행 자세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을 드리면, 제가 아래 둥글이님의 답글에 적은 “원효스님이 해골바가지의 물을 먹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저 역시 오래전에 그런 글을 보면서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원효스님은 깨닫지 못한 분이고, 깨달은 분이라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해골바가지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씀드린 것은 이렇게 관념에 사로잡힌 분들에게 그 관념을 부수기 위해서 적은 글입니다.
제가 보기엔 님이 말씀하신 “귀신”이야기 역시 같은 내용의 꿈(인간의 의식-생각) 속의 일이지 별반 다른 말이 아닙니다. ^^
이 글을 읽고 미친놈 지랄하네. 라고 하시는 분은 하근기이며, 님과 같이 다만 자신의 견해를 알려 주시는 분은 중근기이며, 왜 저런말을 했을까? 궁금하게 여기고 의문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서시는 분은 상근기 분입니다. ^^
왜냐하면, 조주선사(확실하지 않음)가 그의 제자가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무(無)”라고 대답한 것과 같은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원효대사와 해골바가지에 대하여 위에서 이것은 화엄경에서 말씀하시는 “일체유심조가 아니다.”고 했지만, 또한 이 해골바가지 사건이 진실로 이 “일체유심조”이기도 하니까요.(깨달은 분이라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해골바가지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
여기에 대하여 자칭 부처님(붓다)이라고 하신분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
댓글목록
붓다님의 댓글
붓다 아이피 (211.♡.76.166) 작성일제가 글을 자게로 옮긴건, 님이 글을 자게로 옮겨서 입니다. 질문게시판에는 원래 님처럼 사적인 글을 올리면 안되도록 되어있거든요. 그래서 게시판 규정상 옮긴거지요. 그리고 단지 사실적인 정보를 알려드렸을 뿐인데 그거 가지고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를 가르는 것은 쓸데없는 논쟁만 일으키는 행위라고 보여집니다. 순수한 토론을 위해서는 삼가해야될 생각이지요. 님이 쓰신 글은 길어서 대충 읽어보았습니다만, 굳이 사족달고 논쟁하고 싶지 않아서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