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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주교의 묘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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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보 (125.♡.91.239) 댓글 3건 조회 6,520회 작성일 09-06-26 14:57

본문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지하묘지에 묻힌
어느 주교의 묘비에 적혀있는 글이라 한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아,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 누운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중에서 ( 잭 캔필드 )

댓글목록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124.♡.198.41) 작성일

2년 전 쯤에 이곳 게시판에 올려진 글이군요.
이런 글 하나 하나가 자칫 오용되면 함정에 빠지게할 빌미를 줄 수 있음을 거론하고 싶습니다.

우선 저런 부류의 글들이 사회적으로 작용되는 방식을 제대로 간파해야합니다.
'사회구조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세력을 잠재우고 방해하기 위해서 '종교적 교리'가 어떤 식으로
변화되어 왔는지를 살필 역사적 소양이 된다면 위의 글의 의미는 조금 다른 식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 교리가 어떤 식으로 정치권력자들에 의해서 '무실천의 종교'로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는
과거로부터 수 많은 자료에 의해 고증된 터다.

저 글은 주교 당사자가 한 말이 아님에도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된 것일 수도 있고,
주교 당사자가 했던 말이더라도 그가 모든 문제를 지극히 '개인의 문제로만 환원'하는 이였을 수도 있고, 
혹은 지극히 무능했기에 아무런 사회변화는 물론이거니와 공동체의 변화도 못 이끈 주교가 쓴 글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개인적 성찰과 변화의 노력' 자체를 폄하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거꾸로 들여다봅시다.
세상에 한일이 별로 없어 이름도 전해지지 않는 주교가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마음의 안식을 전해준 널리 알려진 교황이 있습니다.
그 교황은 세계를 조금이라도 평안하게 만들어내는데 일조함으로 사람들이 각자가
조금이라도 자신의 영적인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입니다.
그는 우리가 세상을 위해서 할 일이 많음을 강조했고, 그 자신이 그러한 길을 평생 살았지요.

철저히 '주관적' 관점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면 '내가 세상에서 한일의 의미'가 표면적으로만 의미화되어집니다.
하지만 각각의 '주관이 맞물려있는 대아적 세계(공의 세계)적 관점'은 내가 올바로 세계에 작용하는 만큼 세상의 깨침을 증대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물론 자기 자신의 성찰없는 상황에서 아무런 깨달음 없이 세상을 위해서 나서는 것은 위험합니다.
하지만, '완벽한 성찰' 이후로 세상에 나설 것을 기대하는 것 역시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 자체가 자연과 사회의 자원과 기회를 앗아가고
상대적인 결핍과 상실을 불러일으키는 것인데, 이에 대한 마땅한 사회적 보답을 치루려 하지 않고
'나'의 세계에만 갖혀 있는 것은 자연과 사회에 대한 큰 해악이기 때문입니다.

-------------------

저도 다만 '의식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지고 있기 때문에 드릴 수 있는 말씀이지만,
저런 부류의 글은 근본적으로 '자기편리적 사고' '자기 지향' '무의식적 욕구' '자기애'를 공고히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저 글 자체의 작용이 아니라, 저 글을 대한 사람의 내면에서 이뤄지는 작용입니다.
하여 '스스로를 들여다봐야한다'는 말은 '세상의 문제에 관심은 뒷전의 문제다'라고 이해해야할 그것이 아니라,
저런 글을 접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현실도피 성향을 추구하는 '관념적' '초월적 경향성'을 잘 들여다봐야한다는 의미여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현실'과 '이해'가 둘로 나뉘어질 필요도 없고,
'내 자신을 찾은 후에 세상의 문제에 나설 것이다'고 우선순위를 정할 일도 없으며,
번잡히 '도'운운하는 것을 찾아다니기 위해서 싸돌아다닐 일(혹은 공부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삶 속에 그것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권보님의 댓글

권보 아이피 (125.♡.91.239) 작성일

둥글이님의 댓글을 읽으며 흠씬 두들겨맞으면서도 깨치지 못하는 제가 참 부끄러워지고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복잡하고 얽히고 설킨 우주와 인간과 자연과 나........전 그런 복잡한 것 잘모릅니다.

그래서 어디 가서 '도'를 운운하지도 않거니와 찾아다니는 짓도 다 그만두었지요. 걍 지금 내 못난 모습 이대로를 인정하고, 그냥 뭐 세상을 어찌 해보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어치운지 오래지요. 그래서 뭔 우선순위 같은 것을 갖다 부치지도 않거니와 그냥 내키는대로 사는 저랍니다. ^^대신 그냥 조금 덜먹고, 조금 덜 쓰고, 조금 덜 입고, 조금 덜 버리고, 조금 덜 부러워하고, 조금 덜 돌아다니고........ 그게 다 입니다. 또 때론 담배꽁초 길거리에 버리기도 하고, 술처먹고 아무데나 토악질도 하고, 어둠침침한 골목길 담벼락에 소변을 갈겨대기도 하는 그런 저랍니다.

님의 바른 정신과 열성적인 도전에 찬사를 보내고 또한 격려를 보내며,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 부럽군요. 대신 한가지 부탁드린다면, 꼬부랑할머니가 당신의 한몸의 구원과 기복을 기도하는 정도의 신앙도 신앙임을 인정하여야 하듯이, 그냥 저처럼 구정물 한 바가지로 화분에 물주는 정도의 활동도 밥의 문제를 해결하는 작은 손길이라 이해해주시면 제가 덜 비참해지겠습니다.^^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124.♡.198.41) 작성일

오해의 말씀이십니다. 아마 그 부분에 큰 오해가 있는 듯 싶습니다.

저는 '제가 이렇게 잘하는데 여러분들은 왜 이렇게 않냐?'는 개인적 관점의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세상에 작용해야할 올바른 바에 대하여, 우리 각자가 해야할 바를 말할 따름입니다.
즉, '작용되어야할 올바른 세계상'을 그냥 서술한 따름입니다.
그게 진실된 것인지 아닌 것인지는 알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는 단지 '이론'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지요.
다만 그러한 노력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좀더 확고한 세계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죠.

권보님은 그냥 조금 덜먹고, 조금 덜 쓰고, 조금 덜 입고, 조금 덜 버리고, 조금 덜 부러워하고, 조금 덜 돌아다니고........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자체가 세상에 큰 작용을 하는 활동입니다.
제가 주장하는 필요한 활동은 그런 활동들입니다.
충분히 잘 하고 계십니다.
나서서 싸우고 투쟁하라고 제가 말씀드린 바가 아닙니다.
가정을 버리고 돌아다니면서 환경운동하라고 드린 말씀 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에서 발생합니다.
만약 권보님이 그 말씀 뒤에 이런 이야기를 덧붙였다고 해보십시요.

하지만... 그러한 활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라고 말이죠.
이렇게 되면 권보님이 세상에 이뤄낸 앞서의 긍정적인 작용들은 상쇄되어 버립니다.
즉  '그런 활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는 말들은, 그 생각을 수렴한 다른 누군가가 '조금 덜 먹고, 덜 쓰고, 덜 버리고, 덜 부러워할 실질적 생활작용'을 할 '실천의 기회'를 앗아가버릴 빌미를 주기 때문이지요.

다시 요약해 말하자면 '본인은 세상을 위한 실천활동을 잘하고 있으면서'도 실천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고 공표함으로서, '다른 사람의 실천의 가능성'을 빼앗음으로 세상이 결과적으로 암울히 변할 계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다만 저는 여지껏  '현실과 마음의 이원화', '마음의 문제만을 추구하는 관념성', '극단적 이상주의'의 함정을 문제삼아왔을 따름입니다. 권보님이 저때문에 상실감을 느끼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 

즉 저는 '밥의 문제를 해결하는 손길의 규모의 문제'를 거론한 것이 아니라, '법의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 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대신 마음의 문제에만 절대적 중요성을 두는 이들'의 문제를 거론해 왔던 것입니다.

따라서, 권보님이 스스로 말씀하시는 바의  '밥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작은 손길'은 그 규모의 문제를 떠나 참으로 소중한 것이지요. 그래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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