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 바라보기, 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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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실개천 (220.♡.55.187) 댓글 1건 조회 8,906회 작성일 11-09-03 20:14본문
요즘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나를 바라본다는 것이 나에게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두는 ‘관찰자와 관찰대상은 하나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누구는 ‘관찰을 할 수 없다’는 말도 합니다.
여기서 생각을 더 해봅니다.
‘
관찰은 할 수 없다’는 말은 슬며시 옆으로 옮겨놓고,
‘관찰자와 관찰대상은 하나다’라는 말을 생각해 보면
‘관찰자와 관찰대상이 하나다’라는 말은 저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왜? 하나가 하나를 관찰할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오! 이런
‘관찰은 할 수 없다’라는 말도 분명히 맞는 것 같단 말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관찰하면 분리로 진행하는 것이 분명하단 말이지요
이원성이지요
‘자아’가 아주 치밀히 자기를 방어하지만
그 방어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이기에
자기가 자기를 관찰하여 진리에 근접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관찰이 가능한 것이지요
결국 ‘자아’는 자기를 살리기를 원하는 것일 겁니다.
관찰은 따뜻한 눈으로 할 때 관찰의 효용이 제대로 발휘되는 것 같습니다
한약을 달이듯이 정성을 들여...
(사랑하는 이를 살리기 위한 지극한 마음으로 한약을 달이는 그림을 그려봅니다^)
댓글목록
서정만님의 댓글
서정만 아이피 (221.♡.67.204) 작성일
저도 이게 정말 궁금했었는데....저도 이원성에 대해 많이 들어서 머리속에있는나가 올라오는감정을 보면 둘이니깐
안되!!이건 이원성이야!!이렇게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되요~처음엔 내가 지켜보고
내가 감정을 내맡긴다고 생각하다가 점점 내가 한다는 생각이 줄어드는것같아요~관찰도 처음엔 내가 내몸을 보긴하지만
'내가 의지를 발현해서 보자' 하기전에 이미 관찰 자체가 있다는걸 점점 배워가는것같아요..
내 의지에 의해서 관찰자체가 자유롭게 되지않는다고 생각해요...내가 관찰하자..하지말자해도 이미 주어진거니깐요..
그래서 전 '아~내 맘대로 안되는구나'하고 구속되었다고 생각했는데...이미주어진것이라... 다르게보면 축복이라고
생각해요..제 생각엔 한번에 관찰자가 사라진 하나가 되려고 하기보다는 처음엔 이원성이라고해도 그것을 있는그대로
살아내면 나중에 배울건 저절로 배워지는것같아요...'머리에 있는나'가 나의감정을 지켜보면 안되!!이원성이야!!이러면
오히려 더 악순환에 빠지는것같아요..지금보고있는 방식을 살아내는게 고통이 덜한것같아요~물론 그렇게 안해두
되지만 그러면 더 힘들더라구요...'지켜보는놈'이 사라져야 깨달음이야!!이렇게 생각하구 오랬동안 힘들어 했던
생각이나요..지금도 '머리속에 있는 관찰자'가 사라지진 않았지만 그게 사라지길 바라는마음을 조금씩 포기하니
점점 괜찮아 지는것같아요...
태클걸려는건 아니구...저두 매우궁금했더거라..그냥 글적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