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이 공부의 끝을내주마 ..-2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공자 (211.♡.79.38) 댓글 3건 조회 6,851회 작성일 09-11-11 23:47

본문

[작성자 : 지금여기]
훌륭한 양반일세
역쉬 글은 이렇게 힘차고 시원시원하게 써야되...^^
--------------------------------------------------------------------------------

Free as the wind -

물속에서 물을 찾네
당신은 깨닫고 싶어한다.
당신은 붓다가 되고 싶어한다.
당신은 이 모든 삶의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어한다..
그래서 이런 저런 영성 서적을 뒤적이고
오늘도 이런저런 인터넷 명상 사이트를 유람하며
또 이런저런 명상수행 모임이나 세미나에 참석하기도한다...
화두를 붙잡기도하고
염불을 하기도 하고
사마타 수행을 하기도하며
마음과 감정을 버리는 행법을 하기도하며,
관상법이나 알아차림을 지속하는 수행을 하기도한다.
심지어 자신을 심상으로 죽여버리는 극단적 방법을 택하기도한다.
그래서 얻고 싶다.
깨달음을
부처를
본성을
공을
도를
참나를
절대를 .....
건성건성 수행이니 명상이니를 해보기도 하고
선원에 들어가 오후불식하며 제법 치열하게 해보기도 하고
때로는 용맹정진으로 장좌불와의 고통 속에서
붙잡은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한다.
세월이 흐르고 또 흐르고
다다를 것같은 그 목적지는 아득하기만 하고
여전히 행하는 수행에는 진전이 없다...
얼마나 더 이런 수행같은 걸 해나가야할 지 답답하기도하다.
이렇게 살다가 이생이 끝나지나 않을까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하고,
모든걸 다 때려치고 그냥 막 살아버리고 싶은 맘이 들기도한다..
그러다가 또 날이 밝고 눈을 뜨면
화두를 잡고
행선을 하고
염불을 하며
니미타에 집중하고
알아차림을 부여 잡으며,
심지어 심상의 자신과 세상을 죽이며 또 죽인다.
산사에서
명상센터에서
시민 선방에서
홀로된 토굴에서
또 각각의 처소에서
그리고 각자 생업의 터전에서,
얼마나 많은 구도자들이 이렇게 나날을 보내는 것일까....
이런 것이 비단 이 나라 뿐이랴...
인도에서 네팔에서
티벳에서 중국에서
미얀마에서 태국에서
미국 캐나다 호주 온 유럽 대륙...
어디인들 사람이 사는 곳이면 이런 일이 없을소냐.
누천년 누만년 사람의 역사이래
수많은 현자, 진인, 마하트마들이 이땅에 생멸하면서
수많은 깨달음법 수행법이 전수되어 왔건만
그 전수받은 수많은 사람들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들의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을까..
그러고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바를 또 성취할 수 있으려나.
오늘도 마치
행여 괜찬은 얘기꺼리라도 있나
혹시 눈에 쏘옥 들어오는 쓸만한 말이라도 있나~`
여기저기 인터넷의 처처를 기웃거리는 당신은 또 진정 무엇을 바라며
무엇을 위해 이리 수고로운 발길을 옮긴 중인가,
자, 이제
동서고금의 이 부질없는 유희의 의미를 한번 짚어나 보자.
우선
누가 이 수행이니 명상이니 하는 것을 하고 있으며
누가 이 수행이나 명상의 과실인 부처나 깨달음을 원하고 있는가?
당신은 당연히 당신이
당신의 의지로 하고 있으며
당신이 이러한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된다
또는 본성과 합일한다, 절대자가 된다,
진아로 된다,..등등으로 가상할 것이다.
무엇보다 여기에 근원적 오류가 있다.
아마 당신이 이리 생각한 데에는 영성서적이나 스승들의 영향이
결코 적지 않았으리라만은,
폐일언하고,
당신은 절대로 스스로의 의지로 깨달음을 얻거나 부처가 되거나
절대자가 되는 등의 행위를 할 수 없다.
즉, 당신은 자유 의지를 가진 독립된 개체가 아니며,
자신의 의지로 무엇이 되거나 하는 것은 불가하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하면,
당신은 스스로 원하는 바를 스스로의 의지로 행하고 이루어 낼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진 개별적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당신에겐 어떤 일을 해나가야 할 아무런 결정권도
행위를 하고 진행하는 행위권도 없으며
미리 계확하고 추측하고 예단하며 즐거이 상상할 그러한 능력마저도
일체 없으며,
심지어 한번의 늘숨 날숨,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눈망울의 움직임이나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조차도
당신이 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그런 당신이
하루종일 좌선과 행선을 반복하며
잠잘때도 그 알아차림을 이어가야 하는 그런 수행의 연속을 당신이
하는 것이 아님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당신이 행하는 수행이 아닌데
그 수행을 통해 당신이 무엇을 얻는다든가
이룬다는 것은 더더구나 말이 안되지 않는가.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지금 당신은
당신의 행위 그 모두를 당신이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에
즉, 당신이 생각과 모든 행위의 주체(Subject)로 착각하고 있기에
마치 당신이 수행이란 행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이다.
수행뿐 아니라 그 모든 행위를 다 당신이 행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것이 모든 문제의 시발이며 근원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이란 주체가 아니다..!!
당신은 객체(object)에 불과하며,
객체란 대상화된 사물이며 피동적인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이란 존재는
의식내에 투영된 현상계의 지극히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며
손을 가지고 지성을 사용 할 줄 아는 인간이라는 한 유기체에
다름아닌 것이다.
그 유기체는 어느날 돌연 생겨났다가 잠시 반짝였다가
휘이익~~사라지는 유한한 존재일 뿐이 아닌가.
당신을 인식해 주는 존재의 대상물이면서
그 존재가 인식해 주지 않을 때는 그에겐 존재 조차 아니다.
그 대상화된 당신은 결코 스스로 행위할 수 있는 주체, 주관이 될 수는 없으며,
이 현상계의 일부분인 당신은 객관으로서만 존재하는 할 뿐이라
거기에 주관으로서 독립되고 자유의지를 가진 행위자가 되는 것은
애초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러면 왜 이런 착각이 생겨났는가.
이것이야 말로 근본마야의 유희이며,
놀음이며, 인생이란 무대가 펼쳐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절대적 존재이자 유일한 주체(Subject)인
진아가 아무런 이유없이 '내가 있다(I Am)'는 존재감을 느끼고
스스로 존재함을 알게 되자 이 현상계가 생겨난다.
이 '내가 있다'는 존재감은 스스로를 인식할 의지처를 찾아야 하고
이때 하나의 몸과 마음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 들이면서
여기에,
내가 한다는 착각-즉, 가상의 주체감(pseudo-subjectivity)이 생기게되며,
이를 통해 세상은 '나'를 통해 인식되어지고 존재하게되며
'나' 와 '그외의 다른 것들'로 이원화 되어진다.
그리하여 인생이란 파란만장 드라마는 막이 오른다.
이 가상의 주체감, 에고는
자신이 의지하는 몸과 마음의 자연발생적 행위를 자신의 것으로 부여잡고
그의 것으로 만들고 그 행위의 모든 책임과 고통을 스스로의 것으로 덮어쓴다.
그리하여
그 몸과 마음의 자연적이고 자발적인 행위인 수행이란 행위를
자신이 하는 것으로 착각하며,
수행이 지지부진한 것 또한 자연적인 흐름임에도
자신이 더뎌하는 것으로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며,
수행의 더딤을 괴로워하는 자발적 현상을
자신의 괴로움으로 덮어쓰며 그 괴로움을 떠안는다.
그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행위 느낌 감정 표현도
다 자연스런 현상임에도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가상의 행위자는,
그 몸을 통해 일어나는 수행이나 명상이란 행위또한
자발적인 현상임에도 그것을 자신의 행위로 치부하고
스스로를 독립된 행위자로 당연히 착각한다.
당신이 독립된 행위자로서 수행이란 행위를 통해 깨달음을 이루려는
노력이 처음부터 잘못된 환상이라면,
이 모든 행위를 누가 하는 것이며,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하여 깨달음의 길로 가야 한단 말인가.
모든 존재의 움직임 행위는 자연적이며, 자발적인 것이며,
이는 유일한 실재인 진아의 표현되어진 움직임일 뿐인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진아이다....
진아만이 유일한 참된 존재이며,
이 진아의 반영됨이 현상계이다...
즉, 당신의 몸을 통하여 비추어지고
당신의 다섯가지 감각기관과 인식기관을 통하여
알아차려 지게 되는 이 현상계는
바로 당신에게 드러난 진아의 모습이다.
하지만 비추어진 모습이기에,
실재하는 것은 아니며,
그 몸이 사라지면 그 비춰진 모습도 사라진다.
거울앞에 서면 당신의 모습이 거울에 비춰지지만
거울안의 당신 모습이 당신의 진짜 모습은 아닌 것 처럼,
당신이 거울을 깨부시거나 거울에 온통 페인트칠을 하면
당신 모습이 더이상 보여지지 않듯이.
거울안의 당신 모습처럼 당신이 인식하는 현상계도
바로 당신에게 드러난 진아의 모습이다.
유일한 실재인 진아가 당신을 통해 그 이미지를 현상계로 드러낸 것이며
그러니 그 현상계 일체가 바로 진아의 모습이다.
그대에게 인식되는 색성향미촉법 일체가
즉,
사람들과 동물과 식물, 산야와 하늘,별 온 우주 일체가,
바람소리 파도소리, 새소리, 벌레소리, 불타는 소리....그 모든 소리가,
꽃향기, 거름냄새, 오물냄새, 시체섞는 냄새..그 모든 냄새가,
향긋하고 달콤한 음식이나 짜릿한 독주의 맛, 그 모든 미각들이,
만져지고 느껴지고,
기억되고 상상되며, 감상되는 모든 촉감과 상념들이,
보이고 들리고 생각나는 등등 그 모든 것이 바로
진아의 모습이다....
그러니
당신이라고 생각되어진 그 당신또한
이미 진아의 그 숱한 모습중에 일부가 아닌가.
당신은 이미 진아로서 움직이고 행위하며 고뇌하고 있지 않은가.
보여지고 들리고 느껴지는 일체가 다 진아인데
거기에 유독 당신만 진아에서 제외 될 수가 있는가.
가능한가..?
옛사람들은 말하였다.
구도자들이란 물속에서 물을 찾는 물고기와 같다고.
모든 것이 금으로 만들어진 금산(金山)에는
나무며 바위며 골짜기며 산꼭대기의 작은 돌맹이 하나도
다 금아닌 것이 없으니 전체가 금일 뿐이다.
그와 같은 이치로
비추어진 일체 현상계가 바로 다 진아이므로
당신또한 진아임엔 틀림이 없다.
그리하다면,
이미 진아인 당신이
무슨 연유로 수행을 하고
무슨 목적하에 명상을 하며
또 염불을 하여서
원래 진아외의 또 다른 진아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며
괴로움을 겪어야하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첫째,
당신은 자유의지를 가진 독립된 주체가 아니므로
수행이란 것을 스스로의 의지로 할 수도 없으며,
당신이 수행한다는 자체가 잘못되었다.
둘째,
설사 당신이 독자적 의지를 가진 독립된 존재라고 치더라도
당신은 이미 진아이므로
아니 이 현상계에 진아 아닌 것이 하나도 없으므로
진아가 되기위한 노력 즉 수행 자체가 필요없단 말씀이다.
이런 확실히 그럴싸한 사유로 인하여
당신의 그 가상하기는 하나 치열했던 그 수행의 노력은
다 헛된 것이며 무용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하겠다.
당신은 마치 집에 이미 있던 파랑새를 찾으러
온 산을 헤메이고 온 나라를 떠돌다 지쳐 집으로 돌아온 나그네처럼,
이미 물속을 노닐며 물이 주는 부드럽고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물속의 공기로 호흡하면서 매순간을 살아가는 물고기가
'나에게 물을 다오, 난 물이 필요해' 하는 것처럼
그런 어리석은 헛발질을 하고 있지 않는가 말이지.
이쯤해서 다시 원래의 문제를 되씹어 보자.
그럼
당신은 왜
어째서
이런 구도자로의 길을 가는 것일까.
왜 부처가 되고 진아가 되고 하는 그런 것에 목마른 것일까.
왜 당신의 삶은 그런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게 되는 것인가.
무슨 연유로
남들이 승진하고 출세하는데 애쓰고
남들이 교외 나들이나 술마시고 유흥에 즐거워할 때,
당신은 주말이면 선원을 찾아 위빠사나에 정진하고,
선지식의 법문을 들으려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것인가.
당신이 느끼는 구도에의 열정,
깨달음을 향한 애달픔,
떨칠 수없는 삶에서의 강렬한 영적인 쏠림..
이런 것들은 무얼까.
존재하는 모든 것이 진아이며,
오직 진아만이 실재한다고 말할 때,
금산의 모든 것이 금이면 풀한포기도 다 금이듯이,
모든 존재가 다 진아이니,
당신도 모든 현상계의 그 어떤 존재도 다 진아이니,
당신이 하는 그 모든 것도 다 진아가 하는 것이고,
다른 모든 존재들 또한 그 모든 행위들이 다 진아가 하는 것이라.
그러면
당신의 그 구도에의 열정이나 깨달음을 향한 열망,
진아와의 합일을 이루고저 하는 그 깊은 신실함마저도
다 진아가 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그외 다른 누가 할 사람이, 할 다른 자가 있는가?
그 수행이니 명상이니를 통해서 부처를 이뤄야지 하는 그 발심 자체가
바로 그 부처(진아)에게서 나올 수 밖에 없지 않는가,
결국
그 진아가 스스로 당신이란 존재를 통해서 그러한 발심을 내고
그러한 수행의 행위를 해오고 있는 것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눈치빠른 당신은 이미 알아차렸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의 수행에는 목적이 없다.
그 과정 그 행위 이 자체가 매순간순간 진아가 이루고저하는 전부이다.
그렇지 않는가.
진아가 다시 수행을 통해 진아를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진아이므로 그냥 그러한 행위를 매찰나찰나 하는 것뿐이다.
당신이란 그 존재를 통해서.
당신이 이러한 설명에 깊은 이해로 맞이한다면,
당신은 알게되리라.
아하,
그러고보니 '나'라는 것은 원래 없는거로구나~`하는 것을.
'나'는,
그 어떤 생각도 아니하고-다 진아가한다.
그 어떤 행동도 아니하고-다 진아가 한다.
그 어떤 의지도 없으니-다 진아의 의지다.
문득 그럼 '나'란 것이 없네..?
아예 존재치도 않는 것이구나..?
뭐야~~이거 뭔가 텅 비네..?
하이고~~여지껏 이 몸, 이 마음이 '나'인줄 알고 살아왔는데
그 '나'가 없는 것이었네..?
이런 굳건한 이해가 불현듯 용솟음 치게 될 것이다.
이때 당신은 진짜 당신으로 활연히 드러난다.
그 당신도 이미 늘 당신보다 더 가까이 존재해왔으나
단지 당신이 아지 못했을 따름인 진짜 당신이다.
-신은 나자신보다 더 가까이 있다.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다. I am that I Am.(워낙 유명한 말이라 잘알껄..?)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이러한 성경귀절이 바로 그러할 때 즉시 이해된다.
그러므로
당신이 해야할 참된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이해하라.
아니 당신은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객체란 것을 명심하라.
객체가 무엇이 되어야 할 노력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깊히 헤아려
그 객체의 가상의 노력을 포기하라.
그 당신이란 바로
<가상>의 주체감이라는 허상이며 착각이며
주인대신 들어 앉은 주인의 그림자에 불과하여,
주인이 확실히 집을 들어설 때 흔적없이 사라질 터이다.
다시금 반복하노라.
모든 것은 진아가 하고 있다.
그 모든 것을 하는 것은 오직 진아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당신이 한다고 생각되는 그 모든 것을
'이 모든 것을 하는 것은 오직 진아이며, 진아가 다 한다'고 굳게 믿고
일체를 진아에게 맡겨라.
이것이 참된 헌신(Bhakti)의 길이다.
참나를 찾고 처절한 수행을 하는 자들도 종국에는 그들의 수행이 깊어질수록
그 모든 것을 하는 것이 진아임을 알고 진아에 헌신할 수 밖에 없다.
수행을 통해 진아로 이른다는 그 목적을 가진 가상의 행위자가 있는한
그 수행은 결코 완성되지 못한다.
그 수행은 그 행위자가 사라져야만이 끝나는 여정이므로,
당신의 모든 것을 하는 것이 진아임을 알고 모든 것을 진아에 다 던지라.
당신을 구도의 구렁텅이에서 헤메이게 하시는 것도 진아이며,
당신을 거기에서 해방시키는 것도 진아이다.
나게한 것도 진아이며, 시작한것도 진아이니,
죽게할 것도 진아이고 끝맺는 것도 진아이다.
까짓거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이런 맘으로 당신이란 가상의 주체자 일체를 포기하라.
그 어떤 원망도 기대도 하지말고,
좌절이 와도 아, 이 좌절도 진아가 하는 것이로구나~~하고
그의 행위로 돌리라.
당신이 그 모든 것을 진아가 하는 것임을 확연히 이해하고
그 모든 것을 진아의 행위로 받아들일 때
당신이 당신이라 생각했던 그 자는 홀연
실체없는 그림자였음을 알게 되리라.
그러면 당신은 그때야 비로소
크으~~~
이 모든걸 내가 하면서
내가 헤메이고
내가 죽쑤며
내가 뒹군 나의 원맨쇼였구먼~~
하고 미친사람처럼 혼자서 킬킬거릴 것이다...
그러면 당신에겐 그 모든 것이 다 당신이며
그 모든 것이 바로 하나임을 결코 잊어버릴 수 없으리라.
그러므로 모두가 하나다

댓글목록

길엄는길님의 댓글

길엄는길 아이피 (118.♡.150.13) 작성일

진아던 본래면목이던 주인공이던 이름은  이름일뿐...
어떠한 이론이던 어떠한 이름이던 옭던 그르던 틀렸던 맞던 빠르던 드디던...
모든것은 마음이 하는 일이라...
마음이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해 나가냐에 달려 있지 이게 맞니 저게 맞니 등은...
하등 중요한 일이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윗글은 십우도 중에서 득우에 해당되나 득우가 되었다해서 목우를 안하면 ...
증상만인으로 변하여...
그야말로 도로아미타불이 되기 쉽상일까 합니다.^^

사자의산책님의 댓글

사자의산책 아이피 (124.♡.17.2) 작성일

감사드립니다.
님의 가르침을 방편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사실, 내용은 일단 뒷전입니다.

언제나 먼저 그 의도를 보고자 합니다.
그 동기의 가장 밑바닥,
그 목적의 목적을 보고자 합니다.

이 모든 앎을 <眞我>가 직접 알려줬나요?
아니면, 배움과 경험을 통해 지력이 터득한 것인가요?

<眞我>가 있고
<眞我>에 모든 것을 맡기려는 <我>가 있다면
<我>는 이미 <眞我>를 떠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맡겨봐야 소용없다.
맡겨지지 않는다.
맡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맡긴다는 것 자체가 맡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眞我>는 없다.  라고요......

맡기려는 그 의도를 포기하는 것이 진정한 맡김으로 이해하겠습니다.
맡김조차 포기하는 것을 맡김으로 이해하겠습니다.

만에 하나 혹여라도
<眞我>를 빌어
<我>의 평안을 구하려는 의도가 아니기를 소망해봅니다.

방편으로 이해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白牛님의 댓글

白牛 아이피 (112.♡.175.96) 작성일

맡긴다 하고 내녀놓는다 하고 그냥 놓는다 하고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과연 眞我는 정말 무엇이고 진아의 마음상태하고 我 의 마음상태는 어떻게 다를까요?

Total 6,239건 133 페이지
자유게시판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2939 일념집중 5592 09-12-07
2938 공유 5763 09-12-05
2937 鶴田 5276 09-12-03
2936 데끼 5685 09-11-30
2935 대원 14089 09-11-30
2934 데끼 5995 09-11-30
2933 공자 16891 09-11-30
2932 둥글이 8131 09-11-28
2931 공자 8552 09-11-27
2930 공유 6073 09-11-24
2929 김영대 15545 09-11-23
2928 둥글이 6582 09-11-23
2927 공자 6522 09-11-23
2926 공자 16429 09-11-23
2925 돌담 13409 09-11-22
2924 공자 6575 09-11-21
2923 ahffk 13587 09-11-19
2922 공자 6651 09-11-18
2921 아리랑 8074 09-11-18
2920 김경태 5492 09-11-17
2919 공자 6696 09-11-14
열람중 공자 6852 09-11-11
2917 공유 7844 09-11-11
2916 공자 18126 09-11-10
2915 공자 6415 09-11-09
게시물 검색
 
 

회원로그인

접속자집계

오늘
5,372
어제
13,988
최대
18,354
전체
5,911,121

Copyright © 2006~2018 BE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