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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수행법(명상)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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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공유 (110.♡.85.230) 댓글 4건 조회 6,072회 작성일 09-11-24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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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선원, 2002년 여름 수원에서 여러 대중들과 주고받은 질의 응답 中)

제3수행법이 요즘 크게 붐을 일으키고 있어서 한번 그런 곳에 가봤어요. 방을 하나 주고 그 안에 들어가서 '나는 죽었다.'라고 계속 암시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한번 보는 거예요. 내가 죽었다는 입장에서 세상을 보니까 미련도 없고, 집착도 없고, 홀가분한 거예요. 굉장히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고, 거긴 일주일 만에 깨친다고 그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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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거기 갔다 온 사람 여럿 만나보았습니다. (웃음)

불자(佛子)들이 그런 데 속지 말아야 하는데...

- 그게 아까 말했던 심리적 위안입니다. 자기 최면을 걸어서 심리적으로 위안시키는 거예요.

효과는 굉장히 좋던데요. 병도 낫고...

- 당장 효과가 나타나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자기 최면은 위선이거든요? 나중에 정법 앞에서는 힘을 못 씁니다.

마조어록中

* [ ~ ] 사이에 쓰여진 글은 김태완 선생님의 주해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어떤 중이 물었다.

“도 닦는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마조가 답했다.

“도는 닦는 것에 속하지 않는다. 만약 닦아서 얻는다고 한다면, 닦아서 이루어지는 것은 다시 부서지니 곧 성문[소승의 수행자를 가리키는 말로써 수행과 깨달음을 분별하여 세워 놓고, 깨달음을 향한 수행을 의도적으로 실천해 가기 때문에, 무엇을 성취하는 일이 있다고 하여도 부자연스런 분별조작의 결과물이 되어서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오게 된다.]과 같으며, 만약 닦지 않는다고 한다면, 곧 범부[애초에 깨달음과 공부에 대하여 아무 관심도 없이 습관적으로 분별의 세계를 살아간다.]와 같다.”

그 중이 다시 물었다.

“어떤 견해를 지어야 도에 통달할 수 있습니까?”

“자성(自性)은 본래부터 완전하여 모자람이 없다.

그러므로 다만 선(善)이니 악(惡)이니 하는 일에 막히지 않기만 하면 도(道) 닦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

선(善)에 머물고 악(惡)을 제거하며, 공(空)을 관(觀)하고 선정(禪定)에 들어가는 등은 곧 조작(造作)에 속한다.

다시 밖으로 치달려 구한다면 더욱더 멀어질 뿐이다.

그러므로 다만 삼계(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의식세계)를 헤아리는 마음이 없도록만 하여라.

한 생각 망녕된 마음이 곧 삼계(三界)에서 나고 죽는 바탕이 되니, 다만 한 생각만 없다면 곧 생사(生死)의 근본(根本)을 없애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법왕(法王)의 위 없는 보물을 얻는 것이다.

[견해를 내어서는 도에 통달할 수가 없다. 견해는 분별심으로 헤아리는 것일 뿐이다. 마음을 관찰하면 도에 통달할 수가 없다. 관찰하게 되면 이미 마음이 헤아려 경계를 만들어 낸 것이다. 선정에 들어가면 도에 통달할 수가 없다. 들어가고 나오는 것은 이미 마음이 헤아려 나타난 경계일 뿐이다. 마음에는 어떤 경계도 없다. 그러므로 헤아려 나타나는 경계는 모두 망상이다. 헤아리는 마음은 어떻게 없어질까? 헤아리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고 헤아리지 말라. 헤아려도 망상이고, 헤아리지 않아도 망상이다. 어떻게 손을 써야 할까? 발을 뗄 수 없고 손을 쓸 수 없는 곳에서, 문득 통해야 하리라.]

그러므로 성문(聲聞)은 깨달은 듯하지만 도리어 미혹(迷惑)하게 되고, 범부(凡夫)는 미혹함 속에서 깨닫게 된다.

성문(聲聞)은, 성인(聖人)의 마음에는 본래 지위(地位)ㆍ인과(因果)ㆍ계급(階級)이 없다는 것을 모르고, 마음으로 헤아리고 망상(妄想)을 지어서 인(因)을 닦아 과(果)를 증득(證得)하려 한다.

텅빈 선정[空定]에 머물러 수만 겁(劫)을 지나 비록 깨닫는다고 하여도 깨닫고나서 도리어 미혹(迷惑)해진다.

모든 보살(菩薩)이 성문(聲聞)을 마치 지옥의 고통과 같이 보는 것은, 성문이 이처럼 공적(空寂)에 빠지고 막혀서 불성(佛性)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댓글목록

ahffk님의 댓글

ahffk 아이피 (112.♡.175.96) 작성일

잘 읽었습니다.
근데 혹 공유님은 머리가 곱슬 머리고 안경을 착용한 분이 아닌지요?^^
아님 말고요~ㅋ

공유님의 댓글

공유 아이피 (110.♡.85.230) 작성일

아닙니다. ^^

사자의산책님의 댓글

사자의산책 아이피 (124.♡.17.2) 작성일

덧붙여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자에게 사자되는 수행이란 필요 없겠지요.
왜냐하면 이미 사자니까요.

이미 그것(결과)인 것을
어떤 과정을 덧붙여
다시 그 결과를 얻겠다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런 모순입니다.

사자가, 죽어라 사자되는 수행을 해서
마침내 스스로 나는 사자가 되었다 라고 여긴다면
이는 자기가 정작 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쓸데없이 사자라는 상을 자기 위에 덧씌운 꼴이겠지요.
이것은 여전히 자신이 사자임을 의심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고로 이것은 진실한 자각이 아니지요.
그래서 그것은 의식의 조작이며 일종의 최면과 같다고 한 것입니다.

그 동안 자기가 사자임을 몰랐고
따라서 사자의 행위와 사자의 소리를 잊었었다면
무엇보다 자신이 사자임을 자각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일일 것입니다.
자신을 아는 이토록 단순한 것에 대한 자각,
이것이야말로
가장 절실한 요구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사자임을 진실로 자각함으로 인해
자연히 사자의 걸음걸이와 사자의 눈빛을, 그 소리를,
사자의 본성을 되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사자임을 진실로 자각했다면
사자의 행위와 사자의 소리를 되찾기는 쉬워질 것입니다.
스스로를 의심하지만 않는다면
스스로가 하는 행동이 곧 사자의 행동일 것이며
자기가 내는 소리는 사자의 소리일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도 오랫동안 사자임을 잊고 살았기 때문에
그 습관을 하루아침에 다 고치기는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
개인에 따라 그 차이도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사자임을 알건 모르건 사자라는 그 근본적 지위에 있어서는
모두가 동등하고 평등합니다.
깨달음에 차등이 있을 리 없습니다.
한 번 깨달음으로 자신이 사자임을 아는 일에 높낮이가 있을 리 없지요.
모두가 사자라는 근본사실에 있어서 하나입니다.
따라서 그에 대한 깨달음도 하나입니다.
알고 모르고의 차이와 그에 따른 행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사자가 원숭이 소리를 내고 원숭이 짓을 하면
원숭이 소리 내고 원숭이 짓하는 사자겠지요.
사자가 개소리를 내고 개짓을 하면
개소리 내고 개짓하는 사자입니다.

왜 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본성에 어울리지 않는 원숭이짓이나 개짓을 따라하며
그에 따른 행위에 대해 후회하고 고통스러워하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자신이 누구인가를 의심하게 될까요?

그것은 바깥의 대상물을 진실한 실체로 여겨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며
그것과 자신을 동일시했기 때문이겠지요.
끊임없이 저 바깥의 대상들을 좇아다녔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정작 내면의 자신을 내팽개쳐 알지 못했고
모방만 일삼다가 스스로의 본성과 행을 잊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누구나 내면에서는 여전히 본성의 울림이 남아있어서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요.
그래서 마침내 자신의 모습을 되찾고자하는 본성의 울림이
나는 누구인가를 의심하게 만들지요.
그 의심의 씨앗으로 인해 알게 되기도 하고 모르기도 하고
그러겠지요...

깨달았다 하더라도
사람마다 오랜 습의 깊이가 달라서
그에 따라 사자의 행위를 드러내는 데는 개인적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수행이란, 즉 오후수행(悟後修行)이란 사자되는 수행이 아니라
사자의 행을 닦는 수행이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사자되는 수행이란 없습니다. 그런 수행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한 번 깨달음으로 자신임을 아는 것이지 다시 무엇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깊은 자각은, 즉 깨달음은
사자의 행을 되찾는 수행을 더욱 쉽게 해 줄 것입니다.

사자에게 다시 사자되는 수행은 없습니다.
모든 설법과 가르침은 곧 자신이 사자임을 알아라
하고 알려주는 가리킴이겠지요.
우리가 가르침에 귀를 기울일 때
어느 순간 자신의 본성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설법의 요긴함이지요.

나라는 자아(外)가 깨달음(體)을 세팅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體)이 그에 맞게
몸과 마음씀씀이(用)를 세팅해 간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ahffk님의 댓글

ahffk 아이피 (112.♡.175.96) 작성일

요긴하고 좋은말씀입니다.
모든것이 그렇게 한자리임을 진실로 믿는다면 있는 그대로가 佛 國 土 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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