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의 실상(윤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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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초심 (121.♡.102.49) 댓글 2건 조회 6,884회 작성일 11-09-14 20:40본문
<근원의 실상>
OO님의 '윤회'에 대한 글을 읽고 이와 관련하여 저의 사족을 달고자합니다.
사과나무를 비유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한 그루의 사과 나무가 있습니다. 여기에 수 많은 사과가 열매로 열려있습니다. 이 수많은 사과들 중에 하나를 '초심'이라고 하고, 또 하나는 '철수'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영희'라고 칩시다.
그 중에 정말로 삶이 힘들어 지쳐있던 초심에게 운이 좋게도 무명의 눈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무명의 눈이 열려 근원의 실상을 본 순간 초심은 <아니!! 이럴수가!!!>라는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왜냐하면 무명의 눈을 뜨고 보니 그동안 '사과'라는 개체의 '나'라고 알고 있던 '나'가 허구였던 것입니다.
'사과'라는 열매(개체)가 '나'가 아니라 모든 '사과'들이 사실은 '나무'라고 하는 하나의 생명(이것!=불성)의 현현인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말 그대로 '나'도 없고 '너'도 없을뿐만 아니라 온통 이것!(불성)뿐인 실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저는 '참나'로서의 천백억화신불의 현현이라고 표현합니다.
사과라는 하나의 열매가 열리는 것을 '생'이라고 하고, 그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사'라고 했을 때, 그 개체의 사과가 죽는 것이 과연 죽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지요? 비록 사과는 분리되어 죽음을 맞이 했지만 나무(이것!=불성)는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 잖아요?!^^
그러므로 <불생불멸이요, 상주불멸인 것입니다!>
또한 이 사과가 떨어져서 죽고난 자리에 이듬해에 또 다른 사과가 열렸을 때, 그렇다면 그 전에 죽고 사라진 자리에 새롭게 열린 사과는 그 전에 죽은 사과의 환생(윤회)일까요? 이 역시 아니지요?!^^
그러므로 <윤회 또한 없는 것입니다!>
제가 이해를 돕기위해서 사과나무를 비유로 들었지만, 범위를 넓혀 이 대우주를 하나의 나무라고 하고 그리고 '나'를 포함한 제법의 모든 것들을 <'우주 나무'의 열매>라고 가정하고 생각하시면 좀 더 명확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무에 열린 모든 것들은 개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나무'라고 하는 하나의 근원의 생명(이것!=불성)의 현현일뿐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초심은 번뇌에 쌓여서 괴로움에 젖어 있는 철수와 영희에게 말합니다.
이보게 친구!
지금 이순간 있는 그대로 완전하다네! 그러므로 지금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을 찾아 변화하려 하지 말게나. 오직 지금의 자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지금과 하나가 되어보게! 그러면 바로 존재의 실상을 보게될 것일세!! 라고 일러 주지요^^
OO님의 윤회에 대한 글은 진실을 아무런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서 말씀을 드립니다.
OO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도반님들이 공부를 하시는데 방향을 바로 잡아주기위함입니다.
즉 성능 좋고 멋드러진 내비게이션의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공부인의 입장에서는 생각의 차원에서 '있다'와 '없다'의 양 극단에서 '없다'로 받아들이시면 안됩니다.
다시 비유로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정신질환자의 경우에 있지도 않은 환상을 만들어서 그것을 보고는 공포에 사로잡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그 옆의 정상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원래 없는 것이라고...네가 망상으로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말을 해줍니다. 그러나 정신질환자의 경우는 그렇게 말하지 않읍니다.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오히려 반박을 합니다. 너는 지금 내가 정신병자로 보이냐고 오히려 더 큰 소리를 치지요.
중요한 것은 정상인이 볼때에는 분명히 정신질환자가 보고 있는 것은 원래 없는 헛것이기에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정신질환자는 분명히 보고 있고 그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럼 이것이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이와 같습니다. 정상인(존재의 실상을 깨달은 사람)은 분명히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환자는 반대로 분명히 보고 있습니다. 비록 환자가 없다고 하는 사실을 들어서 그 내용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 앎이 허상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스스로가 존재의 실상을 진실로 깨달아서 보기전에는 有와 無의 양변에 걸리지 않는 진정한 無事人은 절대로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가지 더 예로 들겠습니다.
우리가 자다가 꿈을 꿉니다. 악몽을 꾸고는 그 꿈속에서 시달리다가 놀라서 잠에서 깨어보니 그것이 꿈이었던 것을 알고는 안도의 숨을 쉽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렇다면 그 꿈이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그것을 없다고 단정지을 수 있나요? 꿈 속에선 있었던 것이 분명한 사실이잖아요? 그렇다고 그것이 또한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가 꿈이라는 사실을 알고 다시는 그런 꿈을 꾸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 꿈이 영원히 꾸어지지 않습니까? 오늘 밤에 나는 아무런 꿈도 꾸지말아야지 라고 생각하고 잠이든다고 해서 꿈이 꿔지지 않나요?
우리가 생각으로 그것(실상)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생각일뿐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을 드리고 싶으냐면, 우리가 실상에 대해서 들어서 알게 되고 또한 공부를 지어 나가다 보면 생각의 틀이 굳어져서 '앎'이라고 하는 하나의 '상'을 만들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 고착된 '상'으로서 자리하게 되면 진실로 깨닫지를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깨달았다고 하는 착각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자신이 깨달은 것처럼 오류를 범하게 되지요.
이 <앎의 상>이 얼마나 교묘한지를 다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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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이 '사과'라는 글을 읽으면 그 즉시 '사과'라는 '모양-상'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는 어떤 분은 먹고 싶은 마음에 군침을 흘리시는 분도 있으실거구요^^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에 글자를 배우지 않은 사람이 '사과'라는 글을 보았다고 그 사람이 '사과'라는 모양을 만들어 낼 수가 있나요?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가 그동안 배워서 익혀온 것들입니다.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것은 절대로 생각으로 표출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이라는 것은 사실은 '윤회'와 마찬가지로 그 실체가 없는 허상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 생각이 진실한 것으로 생각을 하여 근본무명인 '나'를 창조하여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렇듯이 <앎의 상>은 마음공부에 있어서도 참으로 교묘하여 앎의 술수에 빠져서 깨달음과 혼동을 일으킬 소지가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최근의 OO님의 실상에 대한 법문을 보고는 공부를 시작하는 도반여러분들이 혹시라도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이 없도록 노파심으로 글을 적었습니다.
공부를 함에 있어서 有/無의 단상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 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끝으로 화두를 하나 드립니다.
<非有非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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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허님의 댓글
만허 아이피 (118.♡.19.89) 작성일不二非一 _()_
부목님의 댓글
부목 아이피 (222.♡.202.67) 작성일
非有非無!!!>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