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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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정만♪ (49.♡.41.6) 댓글 0건 조회 8,264회 작성일 21-02-14 22:43본문
설연휴라 이틀정도 쉬게 되니 좋았다.
5인이상 어디 갈수 없어서 부모님이 동생이
설인데 설음식 갖다 준다고 전화가 왔다.
먹고 싶은게 없냐?묻길래 딱히 없었지만
귀찮은데도 음식해서 오는 그 마음이
고마워서 미역국 갖다달라고 했다.
동생 와이프가 손이 커서 엄청 많이 요리해서
갖다주길래 '왜 이리 많이 하셨냐?고 잘먹겠다고
고맙다고 했다.집에 대접할게 없었는데 잠깐
이야기 나누고 서로 헤어졌다.
언제 다 먹지?생각하니 양이 너무 많았다.
삶을 지탱하는건 거창한게 아니란 생각이ᆢ
요리를 보면 삶을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사랑, 언젠가 부터 음식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형태없는
사랑이 음식을 통해 표현되는구나
이해가 되었다.
형상없는 무한한 사랑의 빛이 형상으로
여러가지 형태로 표현된다는 이해가
점점 들었다.
오랫동안 절망감을 치루다 보니 몸이 걱정되어
3년만에 건강검진을 자진해서 받았다.
어릴적부터 병원을 좋아했고 지인들에게
병원은 고향같은곳이라 하면 다들 이상하게
여겼다.익숙한것도 있고 많은 도움과 보살핌을
받았기에 좋았다.병원비가 과도하게 나와
싸우고 병원비 안내고 버틴적도 있고
치료를 성의없이 하는듯 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론 인간의 고통을 같이 나누는곳이란
인식이 어릴적부터 있었다.
CT찍고 내시경 하니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해서 안심되었다.허리가 좀 아프고 혈변을
종종바서 췌장쪽에 문제있나?했는데
내치핵인건 같다 했다.
마취안하고 내시경 잘한다고 마취없이 계속하라고
하길래 '아픈데 참는거지'속으로 생각했다.
보호자 없으니 어쩔수없이 노마취로 하는데
썩 좋진않고 아팠다.
다 끝나고 앉아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의학의 형태로 알게 모르게 보살핌을 받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나처럼 절망적인 감정상태가
많은 사람들은 음식이던 의료적인 혜택을
못받는구나 생각도 들었다.
나처럼이라기보단 나자신이기에 ᆢ
삶을 포기한듯 보이지만
그들이 처한 제한적 환경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것이다.
미래가 없고 하루하루 연명하는 모습이
미래라는 기준에선 포기로 보이지만
그냥 하루하루를 보면 삶을 살아가고
있는것이었다.
'의지'라는 기준으로 보면
의욕넘치는 사람
의욕없는 무기력한 거지로 나뉘지만
'나의 의지'라는 환상이 사라지면서
그런구분과 의미도 마음의 투사란게
점점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종종 그런사람들에게
'꼭 그런 상태에서 의지를 불끈가지면서
행동해야하는건 아니지 그냥 의지없이 사는것도
괜찮다고 몇번 말을 하였다'
인간의 의지,의욕이라는것이 아주 일시적이고
연속성도 없기에 작심삼일은 아주 자연스런
현상이다.삼일이란것도 그냥 약속이기에
현실성이 없기에 그것으로 스스로를 판단하는건
효과가 없는듯 하다.
관념이 의식속에서 상상되면 감각되고
실제 처럼 여겨지지만 실제가 아니기에
머무르거나 유지할수가 없다.
상상된것은 감각되고 실제처럼 여겨지지만
실제가 아니기에 머무르거나 유지할수가 없다.
그러니 감각되는 모든것이 일시적이고
유지가 안되고 계속 변화는것이 삶이기에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의지나 의욕의
문제도 아니고 자연스럽고 당연한것이다.
예전에 문제로 보였던것은 자연현상이고
자연스러운걸로 이해가 되었다.
아주 오래전에 좀 멍청 해진후 좀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생각도 하고 살겠지 했다.
공이니 무념에 빠지면 안된다는 말도
들었는게 이상하게 그런것들은 와닿지 않았다.
오매일여니 공이니 사랑이니 깨달은 분들조차도
정확히 알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듯 했다.
스스로가 듣기엔 추측이 미세하게 첨가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추측과 들은말이 스스로의
경험과 섞여 온전한 경험처럼 이야기 되고 강의하는
경우가 많구나 이해가 들었다.
깨달은 사람은 많은데 무르익은 사람은 드물다고
생각되어졌다.그래서 그런지 그런 많은 말들은
의미가 없게 여겨졌고 그냥 살았다.
인간은 보통 스스로의 과정이나 경험보단
경전이나 외부의 권위나 그런걸로 스스로의
과정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듯 하다.
멍청한 기간이 몇년이든 괜찮았다.
어떤 과정이든 배운다는 자세로 깊이 경험을
하면 좋은듯 하다.섣불리 외부의 권위나 깨달은
사람의말을 비교선상에 놓고 고치려들거나
하는건 좋지않은듯 하다.
그러다가 어느날 그냥
'멍청한 사람' '모름'이런 구분을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구나 이해가 되었다.
멍청한게 아니라 형태없는 빛,의식으로
모르는게 아니라 알아야 할게 없구나
이해가 되었다.
5인이상 어디 갈수 없어서 부모님이 동생이
설인데 설음식 갖다 준다고 전화가 왔다.
먹고 싶은게 없냐?묻길래 딱히 없었지만
귀찮은데도 음식해서 오는 그 마음이
고마워서 미역국 갖다달라고 했다.
동생 와이프가 손이 커서 엄청 많이 요리해서
갖다주길래 '왜 이리 많이 하셨냐?고 잘먹겠다고
고맙다고 했다.집에 대접할게 없었는데 잠깐
이야기 나누고 서로 헤어졌다.
언제 다 먹지?생각하니 양이 너무 많았다.
삶을 지탱하는건 거창한게 아니란 생각이ᆢ
요리를 보면 삶을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사랑, 언젠가 부터 음식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형태없는
사랑이 음식을 통해 표현되는구나
이해가 되었다.
형상없는 무한한 사랑의 빛이 형상으로
여러가지 형태로 표현된다는 이해가
점점 들었다.
오랫동안 절망감을 치루다 보니 몸이 걱정되어
3년만에 건강검진을 자진해서 받았다.
어릴적부터 병원을 좋아했고 지인들에게
병원은 고향같은곳이라 하면 다들 이상하게
여겼다.익숙한것도 있고 많은 도움과 보살핌을
받았기에 좋았다.병원비가 과도하게 나와
싸우고 병원비 안내고 버틴적도 있고
치료를 성의없이 하는듯 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론 인간의 고통을 같이 나누는곳이란
인식이 어릴적부터 있었다.
CT찍고 내시경 하니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해서 안심되었다.허리가 좀 아프고 혈변을
종종바서 췌장쪽에 문제있나?했는데
내치핵인건 같다 했다.
마취안하고 내시경 잘한다고 마취없이 계속하라고
하길래 '아픈데 참는거지'속으로 생각했다.
보호자 없으니 어쩔수없이 노마취로 하는데
썩 좋진않고 아팠다.
다 끝나고 앉아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의학의 형태로 알게 모르게 보살핌을 받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나처럼 절망적인 감정상태가
많은 사람들은 음식이던 의료적인 혜택을
못받는구나 생각도 들었다.
나처럼이라기보단 나자신이기에 ᆢ
삶을 포기한듯 보이지만
그들이 처한 제한적 환경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것이다.
미래가 없고 하루하루 연명하는 모습이
미래라는 기준에선 포기로 보이지만
그냥 하루하루를 보면 삶을 살아가고
있는것이었다.
'의지'라는 기준으로 보면
의욕넘치는 사람
의욕없는 무기력한 거지로 나뉘지만
'나의 의지'라는 환상이 사라지면서
그런구분과 의미도 마음의 투사란게
점점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종종 그런사람들에게
'꼭 그런 상태에서 의지를 불끈가지면서
행동해야하는건 아니지 그냥 의지없이 사는것도
괜찮다고 몇번 말을 하였다'
인간의 의지,의욕이라는것이 아주 일시적이고
연속성도 없기에 작심삼일은 아주 자연스런
현상이다.삼일이란것도 그냥 약속이기에
현실성이 없기에 그것으로 스스로를 판단하는건
효과가 없는듯 하다.
관념이 의식속에서 상상되면 감각되고
실제 처럼 여겨지지만 실제가 아니기에
머무르거나 유지할수가 없다.
상상된것은 감각되고 실제처럼 여겨지지만
실제가 아니기에 머무르거나 유지할수가 없다.
그러니 감각되는 모든것이 일시적이고
유지가 안되고 계속 변화는것이 삶이기에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의지나 의욕의
문제도 아니고 자연스럽고 당연한것이다.
예전에 문제로 보였던것은 자연현상이고
자연스러운걸로 이해가 되었다.
아주 오래전에 좀 멍청 해진후 좀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생각도 하고 살겠지 했다.
공이니 무념에 빠지면 안된다는 말도
들었는게 이상하게 그런것들은 와닿지 않았다.
오매일여니 공이니 사랑이니 깨달은 분들조차도
정확히 알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듯 했다.
스스로가 듣기엔 추측이 미세하게 첨가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추측과 들은말이 스스로의
경험과 섞여 온전한 경험처럼 이야기 되고 강의하는
경우가 많구나 이해가 들었다.
깨달은 사람은 많은데 무르익은 사람은 드물다고
생각되어졌다.그래서 그런지 그런 많은 말들은
의미가 없게 여겨졌고 그냥 살았다.
인간은 보통 스스로의 과정이나 경험보단
경전이나 외부의 권위나 그런걸로 스스로의
과정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듯 하다.
멍청한 기간이 몇년이든 괜찮았다.
어떤 과정이든 배운다는 자세로 깊이 경험을
하면 좋은듯 하다.섣불리 외부의 권위나 깨달은
사람의말을 비교선상에 놓고 고치려들거나
하는건 좋지않은듯 하다.
그러다가 어느날 그냥
'멍청한 사람' '모름'이런 구분을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구나 이해가 되었다.
멍청한게 아니라 형태없는 빛,의식으로
모르는게 아니라 알아야 할게 없구나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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