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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세계가 하나임의 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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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글이 (116.♡.205.9) 댓글 0건 조회 6,277회 작성일 10-04-05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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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의 갈등과 내적 번뇌의 상당부분은 '인간과 자연이 나와 한몸이다'는 사실을

진실 되게 이해함으로 해소의 길을 찾을 수 있다.

나와 너를 대립시키고, 나와 자연을 대립시기다보니 거기에 끝도 없는 갈등과 분열이 생겨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나와 너의 하나’라는 표현은 막연히 '감상적' '직관적'차원의 그것이 아니다.

도, 깨달음을 추구하는 이들 중에서 그런 이들을 많이 접한다.

거창한 수식을 난발하면서 '세계와 나는 하나이다.' '색즉시공 주절주절' 하면서

그야 말로 '경계가 없는 세계관' '통합적 세계관'을 제시하곤 한다.

그런데 그런 말이 허황된 표어일 경우를 자주 본다.

그들은 말로만 '세계와 나는 하나다'고 얘기할 뿐이지,

실질적인 얘기로 들어가서 '밥'의 문제(밥을 굶는 사람의 문제) 등을 거론할 때는

'중요한 것은 그게(밥의 문제, 현실의 문제) 아니고 마음이다'는 따위의 도무지 앞뒤가

안 맞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바대로 진정 '세계가 하나'일라면 마음과 물질, 너와 나가 통합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물질 중에서 상징적 중요성을 가진 '밥'의 문제를 제쳐두려고 하니

이건 말이 안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를 지적할라치면 '불쌍한 사람 도와주는 것하고 깨달음은 다른 것이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니

이 또한 문제의 관점이 어긋나는 것이다.

밥의 문제를 중요시 여기고, 밥을 굶는 이웃을 돌보고, 착취당하는 인류에 고민하고, 몸살을 앓는 자연을 보호해야하는 것은

내가 그것들보다 우위의 입장에서 혹은 타자의 입장에서 ‘시혜적’으로 뭔가를 베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나이기 때문에 마땅히 행해야하는 ‘조치’인 것이다.

하여간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진정’ 그것들과 ‘하나’가 된다면,

본시 둘이 아니었음을 체험한다면 나는 그것들의 보호자이자, 대변인이자, 그것 자체가 된다.

이런 때 비로소 온전한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세상의 평화와 내마음의 평화가 동시에 찾아오는 것이다.

상당수의 ‘괴리된’ 깨달음을 추구하는 이들은 그들이 발견한 진리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하더라도,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다.

왜냐하면 그들의 깨달음 자체가 애초에 ‘세상’ ‘너’ ‘자연’과 철저히 이격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그것들과 하나됨의 통찰을 통한 체험적 삶’은 세상의 평화가 도래하는 순간에

내 마음의 평화가 도래함을 발견하고, 내 마음의 평화가 도래한 순간 세상의 평화를 불러온다.

우리는 그러한 ‘앎’을 구해야 한다. 그게 진리인 줄 아닌 줄은 검증할 방법이 없으나, 그게 바로 ‘현실’이고 ‘실재’인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의 추구와 실현은 ‘하나됨’의 필요성을 온전히 아는 순간 찾아온다.

내가 나의 생활을 잘 꾸려나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내 삶'이 소중한 줄 알기 때문에 '먹을 것' '입을 것' '생활할 것'을 늘 고민하고 잘 꾸린 결과이다.

내가 '내 삶'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부수적인 것들(의식주)는 그렇게 알아서 상황에 맞게 꾸려진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파국을 막고 조화롭게 만들어 내기위해서도 우선 필요한 것은

'내 삶이 너의 삶과 자연과 연결되어 있음'을 절실히 아는 것이다.

말로만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막연히 느끼는 것이 아니고, '절실히' 그렇게 알아야 합니다.

'나와 너'가 다르지 않고, '나와 자연'이 둘이 아님을 절실히 알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세상과 환경이 파국으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있다.

이렇게되면,

손에 하나라도 더 쥐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희생을 유발할리도 없을 것이고,

손에 하나라도 더 쥐기 위해서 자연을 과도히 착취할 리도 없을 것이고,

후손들의 씨감자를 캐내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내 자신도 모르는 순간 ‘내가 이 정도는 살아야하지’라는 체면과 격식을 강요당하는 삶.

그래서 사람과 세상과 자연을 더더욱 착취하게 만드는 심리적 함정에 빠진 삶을 살 일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 자체가 ‘나’이기 때문에 ‘그것들’로부터 착취할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다만 여지껏 우리는 그것이 '내 일'일 줄 모르다보니 세상을 이리 만들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체현하기 위해서 자아를 확장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너'와 '자연'까지가 '나'와 하나인 것을 명증히 알 수 있을 만큼 자아가 확장되었을 때...

조화로운 삶은 자연스레 살아진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이타적인 마음'으로 혹은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으로(시혜적인 자세로)

그에 대처했다가는 '나와 너' '나와 자연'의 괴리가 커지는 것은 물론 그 결과의 작용도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물론 그렇게 시혜적인 마음으로 '이타적인 마음'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는

낫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나와 너'가 하나임을 온전히 알고 접근할 때와는 비견할 것이 못된다.

따라서 우리가 '우선 해야 할 것'은 내 자아의 경계를 무너트리면서 내 외부의 것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나와 하나로 맞물려 있음을 온전히 아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에 다다르는 과정과 결과는 참으로 '실제적'이고 '현실적'이며 '조화적'이다.

상당수 이들이 쫓는 깨달음이라는 것이 지극히 감상적이고, 관념적이고, 초월적이며, 현실괴리적인데 반해,

이러한 이해에 다다르는 과정은 철저히 '체험적'이다.

또한 상당수 이들이 쫓는 개달음이라는 것은 자체 검증할 필요도 없는 미사어구의 난발로 도배가 되어,

각종 사이비로 흘러도 이 사실 자체를 알 수 없음에 반해서,

이러한 이해에 다다르는 과정은 늘 진실 되게 자기 자신과 세상을 동시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고 검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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