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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이 님의 글을 읽은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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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글이 (116.♡.205.9) 댓글 0건 조회 6,579회 작성일 10-04-1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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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려 깊은 설명의 말씀 감사합니다.

님과 같이 말씀해 주시면 이야기 나눌 근거가 됩니다.

글을 쓰다보면 늘 '내가 이야기 중에 어떤 근거가 사용되어야 하는가?'

'내가 빼놓은 문제가 무엇인가?'하며 나름대로 꼼꼼히 정리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러다 보니 장황해집니다. ㅠㅡ

A-4 세장이 넘었군요.

이해해 주십시요.

제 생각으로 문제를 다루는 '깊이'와 '범위' 공존하기 힘든 특성을 하고 있습니다.

김기태 선생님은 인간의 내면의 문제를 다루는 깊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깊이 있는 내면의 통찰'을 위해서 인간세상의 잡다한 역학의 문제는

약간 논외로 하시는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반면 법정스님은 김기태선생님이 다루는 내면의 분석과 같은 '깊은' 성찰은

부족한 듯이 보입니다.

대신 적당히 내면의 문제를 다루면서 세상의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치열하고

실천적인 필요를 강변하시고 계시죠.

다시 말해서 '범위'가 넓다는 것입니다.

정리해 보자면 김기태 선생님은 전문적으로 마음의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것이고,

법정스님은 마음과 세상의 문제까지를 포괄적으로 다룬다는 것이지요.

앞서 말씀 드린 내용입니다.

이에 (앞서서도 오해할까봐 정리했지만)우열은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법정스님의 가르침이 범위를 넓게 포괄한다'는 표현 자체가 '우열함'을

묘사하는 것으로 보이시는 듯 합니다.

몇 분이 계속 그런 지적을 해 오시는 것으로 봐서 그렇게 여기시는 듯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십시요.

아마 법정스님의 추종자가 제 글을 봤다면 '우리 스님이 깊이가 없다는 얘기냐?'고

발끈해서 댓글을 다셨을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깊이'와 '넓이'의 문제이고,

깊이가 깊고 넓이가 좁던 ,깊이가 얇고 넓이가 넓던 ‘체적’은 같습니다.

그래서 그것도 '같다'고 앞서의 글에도 정리했습니다.

2.

더불어 김기태 선생님의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성'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님께서는 김기태선생님이

[안으로는 내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밖으로는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바로 참된 인생이라고 역설하십니다.]라고 말씀 하시는 것을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라고 얘기하시려 하는 듯하군요.

하지만 그렇게 김기태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도 결국 '확대된 개인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자기 외적 삶'을 잘 사는 방법이지요.

결국 김기태 선생님식의 방식은

'자기 넘어'의 '너'와 '사회'와 '환경'을 통합해서 '대아'의 도가니로 엮어내지 못하는

측면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깊이'있게 '나의 마음의 문제'를 파고들다 보니 빚어진 한계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다보니, 김기태 선생님의 방식으로는

'굶주리는 이들의 문제' '붕괴되는 생태계의 문제' '부조리가 가중되는 세상의 문제'에

대한 관심보다는 이를 접하는 이들의 마음의 문제에 일차적인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기에 님께서 만약 착취당하고 억업 받는 민중들과 앞으로 2,30년 후에 파국을 맞이할

생태계의 문제에 대해 구구 절절히 토로하면서

정말 안타깝습니다. 이 세상을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개선시킬 수 있겠습니까?라고

질문을 하신다면, 그 대답으로 선생님은

조바심 내며 억지로 바꾸려 하지 말고 현재의 상태를 즐겨라. 네 자신이 제대로 피어나면

세상도 피어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지요.

선생님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구체적 조언이나 방법론은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직 ‘마음의 문제’만 거론하곤 하시지요.

어떻게 이런 답을 낼 것을 아시냐고요? 제가 몇 년 전에 얻은 대답이고, 책에까지

사례로 올려진 내용이기에 잘 알지요.

물론 원칙적으로는 선생님의 말씀은 맞는 말씀입니다. 내가 잘 피어나면 세상도 잘 피어나지요.

하지만 내가 잘 피어나고 말고의 문제와 상관없이 저쪽에서는 사람이 굶주리고 있고,

나와 내 후손이 존립할 기반인 생태계가 붕괴되고 있는 것은 문제라는 것입니다.

내가 ‘잘 피어나는 것’과는 별도로 눈앞에 시급히 닥친 세상 문제의 해법도 고민해 볼만도 한데,

선생님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마음의 문제’인 것이지요.

이러한 모습을 선생님이 보이시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이렇습니다.

아마 이는 ‘밥의 문제’를 ‘깨달음’의 문제와 별도로 다루는 특성 때문일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쓰신 글에서 이를 구분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밥의 문제’를 ‘깨달음’의 문제와 별개로 두시다보니, 밥과 제반된 문제, 즉 외적인

삶과 생활의 문제, 물질의 문제, 환경의 문제 등등이 역시 ‘깨달음’과 관계없는 차원의 것으

로 밀려났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렇다보니 ‘깨달음’에 관해서 주로 관심을 가지시는 김기태 선생님이 깨달음과 상관없는

것들을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결국 김기태 선생님은 ‘깊이 있게’ 마음의 문제에 집중한 결과로 그 외적인 것...사회적이고

환경적인 문제에 대해 다소간 소외적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렇게 선생님이 '포괄적'으로 다루지 못한 것에 대해서 제가 지적하는 것은

선생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도, 선생님이 기분상해하실 일도,

선생님의 추종자들이 발끈해 할 일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은 애초에 '밥의 문제는 따로 고민할 문제다'라면서

스스로 다루는 문제의 영역이 모든 것을 포괄하지 않음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추가족인 고민의 필요를 느끼셨는지,

선생님은 저와의 토론 끝에 ‘나도 그런 문제에 대해서 뭔가 느끼는 바가 있었는데 앞으로

이러한 문제(세상의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겠다’는 말씀을 3년 쯤 전에 남기셨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도 답변이 없으셨습니다.

답변을 주기가 사실 힘듭니다. 왜냐하면 ‘밥과 물질’의 문제를 깨달음으로부터 제쳐 놓고

그 당시 저와 나눴던 화두의 결과를 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반면 법정스님같은 분은 밥과 물질, 사회적 실천 등을 깨달음의 일부로 아시는 분입니다.

그렇기에 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을 조명하셨지요. 그렇기에 ‘폭이 넓다’고 말씀 드렸

던 것입니다.

거듭 말씀 드리지만, 이것이 법정스님이 훌륭하고 김기태 선생님이 그렇지 못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김기태 선생님은 애초에 모든 영역의 문제를 다루지 않고 있음을 공표하셨고,

저는 다만 그 사실의 확인을 통해서 '김기태 선생님이 다루는 영역이 법정스님에 비해서 넓지 않다'고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3.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김기태 선생님 자체가 ‘사회적인 활동’을 활발히 하신다는 것입니다.

면벽 수행만 하시고 극단적인 관념을 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자신 스스로가 ‘실천적’으로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노력을 정열적으로 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를 다른 사람에게 ‘권고’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자기 능력과 수준에 맞게 ‘사회적인 실천을 하자!’고 독려, 권고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그것 자체를 안하십니다.

세상이 이렇게 암울하고, 환경파괴로 후손들의 존립자체가 위태로워지는 상태면,

그에 대한 ‘최소한’의 우리의 일상 삶에 대한 개선 필요성을 요청하실만 한데,

그것 자체를 안하십니다. 본인은 열심히 나서서 노력하시면서요.

왜 그런가 생각해 봤더니, 아마 그로인한 ‘강제성’과 ‘의무성’을 느낀 이들이

또 다른 집착에 시달릴 것을 우려한 배려 때문인 듯 합니다.

그래서 본인 자신은 사회적 실천을 잘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적극 권장 권고하고

있지는 못한 것이지요.

그렇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김기태 선생님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지

를 보고 ‘알아서’ 눈치껏, 사회적 참여를 하면 문제가 없을 일이지만, 김기태 선생님의 실천

적 활동은 안보고, 김기태 선생님의 ‘있는 그대로’라는 문장에만 심취해서 고도의 관념적이

고, 초월적이며, 낭만적인 관점에만 매달린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를 추종하는 분들은 마음이 느긋하신 ‘좋은 분들’이기는 할 망정 사회적 책임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해가 없는 분들일 경우를 많이 봅니다.

김기태 선생님 자체는 ‘이런 세상이 아파서’ 나서서 그렇게 적극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변화

를 위해서 실천적 노력을 하시지만, 사람들에게 그것을 ‘권고’ ‘제안’하는 것을 ‘강요’로 받

아들여 마음의 상처가 또 하나 생길 것을 우려해서, 이를 말하지 않다보니 결과적으로 이러

한 불이익?이 발생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제 작은 소견은 선생님은 사람들에게 ‘사회적 실천도 나서서 해라!’고 얘기하는 ‘용

기’를 가지셨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 얘기를 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의무감에 괴로워

서 밤잠 못자고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습니다. 학교 아이들에게 허드렛일 안시 키고 일일이

다 챙겨주려고 신경쓰 시다가 자신의 손가락을 칼로 베이실 때의 그러한 섬세한 배려는 참

으로 아름다운 것이긴 하지만 그렇게 모든 것을 스스로의 어깨에만 안고 가다가는 쓰러지시

지요. 혼자 꾸역꾸역 그 짐을 다 짊어지고 가시려고 하다가 쓰러지지 마시고 다른 사람과

좀 나눠지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그것을 짊어질 어깨를 가진 이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죠.

반면 법정 스님 같은 분은 그러한 ‘의무’를 그냥 말하십니다. 그러한 의무를 책임지워줬다고

해서 그들이 아파할 것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설령 한 두 사람이 아파한다고

하더라도 아프지 않은 99명의 사람이 그 책임을 다할 때는 결과적으로 세상이 낫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아픔은 ‘광범위한 관점’에서는 감수할만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지요.

이게 바로 ‘깊이’(한 사람의 마음이라도...)와

‘넓이’(한 사람 마음의 번거로움이 따르더라도 모두에게 더 좋을 수 있다면...)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하이튼 두서 없이 말씀 드렸는데, 제가 접한 정보 근거로는 이렇게 말씀 드릴 수 있겠습

니다. 다른 정보를 새롭게 접한다면 판단이 바뀌어질 수 있지만, 여지껏 제가 얻은 정보로

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이 문제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제 생각이 바뀔만한 정보를 주

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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