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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해야할 것'의 있고 없음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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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글이 (116.♡.205.9) 댓글 2건 조회 6,622회 작성일 10-04-15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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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얘기로 ‘강도 안 건넜으면서 배를 버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곳 풍경은 흡사, 강을 건넌 이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데,

너도 나도 애써 배를 버리려는 분들만 보이는 풍경입니다.

몇몇 분들은 강 너머 유토피아의 언덕에서 진리의 참됨을 확인?하는 확신까지 보이시지만

제가 보기에는 강 중간에서 허우적 거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방편없이 온전한 앎에 다다르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방편없이 온전한 앎에 다다른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언어가 되었던 경험이 되었던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시행착오를 통해서,

‘그러한 방편을 쓴 것이 잘못임을 알았다’는 또 하나의 방편을 통해서 우리는 아마 그 앎에

다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앎에 다다르는 것'까지만입니다.

알기 위해서는 다른 작용이 필요하겠지요.

꼭 방편이 있어야 절대 진리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공에 적응된 인지능력을 가진 인간은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로

어쩔 수 없이 그 방편(경험, 논리 등)을 이용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강을 건너고자 할 때, 슈퍼맨이라면 뭐하로 쓸데없이 배를 준비합니까?

그냥 훌쩍 날아가면 되는데요.

하지만 인간의 몸으로 그게 불가능하쟎습니까?

‘배’ 자체는 ‘강건넌 상황’과 별개이지만, 이에 다다르기 위한 실마리로서 '배'를 사용해야지요.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배가 좋아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강을 건너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하느님이라면 한순간에 그냥 직관적으로 진리에 다다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나서 시공간에 적응하고, 사회에 적응하고 하는 과정에

수도 없는 정신적 역류작용이 빚어졌습니다.

이렇기에 슈퍼맨이 한순간에 강을 건너듯

한순간에 직관적으로 진정한 앎에 다다를 수 없지요.
애초에 나 자신이 그를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앎을 방해하는 것들을 걷어내고 순탄히 항해하기 위해서

각자의 기질에 맞게 ‘방편’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뚱뚱한 사람은 좀 넓찍한 배를 준비해야할 테고,

팔 힘이 좋은 사람은 노가 달린 나룻배를,

연료가 준비되어 있는 사람은 모터보트를,

바람을 잘 이용하는 이들은 돗배를 준비해야할 테죠.

그런데 이 배를 ‘자기에 맞게’ 어떻게 만들어 타고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실존적 고민은 하지 않고,

‘난 지금 강 건너편에 왔다’는 따위의 말만 지껄이고 있는 이들이 태반입니다.

즉 ‘있는 그대로가 전부이다’다는 말만 지껄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좀 기분 나쁘라고 부러 이리 표현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강 건너편에 와있습니까?

‘있는 그대로가 전부이다’다는 따위의 말을 ‘주여 주여’ 외치듯 지껄여대는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습니까?

그렇게 '있는 그대로가 전부이다'는 말을 계속 반복하니

지금 여기가 영원의 시간과 무한의 공간의 중심이 됩니까?

아니지요.

왜? 말하는 바대로 살아지지 않습니까?

왜 '있는 그대로가 전부이다'는 말을 누구보다 많이 떠벌리는데, 늘 갈증을 느낍니까?

‘앎’ ‘깨달음’에 다가갈 자기 자신은 제쳐두고 ‘있는 그대로가 전부’라는 공허한 관념놀이만 해댄 결과 아닙니까?

그렇게 읊어만 대서 그게 자기 것이 된답니까?

많은 분의 모습은 흡사 ‘주여주여 당신이 생명입니다’라고 외치는 것이 전부인 ‘진실한?’ 기독교의 모습과

하나가 다르지 않지요.

진리라고 믿고 있는 ‘그것’이 자신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지 않고,

그 말 자체만 종교화해 받아들이니 빚어지는 폐해이지요.

‘있는 그대로가 전부이다’는 명제(방편 자체를 거부하는)만을 모든 경우에 다 들어맞는

만능 정답으로 수렴하는 것은 ‘주여 주여 당신이 생명입니다’는 외침과 하등 다를 바 없습니다.

여러분 보시기에는 여러분의 외침이 더 수준이 높은 것으로 보일 줄 몰라도,

기독교인들은 차라리 일어서서 손뼉치고 외침으로 최소한 치질 걸릴 확률이라도 낮춥니다.

-

이에 대해서는 김기태 선생님이 좀 물갈이를 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김기태 선생님은 임상 부분에는 그 누구도 흉내 내기 위한 훌륭한 성과를 내시고 사람을 변화시키십니다.

정말 존경하고 누구도 따르기 힘든 능력이지요.

제가 인터넷 상에서 만난 많은 분들에게 김기태 선생님을 추천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러한 문제를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정리해서 사람들이 조망할 수 있도록

보여주지는 못하시는 듯 합니다. 이론적 정립보다는 실천을 잘하기 때문이겠지요.

말하자면 본인은 잘하는데 설명은 못하는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제가 본 느낌은 그렇습니다.

따라서 선생님께서 이러한 문제에 객관적으로 조명해주셨으면 하지만,

선생님은 임상적으로 맨투맨 이해는 잘 시키시는데, 이론적으로 설명은 부족하신 듯 합니다.

이론적으로 설명을 못하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얘기들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이해했을 때,

오해할만한 말씀을 하시는 듯 합니다.

쉽게 말해서 개개인에게 말씀하실 때는 그 개개인이 필요한 요소요소를 잘 짚어주시면서

자유할 수 있도록 돕는데,

보편 대중에게 말할 때는 그 보편 대중이 전반적으로다가 왜곡된 이해로 빠질 수 있는 말들을

하시는 듯도 합니다.

'대중적-사회적' 작용의 특성에 별 관심이 없고 '나' 혹은 개별적 '너'에게만 관심있는

선생님의 특성의 결과인 것도 같습니다.

선생님의 경향이기에 선생님 본인도 아마 잘 모르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는요.

따라서 이를 대하는 제 3자는 정신차리고 봐야합니다.

김기태 선생님이 개개의 아이들에게 사적인 답변을 한 것을 가지고 학력고사 정답을 말씀한 것으로

객관화 해서 판단해 버리면 문제가 생깁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마치 객관적인 진리인 마냥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은 큰 실수이지요. (더군다나 이곳의 많은분들은 ‘객관’을 인정하지도 않쟎습니까)

‘있는 그대로가 전부이다’면서 ‘강 건너편의 천국’을 선생님이 가르쳐줬으면 그 천국을 향한 노질을 하십시오.

잘 안 저어지면 왜 안 저어지는지는 자기 자신이 고민할 몫입니다.

마치 강 건너편으로 넘어온 듯한 환영속에서 '있는 그대로가 전부이다'고 하나마나한 소리를

떠벌려야할 것이 아니라, 노가 잘 안 저어져서 제 자리 걸음을 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뭔가를 해야할 것입니다.

실존적, 경험적, 현실적인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왜 노가 저어지지 않는지, 강건너로 와닿지 않는지를

통렬히 숙고해야 합니다.

강 건너에 다다르는 것은 논리와 경험의 노력의 결과는 아니지만, 그에 다다르는 노력은

‘있는 그대로가 전부이다’는 따위의 통찰적 표현의 남발이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김기태 선생님이 ‘있는 그대로 봐라’라고 말했으면 그냥 임상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이해하십시오.

그게 무슨 모든 상황에 들이 맞는 절대진리로 판단해서 모든 상황에 적용하려고 하면

심각한 왜곡이 생겨나고 그때부터 현실은 어그러집니다.

그러한 왜곡의 세상을 살고 있는 이가 ‘있는 그대로 봐라’는 말을 그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외친다고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왜 있는 그대로 봐야하는지?

뭐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방해하는지?

나는 있는 그대로를 볼 능력이 있는지?

무엇이 이를 방해하는지? 에 대한 통렬한 숙고 없는 ‘있는 그대로 본다’는 얘기의 끝없는 주절거림은

여러분의 정신을 강 건너편의 꿈에 늘 젖어있게 하기는 할망정 결코 여러분의 실존이 그에 다다르게는

하지 못할 것입니다.

스스로를 보십시요. '있는 그대로 봐라'는 말을 스스로 끝없이 주절거리고,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만, 있는 그대로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십니까?

왜 있는 그대로 봐지지 않는지 그것을 먼저 생각해야하지 않을까요?

자, '있는 그대로 봐야한다'는 말만 거침없이 내 뱉기 전에

먼저 해야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칼을 목에 겨누며~)

댓글목록

로즈마리님의 댓글

로즈마리 아이피 (118.♡.233.129) 작성일

<강도 안 건넜으면서 배를 버린다 >

한참 전부터 제가 고민하던 부분입니다.
배를 버리고 물에 빠져있어도 시원하고 좋다면 아무 문제 없지만..
분명히 안 그런 사람들의 부류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뭔가 말로 도저히 표현이 안 되었는데..둥글이님의 글을 읽으니 좀 윤곽이 잡히는군요

적당한 비유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켄윌버'라는 분은..이런 비슷한 현상을 '전초오류' 라는 말로 표현했던 걸로 압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116.♡.205.9) 작성일

허법~ 켄윌버까지 아시는군요.
어쩐지 예사롭지 않으시더라니... ㅋㅋ

전초오류란 단어를 처음 접해서 지식창에 치니 다음과 같이 나오는 군요.

[전초오류란 전(前) pre, 초(超) trans 라는 말 그대로
아직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과 이미 넘어선 것을
혼동하는 상태에 빠진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젖비린내 나는 아이와 산전수전 다 겪은 노친네를
같은 성숙수준으로 판단해버리는 오류를 말한다.
전초오류의 대부분은
뭘 잘 모르는 사람이 진짜로 아는 척하는데
사람들이 이것을 구분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정말 이 부분에 대해서 좀 깊이 숙고해야할 듯 합니다.
갈켜줘서 감사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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