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세 눈이 멍든 할머니]와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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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글이 (116.♡.205.9) 댓글 0건 조회 7,751회 작성일 10-04-27 21:28본문
차 포 다 떼고 얘기합니다.
사회비판 운동을 하는 이유는 세상을 더 낮게 변화시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현상이라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83세 할머니를 때려 눈을 상하게 만들고도 도의적 사과표시도 안하는 공권력에 대해
이 개새끼들아!라고 비난했다고 해봅시다.
이 개새끼들아!라고 비난했다고 해봅시다.
이에 대해서 감히 누가! 그렇게 경찰과 정권을 비난 해서 세상이 변하냐?는 말을 할 수가 있습니까?
경찰을 비난하는 이유는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이 처절한 현실에 대한 절규일 뿐입니다.
83세 눈이 멍든 할머니를 앞에 두고 '세상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달음이 중요하다'
'마음의 문제가 중요하다' '공권력을 사랑으로 감싸야 한다' 는 얘기'만' 떠벌릴 사람들이라면
그런 사람들은 정말 가망이 없는 환자들 아니겠는지요.
물론 할머니를 때렸던 공권력이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은근히'라도 도의적 사과의 표시라도
건넸으면 당연히 용서를 해줘야지요.
하지만 '우리가 때리는 것 봤냐?'고 오히려 반발하면서 이후로도 끝없이 시민들을 탄압하니 문제이지요.
행위의 잘 못에 대해서 반성도 않는 이들을 '용서'해주는 것은 용서가 아닙니다.
행위의 잘 못에 대해서 반성도 않는 이들을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한 용서와 사랑은 더 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빠져들게 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들을 비판하고 투쟁하는 노력이 평화와 화합의 세상은 만들지 못하겠지만,
그러한 노력은 최소한의 현상유지는 해줍니다.
하지만 무턱댄 용서와 사랑과 포용은 더 많은 사람들의 억울한 고통을 만들어 냅니다.
이 땅에 더 많은 용서와 사랑과 포용의 기회를 앗아 갑니다.
재미난 것은 사회비판활동을 폄하하고 무턱댄 용서와 사랑과 포용을 말하는 이들은
절대로 사회적 갈등의 공간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제 3자의 입장에서 이에 참여하는 사회운동을 비판합니다.
(물론 비판받아야할 부분이 틀림없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바흐의 잔잔한 음악에 귀를 붙이고, 헐벗고 굶주리는 이들로 부터 시선을 거둬서
낭만주의 화풍의 그림에 초점을 둔다면 우리는 평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평온 속에서 우리는 거창한 삶의 원리와 생의 비밀을 주절댈 수 있지요.
하지만 그것 자체가 역겨운 것이란 것입니다.
하루 세끼 제 입에다가 밥숱가락은 쉬지 않고 갖다 대면서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통해 우리가 참다운 깨달음을 알수 없다'는
따위의 얘기를 하는 이들을 대할 때와 같은 역겨움이지요.
경찰에게 두들겨 맞은 83세 할머니 영상을 올립니다.
'마음의 문제가 중요하다' '공권력을 사랑으로 감싸야 한다' 는 얘기'만' 떠벌릴 사람들이라면
그런 사람들은 정말 가망이 없는 환자들 아니겠는지요.
물론 할머니를 때렸던 공권력이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은근히'라도 도의적 사과의 표시라도
건넸으면 당연히 용서를 해줘야지요.
하지만 '우리가 때리는 것 봤냐?'고 오히려 반발하면서 이후로도 끝없이 시민들을 탄압하니 문제이지요.
행위의 잘 못에 대해서 반성도 않는 이들을 '용서'해주는 것은 용서가 아닙니다.
행위의 잘 못에 대해서 반성도 않는 이들을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한 용서와 사랑은 더 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빠져들게 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들을 비판하고 투쟁하는 노력이 평화와 화합의 세상은 만들지 못하겠지만,
그러한 노력은 최소한의 현상유지는 해줍니다.
하지만 무턱댄 용서와 사랑과 포용은 더 많은 사람들의 억울한 고통을 만들어 냅니다.
이 땅에 더 많은 용서와 사랑과 포용의 기회를 앗아 갑니다.
재미난 것은 사회비판활동을 폄하하고 무턱댄 용서와 사랑과 포용을 말하는 이들은
절대로 사회적 갈등의 공간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제 3자의 입장에서 이에 참여하는 사회운동을 비판합니다.
(물론 비판받아야할 부분이 틀림없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바흐의 잔잔한 음악에 귀를 붙이고, 헐벗고 굶주리는 이들로 부터 시선을 거둬서
낭만주의 화풍의 그림에 초점을 둔다면 우리는 평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평온 속에서 우리는 거창한 삶의 원리와 생의 비밀을 주절댈 수 있지요.
하지만 그것 자체가 역겨운 것이란 것입니다.
하루 세끼 제 입에다가 밥숱가락은 쉬지 않고 갖다 대면서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통해 우리가 참다운 깨달음을 알수 없다'는
따위의 얘기를 하는 이들을 대할 때와 같은 역겨움이지요.
경찰에게 두들겨 맞은 83세 할머니 영상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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