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에게 가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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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봉다리 (218.♡.2.192) 댓글 8건 조회 5,949회 작성일 10-11-22 16:18본문
아버지는 제주도 마을 마다 서너집씩 있던 그런 사람들처럼 일본으로 밀항을 떠났다.
예,닐곱 살쯤된 나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아버지 면회를 갔다.
이쪽과 저쪽이 나누어진 면회장에서 아버지에게 간다고 울다 울다 면회장에서 뛰어나와 달렸다.
아버지가 있는 저쪽으로 가는 문이 어딘가에 있을거란 생각에..
간수 손에 잡혔는지 어머니 손에 잡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향에 돌아온지 1년쯤 되었을까
내가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 다시 나간 아버지는
내 나이 30이 되어서야 별로 가진 것 없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너무나 변해버린 고향, 다 커버린 자식들과 낯선 아버지 역할..
서로 이해하고, 적응하는 데는 꽤나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미안하다. 내가 젊었을 때 조금만 더 정신을 차렸으면...
술잔을 만지작 거리는 오른손 팔뚝에 새겨진 참을 인자 문신.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아버지와 술을 같이 하지만
아버지도 일본에서의 긴 세월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본 적이 없고 나도 물어본 적은 없다.
술을 좋아하는 내가 명절이나 큰일 때문에 고향에 내려간다고 하면
어버지는 항상 소주 한, 두 박스를 사다가 뒷방에 넣어둔다.
집사람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지만 나는 그냥 씩 웃고 만다.
그 술잔이 아버지가 지금 내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이고
처자식 놓아두고 고향 떠날 때의 그 마음이란 것을 이해시킬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EBS에서 방송한 희말라야 커피로드를 보다가 참지 못하고 수건을 옆에 갖다 두고 펑펑 울었다.
애써 키운 커피 나무들이 산사태로 허무하게 사라진 후 망연자실, 생계를 위해 이주 노동을 떠나는 장남과 그의 어머니..
그 곳에 아버지가, 어머니가, 내가 있었다.
댓글목록
바다海님의 댓글
바다海 아이피 (211.♡.60.22) 작성일
저도 눈시울이 젖어요~~!
힝...ㅠㅠ
봉다리님의 댓글
봉다리 아이피 (218.♡.2.192) 작성일바다해님.. 고맙습니다..
vira님의 댓글
vira 아이피 (110.♡.249.47) 작성일
그 시절 이 땅 여기저기에서 아버지들 좌절하고 쓰러지고 피흘리고 스러져갔지요.
가슴 서늘합니다.지금 고2 아들에게 어떻게 내가 보일지 진땀납니다.하하.
정리님의 댓글
정리 아이피 (119.♡.240.65) 작성일
봉다리 님의 글을 읽다 보니 돌아가신 제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울 엄마...
엄마세대엔 누구나 그러하듯이 다들 서럽고 아픈 세월을 살아오셨겠지만
울 엄마는 참...한 많은 세월을 사시고 가셨습니다.
엄마의 모질고 모진 한에 딸년의 서러움을 얹어서 외롭게 가셨을 우리 엄마...
엄마에 관한 이야기는 절대로 쓰질 않겠노라고 다짐했건만
이렇게 손가락이 자판위에서 서성이고 있네요...봉다리 님의 서러운 이야기들 때문에요...
수수님의 댓글
수수 아이피 (173.♡.102.5) 작성일
그 술잔이 아버지가 내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이고
처자식을 놓고 고향을 떠나갈 때의 그 마음이란 것을 이해시킬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아침 부터 게시판이 불러 들어와 보니 오랜만에 봉다리님이 아부지와 같이 계셨습니다
아부지 보다 어느새 훌쩍 커버려 아부지의 그 마음까지 받아 마시는 봉다리님....
수수도 휴지 박스를 옆에 두고 엉엉 울어 버렸습니다
살아계실 때 아빠와 함께 소주 한잔 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가신 아빠가 보구 싶어 ....감옥소 뒤 어딘가 출구가 있을꺼 같아 길길이 뛰었던
봉달이님 처럼 수수도 그렇게 엉엉 울었습니다
지족님의 댓글
지족 아이피 (112.♡.206.210) 작성일
봉다리님의 그 고향에 휘영청 보름달이 떴네요..
한 집 건너 한 집, 서러운 사연들을 그 때도 비추고 있었을 달빛..
봉다리님의 댓글
봉다리 아이피 (218.♡.2.192) 작성일
vira님, 정리님, 수수님, 지족님.. 고맙습니다.
요즘 게시판 즐거운 데,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그냥 이곳에서는 그래로 될 것 같아서 써 보았습니다.
봉다리님의 댓글
봉다리 아이피 (218.♡.2.192) 작성일
공자님, 고맙습니다.
공자님께서 보내 주신 술잔 감사히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