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형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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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공자 (211.♡.131.51) 댓글 3건 조회 6,108회 작성일 10-12-06 11:07본문
논픽션이라 그런지 흥미있고 나름 깊이 생각할 거리를 주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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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형수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29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때 000검찰청에서 초임검사로 강력(살인, 조폭 등 범죄)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거의 이틀에 시체 1구는 부검하는 상태였지요. 그때 저는 28세의 젊은 나이였습니다(이렇게 되면 저의 지금 나이가 드러나는군요).
그 사건은 모 경찰서에서 강도상해 등을 저지른 범인 3명을 검거하여 강력을 담당한 저에게 영장에 관해 수사지휘를 받으러 오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범인들 3명은 교도소 동기로서 약 40회에 걸쳐 강도, 강도상해, 강도강간 등의 범죄를 저질렀으며, 그 중 주범은 그 40여회 이외에 자기 단독으로 강도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 주범은 대담하게도 아파트촌에서 저녁에 사람들이 모임(모임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을 하고 있는 도중에 문간방에 세든 젊은 여인을 칼로 수차례 찔러 살해하고 금반지 등 몇 개의 금품을 가져간 사건이었습니다.
그 범행 수법의 잔인함과 대담함에 신문에 크게 보도된 사건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구속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더욱 가슴 아팠던 것은 문간방에서 죽어간 여인이 호스테스였는데 그 여인은 자신이 번 돈으로 서울의 모일류대학에 다니는 남동생을 뒷바라지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얼마 후 경찰에서 송치되어온 범인 3명의 수사를 당연히 제가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윤노파 사건, 정재파사건 등으로 강력사건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어 강력검사가 초동수사에서부터 현장에 나가고 구속영장도 전담으로 처리하고 수사는 물론 나중에 공판에도 직접 수사한 검사가 참여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제가 이 사건을 수사하여 기소하고 공판도 수행하고 구형까지 모두 제가 하여야 하는 사건이라는 것이지요. 당시 저는 이미 사형을 여러번 구형하고 있었는데, 이 사건 역시 저로서는 주범에 대해서는 사형을 구형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은 예단이 아니라 강력을 맡다보니 당시 다른 사건들과의 비교에서 저절로 그런 감각이 너무나 당연하게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새로 송치된 그 사건의 주범과는 수사를 하면서 참으로 <번뇌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가 살인자였다면 이번에는 제가 살인자로서 그를 죽여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그가 검찰에 송치되어 묶인 채 내 앞에 앉았을 때, 그도 엄청나게 불안했겠지만, 저도 무척 불안했습니다. 혹시 그가 범행을 부인하면 어쩌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그는 자백하면 사형인데, 그렇다고 그가 범행을 부인하면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물론 그가 범행을 부인할 것을 걱정한 것은 그의 마지막 범행---강도살인사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40여회의 강도, 강도상해 등의 범행을 했지만 그의 다른 공범들과 마찬가지로 그것만으로는 사형을 면할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 범행을 부인할 때, 그를 추궁할 수 있는 물적인 증거는 반지 하나 뿐이었습니다. 그 반지는 그의 라디오 케이스에 숨겨두었다가 압수된 것이었는데 사실 그가 영악하게 부인한다면 반지는 같은 종류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므로 반드시 그 범행에서 강취해온 반지인지 확인한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로 그 강도살인의 범행을 자백하느냐 부인하느냐 하는 것은 그가 죽느냐 사느냐의 마지막 기로였고, 저로서는 그를 죽이느냐 죽이지 못하느냐를 좌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실로 그에게나 나에게나 잔인한 게임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다른 두 사람의 공범들부터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조사하면서---사실 다른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불쌍한 그들>에 대해서 참으로 마음 속으로 가슴아팠습니다. 그들은 감방동기생이었습니다. 그들은 각자 절도 등의 죄로 두 차례 세 차례 감옥에 갔었고 이번에 감옥에서 만난 것이었습니다. 공범 두 사람들로부터 40여회의 특수강도, 특수강도상해, 등의 죄에 대해서 모두 간단하게 자백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범을 조사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저는 40회의 강도에 대해서 그로부터 간단하게 자백조서를 받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도살인 사건에 대해서 물을 차례가 되었습니다. 저의 계산으로는 40여회의 강도에 대해서 계속 자백을 해 왔고, 또 그동안 안 그들의 사정에 대해서 저는 정말 마음속 깊이 그들에게 동정을 보내면서 물었으므로 그의 마지막 범행--강도살인--에 대해서도 자백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다른 앞의 강도사건을 질문한 뒤에 이어서 다른 강도사건과 똑 같은 어조로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그 아파트에 들어갔지? 그날은 그 집에 모임이 있는 날이었던데.....”
저는 그가 그 집에 들어간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범행을 전제로 하여 왜 하필 그 집에 들어갔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이것은 조사기법에서 아주 초보적인 것으로 범인에게 <했느냐 하지 않았는냐?> 라고 묻지 않고, 어떤 대답이 나오더라도 범행한 것을 전제로 하는 질문을 하라는 것입니다. 죽였느냐 죽이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죽인자들도 반사적으로 죽이지 않았다고 대답하고 그 다음부터는 엄청나게 꼬이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묻는 28세의 젊은 검사의 가슴은 그야말로 콩닥콩닥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부인한다면......나는 그를 죽일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나는 그야말로 그를 죽이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
그는 잠깐동안 침묵했습니다.
이윽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당시 엘리베이트를 처음 보았습니다. 혼자서는 못타고 다른 사람들을 따라 엘리베이트를 타고 올라가 우루루 내린 층에서 그 층의 복도를 지나가다가 문이 열려 있는 집이 그 집이었습니다.”
(26년 전이고 그는 시골출신이었으며 교도소에 오래있었기 때문에 엘리베이트를 그때 처음 보았던 것입니다. 참고로 제가 좌변기를 처음 본 것은 1972년이었습니다.)
어쨋던 이 대답으로 사실상 그의 죽음은 결정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범행 모두를 자백했고, 나는 깨끗한 자백조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를 죽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흔히 강력사건--살인범, 강도살인범, 연쇄살인범, 강도강간범, 조폭들의 전쟁......---에 대해서 신문에서는 <인간의 얼굴을 한 야수><인면수심><인간이기를 포기한 범인>......등등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그들은 전혀 그러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을 직접 눈앞에 묶어두고 조사를 하면서 그들과 대화를 해 보면 그들은 절대로 그런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 중 일부가 잔혹한 행위를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정신병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게까지 되면 대체로 그 과정에서 <정신병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 불쌍한 한 영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 불쌍한 영혼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는 이제 그는 죽었고 그를 조사한 나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사회적으로 그는 그야말로 <인간의 얼굴을 한 야수>로 처형당했습니다.
그는 홀어머니와 형님, 누나 그리고 자신 네 명의 가족이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성장하면서 빗나가 몇 차례 절도를 하였으며 그 중 몇 번은 실형을 선고받아 교도소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마지막 교도소 생활에서 정말 인생을 사람답게 살아보겠다고 피눈물나는 결심을 하고 전도를 온 수녀님에게 의지하여 가토릭에 귀의했습니다. 그렇게 결심하여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하는 중에 집에서 들려온 이야기는 형님의 죽음이었습니다. 형님은 당시 철도청의 말단직원이었는데, 듣기로는 (제가 정확하게 잘 알지 못하는데) 망치 같은 것으로 철도차량의 쇠바퀴를 두들겨 바퀴의 이상유무를 검사하는 등의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형님이 철도차량 사고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형님은 죽었지만 한편으로는 보상금이 상당히 나와 집은 역설적으로 풍족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수형생활을 마치고 교도소에서 출소하여 집을 찾아갔을 때---과거에 그의 가족이 전세살던 집에는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새로 전세 들어온 사람에게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 물어 지금의 서초동(26년 전으로서 지금의 서초동 법원청사가 있는 곳이 온통 꽃을 기르는 비닐 하우스 등으로 가득하였을 때입니다) 인근의 비닐하우스로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물어 물어서 그들 가족--홀어머니, 누나.--들을 찾아냈는데 그들은 비닐하우스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그 인근의 움막에--그 엄동설한에---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된 사정은 또한 불운이었습니다. 그의 형님의 사망으로 받은 돈으로 그의 누나와 애인이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몽땅 사기 당하여 애인은 면목이 없어 도망가 버린 상태였고, 누나는 병들어 누운상태였습니다.
그 때문에 전세보증금마저 날려버려 그들 가족은 엄동설한에 전셋집에서 쫓겨나 비닐하우스 옆 움막으로 옮겨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출소하여 성당에 가려고 하였지만 상황이 이 지경이 되고 보니 정말 피눈물나는 작은 소망이 생겼습니다. 딱 한탕만 하여 방한칸짜리 전세보증금을 마련하고 병든 그의 누나를 치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과거 절도를 하였는데 그의 경험으로는 절도를 해서 그런 큰 돈--전세보증금--을 마련할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보다 먼저 출소한 감방 동기생 두 명을 만나보았습니다. 그 두 사람도 참으로 기가 막힌 사연들이었으며 처지도 비슷했습니다. 그들 역시 그런 정도의 돈을 마련하여 살아갈 밑천이라도 장만했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절도에서 업종을 바꾸어 강도를 하기로 했습니다. 절도로서는 빨리 단기간에 끝내고 손 씻고 인생을 새 출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칼을 준비하여 상당히 돈이 있을 것 같은 부잣집 같은 곳에 한 밤중에 들어갔습니다. 그들로서는 업종을 바꾸었기 때문에 강도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 스스로 두려워서 들어가자마자 놀라는 가족들을 난폭하게 한쪽으로 몰고는 손발을 묶고 칼로 위협하면서 돈을 내어 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불행하게도......참으로 불행하게도 말입니다.......그 집에는 <현금>이 얼마 없었습니다. 귀금속이나 패물도 별로 볼품이 없었습니다, 사업적으로 말하면 투자와 노동에 비하여 생산성이 형편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처음 강도를 하여 뺏은 현금은 정말 푼돈이었습니다. 귀금속을 셋이서 나누었지만 장물처분처가 마땅치 않았고 어떻게 어떻게 장물을 처분해 보았자 그야말로 너무나 싸게 처분할 수밖에 없어서 그것 역시 푼돈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푼돈으로 그들은 정말 너무나 화가 나서 술을 마셔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두 번째 범행을 했습니다. 두 번째도 거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 눈에 그래도 근사하게 비취진 집이었지만 현금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의 범행은 자꾸자꾸 늘어갔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는 그들 수중에 저축되는 돈은 많지 않았고, 세 사람이 각자가 전세보증금을 만들려면 아직도 까마득하였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범행으로 전세자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장기화되자 그들은 점차 그 돈을 술마시는 등 유흥비로 쓰는 비율도 늘어갔습니다.
범행횟수가 늘어나자 강도범행에서 여유도 생겼습니다.
전에는 강도범행을 하는 자신들이 스스로가 불안하여 피해자들이 조금만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려고 하면 칼로 위협하고 어떤 경우에는 <실수로!> 피해자를 찌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점 강도를 당하는 경우 범인도--특히 초범일 경우---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피해자들의 사소한 행동에도 그들이 오히려 겁을 먹고 칼로 찌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범행회수가 20여회가 넘어서자 이제 여유가 생겨 실수로 피해자들을 찌르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그들은 피해자들이 집에 현금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 <짜증>을 내게 되었습니다. 자신들 <강도님>들은 노심초사 온갖 고생을 하여 한 밤중에 남의 집에 침입을 하여 자고 있는 사람들을 깨워 준비한 노끈 등으로 묶는 등 온갖 노고를 다 하였는데 정작 현금이 없으니 얼마나 짜증이 나겠습니까? 그들은 현금이 없는 그 집 피해자들이 반항하거나 수상한 행동을 보이면 화가 나서 몸의 어떤 부분들을 푹 찌르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집에서는 현금은 없고 양주만 잔뜩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범인 세명은 화가나서---그날 장사를 망쳐버렸으니---그 사람들을 묶어 놓은 방 앞 거실에서 양주를 따라 같이 나누어 먹고 취해서 피해자들에게 행패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의 범행은 어느덧 40여회에 이르렀지만 그들은 여전히 세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전세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40여회의 범행 과정에서 그 피해자들이 당한 공포와 피해는 그야말로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얼굴을 한 야수>에게 당한 것이었습니다.
한 밤중에 곤하게 자고 있는데 인기척에 놀라 깨었더니 복면을 한 괴한이 비수를 눈 앞에 들이대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가족들이 한군데로 몰려서 손발을 묶이고.....어떤 경우에는 칼로 허벅지 등을 푹 찔리고....... 그 공포는 엄청난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강간을 하는 때도 있었으므로 실로 한밤중의 피해자들에게 그들은 악마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그 작은 소망---전세보증금을 마련하여 이 엄동설한에서 가족을 비닐하우스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그 작은 소망---을 이루지도 못하고 강도범행은 40여회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도 전세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한 주범은 어느날 광화문에서 버스를 탔습니다. 그러다 과거에 소매치기를 했던 것이 기억나 소매치기를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범행대상으로 한 여자를 찍었는데 그 여자에 접근하여 범행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던 중 그 여자가 내려버렸습니다. 그 여자를 뒤따라 내려 따라 간 것이 00동 어느 아파트단지였습니다. 그 여자가 1층에 서 있는데 갑자기 벽이 갈라지면서 문이 열리고 그 여자가 그 안으로 들아가는 것이었습니다(엘리베이터죠). 그는 처음 보는 것이라 겁나서 뒤따라가 들어가지 못하여 그 여자를 놓쳐버렸습니다. 그리고 조금 기다리니 몇사람이 와서 그들을 따라 그 엘리베이트를 타게 되었지요. 그리고 중간에 아까 그 여자가 내린 것 같은 그 층수에서 내려 두리번거리며 복도(? )를 쭉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그 중에 어떤 집에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아마도 저녁 7:30경이었습니다. 그는 문이 열린 그 아파트에 들어가자 응접실에 사람들이 한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문간방에 얼른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문간방에는 한 젊은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얼른 칼로 그 여자를 겨누며 입을 막고는 능숙하게 그 여자를 묶었습니다. 그리고 그 묶은 그 여자를 침대에 뉘었습니다. 그리고 칼로 위협하여 그 여자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그 문간방에 살던 여자가 바로 살인 피해자가 된 여자이며 호스테스였습니다, 그녀는 아파트의 문간방에 전세들어 살면서 그녀의 남동생을 서울의 일류대학에 공부시키는 여자였습니다. 그녀로서는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습니다. 그녀는 꼼짝없이 묶이고는 숨겨둔 돈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날이 마침 그 주인집 거실에 모임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얼마 후부터 사람들이 한 두 사람씩 들어와 응접실에 모이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놀라서 그동안 악착같이 벌어서 숨겨둔 돈을 몽땅 주고 심지어 반지까지 빼주었지만, 그녀는 그 돈이 정말 아까웠던 것이었습니다(그렇게 추측합니다).
문간방에 문이 닫혀 있고 자신은 침대 위에 묶여 있었지만 안쪽의 거실(응접실?)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므로 조금만 소리를 내면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었습니다. 호스테스를 하여 동생을 대학에 보내는 그녀로서는 돈은 그야말로 피와 같은 돈이었습니다. 정말 몸을 팔아서 번 돈이고 동생을 위해 쓸 돈이었습니다, 인기척을 내거나 소리를 지르면 사람들이 뛰쳐나올 것이었습니다. 비록 입에 재갈이 물리고 양손과 양발이 묶여 있지만 말입니다.
그러한 상황은 범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 자신은 전혀 알지도 못하는 곳에 왔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어 거실(응접실)에서는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범인으로서는 불안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묶어둔 피해자 여자가 몸을 뒤척이고 웅얼거리는 것이었습니다. 범인으로서는 아무리 무언의 몸짓으로 위협을 하는데도 그녀는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범인)는 그녀가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게, 거실의 사람들이 듣게 소리를 내는 것을 포기시키려고 결국 칼로 그녀의 허벅지를 찔렀습니다. 그녀는 입에 재갈이 물린 채로 칼에 찔린 고통에 그야말로 신음소리를 내고 몸을 움직였습니다. 그러자 범인은 다시 손으로 누르고 하다가 다시 그녀의 몸을 찔렀습니다.
그녀는 다시 신음소리를 내었습니다, 세 번째 그가 찌른 칼은 그녀의 심장이었습니다. 그도 엉겁결에 찌른 것이었습니다. 삽시간에 침대는 그녀의 심장에서 흘러나온 피로 홍건하였습니다.........그는 그렇게 자신이 심장을 찔러 죽인 여자의 시체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사람들이 뜸한 기회를 틈타 그 집을 빠져나왔습니다. 나중에 주인이 문간방에서 피바다 속에 죽은 피해자를 발견하고 신고하였으나 출동한 경찰은 범인을 찾아내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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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세 사람 중의 한 명이 불심검문에 걸려 범행도구가 압수되고 그에게 한 개의 범행을 자백받은 것을 시작으로 하여....많은 범행들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 00경찰서 강력계 형사들은 정말 베테랑이었습니다.
이상이 그들의 범행내용이었습니다.
그 주범은 결코 포악한 자가 아니었으며,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이었습니다. 그는 동료들에게 의리가 있었고 결코 야비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지나친 욕심을 가진 것도 아니었으며 결코 방탕한 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정말 사람답게 살아보겠다고 3년동안 교도소에서 가토릭 신앙으로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한 자였습니다. 그는 출소하여 처음에는 노동으로 가정 생계를 보태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정말 작은 소망이 있었는데 그 엄동설한에 어머니와 병든 누나를 따뜻한 방한칸--그것을 줄 수 있는 전세보증금--을 마련하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주범은 마지막 조사를 마치고 나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왜 저와 가족에게 한 겨울에 따뜻한 방 한 칸과 같은 <그 작은 소망>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는지..........이제는 편안한 죽음마저 허락하지 않는지...............”
그는 울먹이며 말을 다 맺지 못하고 갑자기 천장의 허공을 노려보았습니다.
한편 그 피해자--죽은 여인--의 남동생은....
자신을 위해 몸을 팔았던 누나의 처참한 죽음을 잊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입에 재갈이 물리고 허벅지와 배 그리고 심장을 칼에 찔려 헝근하게 침대와 방안을 덮었던 그 처참한 피바다를 잊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 피해자의 남동생은 진술조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 범인을 정말 찢어 죽이고 싶습니다. 그냥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습니다............”
학교에 갔다가 오후 늦게 나온 검찰청에 왔던 그(피해자의 남동생)는 진술을 하고 나가면서 검찰청 마당에서 하늘을 보고 울부짖는 것을 저는 검사실 창으로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울부짖음은 고함이라고보다는 신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그 전부터 너무나 울부짖어서 성대가 파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술도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다시 법정에서 그(주범)와 만났습니다.
저는 마지막 공판에서 간단하지만 준엄한 논고를 하였으며 사형을 구형했습니다.
준엄하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사실 중에서 <피해자들의 사실>들을 조용히 열거하는 것으로 그는 충분히 <악마>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피해자들에게는 악마였습니다.
그는 최후진술에서 피해자들과 유족들에게 참회했습니다.
그리고 1심 재판부는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난 후 항소심에서 그의 항소가 기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를 지난 후에 대법원에서 그의 상고가 기각되었으며, 그것으로 그의 사형은 확정되었습니다.
상당한 시일이 흐른 후 그에게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저는 강력을 담당하면서 검사의 직에 회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글이 정확히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 잊어버렸지면, 주여! 이 잔을 제가 들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하고 반문하는 심정이 되었습니다. 그가 사람을 죽인 것이나, 내가 그를 죽인 것이나, 얼마나 많이 다를까요? 나, 1심판사, 2심판사, 대법원판사. 사형 집행인......,,그들은 모두다 살인(사형집행)의 책임을 교묘하게 다른 사람에게 서로 미루는 제도적 장치에 의지하고 있지요.
죄란 무엇일까요?
구원이란 무엇일까요?
용서란 무엇일까요?
정의란 무엇일까요?
가난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깨달음이란 무엇일까요?
이러한 질문들이 아직 30이 되지 않았던 당시 저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댓글목록
지족님의 댓글
지족 아이피 (112.♡.206.210) 작성일
참으로 무거운 주제..이면서
이 이야기속에 우리의 자유가 숨어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샘의 강도당한 자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이것이 꼭 내면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살인하게 당한-좀더좋은 표현이 생각나지 않지만-살인이라는 에너지장에 휩쓸린...
공자님의 댓글
공자 아이피 (211.♡.131.51) 작성일
이글을 읽을때마다
우리에게는 얼마만큼의 자유의지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어찌보면 이미 주어진 배역대로 사는것 같고...
긴글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_()_
지족님의 댓글
지족 아이피 (112.♡.206.210) 작성일
그래요.
겸손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사랑에 빠지는 것과 살인충동에 휩쓸린 것의 차이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