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레'의 참된 의미 - 신묘년 새해를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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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목소리(관찰자) (119.♡.11.158) 댓글 0건 조회 8,218회 작성일 11-02-02 08:22본문
뜻깊은 설 연휴 시작하고 계신지요?
오늘은 차레에 대해 새로운 이야기를 해 드리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은 차레를 茶禮로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 고유어인 차레를 한자(茶禮)로 음차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차레의 본 뜻은 무엇일까요?
차는 '채우다(받아들임)'라는 뜻입니다. 가득 차다, 찰랑찰랑, 벅차다라는 파생어에서 그 본뜻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레는 '비우다(내보냄)'라는 뜻입니다. 쓰레받기, 수레, 걸레 등의 파생어에서 그 본뜻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차레는 비움과 채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참으로 하늘(대우주)의 뜻에 맞게 살아 왔는지를 하나하나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 그것이 비움입니다.
한사람 한사람 안의 참된 '나(라)'는 한님(한알님,하늘님,대근원)으로부터 비롯된 신성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막상 몸을 입게 되고, 세상의 물결에 휩싸이면 여러가지 회노애락과 괴로움을 겪게 되고, 참자신을 잊어버리기 일쑤입니다.
비움이란 그러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금 비우고 깨끗하게 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보름달이 뜨는 날은 인간이 잠재의식 깊은 곳이 수면위로 강하게 드러나는 날이며, 때문에 자신을 비우고 정화할 수 있는, 또 자신의 깊은 잠재능력을 깨울 수 있는 최적의 날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비움의 과정 뒤에는 '채움'이 일어납니다. 다시금 자신의 참된 나를 깨닫고, 나는 하늘의 뜻을 잊지 않고 살아가리라라는 결의와 앞으로의 목표를 다지는 작업, 그것이 채움입니다.
들어 오고 나가는 것, 채우고 비우는 것은 결산의 과정이며, 또 우주의 법칙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일년에 한두번, 특히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정월과 우주의 법칙을 상기하는 8월에 공동체 전체가 모여 함께 행하는 것, 이것이 차레의 참된 기원입니다.
한국한 연구소 바나리의 박현 선생님에 의하면 차레라는 말을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마차레’라는 古語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고대 우리말의 원형이 남아있는 몽골이나 만주에서는 임금이 하늘에 올리는 제사(天祭)를 맞차레 혹은 마지차레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대한 제사가 아닌, 조금 더 작은 규모의 제사, 즉 지방의 기관이나 일반 가정에서 지내는 것은 그냥 ‘차레’라 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마’나 ‘맞’은 진정한, 진실한, 우두머리라는 뜻이며, '지’ ‘이’는 고대어의 ‘치(chi)’로 지도자, 위라는 한국의 古語입니다. 이둘을 합성한 ‘마지’ ‘맞이’는 우리말에서는 제일 위라는 뜻으로 지금도 쓰여지고 있습니다.(예=>맏아들)
지금도 몽골에서는 마차레(machare), 만주에서는 맞뜨리(machure), 마차레와 차레를 구분하지 않은 일본 사람들은 모든 차레를 마차레의 발음과 비슷한 마쯔리(machuri)라 부릅니다. 한편 중국인들의 제사라는 발음, ‘츠러’도 한민족의 차레라는 발음이 한자 발음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차레' 혹은 ‘마차레’의 뜻은 ‘진정한, 단 한번의, 가장 중요한 비어냄(돌아봄)과 받아들임(다짐)을 하는 것’ 즉 ‘어제를 돌아보고 내일을 준비한다’는 우리의 순수한 옛말이었습니다.
지금도 몽골에서는 마차레(machare), 만주에서는 맞뜨리(machure), 마차레와 차레를 구분하지 않은 일본 사람들은 모든 차레를 마차레의 발음과 비슷한 마쯔리(machuri)라 부릅니다. 한편 중국인들의 제사라는 발음, ‘츠러’도 한민족의 차레라는 발음이 한자 발음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차레' 혹은 ‘마차레’의 뜻은 ‘진정한, 단 한번의, 가장 중요한 비어냄(돌아봄)과 받아들임(다짐)을 하는 것’ 즉 ‘어제를 돌아보고 내일을 준비한다’는 우리의 순수한 옛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점점 후대로 내려오며, 불교를 받아들이면서는 육체를 벗은 선조에 대한 애착과 두려움으로 변해갔으며, 유교를 받아들이게 되면서는 예법이라는 형식에 얽매어 그 본래의 뜻, 자신을 비우고 반성하는 정신은 온데 간데 사라져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한님(한알님,하느님,대근원)을 이어받은 참나로서 자신을 돌아보고 비우며, 다시금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는 가장 중요한 작업은 잊어버린 채, 오직 육체를 벗은 조상들만을 기억하면서, 조상들로부터 무엇인가를 받는 것만을 생각하는 의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한민족은 태고의 진정한 얼과 정신을 부활시킬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한님의 자손으로서 자신의 참나를 자각하고,
앞서간 조상의 스피릿의 가호와 지원에 감사하면서,
주체적인 자신의 힘으로, 어제의 나를 되돌아보고 내일의 나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신묘년 초하루를 맞이하여
이러한 차레의 참된 의미가 겨레의 마음가운데에서 되살아나기를 기원해 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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