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삶의 신비로움과 경이 (글쓴이:무주공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일호 (14.♡.40.191) 댓글 1건 조회 8,266회 작성일 11-02-28 10:41본문
제가 밑에 퍼온 글은 '무주공산'이라는 필명을 쓰시는 분- 저도 누군지 모릅니다 -의 글입니다. 작성일자가 2010년 12월이네요. 글이 참 좋아서 허락받고 이곳에 옮겨봅니다.
/////////////////////////////////////////////////////////////////////////////////////
삶의 신비로움과 경이 | |||
조회 197 | 추천 19 | 비추천 0 | 점수 10 | 2010-12-13 16:55 |
|
사람의 가치관, 심미관은 참 미묘한 데가 있다. 같은 사물, 현상도 본인의 생각, 감정 상태에 따라 순간순간 달라보인다.
1990년대 초반, 상계동 주공아파트에서 살 때 나는 중계동에 있는, 생활보호대상자들이 산다는 장기 임대 아파트 단지를 지나간 일이 있었다. 그때 그 아파트 건물들은 왜 그리도 칙칙하고 허름해뵈던지. 결국은 같은 콘크리트 박스인데도 보는 관점에 따라 그토록 달라 보였다. 그 동네를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왠지 초라해뵈고 무력해보였다.
이런 내 시각은 나 혼자만 갖고 있었던 게 아니라 당시 중간층이라고 자부하던 이들의 상당수가 공유했던 모양인지 학교에서도 학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이 임대아파트 아이들과 어울리는 걸 꺼려했고, 교사들은 그쪽 동네 아이들이 공부도 못하고 말썽을 잘 피운다고 해서 눈쌀을 찌푸리곤 했다.
아마 중산층 내지 중간층 사람들이 임대아파트 주민들을 보는 이런 관점에는 일말의 두려움 같은 게 내재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잘못하면 저런 계층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공포감 같은 것이. 우리가 장애인들을 보는 시각에서도 비슷한 두려움같은 것이 내재되어 있어서 그것이 간혹 혐오감으로 드러나기도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간 나는 다양한 개인적인 변천사를 거친 끝에 요즘은 군포시의 아담한 주공 아파트 단지에 자리잡고 있는 15평짜리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갓 지은 새 아파트다.
이곳 주민들은 대체로 노령자들 아니면 아주 젊은 부부로 양분되며, 우리가 중산층, 혹은 중간층이라 부르는 계층 사람들은 분양아파트들에 주로 살고 있고 이 임대 단지에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나는 이 작은 새 임대아파트에 아주 만족하면서 잘 살고 있다. 특히 요즘 같이 경제가 불안정하게 뒤흔들리고, 우리나라의 미래가 아주 암담해보이는 시절에 그저 소액의 임대료만 내면 되는 이런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게 여간 다행스럽게 여겨지지 않는다.
이런 20년 장기 임대 아파트는 과거 같으면 아파트 몇 채 값에 해당하는 비싼 전세비를 마련하지 않아도 되고, 또 이년만 되면 전세비를 올려주거나 다른 데로 이사가야 할 필요가 없어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제공해준다.
그리고 요즘처럼 아파트 시세가 무섭게 떨어지는, 혹은 떨어질 조짐이 보이는 시대에 거액의 융자가 들어 있는 자가 아파트에 살고 있지 않으니 원리금 상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아파트 시세가 오르고 내리는 것에 일희일비할 이유도 전혀 없다.
게다가 이런 아파트들은 평수가 아주 적어, 설사 우리나라에 국가 디폴트 같은 혹심한 재앙이 닥쳐오고, 소비의 핵겨울이 닥쳐온다 해도 생활비가 별로 들지 않으니 그만큼 견디기가 더 쉽다.
그래 나는 이런 주택을 마련해준 아내의 공을 연신 치하하면서 이런 주택이야말로 수도권에 사는 소시민들의 미래형 주택이라고 연신 감탄해마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친구들을 만나거나 외부인들을 만났을 때 내가 임대주택에 산다고 하면 그들의 표정에는 묘한 기류 같은 것이 어린다. 술값이나 차 값도 자기들이 내려 든다. 그런 걸 보면서 나는 혼자 속으로 빙긋이 웃는다. 내 과거의 관점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같은 단지의 분양아파트 사람들이 만든 카페 같은 데를 들어가보면 어떤 이가 임대 아파트 앞에 왠 중형차가 그리도 많으냐고 분개하는 것 같은 글이 보이기도 한다. 아마 분양을 받기 위해 많은 융자를 받았기에 매달 이자 상환하기에 바쁜 이들이 볼 때 돈 많은 이들이 뭔가 수를 써서 임대아파트를 얻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임대 아파트 사람들에 대한 과거의 나 같은 편견의 그림자, 자취 같은 게 얼핏 보이기도 한다.
나는 시가 십억이 넘는 아파트나 주택을 가진 이들을 별로 부러워하지 않는데 그것은 요즘의 경제적 시류 때문뿐만이 아니고 그들이 그런 정도의 재산(요즘처럼 아파트 시세가 떨어질 때는 그 호가라는 게 진짜인지 의심스럽기도 하지만)을 가진 건 지극히 정당하다고 여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개 젊은 시절부터 노후를 염려하는 마음에서 부지런히 재산을 축적하기 위해서 살았고, 그 때문에 본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기가 쉽고, 그 대가가 바로 그 아파트 한 채인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젊은 시절에 대기업에 들어가서 몇 십년 노예처럼 죽도록 일한 대가로 그 정도도 얻지 못한다면 그건 정말 억울한 일일 것이다.
나는 그와는 정반대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들만 하고 살아왔고 그 대가는 장기임대아파트다. 그러니 내가 불평할 이유가 어디 있으랴. 나는 지금도 누가 나에게 네가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서 노후에 몇십억의 재산상의 안정을 얻기 위한 삶을 살겠느냐, 아니면 지금처럼 살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기꺼이 후자를 택할 것이다.
젊은 시절 나는 노상 내가 못살게 될까봐 불안해 하면서 전전긍긍하고 살았다. 비교적 안정되게 살면서도 그 안정이 깨질까봐 내심 두려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지리산 부근에서 젊은 비구니 세 사람을 태우고 서울로 오게 되었는데, 운전하는 동안 어느 한 여승이 자기 동료에게 무상에 관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여기서 무상이란 항상함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가슴을 막고 있던 어떤 벽같은 것이 툭 터져나가면서 갑자기 전신이 쇄락해지고 가벼운 액스터시 같은 것이 찾아왔다. 그렇지.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지. 그런데 어째서 나는 늘 영원한 안정을 구하려고 그리도 노심초사했을까?
살아가다 보면 남들이 들을 땐 별 뜻 아닌 말도 본인에게는 대단히 깊은 통찰로 다가오는 때가 있다. 그때가 바로 그런 때였다.
그 때 나는 결심했다. 삶의 이 본질적인 불안정을 기꺼이, 즐겁게 타고나가겠다, 고. 절대로 안정에 안주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그렇게 마음먹고 나자 그리도 찾던 안정이 비로소 내 마음에 찾아왔다.
그건 참 묘한 경험이었다. 불안정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자세가 될 때야 비로소 우리는 참다운 안정감이 뭔지를 맛볼 수 있다는 것. 삶의 묘한 아이러니다.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 삶을 여유롭게 살다 보면 목표를 향해 정신없이 매진하면서 분주하게 살던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
과거에는 방배동 같은 부촌에서 종이박스를 수집하는 것으로 근근히 사는 노인네들을 속으로 좀 딱하게 여겼는데 요즘은 그 노인네들이 달리 보인다. 대체로 무리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몸을 움직이면서 일하는 이들은 노상 돈버는 일에 머리를 잔뜩 쓰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느라 제대로 걷지도 않고 값비싼 미식을 자주 즐기는 이들보다 심신이 더 건강하다. 그러니 렉서스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은 유한 부인의 눈에는 종이박스를 잔뜩 실은 작은 바퀴수레를 끌고 가는 노인 부부가 비루해뵈고 한심해 뵐지 모르겠으나 나는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그 노인네들이 훨씬 더 행복하고 건강해뵈고, 삶을 더 밀도있게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건강에 관한 사례집들을 보면 돈이 많다는 것이 꼭 본인의 삶에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로또 복권 같은 것에 당첨된 이들치고 말로가 좋은 이들이 거의 없고, 심신의 건강도 심하게 망가져 결국은 예전에 하던 일로 돌아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던 어떤 아주머니는 갖고 있던 땅의 시세가 하루아침에 엄청나게 올라 떼부자가 되어 식당 일을 그만두고 잘 먹고 잘 지냈는데, 그러다보니 건강이 아주 나빠지고 암까지 걸렸단다. 그래 다시 식당에서 일하고 싶어서 예전에 일하던 식당에서 잡일을 했는데, 놀랍게도 암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것은 어느 분이 전국을 돌면서 수집한, 건강과 관련된 실화들 중의 하나다.
물질적 가치만을 쫓으면서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이들은 가끔 우리 삶이 얼마나 경이롭고 신비한가를 잊고 살기가 참 쉽다. 내 친구 하나는 어떤 여성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런 사실을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와 해물탕을 먹다가 그가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눈치챘다. 왜냐하면 그는 해물탕을 먹다 말고 조개껍데기를 하나 집어들고, 하, 이게 어떻게 이렇게 생겼지? 참 묘하다, 묘해, 하면서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기 때문이다.
평범한 조개껍데기 하나를 들고 감탄하는 사람은 거의 틀림없이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참다운 사랑은 성욕과는 다르다. 그것은 사람의 내면에 잠재된 거대한 에너지를 일깨워줘 길가의 돌멩이 하나조차도 예사롭지 않게 보이게 한다. 참다운 사랑을 해본 사람만이 그걸 안다.
가끔 나는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감탄한다. 어떻게 눈썹이라는 저런 신기한 게 생겼지? 어떻게 이목구비가 이렇게 절묘하게 이루어졌을까? 목욕을 하다말고 물의 신비함에 감탄하기도 한다. 그 영롱하고 투명한 물방울들은 도저히 그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으리 만치 아름답고 신비하다. 다이아몬드나 황금도 물이 지닌 그 본래적 가치와 아름다움에 비하면 지극히 하찮다.
그리고 오줌을 눌 때마다 오줌이 그렇게 시원하게 나오는 것에 감탄한다. 이게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면 삶이 얼마나 지옥같을까?
걸어가다가도 감탄한다. 두 다리가 없다면 대지를 이렇게 든든하게 밟는 기분을 어떻게 맛볼 수 있을까?
1990년대 초반, 상계동 주공아파트에서 살 때 나는 중계동에 있는, 생활보호대상자들이 산다는 장기 임대 아파트 단지를 지나간 일이 있었다. 그때 그 아파트 건물들은 왜 그리도 칙칙하고 허름해뵈던지. 결국은 같은 콘크리트 박스인데도 보는 관점에 따라 그토록 달라 보였다. 그 동네를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왠지 초라해뵈고 무력해보였다.
이런 내 시각은 나 혼자만 갖고 있었던 게 아니라 당시 중간층이라고 자부하던 이들의 상당수가 공유했던 모양인지 학교에서도 학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이 임대아파트 아이들과 어울리는 걸 꺼려했고, 교사들은 그쪽 동네 아이들이 공부도 못하고 말썽을 잘 피운다고 해서 눈쌀을 찌푸리곤 했다.
아마 중산층 내지 중간층 사람들이 임대아파트 주민들을 보는 이런 관점에는 일말의 두려움 같은 게 내재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잘못하면 저런 계층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공포감 같은 것이. 우리가 장애인들을 보는 시각에서도 비슷한 두려움같은 것이 내재되어 있어서 그것이 간혹 혐오감으로 드러나기도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간 나는 다양한 개인적인 변천사를 거친 끝에 요즘은 군포시의 아담한 주공 아파트 단지에 자리잡고 있는 15평짜리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갓 지은 새 아파트다.
이곳 주민들은 대체로 노령자들 아니면 아주 젊은 부부로 양분되며, 우리가 중산층, 혹은 중간층이라 부르는 계층 사람들은 분양아파트들에 주로 살고 있고 이 임대 단지에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나는 이 작은 새 임대아파트에 아주 만족하면서 잘 살고 있다. 특히 요즘 같이 경제가 불안정하게 뒤흔들리고, 우리나라의 미래가 아주 암담해보이는 시절에 그저 소액의 임대료만 내면 되는 이런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게 여간 다행스럽게 여겨지지 않는다.
이런 20년 장기 임대 아파트는 과거 같으면 아파트 몇 채 값에 해당하는 비싼 전세비를 마련하지 않아도 되고, 또 이년만 되면 전세비를 올려주거나 다른 데로 이사가야 할 필요가 없어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제공해준다.
그리고 요즘처럼 아파트 시세가 무섭게 떨어지는, 혹은 떨어질 조짐이 보이는 시대에 거액의 융자가 들어 있는 자가 아파트에 살고 있지 않으니 원리금 상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아파트 시세가 오르고 내리는 것에 일희일비할 이유도 전혀 없다.
게다가 이런 아파트들은 평수가 아주 적어, 설사 우리나라에 국가 디폴트 같은 혹심한 재앙이 닥쳐오고, 소비의 핵겨울이 닥쳐온다 해도 생활비가 별로 들지 않으니 그만큼 견디기가 더 쉽다.
그래 나는 이런 주택을 마련해준 아내의 공을 연신 치하하면서 이런 주택이야말로 수도권에 사는 소시민들의 미래형 주택이라고 연신 감탄해마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친구들을 만나거나 외부인들을 만났을 때 내가 임대주택에 산다고 하면 그들의 표정에는 묘한 기류 같은 것이 어린다. 술값이나 차 값도 자기들이 내려 든다. 그런 걸 보면서 나는 혼자 속으로 빙긋이 웃는다. 내 과거의 관점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같은 단지의 분양아파트 사람들이 만든 카페 같은 데를 들어가보면 어떤 이가 임대 아파트 앞에 왠 중형차가 그리도 많으냐고 분개하는 것 같은 글이 보이기도 한다. 아마 분양을 받기 위해 많은 융자를 받았기에 매달 이자 상환하기에 바쁜 이들이 볼 때 돈 많은 이들이 뭔가 수를 써서 임대아파트를 얻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임대 아파트 사람들에 대한 과거의 나 같은 편견의 그림자, 자취 같은 게 얼핏 보이기도 한다.
나는 시가 십억이 넘는 아파트나 주택을 가진 이들을 별로 부러워하지 않는데 그것은 요즘의 경제적 시류 때문뿐만이 아니고 그들이 그런 정도의 재산(요즘처럼 아파트 시세가 떨어질 때는 그 호가라는 게 진짜인지 의심스럽기도 하지만)을 가진 건 지극히 정당하다고 여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개 젊은 시절부터 노후를 염려하는 마음에서 부지런히 재산을 축적하기 위해서 살았고, 그 때문에 본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기가 쉽고, 그 대가가 바로 그 아파트 한 채인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젊은 시절에 대기업에 들어가서 몇 십년 노예처럼 죽도록 일한 대가로 그 정도도 얻지 못한다면 그건 정말 억울한 일일 것이다.
나는 그와는 정반대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들만 하고 살아왔고 그 대가는 장기임대아파트다. 그러니 내가 불평할 이유가 어디 있으랴. 나는 지금도 누가 나에게 네가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서 노후에 몇십억의 재산상의 안정을 얻기 위한 삶을 살겠느냐, 아니면 지금처럼 살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기꺼이 후자를 택할 것이다.
젊은 시절 나는 노상 내가 못살게 될까봐 불안해 하면서 전전긍긍하고 살았다. 비교적 안정되게 살면서도 그 안정이 깨질까봐 내심 두려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지리산 부근에서 젊은 비구니 세 사람을 태우고 서울로 오게 되었는데, 운전하는 동안 어느 한 여승이 자기 동료에게 무상에 관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여기서 무상이란 항상함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가슴을 막고 있던 어떤 벽같은 것이 툭 터져나가면서 갑자기 전신이 쇄락해지고 가벼운 액스터시 같은 것이 찾아왔다. 그렇지.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지. 그런데 어째서 나는 늘 영원한 안정을 구하려고 그리도 노심초사했을까?
살아가다 보면 남들이 들을 땐 별 뜻 아닌 말도 본인에게는 대단히 깊은 통찰로 다가오는 때가 있다. 그때가 바로 그런 때였다.
그 때 나는 결심했다. 삶의 이 본질적인 불안정을 기꺼이, 즐겁게 타고나가겠다, 고. 절대로 안정에 안주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그렇게 마음먹고 나자 그리도 찾던 안정이 비로소 내 마음에 찾아왔다.
그건 참 묘한 경험이었다. 불안정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자세가 될 때야 비로소 우리는 참다운 안정감이 뭔지를 맛볼 수 있다는 것. 삶의 묘한 아이러니다.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 삶을 여유롭게 살다 보면 목표를 향해 정신없이 매진하면서 분주하게 살던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
과거에는 방배동 같은 부촌에서 종이박스를 수집하는 것으로 근근히 사는 노인네들을 속으로 좀 딱하게 여겼는데 요즘은 그 노인네들이 달리 보인다. 대체로 무리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몸을 움직이면서 일하는 이들은 노상 돈버는 일에 머리를 잔뜩 쓰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느라 제대로 걷지도 않고 값비싼 미식을 자주 즐기는 이들보다 심신이 더 건강하다. 그러니 렉서스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은 유한 부인의 눈에는 종이박스를 잔뜩 실은 작은 바퀴수레를 끌고 가는 노인 부부가 비루해뵈고 한심해 뵐지 모르겠으나 나는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그 노인네들이 훨씬 더 행복하고 건강해뵈고, 삶을 더 밀도있게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건강에 관한 사례집들을 보면 돈이 많다는 것이 꼭 본인의 삶에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로또 복권 같은 것에 당첨된 이들치고 말로가 좋은 이들이 거의 없고, 심신의 건강도 심하게 망가져 결국은 예전에 하던 일로 돌아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던 어떤 아주머니는 갖고 있던 땅의 시세가 하루아침에 엄청나게 올라 떼부자가 되어 식당 일을 그만두고 잘 먹고 잘 지냈는데, 그러다보니 건강이 아주 나빠지고 암까지 걸렸단다. 그래 다시 식당에서 일하고 싶어서 예전에 일하던 식당에서 잡일을 했는데, 놀랍게도 암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것은 어느 분이 전국을 돌면서 수집한, 건강과 관련된 실화들 중의 하나다.
물질적 가치만을 쫓으면서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이들은 가끔 우리 삶이 얼마나 경이롭고 신비한가를 잊고 살기가 참 쉽다. 내 친구 하나는 어떤 여성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런 사실을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와 해물탕을 먹다가 그가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눈치챘다. 왜냐하면 그는 해물탕을 먹다 말고 조개껍데기를 하나 집어들고, 하, 이게 어떻게 이렇게 생겼지? 참 묘하다, 묘해, 하면서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기 때문이다.
평범한 조개껍데기 하나를 들고 감탄하는 사람은 거의 틀림없이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참다운 사랑은 성욕과는 다르다. 그것은 사람의 내면에 잠재된 거대한 에너지를 일깨워줘 길가의 돌멩이 하나조차도 예사롭지 않게 보이게 한다. 참다운 사랑을 해본 사람만이 그걸 안다.
가끔 나는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감탄한다. 어떻게 눈썹이라는 저런 신기한 게 생겼지? 어떻게 이목구비가 이렇게 절묘하게 이루어졌을까? 목욕을 하다말고 물의 신비함에 감탄하기도 한다. 그 영롱하고 투명한 물방울들은 도저히 그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으리 만치 아름답고 신비하다. 다이아몬드나 황금도 물이 지닌 그 본래적 가치와 아름다움에 비하면 지극히 하찮다.
그리고 오줌을 눌 때마다 오줌이 그렇게 시원하게 나오는 것에 감탄한다. 이게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면 삶이 얼마나 지옥같을까?
걸어가다가도 감탄한다. 두 다리가 없다면 대지를 이렇게 든든하게 밟는 기분을 어떻게 맛볼 수 있을까?
댓글목록
이해춘님의 댓글
이해춘 아이피 (211.♡.60.149) 작성일
그오줌마져도 약이된다고 버리지말고 신은마시라고했읍니다...함마셔보세요..(요로법 )
몸이 좋아야 마음도좋아지는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