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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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ala (183.♡.110.132) 댓글 9건 조회 8,394회 작성일 11-03-29 15:47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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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만님의 댓글
서정만 아이피 (221.♡.67.204) 작성일
보통 리플을 잘안다는데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요....
무조건적사랑이 고통을 참고 견디다가 죽음조차도 무릎쓰는 사랑입니다'는 아닌것같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교회다녀서 그렇게 믿었는데 예수님이 우리대신 고통받아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다고
배웠고..그래서 희생이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사랑에는 고통이 동반된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저자신을 조건없이 사랑하다보니 사랑에는 조건이나 고통 의무랑은 상관없었습니다..
사람마다 관점이 틀리겠지만 진정한 신이 계시다면 우리가 고통받는 조건을 달아서 구원을 주시는 신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사랑 =조건없는 사랑인데..고통을 참고견디는 조건을 다는것 자체가 모순인것 같아요..
역설적으로 설사 제가 고통을 참고 견디든지...그렇지 않던지 ...라라님이 그런 의견을 가졌던지
안가졌던지 상관없는것같습니다...다만 선택에 따른 귀결은 있는것같아요...
저도 사랑이 고행을 통해 도달한다고 철썩같이 믿었고 그래서 신이 고통받는 나를 왜 몰라주나?하고
실망했는데 돌아보면 그런 고통,구속은 제스스로가 만든거였습니다...
Lala님의 댓글
Lala 아이피 (218.♡.100.82) 작성일
짧지 않은 글을 인내심을 갖고 읽어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이란 문자그대로 조건없는, 댓가없는 사랑입니다. 세상살이 해보면 말이 사랑이지 실은 댓가를 주고 받는 거래, 즉 가식적 위선적인 사랑이 너무 많지요. 하나님의 사랑이란 개념을 사람이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경험이 바로 부모님이 나에게 주는 사랑입니다. 세상속에서 남녀간의 사랑도 알고 보면 서로 조건이 맞아 기대치와 만족을 주고 받는 욕망이 우선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서로 조건이 맞지 않고 기대가 깨지고 만족이 충족되지 못할때 미련없이 헤어지지요. 크리스쳔중에서 부모님이 없는 사람, 즉 어릴때 부모님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분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데 힘이 든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든 자라면서 진실하고 헌신적으로 자신을 돌보아준 대상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 사랑을 전혀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품고 살아가기가 많이 힘들것은 당연합니다. 성경속에서 예수님의 등장과 십자가 대속은 구약과 연결지어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에게 자기대신 양이나 송아지를 바쳐 자신의 죄를 고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죄는 사망과 연루되어 있지요. 이이야기는 이정도 하고요.../서정만님이 자신을 사랑하다보니 사랑에는 조건이나 고통 의무와 상관없다고 생각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사랑이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길 바랍니다. 저는 자신을 사랑한다는 표현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나자신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적당한 표현아닐까요? 그리고 저같으면 관심을 나자신보다 남에게 돌리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 헌신적이고 조건없는 사랑은 반드시 고통이 따릅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돌아오는 댓가가 없기 때문에 그 사랑이 즐거울리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무조건적인 사랑은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적당히 참고 견디다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극한의 고통까지 감수하고 참고 견딘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조차도 희생할 각오이지요. 예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이야기 한 것이지요. 여기서 조건이란 댓가입니다. 댓가없는 사랑이 조건없는 사랑입니다. /
권보님의 댓글
권보 아이피 (180.♡.6.2) 작성일
무엇이 교만일까요 ?
님께서는 ' 기독교의 교리나 사상 그 실천원리는 거의 완벽한데 사람이 못따라가고 있는 형국이라고 보면 정확합니다. '라고 하십니다. 저는 사람이 못따라가는 교리와 사상 그 실천원리라면 따르지 않겠습니다. 저는 하느님께서는 지극히 상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은 하느님이라면 전 그 하느님 안믿겠습니다.
사랑하는 Lala님 조금만 물러나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은 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기독교란 그릇에만 담기에는 넘치게도 크시고 훌륭하시고 위대하시며, 무소부재하시기에 계시지 않는 곳이 없기에 기독교에도 계시고 불교 안에도 계시며 심지어는 뉴에이지집단 속에도 계시다는 것을 보실 수 있는 님이시기를 간곡히 기도합니다.
Lala님의 댓글
Lala 아이피 (218.♡.100.82) 작성일권보님^^ 관심을 갖져주시어 고맙습니다. 님이 교회나 성당에 다니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답해 드립니다. 라라가 생각하는 기독교신앙의 가장 큰 목적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자면 영생을 믿을 수 있어야 되겠지요. 천국의 개념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저는 그것을 구원받음 이라고 생각하지요.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받습니다. 그리고 신앙인이라면 이땅에서 살아온 일기장대로 심판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믿음은 자신과 하나님만이 갖는 친밀한 관계입니다. 제가 사람이 못따라가고 있다고 표현한 의미는 인간이 죄된 본성을 갖고는 완전하게 예수님처럼 똑같이 행동하기는 힘들다는 뜻입니다. 이시대 물질이 신이 되어버린 시대를 두고 한말입니다.하지만 역사상 수많은 기독교 순교자들이 나왔지요. 자기 목숨을 진리와 바꾼 사람들의 믿음과 용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갖게 해줍니다. 실천이 어렵다는 뜻이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요. 님이 교회에 무슨 목적으로 왜 다니셨는지 생각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님은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진리를 깨닫을 수 있다는 말씀이라면 라라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창조주 절대자 하나님을 인정하시는 분이라면 소위 도판의 명상 마음탐구와 전혀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리는 어디에도 있으니 동의해 달라는 말씀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가르침은 성경을 벗어나 어디에도 찾을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용어와 개념이 성경에서 가장 먼저 비롯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성경이 갖는 절대적 권위를 언급할 필요도 없이 이미 성경속의 말씀 그 자체가 갖는 절대적 진리로서 한치 의심조차 갖게 되면 온전한 믿음이 성립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믿음은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고 옳은 소리니 다 진리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믿거나 아니거나 둘중의 하나입니다. 어중간한 회색은 있을 수 없지요.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푼 사랑의 약속입니다. 아마 지금 이야기하는 라라의 말들은 님이 믿음을 갖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님은 님의 판단가치를 갖고 하나님을 선택하려 하고 있습니다. 님의 선호대로 하나님을 여기도 담았다가 저기도 담았다가 마음에 드는대로 어디에도 진리가 있으니 교회에만 하나님이 있으랴는 법이 있냐하며 스스로 판단하려 하고 있지요. 믿음을 가지려면 우선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데 하나님을 알 수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경을 통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 아니 지구상 어디에가서 물어보십시요? 성경외에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님이 이야기하는 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제가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성경을 왜 쓸데없이 전혀 기독교신앙과 무관한 치유명상, 마음탐구 스토리속에 왜곡되게 인용하느냐 입니다. 도판에는 무신론자 혹은 괜한 종교혐오주의자가 유난히 많습니다. 그것 자체가 과거 마음의 상처가 된 분들이지요. 라라가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욕먹을 수도 하지만 진짜 교리를 아는 사람은 아마 이런 곳에서 이야기조차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라는 과거 이런 도판에서 지내온 경험때문에 하게 되는 것이지요.아마 여기 정통불교신자가 지나가다가 보게 된다면 라라처럼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라 추측되지요./
권보님의 댓글
권보 아이피 (180.♡.6.2) 작성일
Lala님
교리는 인간이 만든 것이랍니다. 그 교리는 기독교교리사를 주욱 훓어보셔도 쉽게 아실 수 있습니다. 님의 교리대로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교리가 완전하고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시는 님의 교만도 대단하십니다.^^ 교리는 변해왔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교리가 완벽하다고 보거나 또는 더 이상의 수정은 없다고 생각하시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님께서 믿는 개신교의 교리란 것도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통해서 기존의 기독교 교리를 재정립한 것에 지나지 않거니와 루터 이후의 수많은 교단을 형성시킨 이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교리인 것은 잘 알고계시리라 믿습니다. 종교개혁이란 것을 거치면서, 상처입은 카톨릭은 곪고 썩은 부분을 도려내며 자성의 시간을 가지면서 동양으로 예수회 신부들을 보내어 선교와 교육을 통해 수집한 하느님이란 존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와 교회 밖에 구원이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깊이 고민한 끝에 수백년의 세월이 걸려서 결국은, '교회밖에도 구원이 있음'을 인정하였습니다.
이렇듯 완벽할 수 없는 교리를 붙들고 지금도 아파하는 님을 보면서, 교리에 얽매여 님이 신봉하는 교리와 다른 가르침을 보며 힘들어 하실 것이라면 그런 교리 따위는 벗어던져버리시기를 권합니다. 교리 그것이 없더라도 하느님은 존재하시며, 교리를 벗어던져도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기에 그렇습니다.
진리의 나무는 한그루랍니다. 기독교에서 오직 한분 하느님(하나님)을 믿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 하느님을 보는 시각은 보는 이마다 달리 볼 수 있고, 기독교적으로 표현하면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 자기가 만져본 것들을 하느님의 모습이라고 달리 나타내고 우겨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장님들이 만져서 느끼고 알아낸 코끼리는 코끼리의 전부가 아닌 것은 잘 아실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 한그루인 하느님은 이 종교집단에서는 하느님이라 일컸고 저 종교집단에서는 부처라 하고, 또다른 집단들에서는 '야훼', '알라', 등으로 불리울 뿐이랍니다.
성경을 기독교 밖에서 달리 인용하거나 또는 다른 시각에서 읽는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성경은 기독교의 전유물이 아닌 것은 인정해야하지 않나요? 성경을 히브리족들의 신화와 예수의 어록, 그리고 바울의 서신으로만 읽어도 그 아름다운 말씀이나 지혜, 인간을 이해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는 책이며, 때로 피곤한 이의 머리를 누일 수 있는 베개로 쓰인다하여도 그 쓰임은 더 없이 좋은 것이거늘.........
Lala님 부디 님이 믿는 신앙에 아니 님이 믿는 교리에 함몰되어 님의 하느님을 가두고 억누르고 윽박지르지 않고, 보다 자유한 님이 되시어 진정 하느님과 일치되는 님이 되시기를 빕니다.
Lala님의 댓글
Lala 아이피 (218.♡.100.82) 작성일권보님^^늦은 시간까지 주무시지 않고 관심을 표명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아주 재미있습니다^^그런데... 님은 라라가 언급한 내용과는 다소 엇박자의 반응을 보여주심에 님의 덧글에 대하여 라라의 소견을 다시 덧붙일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라라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기독교교리가 진리추구에 있어 절대적이며 오직 그것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개신교의 교리에 라라가 함몰되어 상처받으며 아파한 적, 한번도 없습니다. 다만 님이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것이지요. 제가 이사이트에서 이같은 종류의 글을 올리는 이유를 2차례나 반복하여 설명하였습니다. 마음공부하는 분들이 왜 성경말씀을 두고 이러니 저러니 종교가 어떠니 하며 자신의 주관적 잣대로 성경말씀이나 종교자체를 왜곡하느냐 말입니다. 라라가 보기에 그 이유는 성경말씀을 자의적로 해석하거나 기존 종교를 비난하면서 자신의 주장에 영적 권위를 덧입히거나 자신의 수행법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기존종교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할 목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하지만 그것도 별로 관심밖이지만 다만 라라는 만일 어떤 사람이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성경을 절대적 권위로 존중하여야 하며, 그것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라라는 자신있게 말하지만 새신자가 성경공부를 통하여 기독교적 진리에 대하여 공감하고 어느정도라도 믿음이 생겼더라면 님처럼 코끼리 만지기 하는 동화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거라고 봅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입니다. 불교같은 마음집중 수행등을 통하여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력종교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찾고자 한다면 어디에도 있습니다. 남이 뭐라 할 만한 성질이 아니지요. 기독교에만 진리가 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밖에도 기독교가 있을 수 있지요. 교회를 건물로 생각한다면 말이지요. 님은 가정의 의미를 단순히 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족의 구성원이 없는 집을 가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기독교인이 모인 곳은 모두 교회입니다. 님은 기독교인이 맞는지요? 라라가 보기에 전혀 아닙니다. 기독교를 바르게 이해했다면 반듯한 크리스천이 이미 되어있었겠지요. 그냥 여기저기 좋은 말을 수집하는 정도입니다. 여기분들은 예수를 한사람의 역사적 성현으로 생각할 뿐이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생각은 전혀없는 분들입니다. 기독교는 현실종교입니다. 현실은 적나라합니다. 이땅의 종교현실에 상처받고 종교에 회의적인 분들...특히 기독교에 실망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다시 성경을 읽어보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제대로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교리도 공부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배우기 위해 교회가서 말씀도 듣는 것입니다. 믿음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서 믿음의 성도들과 교제도 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서 봉사와 섬김을 작은 것부터 훈련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삶속의 간절함으로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교회의 교파가 수십개든 나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라라도 하나 만들정도로 신앙이 바르게 깊어 질수 잇다면 다행이지요. /
Lala님의 댓글
Lala 아이피 (218.♡.100.82) 작성일라라는 거창한 이야기는 별로 즐기지 않지만 [자유로움]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고 싶군요. 자유란 말이지요. 마하라지가 말했듯이 자기자신으로 부터의 자유가 궁극적인 자유입니다. 자신을 죽인다는 끔찍한 표현도 사용하지만 나 혹은 내것이라는 속박에 얶메여 살아가는 인간의 슬픈 운명을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요.어린시절 내가 잠들고 있을 때 부모님이 나를 위해 기도하듯 말입니다. 이런 사랑을 느끼며 저또한 하나님이나 부모님에게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말이지요. 고아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눈에보이진 않지만 부모님같은 헌신적 사랑을 갖고 나를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이 있는데 말이지요. 우리아이가 처음 뛰기 시작했을때 돌부리걸려 넘어졌어도 금방 일어켜세우지 않습니다. 스스로 일어나 다시 뛰기를 바라지요. 정말 상처가 나서 도저히 일어나지 못하겠다고 판단될 때 비로소 일어켜 세워줍니다. 하나님은 늘 이렇게 우리를 지켜주시고 있지요. 진정한 자유는 내가 부모없는 자식으로 고아를 자처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품안에서 자유와 평안이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전자제품을 구입하면 반드시 따라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제품 사용설명서입니다. 요즘 이것 해독하기도 만만치 않습니다만 제대로 사용하고 고장이 났을때를 대비하여 읽어두는 것이 필요하지요. 그 제품은 그 제품을 생산한 사람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이 가장 잘 알고 있지요. 성경은 인생이란 제품의 사용설명서입니다. 성경속에 인간과 인생에 대한 모든 지혜가 다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양도 만만치 않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에나가 같은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혼자서 바이블을 연구하듯 읽는 내성적인 친구가 있었는데 교회는 기독교인들 만 보면 죽어도 가기 싫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라도 인터넷으로 들어보라고 권해주었는데 얼마전 그 친구가 집가까운 개척교회에 등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라라가 얼마나 기뻣는지 모릅니다. 한국에서 전도의 가장 큰 장애는 크리스천 자신들이지요. 기독교인은 세상사람들과 달라야 하는데 그것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거룩이란 말의 의미는 세상과 스스로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거룩과 경건은 일상적 삶속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세상법칙에 따라 살아가는 불신자들 눈에는 더욱 눈에 띄지 않습니다. 나를 죽이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가장 수승한 방법이더군요.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 나보다 더 약한 사람, 나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들을 보고 살면 나자신의 불행이나, 약함이나, 어리석음에 집착 할 필요가 없어지더군요. 내가 고아가 되어 홀로 판단하고, 내가 하나님이 되고, 이 세상을 좁은 내 두어깨에 짊어지고, 무상한 인생을 논하며, 세상과 인간의 본질이 어떠니 뭐니 하며 에고를 더 키운 시간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회개란 단순히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지요. 이때까지 세상 욕망을 쫓으며 살아가다가 하나님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획기적 변화를 뜻합니다. 삶의 우선순위, 삶의 중심을 오직 하나님에게 두는 결단입니다. 이것이 라라의 진정한 자유입니다. /
권보님의 댓글
권보 아이피 (221.♡.50.89) 작성일
Lala님
사랑 가득 담긴 글 고맙고 감사합니다.
일념집중님의 좋은 충고를 받아들여
우리의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지어도 이미 나눈 말씀으로 충분하리라 믿습니다.
님 늘 행복하시고 하느님의 은혜가 님과 님의 가정에 충만한 나날이시기를 빕니다.
Lala님의 댓글
Lala 아이피 (14.♡.31.119) 작성일권보님^^ 이렇게 상대해주시어 글을 올릴 기회가 주어졌지요. 라라는 다소 긴장감있는 토론을 즐기는 편입니다. 서로 좋은 말과 천편일률적인 동의만 주고 받으면 게시판에 열정이 식어버립니다. 말이란 참으로 오묘합니다. 성경에서는 말자체가 권능이자 하나님이라고 되어있지요. 대화 재미있었고 유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