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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와 장소의 해체

작성일 14-12-01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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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언덕 (61.♡.68.58) 조회 5,81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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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대부분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그 상처가 모두 지워진 것은 아니다. 아마도 지워지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어제 단원고 교장이 그 동안 빈 강의실로 둔 2학년 교실을 이제 철거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물론 자녀를 희생당한 학부형이나 살아남은 2학년 학생들은 반대를 했다. 학생들은 졸업할 때까지라도 그대로 두길 바란다고 했고, 학부모들도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있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학교 측은 재학생들이 특히 1,3학년 학생들이 2학년의 빈 강의실을 보면서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면학분위기의 조성이 어렵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특히 후자는 일부 학부모들도 동조를 하고 있다. 반면에 학생들은 아직 가슴 속에는 그 날 같이 배를 탄 친구와 함께한 추억과 그리고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그들과 함께한 그 장소를 없앤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장소의 해체는 곧 누군가에 대한 기억을 해체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는 죽어간다는 말과 같다. 삶과 죽음은 생명의 두 모습이다. 죽음의 장소를 철거하고 삶의 장소로 바꾸려는 시도에는 삶과 죽음을 양분하고 삶을 긍정하고 죽음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결코 건강한 삶의 자세는 아니다. 이번 사건은 단원고 학생들 모두에게 어느 날 갑자기 아주 풀기어려운 질문 하나를 던져주었다. 왜 사느냐는 심각한 실존적 질문이다. 그들은 아직 여기에 대해 최소한의 답도 얻지 못한 상태에 있다. 이런 상태에서 공부하라고 대학 가라고 한다고 공부가 될까.

기성세대들은 먹고 살 것을 걱정한다. 그러나 지금 그 학생들은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왜 사느냐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다. 스스로 그 질문에 엉성한 답이라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었으면 좋겠다. 설사 빈 강의실에 놓인 국화꽃과 벽에 붙은 스티커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울지라도. 기왕 일어난 사건을 일부러 잊히게 하거나 은폐하기보다 그것을 통하여 배울 수 있다면 영어, 수학, 국어만이 교육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더 진정한 교육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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