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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꽃 떨어 질 때

작성일 07-06-0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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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몽 (210.♡.107.100) 조회 5,421회 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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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꽃이 흰색입니까? 아니면 붉은색입니까? 아니 사과 꽃은 빨간 장미꽃처럼 작은 꽃봉오리가 조그맣게 영글다가 하얗게 활짝 피어납니다.


사과나무 한 그루에 어떻게 그리 꽃이 많이 피나요. 어림잡아 이 삼백 송이 흰 꽃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줄기줄기 마디마디 마다 사과 꽃이 재재거립니다. 새순처럼 작은 사과 꽃이 송이송이 옹알옹알 구슬 같은 사과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긴 챙의 모자를 쓰고 목에는 수건을 감고 엄지와 집게손가락에만 구멍을 낸 장갑을 낀 채 하루 종일 사과 꽃을 땄습니다.


새끼손톱 삼분지 일도 안 되는 엷은 흰 꽃을 꺾다 보니 긴 챙의 모자 위로 사과 꽃봉오리가 여름날 소나기 빗방울처럼 후두두 떨어집니다.


전북 장수의 고원은 아침과 저녁이면 추울 정도로 고랭지랍니다. 그러다 한낮이면 양광의 태양이 내려쪼여 푸른 잎사귀와 꽃봉오리를 햇볕에 달굽니다. 그것이 장수 사과가 단 이유랍니다.


한참 사과 꽃을 따고 있는데 과수원 주인이 산 두릅을 살짝 데쳐 초고추장을 함께 내어 놓았습니다. 순한 탁주 한 잔과 씁쓰레 진한 두릅 향이 입안에 가득합니다.


스프링쿨러에 물이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뿌연 수증기가 가는 무지개를 잠시 허공에 그려 놓습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 연신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가며 꽃을 땁니다. 손톱은 푸른 엽록소가 배여 차츰 파래져 갑니다. 그 보다 더 파란 하늘이 머리 위로 펼쳐져 있습니다. 코를 찡긋거리며 하늘가로 걸어봅니다.


경운기가 털털 돌아가고, 과수원 창고 한 옆에 비료가 가득 쌓여 있고 털북숭이 개가 그 아래를 막 지나갑니다. 과수원 옆 온실 안은 고요합니다.


대지와 빛과 공기 속에 잠겨 이렇게 일을 하다보면 몸 안에 발효되는

이상한 기운에 녹아 잊혀진 태곳적 꿈을 잠시 떠올리며 흥얼흥얼 노래하는 자신을 들여다봅니다.


한참을 일하다보니 과수원 주인이 확성기를 통해 라디오를 들려줍니다. 넓은 산등성이 과수원이 노래로 가득 울려 퍼집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그 얄궂은 옛 노래에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맨 시간들이 풀어져 나가고 ‘꽃신을 신던 그날 밤’에 박자를 맞춘 손길이 빨라져 오후가 되니 이제 제법 사과 꽃 따는 솜씨가 좋아졌습니다.


춥고 기나긴 겨울을 견뎌내고 얼음이 녹고 싹이 돋는 새 봄은 사월과 오월 중에 잔뜩 몸을 풀어놓고 꽃은 떨어지고, 뜨거운 여름이 혼미하게 막 시작하려는 참 모호한 계절입니다.


하지만 오늘 비록 사과 꽃은 떨어졌지만 가을이면 토실한 장수 사과가 가지마다 주렁주렁 빨갛게 열리는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황금빛 노을로 붉게 익어가는 과수원의 낙조가 그날 참 아름다웠습니다.



댓글목록

자몽님의 댓글

profile_image 자몽 아이피 (210.♡.107.100)
작성일

한 참 과수원 주인 설명 듣고 처음 사과꽃 땄는데....

나중에 돌아와 보니 내가 엉뚱하게 따서 혹시 농가에 민폐 끼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일일농부 일일행복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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