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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요가 선생님들

작성일 08-01-17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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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몽 (203.♡.106.18) 조회 4,43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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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교수님이 이끄는 바라보기 꾼들은 요가나 태극권을 많이들 하시고
깨달음과 삶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몸과 건강에 대한 반성과 함께 여기에 자극받아 요가를 먼저 시작하였다.
처음 강습실에서 별명이 '통나무'아저씨였다. 근육은 굳어있고 아마 척추와
골반도 꽤 어긋나 있었나 보다.
요가를 하다보니 먼저드는 생각은 옛날 교실에서 벌 받는 체벌과
군대 시절의 기합이 떠올랐는데 돈주고 사서 고생 하는 것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근육이 당기고 저려오는 것이야 살아온 세월 탓이겠지만
때론 몸이 후들후들 떨리고 심할 때는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 작은 고통이 어느새 작은 희열로 바뀌고
내 신조가 삽질을 했다면 무엇이든지 3년은 해보고 그 때가서 따져본다는
마음도 작용하였다.
요가를 해보니 보통 사람은 3주 정도 해보고 안나온다.
좀 끈기가 있어도 고작 3개월이다.
딱 3년을 하고나니 스승이 3번 바뀌었고 학생은 단 3명만 남았다.
나머지는 들락날락 얼굴이 수시로 교체되었다.
여러 스승를 두루 경험해 본 것도 하나의 수확이였다.
어떤 스승은 무섭게 생겼는데 다양한 아사나를 아기자기하게 부드럽게
가르치셨다.
어떤 스승은 작달만 하고 상냥한데 한 동작을 깊고 그윽하게 이끌면서
제자를 한계 상황으로 몰아붙이면서 가르치셨다.
어떤 스승은 하나의 동작, 호흡의 일치, 정신 상태의 합일을 강조하며
좀 FM 스타일로 가르치셨다.
알고보니 요가라는 테두리 안에 각자의 성격과 원리의 주안점이
다르면서도 또한 공통점이 있었다.
즉 몸과 마음이란 자연 그대로 두면 굽어지고 오그라들고 딱딱해진다.
사람의 본성이란 게으르고 달콤하고 편한 것을 좋아하고 이 욕구만을
쫓다보면 지나친 욕심과 나태에 물들기 마련이다.
나는 요가의 본래 뜻이 '멍에 또는 쟁기'라는 학설에 공감한다. '묶는다'
그걸 걸머진다는 것은 짐이요 한편 구속이다. 왜 구태여 스스로 괴로움의
고통을 껴안나. 더 큰 자유로의 비상이 혹 아닐까.
'일체유심조' '지금 여기 이대로' '무간택 평상심 도'가 유행하고 있다.
나름대로 당위성도 있고 효용가치도 보이고 진리의 일면을 비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이것은 딴뜨라 '맺힌 걸 풀어준다'의 역할을
하는 것 처럼도 보인다. 어떤 해방감을 느낀다.
그러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셋은 캄캄한 분도 많은 듯 하다.
머리의 이해와 믿음으로 끝내거나 숨겨진 과정을 모르거나
한편 환상적 도피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무릇 사람이란 묶고 푸는 걸 자유자재로 해야 겠지만
이 몸과 마음을 잘 수습하지 못하다가는 큰 일 날 수도 있다는 걸
이 나이에 겨우 깨우쳤으니.......
몸과 마음이란 부딪쳐 깨치지 않는다면 사람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이것도 다 경험이고 상식인데.
무엇이든 3년을 정진해 보아야 겨우 참맛을 조금 새길 수 있다.
앉아서 좌선도 안해본 사람이 '전등록'을 논하는 세상이고 보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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