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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는 자의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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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지인 댓글 17건 조회 8,030회 작성일 12-08-2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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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많은 가르침 감사드립니다.
 
몇 일전 답변에 이런 글이 있었는데,
<매 순간 깨어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주시하는 위빠사나에는 ‘주시자’ 혹은 ‘지켜보는 자’가 있지만, 매 순간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에는 다만 존재할 뿐 ‘주시자’가 없습니다. 진리란 다름 아닌 <매 순간 있는 그대로의 것>을 가리키기에 다만 그것에 저항하지 않고 거부하지 않으며,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맞닥뜨리기만 하면 될 뿐
따로이 ‘주시’라는 방법을 동원할 필요는 없답니다.>
 
그렇다면 위빠사나의 주시는 '다만 존재할 뿐이라는' 존재의 단계에 이르는 수행의 한 과정으로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잘못된 수행인지를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톨레의 '지금 이순간을 즐겨라'는 책의 내용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 여러분의 머릿 속에는 오랜 세월 동안 지겹게 반복되는 낡은 녹음테이프가 있습니다. '생각하는자를 지켜보라'는는 말은 바로 이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머릿속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관찰자로서 그 자리에 머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톨레의 관찰자와 위빠사나의 주시자 그리고 선생님의 주시자가 없음의 차이점을 알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댓글목록

공님의 댓글

작성일

이를테면, 인스탄트 커피가 몸에 않좋으니 먹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행동으로는 커피를 마시고 있을때,
의식하는 놈은 누구이고 마시는 놈은 누구 입니까?

무상님의 댓글

무상 작성일

김기태선사님의 말씀이 맞는 말씀입니다.
선사님의 말은 정말 쉽고도 맞는 말입니다.
진리라는 것을 설명할때는 적어도 두세번 읽어야 참맛을 느끼게끔 써야 그럴듯해 보이고
그럴듯해 보여야 따르려는 의욕도 생기는 법이죠.
김기태선사님은 그런거 없이 그냥 이야기 합니다.
쉬워서 따르기 쉽지 않죠.
왜냐면 구도자들은 자신들이 가는 길이 어려워야하고 어려운만큼 가치가 있는 길이라 생각하니까요.

김기태선사는 지금 이순간 존재에는 주시자가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주시자는 에고일 따름이니까요.
주시나 관찰이 면밀한 일이긴 하나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고 의욕하는 목적성이 있습니다.
그런것들은 에고입니다. 커피의 유해 유무에 대해 궁금해하는것과 같은 것입니다.
위빠사나도 방편입니다.

그런데 선사님이 틀린것이 있습니다.
방편을 통째 쓰레기통으로 버리신겁니다.
자신이 건너와보니 뗏목이 필요없더라 그러니 너희도 뗏목을 버려라.
자신은 주시며 관법이며 위빠사나며 모든걸 다 타고 건너와서는
건너오지 못한 사람에겐 건너와서는 필요없으니 처음부터 버리면 된다고 합니다.

선사님 말씀대로 주시나 구도의 과정이 진짜 필요없을까요?
만일 선사님이 그런 과정을 겪지 않았다면 지금의 그러한 존재가 되었을까요?
절대 될수 없습니다.
왜냐면 구도의 내공이 없는 깨달음은 그냥 바보입니다.
막 태어난 얘기처럼 그런 상태가 됩니다.
선사님의 말씀을 한번 봅시다.

"그냥 지금 그대로
저항하지 않고
거부하지 않고
간택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게 천지분간 못하는 애하고 다른게 없는것입니다.
단지 존재의 상태를 표현한 말일뿐, 존재로 이르는 도움말은 전혀 될수 없습니다.

그리고, 깨달음의 상태에 있는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돌맹이의 상태가 의미 없듯이...

깨달았으면 깨달음을 알아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이게 바보와 깨달은자의 단 하나의 차이입니다.

깨달음은 세상이치를 꿰뚫는 것이 아니라
바보 스스로가 바보임을 깨닫는것입니다.

선사님은 이래저래 어차피 바보니까 바보상태로 지내라고 하는겁니다.
이건 어마어마한 차이입니다.
마치 유전자 하나때문에 사람과 원숭이가 갈라지는것과 같은겁니다.
구도없는 깨달음은 없습니다.
자등명 법등명으로 열심히 정진하십시오

김기태님의 댓글의 댓글

김기태 작성일

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선사님이 틀린 것이 있습니다. 방편을 통째 쓰레기통으로 버리신 겁니다. 자신이 건너와 보니 뗏목이 필요없더라, 그러니 너희도 뗏목을 버려라. 자신은 주시며 관법이며 위빠사나며 모든 걸 다 타고 건너 와서는 건너오지 못한 사람에겐 건너와서는 필요없으니 처음부터 버리면 된다고 합니다."

아뇨, 저는 주시며 관법이며 위빠사나며 모든 걸 타고 건너간 것이 아닙니다.
필사적으로 그 모든 것들을 부여잡았지만,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나를 건네어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모든 방법들이 내려졌을 때 문득 저는 건너와 있었습니다.
아니, 이 말을 보다 정확히 표현해 보면
건너가야 할 '저곳'은 본래부터 없었습니다.
저는 이미 처음부터 깨달아 있었습니다.

제가 쓴 책『지금 이대로 완전하다』에도 보면 <내가 걸어온 구도의 길>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라! 일은 전혀 뜻밖으로 결론이 나고 말았다! 나는 이미 진리 안에 있었다! 아니, 나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모든 존재가 이미 진리 안에 있었고, 단 한 순간도 그것을 떠난 적이 없었다! 내가 그토록 애타게 찾아다닌 진리는 저만치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것을 얻기 위해 그토록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정말 너무나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이미 처음부터 진리 안에 있었고, 그랬기에 이렇듯 애쓰고 노력하여 진리를 얻으려던 나의 일체의 시도 자체는 이미 처음부터 불가능을 전제로 한 것이었으며, 그것은 이미 진리 안에 있으면서 진리를 찾으려는 어리석음에 불과한 것이었다...."

무상님의 댓글의 댓글

무상 작성일

참으로 아름다운 선사님의 오도송은
당시에 선사님이 처절한 수행자가 아니였다면 나오지 않았을겁니다.
무지개를 찾아 쫒아다니다 마지막에 주저앉았는데
그순간 온세상이 무지개로 변해버리는 변화는
무지개를 쫒지 않은 사람은 결코 경험할수 없습니다.

지구를 한바퀴 돈 사람과  옆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나
같은 위도와 경도를 점유하고 있지만
지구가 둥글고 열심히 가봐야 제자리라는것을 뼈저리게 느낀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아무리 설명을 한들 옆사람에겐 체험이 아닌 지식일뿐입니다.

선사님의 오도송 또한 수행의 부질없음을 빌어 깨달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에고, 깨달음을 구하는 순간 그것을 놓아버리는 순간
선사님에겐 에고가 모두 떨어져 나간것입니다.
이는 부정의 정점에서 긍정을 만난것인데
선사님의 가르침은 긍정의 결론에 이르게된 부정은 빼버리고
정답인 긍정만을 알려주고 계시는거지요.

지금이데로님의 댓글의 댓글

지금이데로 작성일

길을 가다가 이 길이 아니어서 돌아오고 ,
또 다른길로 가다가 지금 이데로의 길을 찿아 가시는 분이 그것을 부정하며  '저는 주시며 관법이며 위빠사나며 모든 걸 타고 건너간 것이 아닙니다.
필사적으로 그 모든 것들을 부여잡았지만,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나를 건네어주지못했다. '
란 말씀이 방편들을 하고서야 '그 모든 방법들이 내려졌음을 말씀하시잖습니까? 그런데 지금와서  그리만 말씀하시면 걸어온 자신의 삶을 배신,부정하는 것은 아닐런지요.

조금은 답답하네요.
지금 이데로의 완전함을 깨달은 저로서는 그 방편또한 있는 그데로입니다.

김기태님의 댓글

김기태 작성일

모든 것은 다만
지금 이 순간 여기 있는 그대로일 뿐입니다. 그 진실을 알지 못하니까
지금이 아니라 미래에,
여기가 아니라 저기에,
있는 그대로가 아닌 무언가 완전한 것을 구하거나 찾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둘로 나누어 놓으면 필연적으로 ‘방법’이라는 것을 동원하게 됩니다.
가야 할 ‘목표’가 생겨버렸으니, 갈 수 있는 ‘방법’도 반드시 찾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모든 이원성(二元性)은 마음이 만들어낸 허구입니다.
실재하는 것은 오직 지금 순간 여기 있는 그대로의 이것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미 그 속에 온전히 존재하고 있구요.
지금 이 순간의 ‘현재’가 아닌 다른 어떤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如來者 卽諸法如義
“여래[부처, 깨달음, 도]라는 것은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라는 뜻이니라.”라는 금강경의 언급처럼
지금 이 순간 속에 존재하고 있는 우리 모두는 그렇기에 이미 이대로 깨달아 있습니다.
중생 그대로가 부처요, 번뇌 그대로가 보리라는 말처럼
매 순간 있는 그대로의 이 ‘나’가 이미 깨달음입니다.
그러니 다시 무엇을 깨닫는다는 말이며, 무슨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까.
다만
지금이 아니라 미래에,
여기가 아니라 저기에,
있는 그대로가 아닌 무언가 완전한 것을 찾거나 구하고자 하는 그 마음을 내려놓기만 하면 됩니다.
매 순간 있는 그대로의 이 ‘나’가 아닌 보다 가득차고 충만한 남이 되려는 노력을 정지하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지요.
그때 세계는 기다렸다는 듯이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우리 눈앞에 펼쳐보여 줄 것입니다.

토토님의 댓글

토토 작성일

지금내게 주어진 이 비참한 현실이, 지금이순간 내게 올라오는 이 초라한 감정들이 바로 나라고 . 그런상황을도저히 받아들일수가없어 더멋져보이는 나, 더멋진삶, 위태위태한지금의나아닌 완전함, 그 이름 '진아'를 그렇게도 찾아헤맸나봅니다. 지금있는이대로가 다라면 내삶은 볼품없이 끝장날것만같아보여 도저히 이 현실에 발붙이고살수가없었거든요.. ..실제로해보면 또다른데 그때는 너무나 두려웠기에 ..ㅎ 답변을통해 다시한번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

무상님의 댓글

무상 작성일

있는 그대로가 아닌 무언가 완전한 것을 찾거나 구하고자 하는 그 마음을 내려 놓기만 하면 됩니다. 사실입니다. 그러나 절대 내려놓을수 없습니다. 구하는 마음은 끊어지는거지 그만두려한다고 내려지는게 아닙니다. 마치 다 익은 열매가 툭 떨어지듯이 노력이 다하면 저절로 끊어지는겁니 다.

금각님의 댓글의 댓글

금각 작성일

옳은 말씀입니다. 지금 이곳에서 질문을 하는 것도 그 노력 중 하나가 아닐런지요. ...아마도...

지금이데로님의 댓글의 댓글

지금이데로 작성일

ㅎ 무상님 말씀에 진심으로 공감합니다.

행복님의 댓글

행복 작성일

무상님 그 어떤 방편도 유위 아닐까요? 노자가 무위를 강조한건 바로 모든 방편을 버리라는 뜻이고.

무상님의 댓글의 댓글

무상 작성일

말씀 잘들었습니다. 그러나 도덕경의 무위가 방편을 버리라는 내용이 아닙니다.
이 세상엔 도가 아닌게 없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방편 아닌것도 없습니다.
방편과 도가 다른게 없습니다.
방편=방법=way=길=도 (말장난 같지만 잘 어울리네요)
도덕경도 방편이지요.

지금이데로님의 댓글의 댓글

지금이데로 작성일

맞습니다.
맞고 말고요~ 암~~

멋쟁이님의 댓글

멋쟁이 작성일

다들 훌륭하시고 멋지십니다...^^

천지인이 공이고
공이 무상이고
무상이 김기태고
김기태가 토토고
토토가 금각이고
금각이 지금이데로라...
지금이데로가 행복이로구나...ㅎㅎ

뭇남스타일님의 댓글

뭇남스타일 작성일

부처님의 모든 말씀과 경의 내용이 모두 방편이라
있는그대로 또한 방편의 얘기며 도덕경의 말씀 또한 방편이다.

방편은 어리석은 분별망상이라는 병을 치료하는 약이기에
부처님은 이런방편 저런방편을 사람에 맞게 사용하였지만
방편이 법이고 법이 방편이다.

어리석은 이는 방편과 법을 나누지만
지혜로운 이는 방편을 법으로 쓰고 법을 방편으로 쓴다.

지혜로운 스승은 사람과 때에 따라 적절히 방편이라는 법을 사용하지만
어리석은 선생은 하나를 붙들어 매어 고삐를 기둥에 묶게 만든다.

깨달음과 부처가 하나의 관념이 되면 고삐가 기둥에 묶이듯이
있는그대로가 새로운 관념과 말이 된다면 망상의 틀에 꼼짝없이 묶이게 된다.

수행과 방편은 분별심이라는 병을 치료하는 약이기에
건강한 사람에게는 약이 필요없으리라.

강북스타일님의 댓글의 댓글

강북스타일 작성일

도덕경은 방편과 법에 얽매인 분들께 도움을 주기위한 방편일뿐이지요.
부처님 또한 전법 초기 아무리 말씀을 들려주어도 알아듣는 이가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스승과 제자 또한 서로 인연이 닿아야 염화시중의 미소로 통할 수 있겠지요.

천지인님의 댓글

천지인 작성일

김기태선생님 그리고 여러분의 답변 감사합니다.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특히 김기태선생님의 <필사적으로 그 모든 것들을 부여잡았지만,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나를 건네어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모든 방법들이 내려졌을 때 문득 저는 건너와 있었습니다.>는 말씀 오랫동안 저에게 화두가 될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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