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求心歇處卽無事(구심헐처즉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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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8,452회 작성일 06-03-14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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求心歇處卽無事……
"찾고 구하는 마음이 쉬어지니, 아무 일도 없어졌다."
이 말은 임제록(臨濟錄)에 인용되어 있는 말인데, 옛날에 연야달다(演若達多)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얼굴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사람이었는데, 매일 아침 거울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직접 보고 싶어 골똘한 나머지 미쳐버려, 그만 자신의 머리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온 거리를 남김없이 돌아다니며 자신의 머리를 찾아다니는데, 그러다가 어떤 사람으로부터 "네 머리는 너에게 있다."는 말을 듣고는 문득 <찾는 마음>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자 본래 아무 일도 없었음을 깨닫고는 편안히 자신의 길을 갔다는 이야기입니다.[演若達多失却頭, 求心歇處卽無事]
사실은 본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내 머리를 잃어버렸다'는 <생각> 하나가 끊임없이 자신을 결핍되고 부족한 존재로 보이게 하고, 그럼으로써 언제나 헐떡거리며 '없는 머리'를 찾아 붙여서 온전한 존재가 되려고 몸부림치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문득 <찾고 구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되면 그제서야 자신은 이미 처음부터 온전한 존재로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편안히 자신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지요.
'깨달음' 혹은 '완전함'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대로 부족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결핍된 모습이 아닙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끊임없이 '지금의 나'를 부족하고 결핍된 존재로 정죄하고는 '없는 깨달음'을 찾아, '없는 완전함'을 찾아 생(生)의 시간들을 허허로이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아, 어떻게 하면 그 미망(迷妄)을, 그 전도몽상(顚倒夢想)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로 보게 할 수 있을까요?
님은 제게 "이 공부에 있어서 스스로에 진실치 못하고 세상사에도 원활하게 대처하지 못하여 헤매고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견고한 발심(發心)과 힘을 얻을 수 있을까요?" 하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욕망과 두려움을 넘어서야 된다는 여러 가르침을 보고 들어서 알고는 있는데, 항상 잠시도 생각과 현실경계에서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묶여 헤매는 중입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님이여.
무엇을 위한 '발심'과 '힘'을 얻으려 하십니까? 스스로에게 진실하고, 세상사에도 원활하게 대처하며, 헤매지도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요? 그리고 욕망과 두려움을 넘어서서 한 순간도 생각과 현실경계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요?
그러나 '지금'을 부정하고서는 '원하는 미래'도 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선, 스스로에게 '언제나' 진실한 사람이 되고 싶거든,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진실하지 못한 껍질들을 뒤집어쓰고 있음을 먼저 시인하고 인정해 보십시오. '미래의 진실'만을 인정할 것이 아니라, '지금의 거짓과 가식'을 스스로에게 먼저 시인하고 인정해 보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거짓'을 거짓이라고 솔직히 자신에게 시인할 수 있을 때, '지금의 작음'을 작음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 때, '지금의 초라함'을 진실로 스스로에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아, 그렇게 '있음'을 있다 하고 '없음'을 없다 할 수 있을 때, 그것이 바로 님이 말씀하신 진정한 '발심(發心)'이며 또한 '힘'이 아닐까요? 그러한 '발심'과 '힘'은 진실로 오래지 않아 님을 자유케 하고, 또한 겉과 속이 같은 '진인(眞人)'으로 님을 인도해 갈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거짓'을 알면서도 '진실해야 한다'는 것에 속아 오로지 그것을 숨기려 하거나 부끄러워하며 극복하려 하는 모양으로 또 다른 거짓과 인위(人爲)를 되풀이한다면, 끊이지 않는 괴로움 속에서도 님은 끝내 한 톨의 진정한 '자유'도 '진실'도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진실'은 진실하고자 하는 노력을 통하여 '미래'에 가능해지는 무엇이 아니라, 오직 '지금'에만 가능한 무엇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듯 진정한 '힘'이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에 있습니다.
또한 님은 전생과 윤회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만약 그것이 실재(實在)가 아니라면 타고난 재주나 소질 등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님이여.
삶의 진정한 힘은 해석과 설명에 있지 않습니다.
그·냥·존·재·할·때 더할 나위 없는 '힘'과 '평화'와 안심입명(安心立命)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한 손의 손가락은 다섯 개이지요. 그런데 그 각각의 모양과 길이와 쓰임새가 다 다릅니다. 왜 그럴까요? 그런데 님은 그 각각의 모양과 길이와 쓰임새가 다 다른 이유를 해석하고 설명하고자 하나요?
그냥 서로 다를 뿐이지요.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각각의 타고난 소질과 재주는 그냥 서로 다를 뿐입니다. 서로 다르기에 각자의 모양으로 활짝 꽃펴서 어우러지는 이 세상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눈부실 수 있는 것이구요.
그 '현재'의 완전한 하모니와 다양한 생명들의 기가 막힌 축제에 전생이니 윤회니 하는 '관념'과 '해석'이 끼여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 아름다움과 눈부심을 감사히 누릴 뿐이지요.
또 사실 실재(實在)하는 것은 오직 지금 이 순간의 '현재' 뿐입니다.
고맙습니다.

* * *
질문입니다.
달그림자 06-03-13 03:15
처음 글을 올립니다.
선생님과 여러분들의 글을 유익하게 보아오던 중에 몇 가지 궁금증이 있어 질문 드립니다. 불교에서 자주 언급되는 전생과 윤회가 실재한지, 아니라면 타고난 재주, 소질 등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요?
그리고 이 공부에 있어서 스스로에 진실치 못하고 세상사에도 원활하게 대처하지 못하여 헤매고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견고한 발심과 힘을 얻을 수 있는지 우매한 질문 드립니다. 욕망과 두려움을 넘어서야 된다는 여러 가르침을 보고 들어서 알고는 있는데, 항상 잠시도 생각과 현실경계에서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묶여 헤매는 중입니다.
밝은 가르침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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