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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공부는 '공부'를 놓을 때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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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8,226회 작성일 06-03-30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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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님의 오랜 공부의 여정(旅程)에 진심어린 경의와 위로를 보냅니다.
님은 말씀의 말미에 제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선생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것은 감정이 커다랄 때는 힘들지만 공부는 잘 되는데, 이제 커다란 것이 없고 아주 자잘한 것만 있고 있는 둥 마는 둥 할 때 어떻게 공부를 하는가 하는 것이 제가 가장 궁금한 점입니다. 저의 현재 모습에서 어떻게 공부를 지어가고, 어떤 과정에서 자유에 이르는지가 몹시 궁금합니다."라구요.
그런데 님이여.
'삶' ― 지금 이 순간 내가 내 안팎에서 경험하는 이것! ― 과 '공부'는 둘이 아닙니다.
'삶'이 곧 '공부'입니다.
따라서 오직 '삶'밖에 없기에, 그 '삶'을 또다시 '공부'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함으로써 <어떻게>라는 '방법'을 찾고, 그 연장선상에서 "저의 현재 모습에서 어떻게 공부를 지어가야 하는지?"라고 물으신다면, 그것은 명백히 둘로 나눌 수 없는 것을 둘로 나누어놓고, 그 속에서 '없는 답'을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번에도 제가 어느 분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드린 말씀입니다만,
질문의 답은 질문의 연장선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질문이 사라질 때 옵니다.
따라서 님의 경우도 지금처럼 끊임없이 "어떻게 공부를 지어가야 하는가?"라는 의문 속에서 답을 알고자 하신다면 님은 결코 진정한 답을 알 수 없으며, 그렇기에 '자유의 모양'은 있지만 '자유'는 없는 삶을 되풀이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님은 너무나 오랫동안 '공부'라는 걸 들고 계셨습니다.
이제 그것을 놓을 때가 되었습니다.
'공부'를 통하여 어떤 답을 알고, 그럼으로써 '자유'에 이르고자 하는 그 오랜 미망(迷妄)을 이제는 버릴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들고 계셨던 것으로 이미 족합니다.
진정한 공부는 '공부'를 놓을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아니, 어쩌면 님은 '공부'라는 걸 많이 놓으신 듯도 합니다.
오늘 이렇게 제게 질문하신 것도 사실은 '공부의 무게'를 무겁게 든 입장에서라기보다는 그저 그 흔적과 자취가 아직 조금 남아있는 정도로써가 아닌가 합니다. 그만큼 님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매 순간순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살기 시작했으며, 그만큼 '삶'으로 돌아와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님의 질문에 저는 이렇게 답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님은 "감정이 커다랄 때는 힘들지만 공부는 잘 되는데, 이제 커다란 것이 없고 아주 자잘한 것만 있고 있는 둥 마는 둥 할 때 어떻게 공부를 하는가?"라고 물으셨지만, 저의 대답은, 감정이 커다랄 때는 커다란 감정이 있을 뿐이요, 커다란 것이 없고 아주 자잘할 땐 또 아주 자잘한 것만 있을 뿐이며, 있는 둥 마는 둥 할 땐 또한 그저 있는 둥 마는 둥 한 감정만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요, 따라서 거기 어디에도 <어떻게>라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님은 또 "저의 현재 모습에서 어떻게 공부를 지어가고, 어떤 과정에서 자유에 이르는지가 몹시 궁금합니다."라고 하셨지만, 저의 대답은 "다만 현재 모습만 있을 뿐이며, 오직 그러할 때 그것이 바로 자유이다."라는 것입니다. '자유'는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누리는 것이랍니다.
문득 '딱지'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상처는 다 아물었는데, 아직 그 흔적과 자취가 조금 딱딱하게 피부에 말라붙어 있는 것을 말하지요.

제가 보기에 지금의 님이 그렇습니다. 아직 '공부'라는 딱지가 붙어있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상처는 이미 다 아물었다는 것이며, 그 '딱지'는 곧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님 스스로가 이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 * *
선생님께 질문을 올립니다.
길위의풍경 06-03-27 16:05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아직 한 번도 뵙지 못하고 인사도 못 드렸는데, 불쑥 질문을 올리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저는 홀로 공부를 하는 37세 남자입니다. 21살 때 "나는 누구인가?"라는 책을 읽음으로써 불타오른 구도가 도무지 도가 뭔지도 모르면서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재작년 속해 있던 단체를 정리하고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공부는 너무 하고 싶은데, 속해 있던 곳을 정리했고, 아는 바도 없고, 어떻게 공부를 해야할 지도 몰라서 그냥 마음을 놓던 중 놓는 나를 놓게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를 놓았는데, 그때 생각해보니 한 번도 나는 나 자신을 놓은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놓은 것은 내가 만든 나를 놓았던 것이고, 진짜 나는 나를 놓고 있는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기심이 일어서, 놓고 있는 놈을 죽여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를 놓고 있는 놈을 죽이기 위해서 끊임없이 작업을 하다가 갑자기 '지금'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황당하고 엄청난 충격이라 한동안 멍한 게 정리도 안되고, 장시간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나'라는 것은 '지금'에서 만들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걸 알긴 알았는데, "어디서 이게 뭔지 확인을 하나" 하고 고민을 하다가, 한마음선원의 대행스님께 여쭤보자 하고 생각을 하고 한마음선원에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대행스님은 뵐 수가 없고 주지스님을 뵐 수가 있어서 여쭤보니, 그게 한 번 죽은 것(부자상봉)이라고 말씀을 해주셨고 "이제 그냥 살라" 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냥 살라"는 말씀은 한동안 잊고 지내고 답답한 마음만 계속 지속되는 시간이 연속되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지금'에 머무르는 훈련만 계속했고, 왠지 번뇌가 없어지질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주지스님께서 "그냥 살라"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이 나게 되고, 그게 화두처럼 되어서 어떻게 그냥 살까? 하고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다시 한동안 공원과 산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반복하다가 1년쯤 지난 뒤 공부 중에 모든 것이 '나'라고 할 수 없는 지금에서 나오는 것이고, 자잘한 모든 생각도 그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다소 명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나'라고 하는 것은 애당초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번뇌도 그곳에서 나오는 것이고, 번뇌가 번뇌가 아니고 주님의 뜻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알파에서 오메가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전 선사들의 대화나 법문을 보니 상당히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졌습니다. 이것을 알고 나서는 이 생각만 들면 모든 생각이 갈곳이 없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게 되면서 이것도 좀 시들해지고, 왜 번뇌가 없어지지 않고 공부가 언제 끝이 나는가? 하는 고민에 다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슴이 탁 트이고 공부가 끝나기를 계속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연히 인터넷에서 선생님의 육조단경 돈오편 강의 녹취록을 듣게 되었습니다. 별로 기대 없이 듣다가 들어갈수록 저에게 꼭 필요한 말씀만 골라서 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강의 내용이 많지 않기에 한 개의 강의 테이프를 반복해서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저의 공부를 선생님 방법대로 바꾸어서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터라 선생님 강의가 쉽게 와 닿았고, 실행하기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중간 중간 약간의 방황도 있었지만,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간택하지 않고 감정과 생각을 내버려두기를 계속했는데, 재미있는 것이, 처음에는 그 효과를 잘 모르다가 시간이 지나니까 제게 생각(선택)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큼지막한 감정(갈등)은 거의 사라져버렸습니다. 하루의 일과 휴식에서 비교(간택)가 많이 사라지니까 피곤과 지루함이 같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선생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것은 감정이 커다랄 때는 힘들지만 공부는 잘 되는데, 이제 커다란 것이 없고 아주 자잘한 것만 있고 있는 둥 마는 둥 할 때 어떻게 공부를 하는가 하는 것이 제가 가장 궁금한 점입니다.
힘들 때 선생님의 강의 덕분으로 잘은 모르지만 많은 발전을 이루게 된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한 번 찾아뵙고 싶은데, 제가 숫기가 부족한 모양입니다. 저의 현재 모습에서 어떻게 공부를 지어가고, 어떤 과정에서 자유에 이르는지가 몹시 궁금합니다.
다짜고짜 질문 드리기가 좀 이상한 것 같아 저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말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인천에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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