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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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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7,896회 작성일 06-08-0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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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Yes"라는 대답뿐만 아니라 약간의 설명을 곁들임을 용서하소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책으로 유명한, 스리 라마나 마하리쉬를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찾아옵니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언제나 '참나[眞我]'를 얘기하면서, '참나'를 알게 되면 인생의 모든 갈증과 방황이 끝이 나고, 동시에 언제나 '실체(實體)'와 '의식(意識)'과 '지복(至福)' 속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설파했으므로, 그 사람도 자신의 '진아'를 찾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라마나 마하리쉬와 마주 앉게 되었을 때 그는 애틋하게 묻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진아'를 알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저의 '진아'를 알고 생(生)의 이 질기고도 오랜 방황을 끝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마하리쉬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자네가 '진아'를 어떻게 하면 알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은 마치 자네가 이 방에 나랑 함께 앉아 있으면서 어떻게 하면 이 방에 들어올 수 있느냐고 묻는 것과 같네. 자네가 이 방에 이미 들어와 앉아 있듯, 자네가 이미 이대로 '진아'일세. 그러니 찾을 것도, 다시 알아야 할 그 무엇도 없는 거지....."
'지금여기™'님.
'진리'란 그런 것입니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우리는 이미 '진리'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 한 순간도 '그것'과 분리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그것을 다시 찾으며, 또 알 수 있겠습니까. 다만 존재할밖에요.
님은 제게 "절대 불가능하겠지만, 아주 만약에 말이죠? 어떤 이에게 '그냥'을 단 1분이라도 경험하게 해줄 수 있다면, 그걸 경험하는 사람은 문득! 그냥! 아!여기! 하면서 순간 진리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지금여기'에 영원히 머물게 될까요? 그건 이렇게 쌩뚱맞음인가요?"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그건 누군가가 그에게 경험케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그 자신 스스로가 그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설명할 순 없지만, 그것을 경험하는 순간에는 '그냥!'이라는 것도, '아!여기!'라는 것도 없으며, '진리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냥 다만 존재할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건 좀 생뚱맞은 ― 그런데 이 '생뚱맞다'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싶어 국어사전을 찾으니, 그런 말 자체가 아예 없네요 ― 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늘 그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까마득히 그것을 모르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자신이 본래 그 자리에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니까요.
어쨌든 누군가가 단 한 순간만이라도 '지금 여기'에 '그냥' 존재할 수 있게 된다면 그는 영원토록 자기 자신[眞我]으로서의 진정한 힘을 만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뚫어져라 바라보며 귀 기울이고 있을 님을 위하여, 제가 오래 전에 읽었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의 한 구절을 여기에 인용하고자 합니다. 한 마리 기어다니는 애벌레가 창공을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이 이야기는 그대로 우리의 영혼이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자유케 되는 과정을 그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늙은 애벌레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노랑애벌레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무슨 털뭉치에 꼼짝없이 잡혀있는 것 같았습니다.
"무슨 사고가 생긴 것 같은데, 도와드릴까요?" 하고 노랑애벌레는 말했습니다.
"아니야, 괜찮다.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만 돼."
그 말에 노랑애벌레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아, 나비! ― 바로 그 말! 제발 말해 주세요, 나비가 무엇이지요?"
"그건 네가 되어야 할 바로 그것이야. 그것은 아름다운 두 날개로 날아다니며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 주지. 그것은 꽃에 있는 달콤한 이슬만을 마시며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사랑의 씨앗을 운반해 준단다. 만일 세상에 나비가 없어진다면 꽃도 곧 없어지게 될 거란다."
"그럴 리가 없어요." 하고 노랑애벌레는 숨을 할딱이며 말했습니다.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단지 솜털 투성이의 한 마리 벌레뿐인데, 나의 내부에 그리고 당신의 내부에 한 마리 나비가 들어있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어요?"

"어떻게 하면 나비가 될 수 있나요?" 하고 노랑애벌레는 생각에 잠겨 물었습니다.
"한 마리 애벌레의 상태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 만큼 절실히 날기를 원할 때 가능한 일이란다."
"목숨을 버리라는 말씀인가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단다. 너의 '겉모습'은 죽어 없어질지 모르지만, 너의 '참모습'은 여전히 살아있을 거야. 삶에 '변화'가 온 것이지, 목숨을 빼앗긴 것이 아니야. 나비가 되어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린 그 애벌레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지." 하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만약에 내가 한 마리의 나비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요?" 하고 노랑애벌레가 주저하며 물었습니다.
"나를 잘 보아라. 나는 지금 고치를 만들고 있단다. 내가 마치 숨어버리는 것 같이 보이지만, 고치란 피해 달아나는 곳이 아니란다. '변화'가 일어나는, 잠시 머무는 여인숙과 같은 거야. 애벌레의 삶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니까,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도약이지.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너의 눈에는 혹은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어느 누구의 눈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미 나비가 만들어지고 있는 거란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 뿐이지."
"또 다른 것이 있지! 일단 네가 한 마리의 나비가 되면 너는 진실한 사랑을 할 수가 있단다. 새로운 삶을 탄생시키는 그런 사랑을. 그것은 애벌레들이 할 수 있는 온갖 포옹보다 아름다운 것이지."

"아, 달려가서 줄무늬 애벌레를 데려와야겠어요!" 하고 노랑애벌레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노랑애벌레는 슬프게도 그가 저 더미 속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찾을 수가 없을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슬퍼하지 말아라. 네가 만약 나비로 변한다면 너는 날아가서 나비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그에게 보여줄 수 있지 않겠니. 그러면 그도 나비가 되고 싶어 할 거야!" 하고 이 새로운 친구가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 *
김기태선생님! 또 질문이..(yes or no 답변주세요)
지금여기™ 06-08-06 09:54

알고싶습니다!!
'깨달음'은 그 어떤 무엇과도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깨달음'은 결코 어떤 원인에 의한 '결과물'이 아니며, 또한 '시간'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김기태 선생님께서 이렇게 답변을 주셨습니다. 결과적으로 김기태 선생님께서는 그 깨달음은 '그냥' 이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아무런 관계도, 아무런 원인과 결과도 없으니까 그냥! 말이나 의식 너머에 있는 있는 그대로의 '그냥'
절대 불가능하겠지만, 아주 만약에 말이죠? 어떤 이에게 '그냥'을 단 1분이라도 경험하게 해줄 수 있다면, 그걸 경험하는 사람은 문득! 그냥! 아!여기! 하면서 순간 진리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지금여기'에 영원히 머물게 될까요? 그건 이렇게 쌩뚱맞음인가요? 'yes or no'로만 답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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