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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대속(代贖)'의 의미

작성일 07-02-17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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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조회 6,20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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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질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속(代贖)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예수가 십자가의 보혈(寶血)로 만민의 죄를 대신 씻어 구원한 일'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가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을 때 그 순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가 예수에게 넘어갔고, 그리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피흘리며 죽었기에 우리의 모든 죄가 깨끗하게 씻어져, 우리가 영원토록 죄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신앙을 가리킵니다. 이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속죄제(贖罪祭) 신앙의 완성으로서, 어쨌든 그 사실이 바로 자신의 얘기로서 진실로 믿어지고 받아들여지게 되면 누구나 영혼의 자유와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이것이 신앙의 핵심이요 구원의 복음(福音)이지만, 그러나 저는 비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 안으로 들어가 이 '대속사건'을 다음과 같이 한 번 바라보고 싶습니다. 즉, 이 대속사건에서 제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우리 죄를 씻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으며, 우리는 지금 이대로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이미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죄'라고 하는 것은 무슨 큰 잘못이나 나쁜 짓을 저지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살지 못하고, 자신을 더 깨끗케 하고 더 완전케 하려는 수고와 짐을 스스로 무겁게 함으로써 인생을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신음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문득 우리 안에서 불안이나 우울이나 외로움 같은 것이 올라오면 우리는 어떻게든 그것을 씻어내고 극복하려고만 하지, 단 한 순간도 그것을 믿어줌으로써 그 속에 있어 보려 하지 않습니다. 또한 무기력이나 경직과 긴장과 강박 등이 올라오면 이번에는 마치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끝장이라도 나는 듯하며 두려워 떨기만 할 뿐 조금도 그것과 맞닥뜨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 모든 문제와 더러움(?)들이 사라진 당당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자신을 만들기 위해 한없이 스스로 수고할 뿐만 아니라 무겁디무거운 마음의 짐들도 함께 더하지요. 그런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믿지 못함에서 비롯된 이런 모든 행위와 마음들이 바로 '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속신앙이라 함은, 우리가 끊임없이 되풀이하려는 그 모든 수고와 무거운 '죄'의 짐들을 예수가 대신 지고 감으로써 이미 깨끗이 씻어놓았으니, 스스로의 수고와 노력으로써 자신을 깨끗케 하고 완전케 하려는 그 모든 허망한 마음들을 이젠 그만 내려 놓아라는 것입니다. 이미 깨끗한데 다시 더 무엇을 깨끗케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그 순간 우리에게는 지금 이대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이 되어, 한없는 평화와 자유가 우리 영혼을 깊이 감싸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수고와 노력으로써는 우리 자신을 완전케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이대로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불완전하게 보는 바로 그 마음이 문제이지요. 그러므로 그 마음을 따라 스스로 수고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사는 것, 그것이 바로 구원이요 영생(永生)이며 복음임을 성경은 예수의 대속(代贖)이라는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도 곳곳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들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니라."(마태복음 5:34∼36)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마태복음 6:27)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태복음 6:26∼30)
또 님은 "이미 완전하고 자유한 우리가 어찌하여 우리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오해 또는 착각 속에 살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라고 물으셨네요. 그렇다면 저는 님에게 되묻고 싶습니다. "님은 그 오해와 착각 속에서 벗어났습니까?"
만약 님이 그 오해와 착각으로부터 벗어났다면 그 의문은 스스로 사라질 것이요, 그렇지 않고 아직 그 오해와 착각 속에 있다면 지금처럼 그렇게 '원인'을 물을 것이 아니라, 우선 자신이 그 오해와 착각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자유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지요. "있는 그대로 진리요 참나인 우리가 왜 분별심을 내었을까요? 그리고 또한 우리는 왜 인간의 형상으로 존재하는 걸까요?"라는 님의 그 다음의 질문들도 마찬가지의 범주 속에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 * *
김기태 선생님께 질문이 있습니다.
의문 07-02-13 13:12

선생님의 여러 강의록을 보았는데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어 질문 올립니다. 예수님의 대속행위는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합니다. (아! 전 어느 종교인은 아닙니다.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그리고 또한 이미 완전하고 자유한 우리가 어찌하여 우리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오해 또는 착각 속에 살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있는 그대로 진리요 참나인 우리가 왜 분별심을 내었을까요? 그리고 또한 우리는 왜 인간의 형상으로 존재하는 걸까요?
너무너무 궁금합니다. 어려운 말로 대답해 주시지 말고 쉽게 풀어서 대답해 주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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