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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뒤섞여 이루어진 한 물건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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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6,956회 작성일 08-04-18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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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이해할 수 없어 질문 하나 드립니다.

도리~ 08-04-16 18:57


도덕경을 배우다가

獨立而不改(독립이불개)

周行而不殆(주행이불태)

이게 각각 무슨 뜻인지..여러 가지 뜻이 있다고 들어서요...이렇게 질문 남기고 갑니다.


* * *


님의 말씀처럼 여러 가지 뜻으로 해석됩니다만, 저는 이렇게 봅니다.

이는 도덕경 25장에 나오는 것으로, 그 처음을 보면 이렇습니다.


한데 뒤섞여 이루어진 것이 있으니[有物混成]

천지보다 먼저 있었다[先天地生]

고요하고 쓸쓸하구나[寂兮寥兮]

홀로 서서 바뀔 줄을 모르고[獨立而不改]

두루 행하되 위태하지가 않으니[周行而不殆]

가히 천하의 어미라 할만하다[可以爲天下母]

내 그 이름을 알지 못하나[吾不知其名]

글자로 말하면 도라 하고[字之曰道]

억지로 그 이름을 말하면 크다 한다[强爲之名曰大]……


먼저 ‘한데 뒤섞여 이루어진 한 물건’이라 함은

주객미분(主客未分)의, 분별(分別) 이전의 ‘있는 그대로의 것’을 가리키고,

‘천지보다 먼저 있었다.’라고 할 때의 ‘먼저[先]’는 시간적인 의미에서의 ‘먼저’가 아닙니다. 도(道)는 ‘시간’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늘[天]과 땅[地]이라는 ‘이름[名]’ 이전 곧 이름이 붙여지기 이전의 '있는 그대로의 것'을 가리킵니다.

또한 ‘고요하고 쓸쓸하다’ 함은 일반적으로는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다’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만, 그래서 저는 그것을 ‘무엇이다 라고 판단하거나 분별할 수 없다’라고 해석했으며, ‘홀로 서서 바뀔 줄을 모른다[獨立而不改]’는 것은 오직 그것밖에 없어서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두루 행하되 위태하지가 않다[周行而不殆]’는 것은 어떤 것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 어떤 것도 해(害)되는 것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렇기에 가히 천하의 어미라 할 만하다……


무슨 뜻이냐 하면, 도(道)란 매 순간의 우리네 삶과 따로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시로 때때로 우리 안에서 올라오는 짜증이나 분노, 우유부단, 답답함, 불안, 우울, 잡생각 등등 ― 이를 이름하여 번뇌(煩惱)라 하지요 ― 이 바로 도(道)요 보리(菩提)라는 것인데, 우리가 그것들에 대해 ‘짜증’, ‘분노’, ‘우유부단’, ‘답답함’ 등등이라고 이름 붙여서 그렇지, 사실은 그것들은 이름 이전의, 각각의 소중한 ‘생명 에너지’들일 뿐이라는 것입니다[有物混成, 先天地生]. 그래서 그것들은 좋은 것도 아니요 나쁜 것도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의 것’들이라는 것이지요[寂兮寥兮].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번뇌’ 혹은 ‘좋지 않은 것’이라고 분별하고는 끊임없이 그것들에 저항하면서, 그것들을 달리 좋아 보이는 것으로 ― 이를테면, 사랑과 자비와 당당함과 분명함 등으로 ― 고쳐보려 하거나 극복하려 하지만, 그러나 매 순간 오직 하나밖에 없는 그것은 결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獨立而不改]. 그렇기에 다만 모든 저항을 그치고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그것과 하나가 될 때 그것은 저절로 사라지는, 실체가 없는 것이라는 것이지요[諸行無常].

그리고 이것은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감정, 느낌, 생각들도 결코 우리를 다치게 할 수는 없습니다[周行而不殆]. 오직 그것에 저항할 때에만 그것은 우리를 무한히 힘들게 하며, 또한 우리에게 상처를 주지요.

‘가히 천하의 어미라 할만하다’라고 할 때의 ‘어미’라는 것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극대동소(極大同小)요 극소동대(極小同大)’라는 말이 있듯, 또한 ‘자그마한 티끌 안에 시방세계가 들어있다[一微塵中含十方]’라고 말하듯, 지금 이 순간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감정, 느낌, 생각들도 다 ‘어미’요 ‘어미의 나툼’ ― 즉, 보리(菩提) ― 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달리 더 할 일이 무에 있습니까[無事人]. 다만 매 순간 있는 그대로 그냥 사는 일밖에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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