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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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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10,204회 작성일 08-08-01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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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으로 곤궁함을 풀어가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박진석 08-07-24 16:50

저는 52세 남성입니다. 18세부터 특정 종교에 심취되어 오직 외길 종교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2006년도에 제 종교의 실상이 허상이다는 판단으로 종교인으로서 삶을 청산하고 노동으로 생계를 전전하였는데, 현실적으로 침몰하는 배에서 허둥거리는 그런 느낌으로 살게 되는군요. 역술가들은 제 사주에 물이 없어 곤궁하다고 합니다. 현실이 절망적인 정도가 아니라 무서운 적이 되었습니다. 경제적인 것쯤은 아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살아온 지난날이 반성이 됩니다. 참고로 저는 58년 음력 5월 10일 오시 생인데, 과연 사주가 나빠 현실이 이리도 절박한지요. 님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어떻게 풀리는 길을 찾을 수가 있을까요? 님의 고견을 기대합니다.


* * *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졌을 때 그것이 뿌리를 내리고 발아하여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기까지의 삶은 참으로 절박하고 치열하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선 온통 훤히 드러나 있는 자신의 몸을 땅 속에 묻기까지의 삶만을 보더라도 매 순간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절박한 시간들의 연속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행히 오래지 않아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먼지와 낙엽이 자신을 조금씩 덮어간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고 이 한여름 뙤약볕 아래 메마른 땅에 떨어졌다면 그야말로 죽을 힘을 다해 자신 안에 있는 한줌 수분만을 껴안고는 타들어가는 공포를 견뎌내고 또 견뎌내야 할 것입니다. 아, 그러고서도 그것이 싹을 틔워 이윽고 자신의 존재를 조금씩 키워가는 그 오랜 과정의 힘겨움과 곤고함이란!


그러나 이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건강함’입니다.

거기 어디에도 ‘사주’라는 것이 갖다 붙을 자리가 없습니다.


오랜 세월 특정 종교에 심취되어 “경제적인 것쯤은 아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살아오시다가 50이 다된 나이에 맞닥뜨린 ‘현실’ 앞에서 몹시도 곤혹스러워하고 힘들어하시는 님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나마 ‘현실’로 돌아오신 게 다행이고, 또한 비록 “침몰하는 배에서 허둥거리는 그런 느낌”이라 하더라도 노동으로나마 하루하루의 생계를 책임지시려는 그 마음이 고맙고 대견스럽습니다.


이제 그 ‘현실’을 온전히 껴안아 보십시오. 님이 단 한 번도 제대로 져본 적이 없는 그 짐을요. 또 다시 ‘사주’ 운운 하며 도망다니려 하지 마시구요. 진실로 현실의 무거운 짐을 온전히 껴안아 보면, 님은 비록 “현실이 절망적인 정도가 아니라 무서운 적이 되었습니다.”라고 하시지만, 그 무서운 적이 오히려 진실한 스승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진짜의 현실은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우리의 마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똑같은 현실 앞에서도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투덜대고 불평하며 도망다니지만, 어떤 사람은 그 현실을 깊이 받아들인 나머지 오히려 그 속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각성하며 그 영혼이 성장해 갈 줄을 아는, 그럼으로써 어렵고 힘든 중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삶을 살아가기도 하니까요.

님에게도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 속에 감추어져 있는 더 깊은 무엇을 볼 줄 알고 감각할 줄 아는 지혜가 열려, 진실로 살며 배우며 성장하며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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