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과 명상이 왜 생겨났다고 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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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간곡한질문 댓글 4건 조회 6,920회 작성일 08-01-13 01:41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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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님의 댓글
배경 작성일깨어나는데에 있어서 방편은 무수히 많겠지만, 계율이나 수행법 같은 마음의 운용은 자비심을 알려주고 언어와 생각 이전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요, 불이의 설법을 하는 것은 궁극의 자리를 바로 알려주는 것이기에 그것이 가장 수승하다고 봅니다.
김기태님의 댓글
김기태 작성일제가 알기로, 금강경이나 반야심경 뿐만 아니라 달마로부터 육조(六祖) 혜능에 이르는 전법(傳法) 어디에도 열심히 수행하고 명상하라는 말은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던데요....
배경님의 댓글
배경 작성일
그런데 아함경에서는 그런게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석가모니께서 위빠사나를 가르쳤다던지... 그리고 달마에서 오조홍인 까지는 관법과 좌선도 설했다고 하고요...
화두선 같은 경우는 전통이 아주 확고하고 말이죠...
김기태님의 댓글
김기태 작성일
이미 이 자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그 자리'여서 건너가야 할 강이 아예 없다는 것을 말해줘도
언제나 이분법적인 사고 속에서만 살아오다 보니 도무지 그것을 알 수도, 믿을 수도 없고
그래서 이런 저런 방편과 방법들이 나온 것이지요.
위빠싸나니, 명상이니, 화두니 하는 것들도 모두가 사고 너머의 무분별지(無分別知)를 깨닫게 하고자 하는 방편들인데, 어쨌든 문득 깨닫고 보면 또 '그 자리'는 바로 이 끊임없는 분별지(分別知)의 세계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은 진리를 깨닫기 위한 어떤 방편이나 방법도 택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이 한 마음을 낼 수 있다면 그는 머잖아 모든 것을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방법을 택해야 한다면, 다만 자신의 성향에 맞는 어떤 길을 택해서 가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