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가로막는 '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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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9,214회 작성일 06-04-17 10:38본문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다시 또 찾아 뵙는다기에 지난 게시판엘 들어가 봤습니다. 그런데 그땐 아마 다른 이름으로 오셨던 듯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반갑습니다.
다시 또 찾아 뵙는다기에 지난 게시판엘 들어가 봤습니다. 그런데 그땐 아마 다른 이름으로 오셨던 듯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앎'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앎'이 곧 '삶'이 되어, '앎'과 '삶'이 하나인 '앎'이 있고,
다른 하나는, '앎'이 오히려 '진정한 앎'을 방해하여, 바로 그 때문에 '삶'과의 분리가 오고, 그래서 더욱 '삶'을 힘들게 하는 '앎'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앎'이 곧 '삶'이 되어, '앎'과 '삶'이 하나인 '앎'이 있고,
다른 하나는, '앎'이 오히려 '진정한 앎'을 방해하여, 바로 그 때문에 '삶'과의 분리가 오고, 그래서 더욱 '삶'을 힘들게 하는 '앎'이 있습니다.
전자(前者)는 매 순간 깨어있기에 늘상 새로운 발견과 기쁨과 희열과, 영혼의 참된 성장과 성숙과, 일렁이는 자유함과, 설명할 길 없는 평화가 그 속에 늘 깃들게 되지만,
후자(後者)는 '앎' 자체가 이미 화석화된 것이기에, 생명 없는 그것이 '생명'을 가두어버리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오히려 그 '앎'만이 자신을 구원해 줄 참 생명이요, 따라서 삶의 진정한 자유는 바로 그 '앎'의 부단한 실천에서 비롯되는 것인 양 착각함으로써, 매 순간 온전히 실천해내지 못하는 자신을 또다시 정죄하며 한없이 주눅들게 하는 이중(二重)의 괴로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후자(後者)는 '앎' 자체가 이미 화석화된 것이기에, 생명 없는 그것이 '생명'을 가두어버리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오히려 그 '앎'만이 자신을 구원해 줄 참 생명이요, 따라서 삶의 진정한 자유는 바로 그 '앎'의 부단한 실천에서 비롯되는 것인 양 착각함으로써, 매 순간 온전히 실천해내지 못하는 자신을 또다시 정죄하며 한없이 주눅들게 하는 이중(二重)의 괴로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님은 후자의 '앎'을 쥐고 계십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님의 '삶'은 그리도 힘들어져버린 것이구요.
보세요, 님은 제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깐, 마음은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니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당장에 내 반응들이, 그것도 원치 않는 반응들이 나타날 때면 그건 내 마음이 하는 일이니 집착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타나는 반응(현상)이 통제가 되지 않고 올라올 때면 너무도 당황스럽고 상대방에게 미안하여 어찌해야 좋을지, 좋은 방법이 있음 너무도 알고 싶은 마음에서 글을 씁니다……."
"그러니깐, 마음은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니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당장에 내 반응들이, 그것도 원치 않는 반응들이 나타날 때면 그건 내 마음이 하는 일이니 집착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타나는 반응(현상)이 통제가 되지 않고 올라올 때면 너무도 당황스럽고 상대방에게 미안하여 어찌해야 좋을지, 좋은 방법이 있음 너무도 알고 싶은 마음에서 글을 씁니다……."
님의 이 말씀에서 보면, 님은 언제나 "마음은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니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앎'을 쥐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앎'을 끊임없이 실천함으로써 마침내 님의 삶 속에 평화를 이루려고 하시구요. 그런데 때로 님 안에서 어떤 원치 않는 반응들이 나타날 때면 "이건 내 마음이 하는 일이니 집착하지 말자."는 '앎'을 또 한 번 내어서는 애써 그 반응들에 무심하려 하지요.
그런데 사실은 님은 그 '앎' 뒤에 숨어서 님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을 끊임없이 해석하고 판단하며 밀쳐내기만 할 뿐 단 한 순간도 그것들과 맞닥뜨리려고 하지 않음을 봅니다.
그런데 사실은 님은 그 '앎' 뒤에 숨어서 님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을 끊임없이 해석하고 판단하며 밀쳐내기만 할 뿐 단 한 순간도 그것들과 맞닥뜨리려고 하지 않음을 봅니다.
그 속에는 님의 깊은 두려움이 있음을 봅니다. 님의 반응들을 '자신의 것'이라고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그것들을 피하고 싶어하는……. 그리고 그 한 방편으로 '앎'을 쥐고 있는 것이구요.
그러나 님이여.
진정한 '자유'는 '실천'을 통하여 오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와 같은 '앎'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 '앎'이 도리어 님의 문제의 해결을 완강히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앎'을 걷어치워 버릴 때, 그래서 '실천'도 동시에 버려질 때, 그때 비로소 님은 님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을 해석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맞닥뜨리게 될 것이고, 그 '맞닥뜨림' 속에서 어쩌면 님은 그토록 오랜 세월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들이 하나씩 '저절로' 풀어져나감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실천'을 통하여 오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와 같은 '앎'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 '앎'이 도리어 님의 문제의 해결을 완강히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앎'을 걷어치워 버릴 때, 그래서 '실천'도 동시에 버려질 때, 그때 비로소 님은 님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을 해석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맞닥뜨리게 될 것이고, 그 '맞닥뜨림' 속에서 어쩌면 님은 그토록 오랜 세월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들이 하나씩 '저절로' 풀어져나감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또한 님은 "여하튼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가 무언지……"라고 하셨지만,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전혀 없으며, 그 '원인'이나 '이유'를 굳이 알아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 속에 '과거'의 모든 시간과 경험들이 응축되어 있으며, 지금 이 순간 바르게 내딛는 한 발걸음 속에 '미래'의 모든 시간과 삶들이 펼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님이여, 10년 전의 그 현상이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혀 뜻밖에 그러한 일이 님에게 일어났고, 그건 또 어·쩔·수·없·었·던·일·입·니·다. 다만 그런 일이 님에게 일어났고, 그 순간 님은 '얼굴이 붉어지는 반응이 일어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님은 '얼굴이 붉어지는 반응'이 일어나는 사람이지, 결코 그러한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몸'은 그렇게 변했는데도 '마음'은 끊임없이 '과거'에 집착하여, 그러한 '반응'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라니, "마음은 내려놓으려고 노력을 하여 괜찮아진다고 해도 다시 그 사람들을 만나면 똑같은 반응이 나타나니 이 괴로움을 어찌하면 좋을까요?"라는 님의 말씀처럼, 그 괴로움이 끝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님은 '얼굴이 붉어지는 반응'이 일어나는 사람이지, 결코 그러한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몸'은 그렇게 변했는데도 '마음'은 끊임없이 '과거'에 집착하여, 그러한 '반응'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라니, "마음은 내려놓으려고 노력을 하여 괜찮아진다고 해도 다시 그 사람들을 만나면 똑같은 반응이 나타나니 이 괴로움을 어찌하면 좋을까요?"라는 님의 말씀처럼, 그 괴로움이 끝이 없는 것입니다.
아, 님이여.
실재(實在)하는 것은 오직 '현재(現在)'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현재의 있는 그대로의 실재, 그것이 바로 님 자신입니다. 그런데 그 실재란 다·만·그·러·할·뿐, 그것이 결코 어떤 '결핍'이거나 '못남'이거나 '부끄러운 것'이거나 '부족'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던 '과거'나 그런 현상이 사라진 '미래'만을 온전하게 여겨,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마음이 끊임없는 분별과 번뇌를 일으켜, 님을 그토록이나 주눅들게 하고 괴롭히는 것입니다.
실재(實在)하는 것은 오직 '현재(現在)'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현재의 있는 그대로의 실재, 그것이 바로 님 자신입니다. 그런데 그 실재란 다·만·그·러·할·뿐, 그것이 결코 어떤 '결핍'이거나 '못남'이거나 '부끄러운 것'이거나 '부족'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던 '과거'나 그런 현상이 사라진 '미래'만을 온전하게 여겨,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마음이 끊임없는 분별과 번뇌를 일으켜, 님을 그토록이나 주눅들게 하고 괴롭히는 것입니다.
아, 님이여.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사랑해 주세요. 그 '반응' 혹은 '현상'이 곧 님입니다. 그러므로 단 한 순간만이라도 님의 그 '반응'을 따뜻하게 사랑해 주세요.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사랑해 주세요. 그 '반응' 혹은 '현상'이 곧 님입니다. 그러므로 단 한 순간만이라도 님의 그 '반응'을 따뜻하게 사랑해 주세요.
그런 '반응'이나 '현상'이 없는 사람이기만을 바랄 것이 아니라, 그래서 그 '반응'을 끊임없이 정죄하며 부끄러워하고 숨기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반응'이 곧 '나'임을 시인하고 인정하여, 그것을 마음껏 용납하고 받아들여,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세요.
만약 님이 진실로 그렇게 하실 수 있다면, 그 사랑이 님 안의 모든 것들을 녹일 것입니다. 정말요.
아, 화석과도 같은 죽은 '앎'으로 살아있는 님 자신을 이젠 그만 죽이세요.
제발.…..!
* * *
다시 또 뵙네요.
봄 06-04-13 19:13
안녕하세요? 선생님. 다시 또 찾아 뵙네요.
살면서 또 물음이 올라오는군요. 마음이 잡을 수도 잡힐 수도 없음을 잘 압니다. 그러나 아는 것과 실제로 행함은 다르다는 걸 새삼 느끼는 요즘이네요. 그러니깐, 마음은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니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당장에 내 반응들이, 그것도 원치 않는 반응들이 나타날 때면 그건 내 마음이 하는 일이니 집착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타나는 반응(현상)이 통제가 되지 않고 올라올 때면 너무도 당황스럽고 상대방에게 미안하여 어찌해야 좋을지, 좋은 방법이 있음 너무도 알고 싶은 마음에서 글을 씁니다. 저는 이 문제로 10여 년 가까이 고민을 해오고 있구요.
나름대로 마음이 하는 일임을 알아차려서 그 마음조차도 내려놓고, 올라오면 올라오는 대로 놔두려고 노력도 해보고 나름대로는 愛쓰고 있습니다만, 괜찮다가도, 어떤 땐 전혀 괜찮지 못하여 정도가 심해진 듯하고, 현상은 그대로나 그걸 보는 내 마음이 더 약해져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가 무언지, 또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해서 여쭙습니다.
이 현상이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어느 날 문득 다니던 직장에서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았던 사람에게 무슨 일이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갑자기 어려워지고 마주 대하고 얘기할 때면 얼굴이 붉어져서, 한 번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다른 사람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 그 사람에게만 유독 버릇처럼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하더니, 그곳을 그만두고 다른 곳을 다니게 되었는데, 첨은 편하게 지내던 사람도 나중엔 또다시 얼굴이 붉어지곤 하는 겁니다. 여자든, 남자든, 어른이든, 연하의 사람이건 상관없이 불특정 다수에게 저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처음엔 더할 나위 없이 문제없이 지내다가 조금 가까워지고 더 친해지려고 할 때면 오히려 얼굴이 붉어지고 붉어져서, 미안하고 당황하고 민망하여 더 멀어지게 되고, 신경을 더 쓰게 되는데도 오히려 행동은 붉어질까 염려되어 아예 무시를 해버리는 일이 자주 일어나곤 합니다.
마음은 더 가까이 지내고 싶고, 친해지고 싶은데도, 왜 몸의 반응은 원치 않은 쪽으로 일어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고 이해가 되질 않네요. 내가 나를 판단하고 상대방과 나를 비교하여 내 스스로 열등의식을 느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껴 그런 것인지(이건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 후배 구별 없이 그런 얼굴 붉어짐이 일어나니, 아닌 것 같구요),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한동안은 내가 세워놓은 관념 때문에 더 심해진다고 생각되어져 올라오는 대로 내버려두려고 했을 땐 얼마만큼은 도움을 받았습니다만, 마음은 내려놓으려고 노력을 하여 괜찮아진다고 해도 다시 그 사람들을 만나면 똑같은 반응이 나타나니 이 괴로움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반응이 이렇다보니 관계를 맺는 것부터가 염려스럽고,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두서없는 글쓰기로 전달이 잘 되었는지 염려스럽네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봄 06-04-13 19:13
안녕하세요? 선생님. 다시 또 찾아 뵙네요.
살면서 또 물음이 올라오는군요. 마음이 잡을 수도 잡힐 수도 없음을 잘 압니다. 그러나 아는 것과 실제로 행함은 다르다는 걸 새삼 느끼는 요즘이네요. 그러니깐, 마음은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니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당장에 내 반응들이, 그것도 원치 않는 반응들이 나타날 때면 그건 내 마음이 하는 일이니 집착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타나는 반응(현상)이 통제가 되지 않고 올라올 때면 너무도 당황스럽고 상대방에게 미안하여 어찌해야 좋을지, 좋은 방법이 있음 너무도 알고 싶은 마음에서 글을 씁니다. 저는 이 문제로 10여 년 가까이 고민을 해오고 있구요.
나름대로 마음이 하는 일임을 알아차려서 그 마음조차도 내려놓고, 올라오면 올라오는 대로 놔두려고 노력도 해보고 나름대로는 愛쓰고 있습니다만, 괜찮다가도, 어떤 땐 전혀 괜찮지 못하여 정도가 심해진 듯하고, 현상은 그대로나 그걸 보는 내 마음이 더 약해져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가 무언지, 또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해서 여쭙습니다.
이 현상이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어느 날 문득 다니던 직장에서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았던 사람에게 무슨 일이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갑자기 어려워지고 마주 대하고 얘기할 때면 얼굴이 붉어져서, 한 번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다른 사람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 그 사람에게만 유독 버릇처럼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하더니, 그곳을 그만두고 다른 곳을 다니게 되었는데, 첨은 편하게 지내던 사람도 나중엔 또다시 얼굴이 붉어지곤 하는 겁니다. 여자든, 남자든, 어른이든, 연하의 사람이건 상관없이 불특정 다수에게 저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처음엔 더할 나위 없이 문제없이 지내다가 조금 가까워지고 더 친해지려고 할 때면 오히려 얼굴이 붉어지고 붉어져서, 미안하고 당황하고 민망하여 더 멀어지게 되고, 신경을 더 쓰게 되는데도 오히려 행동은 붉어질까 염려되어 아예 무시를 해버리는 일이 자주 일어나곤 합니다.
마음은 더 가까이 지내고 싶고, 친해지고 싶은데도, 왜 몸의 반응은 원치 않은 쪽으로 일어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고 이해가 되질 않네요. 내가 나를 판단하고 상대방과 나를 비교하여 내 스스로 열등의식을 느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껴 그런 것인지(이건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 후배 구별 없이 그런 얼굴 붉어짐이 일어나니, 아닌 것 같구요),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한동안은 내가 세워놓은 관념 때문에 더 심해진다고 생각되어져 올라오는 대로 내버려두려고 했을 땐 얼마만큼은 도움을 받았습니다만, 마음은 내려놓으려고 노력을 하여 괜찮아진다고 해도 다시 그 사람들을 만나면 똑같은 반응이 나타나니 이 괴로움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반응이 이렇다보니 관계를 맺는 것부터가 염려스럽고,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두서없는 글쓰기로 전달이 잘 되었는지 염려스럽네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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