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믿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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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8,546회 작성일 06-08-04 01:17본문
안녕하세요?
질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런 저런 일로 인해 저의 답변이 늦었습니다.
짧지만 님의 진리추구의 과정을 참 잘 말씀해 주셨네요. 특히, "4. 현재 41세 : 갑자기 나라는 느낌(존재감, 관찰자)이라는 것이 단순한 하나의 관념임이 명확히 보이면서 상당한 해방감을 맛봅니다."라는 말씀에 주목해 봅니다.
저도 주로 '관법(觀法)'을 했었는데, 관법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관찰자' 혹은 '주시자'에게 무게 중심을 두게 되지요. 그래서 언제나 '관찰자'의 편에서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성성히 지켜보는 가운데 어떤 '해방'이랄까 '진리' 같은 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사실은 바로 그 '관찰자'가 허구(虛構)요 미망(迷妄)입니다.
저도 어느 순간 바로 그 '관찰자'가 사라져 버렸고, 그러고 나니 '대상'만 남았는데, '대상'만 남으니 '대상'이라 할 것도 없고 그저 모든 것은 다만 '있는 그대로'였을 뿐이었습니다. 그것을 이름하여 '무아(無我)'라 하기도 하고, '진아(眞我)'라 하기도 하며, '진리(眞理)'라고 하기도 하고, 또 '자성(自性)'이다, '불성(佛性)'이다, '공(空)'이다, '본래면목'이다 라고 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사실은 그 모두가 단지 '이름'일 뿐이요, '실체(實體)'가 없습니다. '실체'가 없기에 또한 매 순간순간의 하나하나가 다 '실체'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무아'인 것이고 또한 '진아'이기도 하구요.
자기 자신을 믿으십시오.
님의 경험을 그러한 '이름'들과 '개념'들에 비추어 판단하고 확인하고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존재하고 또 그냥 살아보십시오.
'씨앗'은 오랫동안 땅 속에 묻혀있어야 이윽고 '생명'을 움틔울 수 있습니다.
님의 경험을 그러한 '이름'들과 '개념'들에 비추어 판단하고 확인하고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존재하고 또 그냥 살아보십시오.
'씨앗'은 오랫동안 땅 속에 묻혀있어야 이윽고 '생명'을 움틔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씨앗'은 결코 그 무엇으로도 자기 자신을 확인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책'과 '개념'은 이제 그만......
다만 '삶'이 있을 뿐입니다.
다만 '삶'이 있을 뿐입니다.
* * *
조언을 구합니다.
Moon 06-08-01 09:49
안녕하십니까! 김기태선생님. 선생님의 글을 읽고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진실을 추구하는 길에서 최근의 경험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싶어서 글을 올립니다. 우선은 저의 진리추구 과정을 요약해서 말씀드리고,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 탐구과정 요약=========
1. 5살경 : 놀이터에서 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지는 해를 보고 내가 존재한다는 이상한 느낌이 궁금해서 탐구를 시작했습니다.
2. 고등학교 :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자문자답하는 방식으로 탐구를 했습니다.
(예: 왜 의식은 하나의 초점에 사로잡혀 있고 배경은 인식하지 못하는가? 등)
3. 대학교 : 바라보기 명상을 해서 최후의 인식자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 이때 사념을 바라보는 나라는 느낌의 배후에 있는 인식자를 또 바라보려고 하는 시도를 1년 정도 하다 최후의 인식자는 인식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모든 탐구과정을 중단했습니다.
4. 현재 41세 : 갑자기 나라는 느낌(존재감, 관찰자)이라는 것이 단순한 하나의 관념임이 명확히 보이면서 상당한 해방감을 맛봅니다.
- 무아가 이해되어 부처님의 12연기설과 제법무아, 제행무상을 다시 정독하고 나라고 할 것이 없음이 이해되었습니다.
- 제 경험으로 보면 모든 것이 연기해서 있는 것으로, 나라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상태면 고통이 없고, 나라는 생각으로 일어나는 갈등과 고통이 점점 사라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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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
진리는 나라는 것이 없는 무아를 이해하면 되는 것인지, 아니면 무아에 대한 이해 외에 따로 추구해야 할 "진아", "불성", "공"이라는 것이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어째서 불교에서는 무아, 연기를 얘기하면서 또 불성, 본래면목을 얘기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됩니다. 무아이면 본래면목이라고 할 것이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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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자비가 세상에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Moon 06-08-01 09:49
안녕하십니까! 김기태선생님. 선생님의 글을 읽고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진실을 추구하는 길에서 최근의 경험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싶어서 글을 올립니다. 우선은 저의 진리추구 과정을 요약해서 말씀드리고,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 탐구과정 요약=========
1. 5살경 : 놀이터에서 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지는 해를 보고 내가 존재한다는 이상한 느낌이 궁금해서 탐구를 시작했습니다.
2. 고등학교 :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자문자답하는 방식으로 탐구를 했습니다.
(예: 왜 의식은 하나의 초점에 사로잡혀 있고 배경은 인식하지 못하는가? 등)
3. 대학교 : 바라보기 명상을 해서 최후의 인식자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 이때 사념을 바라보는 나라는 느낌의 배후에 있는 인식자를 또 바라보려고 하는 시도를 1년 정도 하다 최후의 인식자는 인식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모든 탐구과정을 중단했습니다.
4. 현재 41세 : 갑자기 나라는 느낌(존재감, 관찰자)이라는 것이 단순한 하나의 관념임이 명확히 보이면서 상당한 해방감을 맛봅니다.
- 무아가 이해되어 부처님의 12연기설과 제법무아, 제행무상을 다시 정독하고 나라고 할 것이 없음이 이해되었습니다.
- 제 경험으로 보면 모든 것이 연기해서 있는 것으로, 나라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상태면 고통이 없고, 나라는 생각으로 일어나는 갈등과 고통이 점점 사라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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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
진리는 나라는 것이 없는 무아를 이해하면 되는 것인지, 아니면 무아에 대한 이해 외에 따로 추구해야 할 "진아", "불성", "공"이라는 것이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어째서 불교에서는 무아, 연기를 얘기하면서 또 불성, 본래면목을 얘기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됩니다. 무아이면 본래면목이라고 할 것이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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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자비가 세상에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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