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 일과 바깥의 일을 구분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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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동파 댓글 2건 조회 7,873회 작성일 08-05-16 05:03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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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님의 댓글
김기태 작성일
우선, 나름대로 이렇게 저렇게 스스로를 실험하시는 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일단 ‘실험’을 하시면 하나의 굳건한 ‘원칙’은 세워두셔야 합니다.
이를테면, 다음의 경우와 같이요.
어떤 분에게 한 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있어 보라고 했더니, 나름대로의 삶의 아픔과 갈증이 깊었기에 그분은 마음을 다잡고 ‘실험’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2주가 지날 무렵 저와 통화를 하면서 ‘실험’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중에 그분이 문득 하시는 말씀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 안에만 있으니 무료하고 답답해서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더랍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것도 또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실험’으로부터 자꾸만 도망가려는 몸짓인 것 같아 아예 담배를 끊어버렸답니다. 그리곤 한 달 동안 그런 마음으로 자신을 실험하는 동안 그분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자신 안의 많은 것들을 선명하게 보게 되었고, 그러면서 자신의 문제로부터 많이 걸어 나오게 되었던 것이지요.
‘실험’은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로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은 언제나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지요. “어차피 마음이 중요하지, 행위는 상관없으니...”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긍정에서 긍정으로’라는 것도 그런 식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답니다.
일단은 먼저 원칙을 세워 한 번 해보세요.
원칙에 굳건히 갇혀 보는 것도 좋은 실험이 될 수 있답니다.
만약에, 늘 자기 편한 대로 모든 것을 해석하고 갖다 붙이는 마음의 패턴을 분명히 볼 수 있다면 지금의 그런 모습을 통해서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게 되겠지만....
무한님의 댓글
무한 작성일
질의응답 게시판의 글들중 가장 좋았던 것이 김수민님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인 `미망이 곧 보리입니다.`라는 글이었습니다. 그 글의 내용중 이런 부분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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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씀이냐 하면, 님이 말씀하신 '게으름을 극복하려는 노력' 자체가 '유위'가 아니라, 자신이 게으르고 부족한 존재라는 사실을 진실로 인정하고 시인하고 받아들인 상태에서 그 극복을 위해 노력한다면 그 일체의 행위는 '무위'일 수 있는 반면, 그것을 끊임없이 정죄하고 거부하고 부정하면서 오직 그 극복 속에서만 의미를 찾으려 한다면 그 모든 행위는 '유위'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행위'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그 버릇을 바꾸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끊임없는 '유위'일 수 있는 것입니다.
무위(無爲)의 위(爲)는 긍정에서 긍정으로 가기에 끊임없는 배움과 사그라들지 않는 기쁨과 샘솟는 에너지로 가득하지만, 유위(有爲)의 위(爲)는 부정에서 긍정으로 가야 하기에 그 길이 무겁고 힘이 들며 한 톨의 진정한 평화도 자유도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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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진실로 인정하고 시인하고 받아들였다고 느껴진 상태에서 어떤 행위를 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