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진실'은 단순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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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8,058회 작성일 06-08-09 16:21본문
'파동시'님.
모든 '진실'은 단순하답니다.
'인정한다'는 것은, 그냥 단순히, 인 것은 이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다 하며, 있는 것은 있다 하고 없는 것은 없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지켜본다'거나 '관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켜봄'이나 혹은 '관조'는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것과의 맞닥뜨림'을 방해하고 가로막는 것입니다. 즉, 그것은 '인정'이 아니라 '해석'하고 '설명'하려는 몸짓이며,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결코 '지켜본다'거나 '관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켜봄'이나 혹은 '관조'는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것과의 맞닥뜨림'을 방해하고 가로막는 것입니다. 즉, 그것은 '인정'이 아니라 '해석'하고 '설명'하려는 몸짓이며,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습니다.
님은 "인정을 하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요령을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씀과 함께 "제일 중요한 질문은 인정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기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님의 그 말씀이 오히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니, 컵을 컵이라고 인정하는 데에 무슨 '구체적인 요령'이 필요하며, 거기다 '실천'은 또 무엇이고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또 무엇입니까? 그냥 컵이니까 컵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인정'입니다. '인정'이란 그와 같이 아주 단순한 것이랍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의 초라함과 보잘것없음과 또다시 불쑥 튀어나온 '습관'에 대해 마음으로 '저항'하거나 '거부'하거나 회피함이 없이 있는 그대로 '인정'했을 때, 때로 마음의 '고통'과 '쓰라림'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고통과 쓰라림을 그대로 받으십시오. 그 고통과 쓰라림이 (시간은 좀 걸릴지 모르지만) 결국엔 님을 '자유'에로 인도해 갈 것입니다.
반면, '저항'하거나 '거부'할 때에도 후회와 회한이라는 형태로 마음의 고통이나 쓰라림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인정'이 아닌, 자신을 '정죄(定罪)'함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고통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님을 자유에로 인도해 주지는 못합니다.
예를 들면 이와 같습니다.
예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가룟 유다와 베드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를 은 삼십 냥에 팔았던 사람이고, 베드로는 예수가 잡혀가던 바로 그 날 밤 그 현장에서 그를 세 번이나 저주하면서까지 부인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나중에 자신의 잘못들을 크게 깨닫고는 똑같이 통곡하게 되지요.
예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가룟 유다와 베드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를 은 삼십 냥에 팔았던 사람이고, 베드로는 예수가 잡혀가던 바로 그 날 밤 그 현장에서 그를 세 번이나 저주하면서까지 부인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나중에 자신의 잘못들을 크게 깨닫고는 똑같이 통곡하게 되지요.
그런데 이후의 두 사람의 모습은 완전히 다르게 나타납니다. 즉, 가룟 유다는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너무나 가슴 아파 한 나머지 자살을 해버리고, 베드로는 오히려 그 일로 인해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어, 이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생명'에로 인도하는 위대한 선지자가 됩니다. 말하자면, 베드로는 자기 자신조차 구원하지 못하던 사람이 바로 그 잘못과 허물을 통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 두 사람의 차이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인정' 입니다.
가룟 유다는 자신이 한 실수와 잘못과 허물을 도무지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끝없는 자기정죄와 후회와 회한의 고통 속에서 결국 자살을 택하고 말았던 것이고, 베드로는 3년간이나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 예수를 저주하면서까지 부인했지만, 이후 자신이 한 행위와 잘못을 통곡 속에서 마음 깊이 인정하고 시인할 수 있었기에, 오히려 그 행위와 잘못에 매이지 않는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인정'은 그와 같이 죽었던 마음도 되살리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때로 실수를 하고 또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바로 자신이 한 그 실수와 허물 앞에서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명하거나 합리화하는 등의 온갖 다양한 방법으로 도망을 다니거나, 후회와 반성과 정죄(定罪)라는 형태로 괴로워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인정'은 눈곱만큼도 없고 '저항'하거나 '거부'하기에 바쁜 모습들을 봅니다.
그러나 백 가지 생각들을 다 하더라도, 인 것은 인 것이고 아닌 것은 아닌 것입니다.
'진실'은 그렇게 단순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을 단 한 번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다면 이후의 모든 순간을 인정할 수 있기에 영원토록 평안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피하기 시작하면 매 순간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영원을 피해다녀야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모든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있습니다.
아, 님의 거듭된 짧은 질문에 제 말이 길어져 버렸습니다.
부디 저의 '말'이 아니라 애틋한 저의 '뜻'이 님에게 전달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고맙습니다.
부디 저의 '말'이 아니라 애틋한 저의 '뜻'이 님에게 전달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고맙습니다.
* * *
답해주심에 감사드리며
파동시 06-08-08 03:17
이렇게 바로 답해주시니 더욱 미안스럽습니다. 아주 잘 보았고, 계속 간직하겠습니다.
그런데요, 선생님. 인정한다는 것이, 지켜보라는 말씀이신지, 이른바 관조한다는 것과 비슷한 말씀이신지 모르겠고, 그 인정을 하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요령을 모르겠습니다. 받아들인다는 그런 뜻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시시각각 닥치는 문제와 이따금씩 불쑥불쑥 올라오는 지난 유혹 등등..잘 지켜보면서 흘러가도록 놔두면, 그 습의 힘이 점차 약화되고 소멸한다는 말씀이신지요? 제 말이 맞다면, 그 실천하려는 의지가 자꾸 흔들리고 망각되는 것은 어떻게 해야하는지요?
그리고 한가지는, 이것만 잘 해나가면 모든 갈등이 끝나는 것인가요? 실례의 말씀입니다만, 선생님의 경우와 같아지는 것인지 궁금하여 결례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일 중요한 질문은 인정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기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를테면 발심의 유지 같다고나 할까요? 바로 답변을 주심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파동시 06-08-08 03:17
이렇게 바로 답해주시니 더욱 미안스럽습니다. 아주 잘 보았고, 계속 간직하겠습니다.
그런데요, 선생님. 인정한다는 것이, 지켜보라는 말씀이신지, 이른바 관조한다는 것과 비슷한 말씀이신지 모르겠고, 그 인정을 하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요령을 모르겠습니다. 받아들인다는 그런 뜻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시시각각 닥치는 문제와 이따금씩 불쑥불쑥 올라오는 지난 유혹 등등..잘 지켜보면서 흘러가도록 놔두면, 그 습의 힘이 점차 약화되고 소멸한다는 말씀이신지요? 제 말이 맞다면, 그 실천하려는 의지가 자꾸 흔들리고 망각되는 것은 어떻게 해야하는지요?
그리고 한가지는, 이것만 잘 해나가면 모든 갈등이 끝나는 것인가요? 실례의 말씀입니다만, 선생님의 경우와 같아지는 것인지 궁금하여 결례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일 중요한 질문은 인정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기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를테면 발심의 유지 같다고나 할까요? 바로 답변을 주심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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