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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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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8,301회 작성일 06-08-25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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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가족'에 대해 말씀하시니, 저도 어릴 때의 저의 가족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님은 자신의 가족에 대해 '신의 작품'이라는 표현을 쓰셨지만, 아버지 한 사람에 엄마가 넷이며 자식이 열 두 명인 저의 가족도 그에 못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 저는 막내였고, 저를 낳아준 어머니는 아버지의 네 번째 부인이었습니다.

네 가정을 거느리신 아버지는 아주 가끔씩 저희 집에 오셨고, 그러다 보니 저는 아버지의 얼굴을 당신이 돌아가시는 날까지 손가락에 꼽을 만큼만 보며 자랐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는 아버지의 사랑을 참 받고 싶었나 봅니다.

그 '아버지의 부재(不在)'와 그로 인한 많은 일들이 저로 하여금 왠지 모르게 주눅들게 했고, 내성적이며 상처받기 쉬운 영혼으로 자라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어디에서도 안정(安定)하지 못하는 불안을 항상 제 안에서 목도(目睹)하며 살아가게 했습니다.
'이웃보다 못한' 가족관계로 인해 저희 식구들은 거의 교통(交通)하지 않으며 살았습니다만, 그래도 제사 등의 일로 맨 웃어른격인 사촌 형님댁에 가끔씩 모이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참 이 순간이 싫었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존재 자체가 제게는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열패감(劣敗感)으로 다가와, 제 가슴은 언제나 납덩이가 되었고 입안은 모래알을 씹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아, 모두의 가슴 속에 깊이 팬 상처와, 그것이 칼날이 되어 서로를 향하고 있는 듯한 묘한 긴장과, 가장 가난하고 열등한 가족의 일원으로 인식된 저를 향한 그들의 숨기지 않는 무시와……심지어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던 조카들조차 저를 외면하는 듯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저의 내면에 있는 '궁극에의 갈증'과 맞물려 저는 마침내 가족들을 떠나 오랜 세월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문득 꿈에도 그리던 '나'를 만났고, 그러면서 깊은 평화와 삶을 바라보는 입체적인 시각도 열리게 되어, 평안히 '현재'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어느 날, 몇 년간을 떠나있던 사촌 형님에게서 전화가 와서는, 제사라며 오라는 겁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참 싫던 '가족'들 속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요……그들은 여전히 예전의 그 모습과 그 어투로 서로를 대하고 있었고, 조카들까지도 나를 대하는 태도가 변함이 없었건만, 참으로 묘했던 것은, 그 모습들이 예전과 같이 나를 무시한다거나 외면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아! 그때 저는 알았습니다, 그들은 그냥 말하고 그냥 대하고 있었던 것을 내가 온갖 '무게'들로써 그들을 판단하고 심지어 정죄(定罪)까지 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요. 그러면서 괜스레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제사가 끝내는 내내 그들을 그윽히 바라봤던 기억이 납니다.
'불안한 마…'님.
우리를 힘들게 하는 생(生)의 많은 질곡(桎梏)들의 원인이 뜻밖에도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경우가 더 많습디다. 그런데도 안타깝게도 우리는, 마치 눈의 시선이 언제나 '바깥'을 먼저 향하듯이, 자기 자신보다는 바깥의 어떤 조건이나 상황이나 사람을 먼저 보다 보니, '진정한 개선(改善)'은 없고 도리어 개선의 모양으로 고통과 상처와 또다른 형태의 힘겨움만을 더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어차피 삶이란 많은 시간들 속에서의 일이고,
이런저런 '문제'와 그 문제의 '개선' 또한 많은 시간들이 필요할진대,
그 많은 시간들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님의 시선(視線)이 단지 '바깥'만이 아니라 '안'으로도 많이 향하여서
생(生)의 시간들이 거듭될수록 님 안에 평화와 자유함이 가득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PS : 저도 님을 한 번 뵐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요?


* * *
저의 삶은 평탄치 않은 듯합니다.
불안한 마… 06-08-23 22:31

김기태 선생님...밑의 여러 질문과 근본은 동일하다고 생각되어 집니다만... 요즘 들어 너무 힘들고, 또 저도 김기태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답글을 받고 싶은 마음에 글을 씁니다.
어릴 때부터 항상 타인과의 관계가 원만하질 못했습니다. 쉽게 상처받고, (그래서) 소극적으로 행동하고...이렇게 제 인생이 시작(?)되어진 것 같습니다. 이런 제 개인적인 문제 말고도...제 주변문제는 항상 저를 힘들게 합니다. 저와 관계된 문제보다도 가족과 가족간의 문제들...(오죽했으면, 저는 제 가족이 "신의 작품"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신이 개입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상극(?)인 사람들이 가족으로 묶일 수 없다는 자조섞인 표현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뭐랄까.. 항상 불안~~한 마음입니다. 뭔가 만족치 못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제가 무시받는 듯한 느낌...이런 느낌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평탄치 못하고, (그래서이겠지만..) 만족치 못하는..그런 삶"이랄까요...전보다는 많이 좋아진 것 같긴 한데...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욕심이 많아서 만족치 못하는 것인지, 정말 제 주변문제들이 평탄치 못해서 만족치 못하는 것인지조차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요즘 들어 더 마음이 힘들어져서, 이곳에 자주 와서 글을 음미(?)하는데...밑의 질문에 대한 댓글로 이런 문구가 제게 와 닿습니다.
"늘 깨어있는 자세로서, 날마다 님 자신과 더불어 순간 순간 온전히 함께 하는 시간을 계속 지속해 보는 어떤 훈련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쉽지 않은 훈련이겠지만...한번 해 보렵니다. 선생님의 충고나 조언을 기다립니다. 이만..
PS: 저도 선생님을 한 번 뵐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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