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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누구 탓’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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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6,764회 작성일 08-08-02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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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와 원망으로 괴롭습니다.

한심이 08-07-25 08:36

대학교 다닐 때 고시공부를 했습니다. 이웃에 살던 매형이 직장 때려치고 다른 것 배운다고 하면서부터 점점 상황이 악화됐습니다. 애기가 있는 누나네 식구는 우리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지, 직장생활에 허덕이는 형, 매형은 도박장도 다니고, 매일 누나랑 싸우고, 집안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았습니다. 누나는 애기도 잘 안보고, 또 나름대로 다른 것들 한다고 밖으로 나돌고, 툭하면 어머니랑 싸우고, 좁은 집안이 참 시끄러웠던 것 같습니다. 저는 공부도 제대로 안되고, 어영부영하다가 취직도 못했습니다. 그 사이 누나는 시댁으로 이사를 갔고, 매형은 혼자 다른 지방을 전전하면서 다른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괴감에 많이 힘들어하다가 취직을 포기하고 새로운 시도를 했습니다. 우선 1차로 공무원 시험을 합격하고, 발령기간을 이용해서 다른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발령이 늦어지는 사이 2차로 계획한 다른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데, 누나는 애들 둘을 데리고 시험공부를 한다고 우리 집으로 다시 들어왔습니다. 누나는 애들을 어머니에게 맡기고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또 다시 집안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누나는 툭하면 어머니랑 싸우고, 좋지 않은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저는 과거에도 힘들었던 기억에 누나가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화가 슬슬 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발령이 나서 공무원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일하면서도 공부하려고 했으나, 집안에서 공부한다는 것이 공부는커녕 스트레스만 많아져서 공부는 누나가 집에 있을 때까지는 중단하기로 하였는데, 누나는 자기가 공부한 시험에 합격했으나 사정상 계속 우리집에 머물렀고, 제가 공무원을 그만두고 다시 시험공부를 하려고 할 때도 여전히 우리집에 머물게 되어서 저는 거처문제로 고민을 하였습니다. 마침 저랑 친한 형이 아파트를 주말만 잠시 이용을 하고 있어서 그 형에게 부탁하고 책걸상까지 마련했으나, 위치라던가 다른 조건들이 생활하기에 안 좋아서 포기하고 그냥 집에서 공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집에 있던 책상이 낡아서 집에서도 또다시 새 책상을 마련하고, 집안 분위기에 고민하는 와중에 누나랑 안 좋은 대화가 오갔습니다. 저는 쫓겨나는 기분으로 고시원으로 들어갔고, 누나에 대한 원망이 자라났습니다. 그해 시험은 실패하고 후년을 기약하는 사이 누나는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어서 멀리 이사를 가게 됐습니다. 저는 원망스런 마음들이 쌓여서 누나에게 한번 얘기를 하고자 했으나 기회도 없고 그게 쉽지가 않았습니다. 저는 마음에 쌓인 것을 풀고자 어렵게 얘기를 요청했는데, 그게...잘 안되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 중재 하에 어떻게 억지로 얘기는 하게 됐는데, 누나는 미안해하면서도 옛날 얘기 해서 뭐하냐는 태도였습니다. 저는 분노와 억울함 등으로 미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누나는 식구들 앞에서 과거의 일들과 분노들을 거침없이 표현했었고, 그런 것들을 지켜보느라 참으로 괴로웠는데, 정말 수년 동안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참고 지내온 자신이 바보 같았습니다. 스트레스와 원망, 괴로움으로 다음 시험 또 그 다음시험도 실패하고, 자포자기로 참으로 괴롭게 살았습니다. 인생이 한심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누나는 지나간 얘기 자꾸 해서 뭐하냐고 합니다. 저는 한번이라도 진심으로 터놓고 얘기해 보고 싶은 것뿐인데, 그저 내 얘긴 듣기 싫어하고, 저에게 충고나 할려고 합니다. "사람이 미래를 보고 살아야지"라든가, "너는 예수님 영접하고 복음이 들어가야 된다"라는 식입니다.

이제는 누나를 다시는 보기도 싫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괴롭습니다. 죽고도 싶습니다. 가끔 종교적 명상적인 말씀 등에서 위안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일 뿐 평범한 저로서는 그저 평범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느낍니다.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 * *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사업가로서 참 잘 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치밀하고 명석하며 또 아주 기발하기도 하여 무슨 일이든 손을 대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일이 잘 풀려져 마침내 큰 사업체를 여러 개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또 다른 사업에 손을 대어, 그것으로써 자신의 전 사업체를 더욱 크게 확장할 생각으로 회심의 오케이 사인을 하게 되는데, 바로 그 일이 자꾸만 꼬여 들어가면서 그는 이런저런 자금난에 봉착하게 되고, 그에 따라 그의 다른 사업체들도 연쇄적으로 타격을 받으면서 부도에 부도를 맞아, 마침내 그의 사업체 전체가 도산해버리고 맙니다. 그의 오랜 꿈과 계획이 결국 한 순간의 사인으로 말미암아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지요.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는 그 후 3년 동안이나 술에 절어 살면서, 그 사인을 한 순간과 스스로에 대한 후회와 원망과 회한으로 몸서리를 치면서, 수도 없이 자신의 가슴을 치게 됩니다. “아, 내가 그때 그 사인만 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절규하듯 방바닥을 내려치며

“아, 내가 그때 그 사인만 하지 않았더라면…!”이라며 한없이 울부짖곤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은 마치

“아, 그때 누나만 우리집에 오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에 누나만 끼여들지 않았더라면…!”이라며,

한없는 분노와 원망에 범벅이 된 채 괴로워하는 님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3년을 그렇게 괴로워하던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전날의 과음으로 몹시도 쓰린 속을 달래려고 엉금엉금 기어서 방문을 열고 나와서는 우두커니 마루에 앉아있게 됩니다. 속이 너무 아프고 또 힘이 없어 잠시 앉아 있다가 우물가로 물을 마시러 가려던 참이었지요. (그때 그는 사업에 실패한 후 도망치듯 고향에 내려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마당을 가로질러 피어있던 한 포기 풀이 우연히 그의 눈에 들어왔고, 전에 없이 푸르고 선명하게만 보이는 그 풀잎의 색깔이 이상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여 자신도 모르게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곤 곧 일어나 우물가로 가서는 한 두레박의 물을 퍼다가 벌컥벌컥 마시고는, 아직도 이상하다는 듯 아까의 그 풀잎을 우두커니 바라보게 되지요.


단지 그뿐이었는데, 그 순간 이후 그는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합니다. 어떻게 설명할 순 없지만, 그 순간 그의 내면에서는 어떤 ‘질적이고도 완전한 변화’가 온 것입니다. 말하자면, 과거는 완전히 끝이 나고 오직 생생한 ‘현재’만이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곤 언제 그랬냐는 듯 폐인과도 같았던 오랜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돌아와서는 몇몇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 사업을 시작하는데,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영역들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로 저만치 앞서갔기에 그의 사업은 다시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당시 그는 이런 말들을 곧잘 주변 사람들에게 하곤 했습니다.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나와 다르다. 예전엔 오직 사업의 성공에만 집착했고, 그런 만큼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지금’을 즐길 줄 알고 누릴 줄 안다. 나는 지금 행복하며, 다만 열심히 사업을 할 뿐 그 어떤 집착도 없다.”


과연 그는 매 순간 행복했으며, 나비처럼 가볍게, 나비가 이 꽃 저 꽃을 날아다니며 그 가슴 깊숙한 곳에 간직하고 있는 꿀을 빨듯, 그는 '지금'의 엑기스를 깊이 빨아들이며 '소유'가 아닌 ‘나눔’과 ‘사랑’과 '감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님이여.

지금껏 말씀드린 이 사람의 '변화'를 가만히 한 번 보십시오. 그의 ‘변화’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습니다. 그냥 어느 순간 느닷없이 그의 <마음> 안에서 과거가 끝이 나버렸고, 그럼으로써 늘 처음인 듯한, 그리고 항상 새롭고 생생한 현재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새로운 힘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구요. 그가 그토록 후회하고 괴로워한 '사인'도 그대로였고, 그의 참담한 실패도 그대로였는데 말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님이여.

인생에 '무엇 때문에'라든가 혹은 '누구 탓'이라는 것은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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