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의 차원이 아닌 믿음의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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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9,006회 작성일 08-09-14 22:09본문
질문 올립니다.
ahffk 08-09-08 15:51
있는 그대로가 진리이며 완전하다는 뜻은 있는 그대로가 어디서 나왔는가? 라는 물음에 정확한 답을 알고 있어야만 그것이 진실인 줄 납득하게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깨닫지는 못했더라도 있는 그대로가 왜 진리인지 먼저 머리로 이해가 되어져야 받아들여지고 실천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뜻이 마음으로 탁! 와닿았다 하더라도 그게 일시적일 수 있고, 그 일시적인 마음에 안주하여 있는 그대로가 진리이다 하는 관념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생각이 됩니다. 또 그런 관념에 사로잡히다 보면 현실을 그냥 합리화하려 하고 발전과 창조력도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선생님께선 이러한 점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가르침 글을 보고 참 감사하고 존경심을 갖게 되었고, 읽기만 하다 처음으로 질문 올려봅니다.
안녕하세요?
질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것은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매 순간 그냥 존재할 뿐입니다.
그리고 님은 “깨닫지는 못했더라도 있는 그대로가 왜 진리인지 먼저 머리로 이해가 되어져야 받아들여지고 실천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하셨지만, 아뇨, ‘있는 그대로’는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 믿음의 차원입니다. 어떻게 ‘잡생각’이 곧 보리(菩提)이며, 강박이나 말더듬이나 우유부단이나 야비함이나 비열함이나 초라함 등등이 그대로 진리요 진여(眞如)이며 ‘자유’라는 것이 이해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중생(衆生)이 그대로 부처라는 것이 이해의 차원이겠습니까.
머리로 이해한 것으로는 우리를 진정으로 ‘변화’시킬 수 없답니다.
반면에 가슴으로 믿어지면 비록 이해되거나 납득되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로부터 달아나지 않고 오히려 그를 향해 한 발 한 발 발을 내디딜 것입니다.
또한 님은 “뜻이 마음으로 탁! 와닿았다 하더라도 그게 일시적일 수 있고, 그 일시적인 마음에 안주하여 있는 그대로가 진리이다 하는 관념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생각이 됩니다. 또 그런 관념에 사로잡히다 보면 현실을 그냥 합리화하려 하고 발전과 창조력도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라고 하셨지만, 그것이 바로 ‘영광’을 구하는 사람과 ‘진리’ 혹은 ‘진실’을 구하는 사람과의 차이입니다.
자신의 입술이나 적실 뿐인 한갓된 '영광'이 아니라
‘진실’을 구하는 사람은,
그리하여 정말로 존재의 목이 마른 사람은
그따위 ‘관념’이나 ‘합리화’를 만지작거리지 않습니다.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자신의 존재의 모든 것이 마치 마른 낙엽 타들어가듯 하기에,
그 메마름이 언제나 자신 앞에 성성히 있기에,
그 모든 갈증이 진실로 끝날 때까지는 그는 결코 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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