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님의 금연 성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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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8,368회 작성일 08-12-15 09:42본문
이외수 “하루 8갑 흡연 … 숨쉬기도 어려웠어요”
소설가 이외수(62)씨의 최근 베스트셀러『하악하악』은 거칠게 숨을 내쉬는 소리다. 작가가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이 단어를 찾아냈단다. 긴 머리에 깡마른 체형. 왠지 사과 궤짝 위에서 글을 쓸 것 같은 그다. 그 옆엔 빈 소주병 몇 병과 담배 꽁초가 수북이 쌓인 재떨이가 있어야 어울릴 것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러나 2년 전 술을 끊은 데 이어 지난해엔 담배마저 버렸다. 지난달 21일 서울의 한 호텔방에서 만난 이씨는 “CF 촬영을 위해 전날 밤 9시부터 새벽 6시까지 스케이트를 타고 왔다”고 했다. 작가는 “스케이트를 탄 것은 20여 년만이다”며 “담배 끊어서 건강해지고 돈도 벌었다”고 말했다.
하루 8갑씩 피운 골초
이씨가 처음 담배와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춘천교대) 1학년 때.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여서 “닥치는 대로 얻어 피웠다”고 한다. 자신이 얼마나 지독한 골초였는지를 보여주는 일화 하나를 '장전'했다.
“소설 『들개』를 쓸 때 출판사에서 내가 술로 폐인돼 요절할까봐 여관에 감금해놓고 매일 음주 여부를 점검했어요. 그때는 담배가 유일한 위안이었죠. 필터가 없는 '새마을' 담배를 사서 네 토막 낸 뒤 원고지로 파이프를 만들어 피웠습니다.” 담배를 토막낸 것은 1㎜도 남기지 않고 끝까지 피우기 위해서였다.
2006년 말까지 하루에 담배를 8갑씩 피웠다. '죽을까봐' 하루 8갑→4갑→2갑으로 줄여봤는데, 어느 순간 다시 4갑으로 늘어나 있었다. “자존심이 팍 상해 완전 금연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대표작 하나는 남기고 죽겠다는 생각이 제 금연 결심을 도왔습니다.”
작가가 금연을 시작한 날은 지난해 12월 17일. '평생 동지'인 담배에게 절연을 선언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죽음과 금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만큼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었다.
“금연하기 전에 몸 상태가 심각했어요.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탓이었는지 발작적으로 기침이 났고, 호흡 곤란을 수시로 경험했어요. 눕거나 엎드리면 숨쉬기가 힘들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잤습니다.”
금연 시작 사흘 뒤에 그는 가족에게 금연 사실을 털어놓았다. 모아뒀던 담배를 팔아 받은 50만원으로 온 가족이 고기 파티를 했다.
피 말리는 금단증상, 4㎏나 빠져
키가 169㎝인 이씨는 수십 년간 46㎏을 유지해왔다. 스스로 '지조있는 몸매'라며 대견히 여겼다. 그런데 담배를 끊은 뒤 심한 스트레스로 4㎏이 빠져 42㎏의 앙상한 몸만 남았다. “아랫도리가 후들거렸고, 담배만 피우면 다 나을 것 같았다”고 한다.
'금연 스트레스'로 담배를 끊은 뒤 바로 설사가 시작됐다. 기침은 금연 전보다 두 배나 심해졌다. 이런 상황이 세 달 이상 지속돼 몸은 완전 기진맥진한 상태가 됐다.
“몸 안의 작은 솜털 하나까지도 담배 달라고 아우성이었어요. 작가라는 자존심 하나로 버텨냈습니다.”
올해 3월 겨울 눈보라가 심한 날, 춘천의 안정효 내과원장이 이씨의 건강상태를 봐준다며 왕진을 자처했다. 항문에 손가락을 넣어 보더니 “고름(농양)이 많아서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패혈증으로 생명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다그쳤다. 그 길로 춘천으로 실려가 수술을 받았다. 그의 질환명은 '스트레스성 장염에 의한 농양'.
'원샷 원킬'. 담배를 한 번만 입에 물면 모든 금연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작가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담배 끊기가 가장 힘든 환경이에요. TV 뉴스만 보면 흡연 갈망이 커집니다. 특히 숭례문이 타는 뉴스를 봤을 때는 참기 힘들었어요. 담배를 한 대 피워야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았어요. 그 순간이 최대 위기였던 것 같아요.”
“담배가 당기면 목구멍에 자극을 주기 위해 콜라를 마십니다. 극도의 금단증상까지 극복했는데, 그게 아까워서라도 다시 담배에 손을 대지는 않을 것 같아요.”
금연하고 세상이 달라졌다
그의 지금 체중은 6㎏이나 늘어 52㎏이 됐다. 평생 그치지 않을 것 같던 기침이 금연 후 네 달 만에 거의 사라졌다. 숨이 가쁜 증상도 없어져 요즘은 문하생들과 함께 탁구를 4시간이나 친다. 6시간가량 숙면을 취하게 된 것도 작가에겐 은총이다.
“몸이 리모델링된 셈이에요. 건강해지니 먹고 일하는 게 즐거워졌어요. 담배가 사람을 나태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1주일에 두 번씩 팬 사인회를 하고, 이번 주에도 강연이 4개나 잡혀 있어요. '언중유쾌'라는 라디오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 '무릎팍도사'에도 출연했어요. CF도 여럿 찍었어요. 금연 전에 비해 연간 수입이 다섯 배는 늘어났어요.”
이씨는 지난 9월 경희대병원 호흡기내과 박명재 교수로부터 COPD 3기 진단을 받았다.
“100% 건강한 사람의 폐가 '그렌저' 엔진이라면 저는 '엑셀' 엔진 정도라는 말을 들었어요. COPD는 일단 발병하면 완치는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담배를 끊으면 병의 진행 속도는 분명히 느려진데요. 요즘은 '엔진'을 새로 단 기분이에요.”
작가는 곧 흡입용 천식약을 끊어도 된다는 의료진의 말에 고무된 상태다. 대한 결핵 및 호흡기학회가 '폐의 날'(11월 28일)에 그를 COPD 홍보대사로 위촉한 것은 이런 노력을 높이 사서다.
<중앙일보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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