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성취가 아닌 마음의 자유를, 바깥이 아닌 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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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7,452회 작성일 09-02-15 08:44본문
성경을 읽다가..
암사동우루… 09-02-11 00:17
잘 지내셨는지요? 선생님^^ 정초에 실험을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 질문을 올렸던 사람입니다.(택시사건) 선생님의 격려 덕분에 실험을 정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순간순간 나를 만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실험은 제게 '못난 나'를 보여주었고, 그리고 지금까지 살면서 '잘난 놈'으로만 살려고 했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못난 나'를 살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성경을 읽다가 이 구절을 어떻게 마음에 비추어 읽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이렇게 질문을 올립니다.(성경은 가톨릭 공용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마르코복음 11장 24절-
얼마 전 친구가 읽고 있던 성공관련 서적에서 위 성경구절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무신경하게 지나쳤었는데, 그때는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분명 예수께서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하신 말씀일 텐데, 수많은 성공관련 서적에 인용되어 '지금'이 아닌 보다 나은 '미래'를 얻는 방법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것을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해석을 굳게 믿고 있는 친구의 모습도 왠지 모르게 불편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성경을 펼쳤고, 구절의 문맥은 이러했습니다. 예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는데, 얼마 뒤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죽어있는 것을 본 제자들이 예수께 고하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많은 다단계 업체들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강화시킬 때 이 구절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더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바쁘시겠지만 선생님께 지혜를 부탁드려봅니다. 어떻게 이 구절을 마음에 비취어 읽어야 할까요? 건강하시길 기원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실험을 정말 열심히 하시는 가운데 하루하루 순간순간 ‘나’를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시다니 참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인생이란 그렇듯 누구보다도 더 자주 그리고 더 열심히 자기 자신을 만나는 가운데 영위되어야 할 무엇이랍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기왕에 성경 구절을 말씀하셨으니, 제가 잘 아는(?) 어떤 목사님의 경우를 예를 들어 이 구절의 뜻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기쁜소식 선교회’를 설립하시고 전 세계적으로 복음을 전하느라 바쁘게 다니시는 박옥수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이 어느 날 큰 집회를 앞두고 이런저런 준비를 하던 중에 그만 심한 설사병에 걸려 여러 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됩니다. 병원에 갔더니 약을 지어주면서, 절대 된음식은 먹지 말고 당분간 멀건 죽만 끓여 먹으랍니다. 그래서 병원의 처방대로 약을 먹으며 며칠 죽만 끓여 먹었는데, 차도가 있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해지기만 하더랍니다.
큰일났다 싶더래요. 왜냐하면 집회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또 전국 규모의 큰 집회여서 에너지도 많이 써야 하는데, 설사는 멈추지 않고, 기운은 자꾸만 더 빠지고....그래서 설사를 좀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성경 구절을 읽는데, 마침 님께서 인용한 그 구절이 눈에 들어오더랍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 순간 이 분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아멘! 하는 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전율에 사로잡혀 버립니다. 그리곤 곧바로 약도 버려버리고 죽도 물려놓은 채 다른 식구들이 앉아 있는 식탁으로 나아가 밥 한 공기를 그득히 퍼달라고 하고는,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식구들 앞에서 된밥을 연신 입에 퍼넣으며 맛있게 먹습니다. 급기야 사모님이, 설사가 다 나을 때까지는 결코 된음식을 먹여서는 안 된다는 의사의 신신당부하던 말을 떠올리면서, 숟가락을 빼앗듯 목사님을 말립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그윽한 눈길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프지만, 다 나았다.”
그러나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목사님이 밥 한 그릇을 채 비우기도 전에 배에서는 요동치듯 소리가 났고, 목사님은 그만 배를 움켜쥔 채 화장실로 달려갑니다. 그리곤 푸다다다닥....ㅋㅋ 거반 죽은 사람처럼 핼쓱한 얼굴로 화장실을 나왔을 때 사모님이랑 식구들은 그것 보라며 심히 걱정하는 눈길로 목사님을 바라봤지만, 목사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후 식사 때마다 된밥을 먹습니다. 그리곤 또 그때마다 화장실로 달려가서는 푸다다다다닥....^^
그렇게 설사는 여전했지만, 목사님의 마음에서는 이미 설사는 사라졌던 것이지요. 다시 말해, 그 구절이 믿음으로 들어온 이후로 설사는 이미 목사님의 마음에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이틀인가가 지날 무렵 또 된밥을 드시고는 당.연.히. 설사를 한다고 생각하고 화장실에 갔는데, 거짓말처럼 된똥이 나오더랍니다. 어느새 설사는 깨끗이 나아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곤 다음날부터 있은 한 주일간의 집회를 무사히 그리고 아주 힘있게 마칠 수 있었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 구절은 욕망의 성취를 위한 무슨 비법과도 같은 글이 아니라, '마음의 자유'에 관한 것입니다. 즉,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굳게 믿으면 <미래>의 언제가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의미의 구절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마음이 자유할 수 있는 길을 말해 주고 있다는 것이지요.
목사님의 경우에서처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의 심한 설사를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다가 문득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라는 구절이 믿음으로 들어오는 순간 목사님의 마음에서는 자신을 몹시도 힘들게 하던 문제인 설사와의 완전한 분리가 이루어졌고, 그래서 설사는 여전했지만 그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동시에 마음은 거기에 조금도 매이지를 않게 되면서, 설사가 그친 — ‘문제’가 사라진 — <미래>가 아니라 설사에도 불구한 <지금> 이미 마음에 자유가 왔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구절도 미래의 소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라는 믿음이 들어오게 되면서 지금 우리를 힘들게 하는 모오든 문제들로부터 마음이 분리되고 자유케 되는, 마치 온갖 것들이 거울에 비치지만 그 어떤 것도 거울을 물들일 수 없는 것처럼, 그러한 자유한 존재가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와 같이, 그 어떤 경전의 구절도
욕망의 성취나 소유가 아닌 마음의 자유를,
바깥이 아닌 우리 내면의 얘기를,
미래가 아닌 지금을 말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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