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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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히피즈 댓글 1건 조회 6,990회 작성일 09-04-25 04:02본문
가끔씩 들러 좋은 말씀 많이 읽고 가는데
이렇게 글을 올리는 건 이번이 세 번째네요...
직장을 그만 둘까말까 고민할 때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었는데
전 괴로워서 결국 그만 두고 말았습니다.
대학졸업을 앞두고 모두 취업을 위해 이리저리 분주히 뛰어 다닐 때
전 그냥 멍청히 있었습니다.
도대체 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요.
그래도 불안해서 여기저기 형식적으로 원서를 내고 시험을 보러 다녔지만
그다지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죠.
결국 가까운 지인의 소개로 취업을 했지만 얼마 일하지도 않고
도망치듯 뛰쳐나오고 말았습니다. 견딜 수가 없었거든요.
부모님의 성화를 진정시키고 시간을 벌기 위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었죠.
마침 친구가 권유하기도 해서요.
정말 공부가 지겹고 떨어지는 것도 더 이상 못할 짓이라, 이제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시험에 저는 운좋게 합격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전 불합격되면 어디 산이라도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또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전혀 즐겁지가 않았거든요.
이제 집에서 노는 것에 익숙해져서 일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물론 나이도 있고 제 앞가림은 스스로 해야겠지만 고통 뿐인 조직생활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찌보면 정말 유치하고 비상식적인 상사의 횡포와 조직 속의 이기적인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인간이 가장 무섭고 역겨운 동물이란 걸 실감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바로 제 모습이기도 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학교, 군대, 회사와 같은 조직에서의 일들은 제게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지 않는 이상 어딜 가더라도 그런 경험을 피할 순 없겠지요.
아니면 그런 일들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저의 고유한 사고패턴을 바꿔야하는 걸까요.
같은 일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일 수 있으니까요.
저는 제가 바뀌는 게 더 낫다라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물론 예전부터 '내가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나'와 같은 생각을 종종 하곤 했습니다.
저한텐 모든 게 조금 낯설었거든요.
대학 다닐 때 단순한 건강체조로 알았던 요가의 본래 모습(?)을 알고는 '응, 이런 것도
있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날 수록 명상, 불교, 깨달음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몸은 제대로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피나는 수련과 고행의 과정을 거친 여러 성인과 각자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역시, 아무나 깨닫는 게 아니구나' 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지요.
반면 그에 비례해 깨달음에 대한 갈증과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선생님.
깨달음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지금 자신에게 만족하는 사람들은 과연 그것을 찾아 떠날까 생각해봅니다.
또 지금 자신에게 만족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도 생각해봅니다.
불만족. 저는 저에게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는 학교가기가 싫었습니다. 친구들과 골목길을 달리며 신나게
놀고 있는데 엄마가 유치원이란 곳에 절 데리고 갔을 때의 혼란과 답답함을
기억합니다. 전 첫날 이후 가기 싫다고 떼를 썼고 결국 다시 친구들과 뛰어 놀게 되었죠.
하지만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는 사정이 달랐죠.
그 때 당시는 몰랐지만 자퇴할 수 있었다면 당장 그렇게 하고 싶을 정도로
학교가 싫었습니다.
나는 그냥 이대로가 좋은데 부모님과 학교는 저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죠.
초등학교 1학년 때 받아쓰기 시험에서 빵점을 받고 시험지를 흔들며 자랑하듯
집에 왔다가 엄마에게 혼났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옆 집 여자애는 100점을 받았죠.
전 받아쓰기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저는 조금씩 본래의 나에게서 멀어지며 커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릴 때의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때 즐겁고 행복한지 분명히 알았다고
생각되는데 지금의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고 또 막상 뭔가를 해도 그다지 즐겁고
재밌지가 않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사회가 바라는 대로 커왔지만 나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내가 누군지, 뭘 하고 싶은지 알기 위해 이제 예수와 부처가 바라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해야할 판입니다.
부모님도 학교도 사회도 종교도 더 나은 내가 되라고 말합니다.
너는 지금의 너에게 만족하면 안된다. 더 크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니 안의 참나를 찾아라.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힘써라.
한 개인에게 이렇게 많은 요구를 하는 사회가 또 어디 있을까요.
모든 게 귀찮고 지겹습니다. 자기계발 따위는 지금 자신에게 불만족한 사람에게나
갖다주라고 하죠.
하지만 오랜 세뇌와 사회화의 과정 끝에 저는 스스로에게 상당히 불만족한 사람이 되었고
깨달음은 거기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이젠 저는 제 자신이 싫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왜 자유롭게 태어난 인간을 마치 죄인이기라도 한 것처럼 달달 볶아 대는 것일까요.
왜 깨달음은 만족보다는 불만족을 먼저 가르친 후 결국 만족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야만 하는 걸까요.
모든 게 터무니없는 장난 같습니다. 모든 수행의 과정이 참나를 찾게 하기보다는
참나에게서 먼저 멀어지는 걸 가르치는 것만 같습니다.
왜 이대로는 안되는 걸까요.
그냥 이대로 생긴대로 살면 안되나요. 그렇지만 막상 그렇게 하려고 하면 또 잘 안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꼭 더 나은 내가 되고 참나를 찾아야만 하는 건가요.
깨달음이라는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도대체 깨달음이란 무얼까 생각하곤 합니다.
선생님.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요.
댓글목록
김기태님의 댓글
김기태 작성일
진지하고도 긴 글 잘 읽었습니다.
특히 님의 어릴 때의 얘기와
“저는 조금씩 본래의 나에게서 멀어지며 커왔다는 생각이 듭니다.”라는 대목에서는
제 가슴도 싸아~ 하니 아파왔습니다.
아뇨, 님은 멀어지지 않았습니다.
님은 여전히 거기 그대로 있습니다.
깨달음이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매 순간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
그런 의미에서
‘참나’란 존재하지 않으며,
지금 이대로가 전부입니다.
깨달음이란
‘바깥으로의 모든 추구가 끝이 남’을 일컬어 그렇게 말할 뿐
아무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추구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렇듯
다만 찾지만 않으면
그것이 곧 깨달음입니다.
그때
동시에
영원한 만족이 비로소 님 안을 가득히 채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