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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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테디아 댓글 0건 조회 5,565회 작성일 09-06-07 03:34본문
김기태 선생님께
선생님, 저 주연입니다.
이렇게 갑작스레 편지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여쭤 보고 싶은 게 있어서.
저한텐 나름대로 중요한 것이라.
실례를 무릅쓰고서라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선생님. 저 쓸모없는 아인가요.
왜 고등학생이나 되서
눈앞에서 사라지라는 소리를 듣고
살아야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지금 미술로 진로를 바꿨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모르고 계신게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질문 드립니다.
저는 제 꿈이 미술을 하는 것이라
항상 생각했었지만
집안 반대로 결정을 내리고,
관련 공부를 하기 위해서
정말 고민하고 힘들었습니다.
미술... 시작하면 정말 끝이 없는 이야기고 하여서,
제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되면 그때쯤...
선생님 찾아뵙고 싶을지도...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저장고에 쌓인 게 너무 많아서
안 되는 것 같고요.
그때쯤엔 많이 줄어들어서,
간단히 끝날테니,
괜찮을 지도 모르겠네요.
여하튼 오늘은 미술이야기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너무 일상적이라
당연한 것처럼 묵인해왔던 일들에 대한
물음을 드리고 싶습니다.
김기태 선생님.
저는 행복한 아이인가요?
나름대로 풍족한 가정에서 자랐고
공부도 상위층이고
미술이라는 진로도 정해진 학생으로서,
잘난척 같은 감정이 아니라.
제가 느끼는 그저 객관적인 시선에서 보았을 때,
저는 불행하다고는 하기 힘들 아이겠죠.
제가 부럽다고, 닯고 싶다고 직접 얘기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몇몇 아이들은 뭐든 열심히 하고 그럭저럭 해내니까
짜증난다고도 말할 정도더군요.
열심히 하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정말 자랑이 아니라,
몇몇 선생님들께서는 저만한 딸 키우면 소원이 없겠다고들도 하시더랍니다.
그냥 하시는 말씀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말썽부리는 아이를 보고 반어적으로 하는 말을 아니겠지요.
그렇다고 믿고 싶고, 나름대로 자부심도 있습니다.
또래들 보다는 뭐든 열심히 훌륭히 해낼 자신이,
최대한 이뤄낼 자신이 있다고요.
그런데
저는 집안에서는 이기적이고 자기만 알고
어른말 받아치는 아이로만
여겨지고 있는 것 같아서
슬픕니다.
제가 뭘 잘못 하고 있는 걸까요.
부모님들께 통화 할 때도
꼭 경어로 말씀드리고
어머니, 아버지하고 부르려고도-아직은 서투르지만-노력하고요.
이제 철들었는지,
진심으로 존중 드리고 싶고
효도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항상 폐 끼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19살로써의 의무도 하지 않고 싸돌아다니면서
부모님 등골 처먹는 기생충 같은 얘도 절대 아닙니다.
믿어주세요.
그런데요. 부모님은 제가 함부로 말한다고 하십니다.
집안일 제대로 안한다고, 집에 전화 많이 안 한다고,
부모님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십니다.
어릴 때부터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고 주변정리 잘 안 해서
어릴 때부터 꾸지람 받아도 고치지 않는 병신 같은 딸.
키우느라 힘드셨겠죠. 이해합니다.
일하고 오셔서 힘드실 텐데, 집에는 아무도 없고,
집안일 돕질 않고
소소한 거 하면서도 중얼거리는
버릇없는 딸.
키우느라 정말 짜증도 나시겠죠. 이해합니다.
자존심 강하고 성질 죽일 줄 모르고
누구에게든 할 말 다하고
성질대로 행동하는 딸이
사회 나가서
몰매나 맞지 않을까 걱정되시겠죠. 이해합니다.
공부시켜놨더니 갑자기 미술 한다고
집안 망신시키는
세상물정 모르는 멍청한 딸.
뒷바라지 해주느라. 힘드시겠죠.
황당하시겠죠.
눈물 나시겠죠.
정말 죄송스럽고
저도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일이 일어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토요일 아침부터
새벽같이 일어나서
공부하고 독서실가서 공부하고
미술학원가서 열심히 미술하고
10시 반은 되서야 들어와서
다시 독서실 가야돼서
빨리 챙길 거 챙겨서 나가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때 어머니가 저를 붙잡으십니다.
화장실 청소해 놨는데 머리카락 떨어뜨려놨다고.
"뒤처리하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겠니?"
죄송합니다.
직접 꺼내진 못하지만 속으로 되뇝니다.
"아, 알았어요."
건성으로 말하는 듯 한 딸이 문을 나서려 합니다.
"야, 송주연. 너 휴지심 좀 썼으면 가져다 버리라고 몇 번을 말했니. 사람이 어쩜 너밖에 모르니? 빨리 버려. 빨리"
아, 맞다.
아침에 그냥 나뒀던걸 깜박했음이 그제야 기억나지만.
짜증 때문인지.
묵묵히 가져다 버리질 못하고
꼭 한마디 구시렁거립니다.
뭐라고 말했을까요?
기억이 나질 않네요.
퍽
어쨌든 이기적인 딸은
말로만 해서는 안 되는 짐승만도 못한 아입니다.
때리면 말을 들을까 해서
어머니는 등짝을 손바닥으로 때리셨습니다.
맞으면 아프죠.
아니 기분 나쁘죠.
그리고 저는 어릴 때부터 맞고 살았죠.
그리고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대꾸
"무슨상관이야. 왜 때리고 난리야."
어머니는 폭발하셨나 봅니다.
"뭐? 방금 너 뭐라고 했니. 응?"
아, 절대 나긋나긋한 어투는 아닙니다.
고음의 톤과 선생님 특유의 딱딱한 말투.
명령조의 끝맺음.
"왜 때리냐고요."
"말로하면 알았들었든? 내가 몇번을 말했어 다른 사람 배려좀 하라고"
"방금 한번 말하셨잖아요."
"그래. 내가 너 맨날 이럴때마다 몇번이나 말했는데. 넌 언제 고칠래?"
"그렇다고 때려요?"
"그래, 진짜 한번 맞아볼래."
오른쪽 어깨를 한 5번 정도 밀치셨습니다.
솔찍히 온몸이 휘청했지만 일상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아, 정말 매사에 이렇게 때릴거예요? 잘못한 거 알겠는데. 때리지 말라고요."
다음의 어미니 말은 기억안납니다.
단전 아래던가.
어쨌든 배를 주먹으로 맞았습니다.
새로운 부위를 맞으니 통증이 좀 셌던 모양입니다.
제가 분명 어머니 감정에서
라스트 수준까지의 말을 몇 마디 더했고
짝
고개가 오른쪽 아래로 완전 꺾여 내려갔고
다시 서기도 전에 한차례 더.
짝
방금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한 번 더
짝
어머니는 뺨을 3회 정도 때리셨습니다.
눈물이 안날 수도 있습니다.
분명 날마다 죽도록 맞는 아이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휴지심 안 버린 것 때문에
뺨을 맞아야 되는 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호강에 받혀서 요강에 똥 싸는 태도로.
선생님께 하찮은 일로
편지 드리는 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 그리고 나서 정말 난생 처음으로
가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충격이 컸습니다.
책으로 5대 정도 맞거나
머리통을 연속 3번 맞거나
그런 적은 있어도
연속으로 정통으로 진짜 뺨을 3번 맞은 적은 없었는데.
"나가. 독서실 간다며 너 같은 애는 꼴도 보기 싫다. 나가"
어머니 특기십니다. 반복해서 짧고 굵게 명령조로 툭툭 쏘기.
그럴 때 마다 저는 심장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고,
오기가 생깁니다.
부드러운 말투로 타이를 수도 있을 텐데.
왜 만날 저러실까.
그러면서 따졌습니다.
"왜 때려요. 왜요?"
딸은 어이없게도 아직 울지를 않습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는 어깨만 밀쳐도 울던 녀석이.
머리가 굵어져가지고 여간 때리는 걸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래 오늘 네가 죽나 내가 죽나 한번 해보자.
"네가 버릇이 없어서 그런 거야. 사회 나가서 그딴 식으로 행동했다간 몰매 맞아 죽어. 엄마한테 뺨맞은 걸로 감사하게 생각해라. 어디 어른한테 '상관하지 말라'야. 그딴 말투 고쳐. 네가 밖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거 잘못된 거다. 너 네가 얼마나 못됐는지 모르지?"
그래. 몰라.
아니, 적어도 엄마한테만 그런 딸이니까.
나는 왜 맞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그러니까 사과하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속으로 삭입니다.
목구멍까지 올라갔다가 폐안으로 다시 돌아 들어갑니다.
배안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가방을 던지고 안경을 바닥에 팽겨 친 것 같네요.
뺨맞아서 괴로운 게 아닙니다.
저는 맨 처음 저한테 가해졌던 폭력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기 때문입니다.
휴지심 안 버렸으니까 옛날부터 말했는지 못 고쳤으니까 맞아야겠다.
왜 이게, 말로하면 안되지?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건가.
다른 집이면 그냥 웃으면서 넘어갈 일이라고 충분히 생각되는데
아닌가?
내가 버릇이 없는 건가?
그런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된 한마디
"내가 진짜. 이런 엄마 밑에서 산다. 살아."
물론 제가 다른 가정에 살아보지 않아서 모릅니다만,
적어도 어머니한테 뺨맞는 게 일상인 집이 흔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버릇없이 어머니께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왜 때리냐는 거였죠.
왜 항상 어렸을 때부터 때리냐.
말로하면 안되냐.
생각해보면 계속 제 애기의 핵심은 그거였습니다.
말을 돌려가면서 계속 그 이야기였습니다.
어머니는 또 말씀하시죠.
"네가 맞을 만한 짓을 했잖니."
저는 이해가 안 되죠.
"휴지심 안 버린 게 그렇게 맞을 만한 짓인가요?"
그리고 뻔 한 전개.
집에서 나가라.
꼴 보기 싫으니까, 내 눈 앞에서 사라져라.
너랑 얘기하면 짜증나니까, 꺼져라.
대강 이러한 레퍼토립니다.
어머니 결론은,
나는 부모로서 할일 끝났으니까.
너는 자식으로서 자중하고 반성해라.
대꾸하지 말고.
그리고 인신공격이 시작됩니다.
저는 방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독서실 갈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벌써 얼굴은 눈물범벅인데 어디로 갈까요.
그리고 뭔가,
어머니께 신경 거슬릴 말을 던지고 퇴장합니다.
"엄마. 진짜 그만 좀 때리라고요. 계속 이런 식으로 하면 고소할거야 진짜..."
버릇없는 송주연.
머리에 든 건 많아가지고 책에서 본
아동폭력이라는 교과서적인 이야기나 들먹입니다.
정말 멍청하죠.
그런 건 책에나 있는 먼 나라 이야긴데.
적어도 한국에서는
자식이 부모한테 맞아죽어도 그건 남의 집 이야기고.
우리가족 만의 이야기니까요.
맞죠, 선생님?
저는 그냥 맞아 죽어야 했을까요?
어쨌든 오늘은 '고소'라는 말이 가장 하이라이트였나 봅니다.
그리고 꼭 몇 분정도 흐르고
어머니가 따라오셔서
대다수 경우 잠겨있는 문을 대여섯 번 치면서.
"야 송주연! 이리나와!!"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맞았다고 생각하면
저도 지기 싫어집니다.
그리고 옛날부터 왜 내가 맞고 살았는지 꺼억 거리는 목으로
눈에선 계속 눈물이 흐르면서 막히는 코를 먹어가면서 항변하고
어머니는 너희가
-동생은 남자애라서 저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덜 맞진 않았습니다.
둘째라서 온몸이 멍들게 때린 적은 없는 것 같지만-
어렸을 때부터 항상 그랬으니까.
이젠 말로 하면 안 되는 거야.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그리고 서로 상처 잡아내기 시합 시작.
저는 머리에 떠오르면 바로 이야기 하고
어머니도 참는 기색은 전혀 없습니다.
대략은 이런 이야깁니다.
엄마는…….
직장 다녀와서 가족한테 화풀이 하지마라.
제발 뭐든 참는 법 좀 배워라.
무조건 자기 조건에 맞추려고 좀 하지마라.
뻑하면 손부터 올리지 마라.
엄마는 본인이 열 받으면 무조건 가족한테 화풀이라서 짜증난다.
솔직히 우리 집 부모님들은 이상하다.
송주연...
너는 항상 말 싸가지 없게 하고 어른한테 말대꾸하지마라.
그래, 고3이면, 공부하면 다냐. 네 성질대로 마음대로 해도 되냐.
너는 네 일밖에 눈에 안 벼서 집안에서 네가 해야 할 일은 전혀 안하고 살거냐.
그렇게 해서 네가 아무리 잘란들 알아주기나 할 것 같으냐.
마음은 피투성이가 될 무렵
대다수는 어머니가 '너랑 이야기 하면 짜증난다.'고 하면서 나가십니다.
그리고 끝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다시 한 번 더 방문하셔서
또 공방
멱살 잡힌 건 오늘이 처음이네요. 한 두세 번.
"저랑 이야기 하면 짜증나신다면서요. 저 독서실은 못갈 거 같으니까. 나가세요."
그리고 진짜 나가셨습니다.
집에는 아버지도 계시고 동생도 있었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일상적인 일이니까 끼어들기 싫으니까. 할일 하시고
방에 틀어박힌 저는
두루마리 휴지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 닦아가면서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땐 밤새 울면서 잠들었는데
이제는 많이 괜찮아 져서
한 30분정도만 그러고 있으면,
세수하고 잠들 수 있습니다.
"누나."
동생입니다. 2번 정도 부르고서야 알아들었습니다.
문을 열어줍니다.
그리고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생이 안아주네요.
누나 괜찮냡니다.
진짜 솔직히 말해서 동생이 나타나자
동병상련이라는 마음으로
어머니를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못 됐죠? 빌어먹을 자식이죠?
동생이 한숨을 쉬면서 말합니다.
"왜 엄마아빠는 때리는 게 당연 한 걸까."
사실, 아버지는 동생을 혼내지 못해 안달이십니다.
저는 딸이라 많이 봐주시는 게 맞습니다만...
아, 아버지 이야기 하려면
또 다른 편지지가 필요하고도 남을 겁니다.
동생이랑 이야기한 내용은
내가 잘못한 건 알고 있는데.
왜 때리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일에 집중하면 다른일도 신경안쓰시고 화내시면서
왜 딸인 저는 조금이라도 그런 마음이 들 때 성질부리면 안 되는 건가요.
죄송합니다.
빌어먹을 년이 진짜로 어머니 욕을 많이 했습니다.
"상언아, 우리 찜질방가면 안되나? 돈 없나?"
없답니다. 그리고 보내주지도 않을 거랍니다.
어렸을 때부터 맞았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커서 이젠 말로하면 안되니까,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조금 심했던 말다툼 정도가
모녀사이의 레파토리중에서 가장 길었던 것 같습니다.
고3이라서 많이 봐주신 걸 껍니다.
많이 참다가
보자보자 하니까 송주연이 기어올라서
마음먹고 때리신 거랍니다.
참 행복한 가정이네요.
그리고 한참 이야기 하던 중
어머니께서 방문을 두드리십니다.
"너네 둘이 뭐해? 송상언은 영어듣기 했어?"
동생이 '아 맞다. 안했는데…….'
하고 중얼거리기에
했다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동생이 저 때문에 맞는 건 보기 싫습니다.
문이 열리고
어머니는 초췌하신 모습입니다.
못된 송주연은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던진 가방에 있던 휴대폰이 깨졌다고
큰소리로 이야기 하고
pmp나 엠피쓰리를 충전하기 위해
이방 저 방을 돌아다닙니다.
어머니는 아무 말 못하시네요.
상언이한테만 뭐라 그러시네요.
저는 없는 사람 취급하다가
동생이 방에서 나가자 한마디 하셨습니다.
뭐였더라.
기억이 안 나네요.
너무 평범한 말투라
아까랑 적응이 안 됐나봐요.
그냥 흘러버립니다.
잘 준비하느라 방을 쏘다녀서
기억이 부서졌습니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어머니는 제 방에 없습니다.
그리고 더 가증스러운 것이 뭔지 아세요. 선생님?
저도 어머니를 공격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는 겁니다.
잠시 기억 파편사이로 보이는 어머니 얼굴은
흡사 곧 자살할 사람 같습니다.
저는 그게 더 괴롭습니다.
어머니 과거를 알기 때문에 괴롭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힘든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잃고
여자라는 이유로 공부 잘해도 구박받고,
대학 등록금도 졸업식에 입었던 옷도
다, 혼자 일해서 벌었다는 것도
무뚝뚝한 아버지랑 결혼하셔서
똑같이 직장이 있는데도,
여자라는 이유로
홀로 집안일 도맞아하며
힘들게 사셨을 20여년도
이제는 친어머니까지 돌아가시고,
살아계신 부모도 안계시고,
동생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속 썩이고,
믿을 건, 저뿐인데.
저는.....
자신만 믿고 산 어머니한테서
희망을 앗아간 배신자입니다.
자기 하고 싶은 일 하겠다고 부모님 배신한
몹쓸년입니다.
그리고 잠들 때 까지 울 겁니다.
저는 아마도…….
내일 아침에 깨면 퉁퉁 부운 눈과 쓰라린 콧등과 씨름하면서 깨어나겠지요.
왜 이렇게 힘들게 살죠?
행복한 가정이라는 파노라마가 언제 기억 필름에서 끓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잘난 머리로 똑똑한 척하며
남을 무시하기 잘하는 저도
언제부턴지 모르겠습니다.
5학년 때, 아버지가 '대장금'이라는 저주스런 드라마 본다고
집에 오셔서 술을 일상적으로 드시기 시작하고 나서 부턴가.
아니면 어머니가 집안일과 학교일을 동시에 하다가
디스크에 걸리고 가족 전체에게서 피해의식을 받으신 후 부턴가.
아니면 훨씬 오래전부터
올 커니. 바로 그때야
내가 태어나서 부터구나.
내가 있어서 다들 싸우는 건가봐.
뭐야, 간단하네.
내 기억 필름이 시작될 때부터.
나는
이기적이고
못되고
막돼먹고
자기밖에 모르고
세상 모두가 미워하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었구나.
이 집에서 나는 무슨 존재인지 묻지 않아도 뻔 하겠지.
말하자면 깨진 항아리처럼
부모님이 사랑을 부어도 부어도
만족하지 않았던 모양이야.
분명 이제 포기한걸 거야.
그래서 조금씩 그 깨진 부위를
점점 넓혀 가면서
조만간 사라지길 바라는 걸 꺼야.
그보다
엄마, 아빠.
그냥 한 번에 산산이 부셔서
형태도 안 남게 해버리세요.
괜히 깨진 항아리 조각에 손 배지 마시고
그냥 바닥에 떨어뜨려 버리세요.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 더 이상은 못쓰겠습니다.
제 소원이 있다면
다음날 아침까지 눈물이 멈춰서 잠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선생님
눈물이 멈추면
다음날 아침부터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주연이네 가족은 일상으로 돌아가니까요.
ps.
계속해서 상담 드리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던 순간마다 떠올랐던
김기태 선생님께…….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해주신 많은 이야기들과는
비교도 안 된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평범하기 짝이 없고,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지 못하는,
허영심 많고 분에 넘치는 꼬마가,
질질짤면서 쓰는.
낙서쪼가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난생처음으로
가식으로 가득찬 송주연이라는 한 인간이
진솔한 편지를 써 보입니다.
화가 나서,
상상으로만 이지만,
식칼 들고 안방으로 가려고 하는
미친 생각을 했었던 정신병자…….
좀 말려주세요.
답장 꼭 부탁드립니다.
바쁘실 텐데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송주연 올림.
선생님, 저 주연입니다.
이렇게 갑작스레 편지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여쭤 보고 싶은 게 있어서.
저한텐 나름대로 중요한 것이라.
실례를 무릅쓰고서라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선생님. 저 쓸모없는 아인가요.
왜 고등학생이나 되서
눈앞에서 사라지라는 소리를 듣고
살아야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지금 미술로 진로를 바꿨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모르고 계신게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질문 드립니다.
저는 제 꿈이 미술을 하는 것이라
항상 생각했었지만
집안 반대로 결정을 내리고,
관련 공부를 하기 위해서
정말 고민하고 힘들었습니다.
미술... 시작하면 정말 끝이 없는 이야기고 하여서,
제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되면 그때쯤...
선생님 찾아뵙고 싶을지도...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저장고에 쌓인 게 너무 많아서
안 되는 것 같고요.
그때쯤엔 많이 줄어들어서,
간단히 끝날테니,
괜찮을 지도 모르겠네요.
여하튼 오늘은 미술이야기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너무 일상적이라
당연한 것처럼 묵인해왔던 일들에 대한
물음을 드리고 싶습니다.
김기태 선생님.
저는 행복한 아이인가요?
나름대로 풍족한 가정에서 자랐고
공부도 상위층이고
미술이라는 진로도 정해진 학생으로서,
잘난척 같은 감정이 아니라.
제가 느끼는 그저 객관적인 시선에서 보았을 때,
저는 불행하다고는 하기 힘들 아이겠죠.
제가 부럽다고, 닯고 싶다고 직접 얘기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몇몇 아이들은 뭐든 열심히 하고 그럭저럭 해내니까
짜증난다고도 말할 정도더군요.
열심히 하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정말 자랑이 아니라,
몇몇 선생님들께서는 저만한 딸 키우면 소원이 없겠다고들도 하시더랍니다.
그냥 하시는 말씀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말썽부리는 아이를 보고 반어적으로 하는 말을 아니겠지요.
그렇다고 믿고 싶고, 나름대로 자부심도 있습니다.
또래들 보다는 뭐든 열심히 훌륭히 해낼 자신이,
최대한 이뤄낼 자신이 있다고요.
그런데
저는 집안에서는 이기적이고 자기만 알고
어른말 받아치는 아이로만
여겨지고 있는 것 같아서
슬픕니다.
제가 뭘 잘못 하고 있는 걸까요.
부모님들께 통화 할 때도
꼭 경어로 말씀드리고
어머니, 아버지하고 부르려고도-아직은 서투르지만-노력하고요.
이제 철들었는지,
진심으로 존중 드리고 싶고
효도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항상 폐 끼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19살로써의 의무도 하지 않고 싸돌아다니면서
부모님 등골 처먹는 기생충 같은 얘도 절대 아닙니다.
믿어주세요.
그런데요. 부모님은 제가 함부로 말한다고 하십니다.
집안일 제대로 안한다고, 집에 전화 많이 안 한다고,
부모님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십니다.
어릴 때부터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고 주변정리 잘 안 해서
어릴 때부터 꾸지람 받아도 고치지 않는 병신 같은 딸.
키우느라 힘드셨겠죠. 이해합니다.
일하고 오셔서 힘드실 텐데, 집에는 아무도 없고,
집안일 돕질 않고
소소한 거 하면서도 중얼거리는
버릇없는 딸.
키우느라 정말 짜증도 나시겠죠. 이해합니다.
자존심 강하고 성질 죽일 줄 모르고
누구에게든 할 말 다하고
성질대로 행동하는 딸이
사회 나가서
몰매나 맞지 않을까 걱정되시겠죠. 이해합니다.
공부시켜놨더니 갑자기 미술 한다고
집안 망신시키는
세상물정 모르는 멍청한 딸.
뒷바라지 해주느라. 힘드시겠죠.
황당하시겠죠.
눈물 나시겠죠.
정말 죄송스럽고
저도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일이 일어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토요일 아침부터
새벽같이 일어나서
공부하고 독서실가서 공부하고
미술학원가서 열심히 미술하고
10시 반은 되서야 들어와서
다시 독서실 가야돼서
빨리 챙길 거 챙겨서 나가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때 어머니가 저를 붙잡으십니다.
화장실 청소해 놨는데 머리카락 떨어뜨려놨다고.
"뒤처리하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겠니?"
죄송합니다.
직접 꺼내진 못하지만 속으로 되뇝니다.
"아, 알았어요."
건성으로 말하는 듯 한 딸이 문을 나서려 합니다.
"야, 송주연. 너 휴지심 좀 썼으면 가져다 버리라고 몇 번을 말했니. 사람이 어쩜 너밖에 모르니? 빨리 버려. 빨리"
아, 맞다.
아침에 그냥 나뒀던걸 깜박했음이 그제야 기억나지만.
짜증 때문인지.
묵묵히 가져다 버리질 못하고
꼭 한마디 구시렁거립니다.
뭐라고 말했을까요?
기억이 나질 않네요.
퍽
어쨌든 이기적인 딸은
말로만 해서는 안 되는 짐승만도 못한 아입니다.
때리면 말을 들을까 해서
어머니는 등짝을 손바닥으로 때리셨습니다.
맞으면 아프죠.
아니 기분 나쁘죠.
그리고 저는 어릴 때부터 맞고 살았죠.
그리고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대꾸
"무슨상관이야. 왜 때리고 난리야."
어머니는 폭발하셨나 봅니다.
"뭐? 방금 너 뭐라고 했니. 응?"
아, 절대 나긋나긋한 어투는 아닙니다.
고음의 톤과 선생님 특유의 딱딱한 말투.
명령조의 끝맺음.
"왜 때리냐고요."
"말로하면 알았들었든? 내가 몇번을 말했어 다른 사람 배려좀 하라고"
"방금 한번 말하셨잖아요."
"그래. 내가 너 맨날 이럴때마다 몇번이나 말했는데. 넌 언제 고칠래?"
"그렇다고 때려요?"
"그래, 진짜 한번 맞아볼래."
오른쪽 어깨를 한 5번 정도 밀치셨습니다.
솔찍히 온몸이 휘청했지만 일상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아, 정말 매사에 이렇게 때릴거예요? 잘못한 거 알겠는데. 때리지 말라고요."
다음의 어미니 말은 기억안납니다.
단전 아래던가.
어쨌든 배를 주먹으로 맞았습니다.
새로운 부위를 맞으니 통증이 좀 셌던 모양입니다.
제가 분명 어머니 감정에서
라스트 수준까지의 말을 몇 마디 더했고
짝
고개가 오른쪽 아래로 완전 꺾여 내려갔고
다시 서기도 전에 한차례 더.
짝
방금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한 번 더
짝
어머니는 뺨을 3회 정도 때리셨습니다.
눈물이 안날 수도 있습니다.
분명 날마다 죽도록 맞는 아이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휴지심 안 버린 것 때문에
뺨을 맞아야 되는 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호강에 받혀서 요강에 똥 싸는 태도로.
선생님께 하찮은 일로
편지 드리는 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 그리고 나서 정말 난생 처음으로
가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충격이 컸습니다.
책으로 5대 정도 맞거나
머리통을 연속 3번 맞거나
그런 적은 있어도
연속으로 정통으로 진짜 뺨을 3번 맞은 적은 없었는데.
"나가. 독서실 간다며 너 같은 애는 꼴도 보기 싫다. 나가"
어머니 특기십니다. 반복해서 짧고 굵게 명령조로 툭툭 쏘기.
그럴 때 마다 저는 심장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고,
오기가 생깁니다.
부드러운 말투로 타이를 수도 있을 텐데.
왜 만날 저러실까.
그러면서 따졌습니다.
"왜 때려요. 왜요?"
딸은 어이없게도 아직 울지를 않습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는 어깨만 밀쳐도 울던 녀석이.
머리가 굵어져가지고 여간 때리는 걸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래 오늘 네가 죽나 내가 죽나 한번 해보자.
"네가 버릇이 없어서 그런 거야. 사회 나가서 그딴 식으로 행동했다간 몰매 맞아 죽어. 엄마한테 뺨맞은 걸로 감사하게 생각해라. 어디 어른한테 '상관하지 말라'야. 그딴 말투 고쳐. 네가 밖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거 잘못된 거다. 너 네가 얼마나 못됐는지 모르지?"
그래. 몰라.
아니, 적어도 엄마한테만 그런 딸이니까.
나는 왜 맞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그러니까 사과하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속으로 삭입니다.
목구멍까지 올라갔다가 폐안으로 다시 돌아 들어갑니다.
배안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가방을 던지고 안경을 바닥에 팽겨 친 것 같네요.
뺨맞아서 괴로운 게 아닙니다.
저는 맨 처음 저한테 가해졌던 폭력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기 때문입니다.
휴지심 안 버렸으니까 옛날부터 말했는지 못 고쳤으니까 맞아야겠다.
왜 이게, 말로하면 안되지?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건가.
다른 집이면 그냥 웃으면서 넘어갈 일이라고 충분히 생각되는데
아닌가?
내가 버릇이 없는 건가?
그런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된 한마디
"내가 진짜. 이런 엄마 밑에서 산다. 살아."
물론 제가 다른 가정에 살아보지 않아서 모릅니다만,
적어도 어머니한테 뺨맞는 게 일상인 집이 흔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버릇없이 어머니께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왜 때리냐는 거였죠.
왜 항상 어렸을 때부터 때리냐.
말로하면 안되냐.
생각해보면 계속 제 애기의 핵심은 그거였습니다.
말을 돌려가면서 계속 그 이야기였습니다.
어머니는 또 말씀하시죠.
"네가 맞을 만한 짓을 했잖니."
저는 이해가 안 되죠.
"휴지심 안 버린 게 그렇게 맞을 만한 짓인가요?"
그리고 뻔 한 전개.
집에서 나가라.
꼴 보기 싫으니까, 내 눈 앞에서 사라져라.
너랑 얘기하면 짜증나니까, 꺼져라.
대강 이러한 레퍼토립니다.
어머니 결론은,
나는 부모로서 할일 끝났으니까.
너는 자식으로서 자중하고 반성해라.
대꾸하지 말고.
그리고 인신공격이 시작됩니다.
저는 방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독서실 갈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벌써 얼굴은 눈물범벅인데 어디로 갈까요.
그리고 뭔가,
어머니께 신경 거슬릴 말을 던지고 퇴장합니다.
"엄마. 진짜 그만 좀 때리라고요. 계속 이런 식으로 하면 고소할거야 진짜..."
버릇없는 송주연.
머리에 든 건 많아가지고 책에서 본
아동폭력이라는 교과서적인 이야기나 들먹입니다.
정말 멍청하죠.
그런 건 책에나 있는 먼 나라 이야긴데.
적어도 한국에서는
자식이 부모한테 맞아죽어도 그건 남의 집 이야기고.
우리가족 만의 이야기니까요.
맞죠, 선생님?
저는 그냥 맞아 죽어야 했을까요?
어쨌든 오늘은 '고소'라는 말이 가장 하이라이트였나 봅니다.
그리고 꼭 몇 분정도 흐르고
어머니가 따라오셔서
대다수 경우 잠겨있는 문을 대여섯 번 치면서.
"야 송주연! 이리나와!!"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맞았다고 생각하면
저도 지기 싫어집니다.
그리고 옛날부터 왜 내가 맞고 살았는지 꺼억 거리는 목으로
눈에선 계속 눈물이 흐르면서 막히는 코를 먹어가면서 항변하고
어머니는 너희가
-동생은 남자애라서 저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덜 맞진 않았습니다.
둘째라서 온몸이 멍들게 때린 적은 없는 것 같지만-
어렸을 때부터 항상 그랬으니까.
이젠 말로 하면 안 되는 거야.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그리고 서로 상처 잡아내기 시합 시작.
저는 머리에 떠오르면 바로 이야기 하고
어머니도 참는 기색은 전혀 없습니다.
대략은 이런 이야깁니다.
엄마는…….
직장 다녀와서 가족한테 화풀이 하지마라.
제발 뭐든 참는 법 좀 배워라.
무조건 자기 조건에 맞추려고 좀 하지마라.
뻑하면 손부터 올리지 마라.
엄마는 본인이 열 받으면 무조건 가족한테 화풀이라서 짜증난다.
솔직히 우리 집 부모님들은 이상하다.
송주연...
너는 항상 말 싸가지 없게 하고 어른한테 말대꾸하지마라.
그래, 고3이면, 공부하면 다냐. 네 성질대로 마음대로 해도 되냐.
너는 네 일밖에 눈에 안 벼서 집안에서 네가 해야 할 일은 전혀 안하고 살거냐.
그렇게 해서 네가 아무리 잘란들 알아주기나 할 것 같으냐.
마음은 피투성이가 될 무렵
대다수는 어머니가 '너랑 이야기 하면 짜증난다.'고 하면서 나가십니다.
그리고 끝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다시 한 번 더 방문하셔서
또 공방
멱살 잡힌 건 오늘이 처음이네요. 한 두세 번.
"저랑 이야기 하면 짜증나신다면서요. 저 독서실은 못갈 거 같으니까. 나가세요."
그리고 진짜 나가셨습니다.
집에는 아버지도 계시고 동생도 있었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일상적인 일이니까 끼어들기 싫으니까. 할일 하시고
방에 틀어박힌 저는
두루마리 휴지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 닦아가면서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땐 밤새 울면서 잠들었는데
이제는 많이 괜찮아 져서
한 30분정도만 그러고 있으면,
세수하고 잠들 수 있습니다.
"누나."
동생입니다. 2번 정도 부르고서야 알아들었습니다.
문을 열어줍니다.
그리고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생이 안아주네요.
누나 괜찮냡니다.
진짜 솔직히 말해서 동생이 나타나자
동병상련이라는 마음으로
어머니를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못 됐죠? 빌어먹을 자식이죠?
동생이 한숨을 쉬면서 말합니다.
"왜 엄마아빠는 때리는 게 당연 한 걸까."
사실, 아버지는 동생을 혼내지 못해 안달이십니다.
저는 딸이라 많이 봐주시는 게 맞습니다만...
아, 아버지 이야기 하려면
또 다른 편지지가 필요하고도 남을 겁니다.
동생이랑 이야기한 내용은
내가 잘못한 건 알고 있는데.
왜 때리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일에 집중하면 다른일도 신경안쓰시고 화내시면서
왜 딸인 저는 조금이라도 그런 마음이 들 때 성질부리면 안 되는 건가요.
죄송합니다.
빌어먹을 년이 진짜로 어머니 욕을 많이 했습니다.
"상언아, 우리 찜질방가면 안되나? 돈 없나?"
없답니다. 그리고 보내주지도 않을 거랍니다.
어렸을 때부터 맞았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커서 이젠 말로하면 안되니까,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조금 심했던 말다툼 정도가
모녀사이의 레파토리중에서 가장 길었던 것 같습니다.
고3이라서 많이 봐주신 걸 껍니다.
많이 참다가
보자보자 하니까 송주연이 기어올라서
마음먹고 때리신 거랍니다.
참 행복한 가정이네요.
그리고 한참 이야기 하던 중
어머니께서 방문을 두드리십니다.
"너네 둘이 뭐해? 송상언은 영어듣기 했어?"
동생이 '아 맞다. 안했는데…….'
하고 중얼거리기에
했다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동생이 저 때문에 맞는 건 보기 싫습니다.
문이 열리고
어머니는 초췌하신 모습입니다.
못된 송주연은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던진 가방에 있던 휴대폰이 깨졌다고
큰소리로 이야기 하고
pmp나 엠피쓰리를 충전하기 위해
이방 저 방을 돌아다닙니다.
어머니는 아무 말 못하시네요.
상언이한테만 뭐라 그러시네요.
저는 없는 사람 취급하다가
동생이 방에서 나가자 한마디 하셨습니다.
뭐였더라.
기억이 안 나네요.
너무 평범한 말투라
아까랑 적응이 안 됐나봐요.
그냥 흘러버립니다.
잘 준비하느라 방을 쏘다녀서
기억이 부서졌습니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어머니는 제 방에 없습니다.
그리고 더 가증스러운 것이 뭔지 아세요. 선생님?
저도 어머니를 공격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는 겁니다.
잠시 기억 파편사이로 보이는 어머니 얼굴은
흡사 곧 자살할 사람 같습니다.
저는 그게 더 괴롭습니다.
어머니 과거를 알기 때문에 괴롭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힘든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잃고
여자라는 이유로 공부 잘해도 구박받고,
대학 등록금도 졸업식에 입었던 옷도
다, 혼자 일해서 벌었다는 것도
무뚝뚝한 아버지랑 결혼하셔서
똑같이 직장이 있는데도,
여자라는 이유로
홀로 집안일 도맞아하며
힘들게 사셨을 20여년도
이제는 친어머니까지 돌아가시고,
살아계신 부모도 안계시고,
동생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속 썩이고,
믿을 건, 저뿐인데.
저는.....
자신만 믿고 산 어머니한테서
희망을 앗아간 배신자입니다.
자기 하고 싶은 일 하겠다고 부모님 배신한
몹쓸년입니다.
그리고 잠들 때 까지 울 겁니다.
저는 아마도…….
내일 아침에 깨면 퉁퉁 부운 눈과 쓰라린 콧등과 씨름하면서 깨어나겠지요.
왜 이렇게 힘들게 살죠?
행복한 가정이라는 파노라마가 언제 기억 필름에서 끓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잘난 머리로 똑똑한 척하며
남을 무시하기 잘하는 저도
언제부턴지 모르겠습니다.
5학년 때, 아버지가 '대장금'이라는 저주스런 드라마 본다고
집에 오셔서 술을 일상적으로 드시기 시작하고 나서 부턴가.
아니면 어머니가 집안일과 학교일을 동시에 하다가
디스크에 걸리고 가족 전체에게서 피해의식을 받으신 후 부턴가.
아니면 훨씬 오래전부터
올 커니. 바로 그때야
내가 태어나서 부터구나.
내가 있어서 다들 싸우는 건가봐.
뭐야, 간단하네.
내 기억 필름이 시작될 때부터.
나는
이기적이고
못되고
막돼먹고
자기밖에 모르고
세상 모두가 미워하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었구나.
이 집에서 나는 무슨 존재인지 묻지 않아도 뻔 하겠지.
말하자면 깨진 항아리처럼
부모님이 사랑을 부어도 부어도
만족하지 않았던 모양이야.
분명 이제 포기한걸 거야.
그래서 조금씩 그 깨진 부위를
점점 넓혀 가면서
조만간 사라지길 바라는 걸 꺼야.
그보다
엄마, 아빠.
그냥 한 번에 산산이 부셔서
형태도 안 남게 해버리세요.
괜히 깨진 항아리 조각에 손 배지 마시고
그냥 바닥에 떨어뜨려 버리세요.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 더 이상은 못쓰겠습니다.
제 소원이 있다면
다음날 아침까지 눈물이 멈춰서 잠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선생님
눈물이 멈추면
다음날 아침부터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주연이네 가족은 일상으로 돌아가니까요.
ps.
계속해서 상담 드리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던 순간마다 떠올랐던
김기태 선생님께…….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해주신 많은 이야기들과는
비교도 안 된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평범하기 짝이 없고,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지 못하는,
허영심 많고 분에 넘치는 꼬마가,
질질짤면서 쓰는.
낙서쪼가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난생처음으로
가식으로 가득찬 송주연이라는 한 인간이
진솔한 편지를 써 보입니다.
화가 나서,
상상으로만 이지만,
식칼 들고 안방으로 가려고 하는
미친 생각을 했었던 정신병자…….
좀 말려주세요.
답장 꼭 부탁드립니다.
바쁘실 텐데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송주연 올림.
파일로 받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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