夢幻虛華 何勞把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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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8,795회 작성일 08-04-03 14:02본문
의문입니다.
새우 08-03-31 23:10
금강경에서 상 떨어지면 부처라고 하셨는데요. 그리고 보잘것없고 초라한 모습이 바로 진아라고 하셨는데요. 이 시점에서 이러한 의문이 생겼습니다. 있는 그대로와 상은 어떻게 다른가? 상은 왜 있는 그대로에 속할 수 없는가? 그러면 상은 있지 않은 것인가? 있지 않다면 어떻게 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초라한 모습을 감추고 상을 지어서 당당한 모습으로 보이고자 하는 것 또한 있는 그대로가 아닐까?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고통을 그대로 받는 것이 해탈의 길이라면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고통을 피하려고 하는 마음은 비록 조작된 마음일망정 있는 마음이 아닌가? 그러면서 계속 있는데 있는데 있는 마음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듭니다.
있는 그대로 본 대로 들은 대로 다 말하라 하면 어떤 사람은 그대로 말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거짓말을 할 수도 있는데.... 거짓말도 있는 그대로 그 마음으로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한 것이 아닌가? 있는 그대로와 그렇지 않은 것의 구분은 어떻게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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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조(三祖) 승찬(僧璨) 스님이 쓰신 신심명(信心銘)에 보면 ‘몽환허화(夢幻虛華) 하로파착(何勞把捉)’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 뜻인 즉, “꿈같고 허깨비 같은 허공 속의 헛꽃을 어찌 애써 잡으려 하는가?”라는 말입니다.
이때 ‘몽환허화(夢幻虛華)’라 함은 곧 ‘상(相)’을 뜻하는 말로서, 마음이 만들어낸 있지도 않은 허구적인 모양을 가리킵니다. 님의 말씀을 빌리면, ‘초라한 모습을 감추고 당당한 모습으로 보이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 ‘당당한 모습’이란 것이 바로 ‘허공 속에 그려놓은 헛꽃’이라는 말입니다.
허공 속에 그려진 헛꽃이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어떻게 그것을 잡아서 ‘내것’이 되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헛꽃’으로 보이기는커녕 너무나도 분명하게 실재(實在)하는 것으로 보이니, 어찌 그것을 잡으려고 애쓰지 않겠습니까. 그 마음을 일러 ‘무명(無明)’이라 하기도 하고, 또한 어리석음이라 하기도 하지요. 님이 말씀하신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고통을 피하려고 하는 마음”과 그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구요.
또 님은 “비록 그것이 조작된 마음일망정 있는 마음이 아닌가?”라고도 하셨지만, 그런 마음으로는 결코 마음 속의 고통과 갈증이 끝나지 않아요. 왜냐하면, 있지도 않은 헛꽃을 잡으려는 허망한 몸짓으로는 결코 영혼의 쉼이 오지 않으니까요.
아까 인용한 신심명의 앞뒤에는 또 이런 구절도 있네요.
一切二邊(일체이변) 모든 두 가지 경계는,
良由斟酌(양유짐작) 오직 헤아려 보기 때문에 생긴다.
得失是非(득실시비)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을
一時放却(일시방각) 일시에 놓아 버려라.
眼若不睡(안약불수) 눈이 잠들지 않으면,
諸夢自除(제몽자제) 모든 꿈은 저절로 사라진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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